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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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리뷰 총점 9.1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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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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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
프리드리히 니체 저/안성찬,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프리드리히 니체 저/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프리드리히 니체 저/김미기 역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유고(1888년 초~1889년 1월 초)
프리드리히 니체 저/백승영 역
유고(1888년 초~1889년 1월 초)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
프리드리히 니체 저/백승영 역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
유고(1885년 가을~1887년 가을)
프리드리히 니체 저/이진우 역
유고(1885년 가을~1887년 가을)
유고(1884년 초~가을)
프리드리히 니체 저/정동호 역
유고(1884년 초~가을)
유고(1884년 가을~1885년 가을)
프리드리히 니체 저/김정현 역
유고(1884년 가을~1885년 가을)
유고(1882년 7월~1883/84년 겨울)
프리드리히 니체 저/박찬국 역
유고(1882년 7월~1883/84년 겨울)
유고(1880년 초~1881년 봄)
프리드리히 니체 저/이상엽 역
유고(1880년 초~1881년 봄)
유고(1876년~1877/78년 겨울) 유고(1978년 봄~1879년 11월)
프리드리히 니체 저/강용수 역
유고(1876년~1877/78년 겨울) 유고(1978년 봄~1879년 11월)
유고(1872년 여름~1874년 말)
프리드리히 니체 저/이상엽 역
유고(1872년 여름~1874년 말)
유고(1870년 ~ 1873년)
프리드리히 니체 저
유고(1870년 ~ 1873년)
유고(1869년 가을 ~ 1872년 가을)
프리드리히 니체 저/최상욱 역
유고(1869년 가을 ~ 1872년 가을)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 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 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 .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1 유고(1864년 가을~1868년 봄)
프리드리히 니체 저/김기선 역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 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 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 .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1 유고(1864년 가을~1868년 봄)
아침놀
프리드리히 니체 저/박찬국 역
아침놀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니체 저/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니체 저/이진우 역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유고(1875년 초~1876년 봄)
프리드리히 니체 저/최문규 역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유고(1875년 초~1876년 봄)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니체 저/백승영 역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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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선악을 넘어서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a*****e | 2006.11.02 리뷰제목
오늘날 우리는 도덕에 대해 궁금해 할 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진리란 무엇인가?(What is …….)” 이때 ‘무엇(What)’이란 이미 정의된, 보편적인 본질을 의미한다. 반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묻는다. “진리란 어떠한 것인가?(Which one …….)” 혹은 “어떠한 것이 그것을 진리로 만들었는가?” 특정한 조건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생겨났음을 말하는 맑스의 성과나, 우
리뷰제목
오늘날 우리는 도덕에 대해 궁금해 할 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진리란 무엇인가?(What is …….)” 이때 ‘무엇(What)’이란 이미 정의된, 보편적인 본질을 의미한다. 반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묻는다. “진리란 어떠한 것인가?(Which one …….)” 혹은 “어떠한 것이 그것을 진리로 만들었는가?” 특정한 조건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생겨났음을 말하는 맑스의 성과나, 우리가 별다른 의심 없이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이성’이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며 폭력적인 억압과 배제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밝히는 푸코의 시도는, 발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맑스의 말을 빌리자면 “흑인은 흑인이다. 일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임금 노동과 자본』” 이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광기가 억압되고 배제될 때 비로소 이성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조건 아래 선과 악이라는 가치 판단을 생각해냈던 것일까? 그리고 그 가치 판단들 자체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p.340)” 니체는 ‘좋음/나쁨’의 기원이 ‘선/악’의 대립과 다르다고 말한다. ‘좋음’은 ‘귀족의’, ‘고귀함’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여기서 ‘귀족적인’, ‘정신적으로 고귀한 기질’등이 연유한다. 그것과 대비해 ‘나쁨’이라는 의미는 ‘비속한’, ‘천민의’, ‘저급한’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이때 ‘나쁨’에는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들어있지 않다. 다만 ‘좋음’에 비해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단순함’, ‘평범함’, ‘소박함’을 의미할 뿐이다. 이때 ‘좋음’의 개념에는 귀족적이고 고귀한 자기 긍정이 들어있다. “고귀한 부류의 인간은 스스로를 가치를 결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그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이다.(p.276)” 자신을 긍정하는, 영혼이 고양되고 자부심 있는 사람들의 삶은 항상 기쁨으로 충만해있다. 이들에게는 행복과 행위가 항상 합치되어 있으며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고, “충만한 감정과 넘쳐흐르고자 하는 힘의 느낌, 고도로 긴장된 행복과 베풀어주고 싶어 하는 부유함의 의식으로 충만해있다.(p.276)” 결국 ‘좋음’을 추구하는 그들의 욕망은, 타자의 시선이나 비교가 아닌 ‘좋은 인간들(귀족적, 고귀한 인간)’ 스스로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귀족적인 도덕이 자신을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스스로 ‘좋음’을 추구하였다면, 노예의 도덕은 이와 상이하게 출발한다. 노예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 ‘다른 것’, ‘자기가 아닌 것’을 부정한다.(p.367)” 그들은 생존의 압박, 강자(주인)에 대한 공포 속에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강한 자(귀족적)에 대한 증오를 품는다. 이들의 원한은 결국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 자신과 대립되는 사람들을 통해, “‘악’을 생각해내고, 그것의 대립물로 다시 한번 ‘선’을 생각해낸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p.371)” 이제는 ‘좋은 것/나쁜 것’이라는 가치 판단이 “선한 것/악한 것‘의 도덕적 의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가 양상의 변화이다. 귀족의 도덕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긍정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하며 삶의 에너지로 충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예의 도덕이 지배하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부정하고 수동적이며, 현실이 아닌 죽은 뒤 낙원을 꿈꾸는 결핍된 생을 살게 된 것이다. 자율적인 것에서 무리 짓는 것으로, 창조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생의 과잉에서 생의 결핍으로. 가장 작고 약한 자의 도덕이 승리한 것이다. 노예도덕의 승리. 이 거대한 사건을 니체는 ‘양을 잡아먹는 독수리’의 비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성장하고 뻗어나가려 하는 ‘힘의 의지(Wille zur Macht)’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잡아먹는 독수리에 대한 양들의 비난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태계에서 독수리가 양을 잡아먹는 것 역시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강한 것에게 강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약한 것에게 강한 것으로 나타나기를 요구하는 것만큼 불합리하다.(p.377)” 대적할 힘이 없는 양들은 ‘정신적인 복수’란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해낸다. 모든 것이 ‘주체’에 의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문법적 환상(주어를 쓰고자 하는 유혹)’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번개가 친다.”는 문장에서 주어 ‘번개’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갖고 ‘치는’ 것처럼 말한다. 이처럼 주어를 통해 사고함으로서 내가 ‘나(주체)’의 의도에 의해 행동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자신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통제하는 ‘나’와 통제되는 ‘나’ 이제 양을 잡아먹는 독수리의 (본능적인)행동은 본인의 책임 아래 놓여지게 되고, 그것이 통제되지 못할 경우 마땅히 비난받으며 반성해야 할 행동으로 여겨진다. 반면 양들은 마치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독수리처럼 강해질 수 있지만)그들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를 기만한다. 양들의 무력감은 ‘겸허’, ‘순종’, ‘인내’, ‘용서’ 등의 미명아래 오히려 미덕이 되며, 하나의 ‘선(善)’이 된다. 자신들의 불행을 행복한 자의 ‘양심’에 성공적으로 밀어 넣을 때 복수는 막을 내린다. 끈질긴 반동의 힘 앞에서 독수리가 서서히 추락한 것이다. 과거 자신을 긍정하고 스스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였던 ‘거인’들은, 이제 끊임없이 (양심의)가책에 시달리며 자신을 속이는 ‘난쟁이’로 변했다! 니체는 이 책이 ‘2000년경’에야 읽힐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야말로 ‘창조’하고, ‘명령하는 자’라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러나 21세기, 성공적(?)으로 길들이고 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 속에는 오히려 니체의 시대보다 공고해진 ‘우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이 순간 ‘보편성’을 앞세운 수량화, 자본의 논리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결핍! 결핍! 결핍! 그가 말한 ‘미래의 철학자’는 당분간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진리를 거부하고, 모든 가치의 전도를 통해 ‘선악의 저편’을 바라볼 용기를 지닌 짜라투스트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인상깊은구절]
가장 위대한 사건과 사상은 가장 늦게 이해된다. 동시대의 세대는 그러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다. 가장 멀리 떨어진 별빛이 인간에게 가장 늦게 이른다.그 별빛이 이르기 전에는, 그곳에 별이 있다는 것을 인간은 부정한다.(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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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철학에 대하여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m*****s | 2023.06.14 리뷰제목
안녕하세요 2023년도 36번째 책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리뷰입니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것이다. 선악의 저편 mobile e-book : 206p   배운다는 것은 우리를 변화 시킨다. 선악의 저편 mobile e-book : 364p   "선한 존재가 되게 하자! 그리고 선한 인간이란 능욕하지 않는 자,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
리뷰제목

안녕하세요 2023년도 36번째 책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리뷰입니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일상적인 것이다.

선악의 저편 mobile e-book : 206p

 

배운다는 것은 우리를 변화 시킨다.

선악의 저편 mobile e-book : 364p

 

"선한 존재가 되게 하자!

그리고 선한 인간이란 능욕하지 않는 자,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는 자, 복수를 신에게 맡기는 자, 우리처럼 자신을 숨긴 채 사는 자, 모든 악을 피하고 대체로 인생에서 요구하는 것이 적은 자, 즉 우리처럼 인내하는 자, 겸손한 자, 공정한 자이다."

도덕의 계보 mobile e-book : 636p

 

니체의 말은 언제나 저에게 큰 감명을 줍니다. 

전에 읽었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이번 편보다 더 좋긴 했습니다.

추후 계속 니체의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항상 자아 성찰을 통해 철학에 대해 배우는 것 같아 좋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아래의 링크에 남겨두었습니다.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클릭!)

 

리뷰를 읽으시는 분 모두 다(多)독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종이책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의 기원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g********m | 2006.02.18 리뷰제목
나는 '도덕의 계보'만 읽었다. 왜? 그냥. 내맘이다.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다. 이럴 때마다 친구가 그립다.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 그래서, 더불어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게 되는 친구.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책은 선과 악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선과 악에 '절대'라는 말을 붙였다. 그런데, 나는 착하게 사는 것은 선이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
리뷰제목
나는 '도덕의 계보'만 읽었다. 왜? 그냥. 내맘이다.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다. 이럴 때마다 친구가 그립다.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 그래서, 더불어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게 되는 친구.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책은 선과 악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선과 악에 '절대'라는 말을 붙였다. 그런데, 나는 착하게 사는 것은 선이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연민을 갖는 것은 비이기적 행위를 선이라고 했다. 이 기준은 절대 악을 상정하고 이에 상반되는 것들을 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방식으로 도덕과 비도덕을 구분 지었다.   니체는 선과 악의 계보를 펼치며 선과 악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고귀한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구분한다. 고귀한 도덕은 자발적 행동, 자기 긍정, 좋음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서 나쁨을 만들기 : 노예의 도덕은 도덕을 마련키 위한 대립하는 외부 세계의 설정(악을 마련하고 거기에 대비되는 선을 마련하기)하고 있다.   죄, 양심, 의무, 의무의 신성함 등과 같은 것들의 발생지는 채무법이다. 즉, 이들을 행하지 않았을 때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뤄야 하는 빚을 지게 되기 때문에 양심과 의무 같은 '선'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대가에는 '양심의 가책'같은 것들이 있다. 바로 기독교의 '원죄의식'이다. 양심의 가치야말로, 자기 학대를 하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비이기적인 것의 가치를 낳는 전제가 된다느 것이다. 그래서, 어찌 어찌하여 이것이 과장된 협박이라는 얘기다.   이 과장된 협박을 강화하기 위해 '금욕주의'가 참여한다는 얘기를 '도덕의 계보'의 세 번째 논문에서 얘기한다. 기독교에서 유래하는 '양심의 가책'과 금욕주의의 '죄책감'을 동일선상에서 얘기하는 것 같다.     추가로 하나 더: 이런 금욕주의에 대한 반론으로 과학이 대두된다. 그러나, 이 과학과 금욕주의는 진리에 관한 똑같은 과대 평가 위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하는 말대로 '과학적 합리주의' 또는 '이성'은 신화라는 것이다.   고귀한 도덕은 '힘에의 의지'일 것이다. 이 의지는 주체가 없다. 객체를 설정하고 주체에 의한 객체가 어찌 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스르로 그러한 뭐 그런 것 같다.   책에도 나왔지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脫我'가 중요하다. 그래서, '위버멘시'로 가는 뭐 그런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어정쩡한 리뷰가 되어 버렸다. 개인적 감상만 늘어놓으려고 했는데, 대부분이 책의 요약으로만 이루어졌다. 다행히, 읽은 것 어정쩡하게 요약하다 보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대충 나온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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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덕이 아닌, 의무가 아닌, 죄가 아닌, 금욕이 아닌, 목적이 아닌 평점8점 | s***y | 2005.10.05 리뷰제목
니체의 이해에 있어 이 두 책은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한다. 서사시적이며 비유적인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책들에서야 비로소 그의 사상의 맥락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전집의 일부로 이런 번역본이 국내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혜택인 셈이다. 더욱이 [도덕의 계보]는 [선악의 저편]의 속편으로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써진 책이니만큼 [도덕의 계보]의 독서는 니체 이해
리뷰제목
니체의 이해에 있어 이 두 책은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한다. 서사시적이며 비유적인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책들에서야 비로소 그의 사상의 맥락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전집의 일부로 이런 번역본이 국내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혜택인 셈이다. 더욱이 [도덕의 계보]는 [선악의 저편]의 속편으로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써진 책이니만큼 [도덕의 계보]의 독서는 니체 이해에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또 품절이다...흑 [도덕의 계보] 니체는 힘의 원리에 의해 세상을 본다. [좋다]라는 정의는 힘있는 자의 자기정체이고, [나쁘다]가 약한자들에 대한 강자의 정의라면, [악하다]는 약자의 강자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의 투영이고, [선하다]는 약자의 자기위로와 궤변적 인간이해라는 것이다. 니체는 현대사회의 모든 병리가 이 선악에 의한 인간사회 체제에 있다고 본다. 약자들이 개발해낸 궤변의 그물에 강자들은 얽매여, 병들어 죽어가는 사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모든 선악을 논하는 도덕이라는 것, 어떤 의미가 인간에 있다는 주장,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모두 강자를 속여 무장해제시켜왔다는 것이다. 이런 선악의 이해는 결국 니체로 진리자체를 문제 삼게까지 한다. 플라톤을 그리스도교를 문제삼는다. 진리의 원형, 도달점, 어떤 목적지가 있으리라는 인간역사의 오랜 개념 자체를 문제삼는다. 인간은 인간의 본능에 쓰여진 인간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적인 혹은 기독교적인 인간의 이해와 사회의 체계가 인간이 인간되지 못하고 자기의 단순한 생리적 문제를 해결치 못한 것을, 더욱 배배꼬이게 하여 복잡한 콤플렉스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목적이라는 것, 기준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아니 참된 긍정이란 없으므로 부정도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고통에 이유를 달지말고 해결하면 된다는 처방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편으로 그는 진화론도 반대한다. 인간의 자기멸시 즉 현재 있는 그대로가 아닌 과거의 동물이었던 인간으로 바라봄과, 이런 독단론으로 인간을 해석하는 것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결국 저편의 세계를 바라고 이 세상을 바로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이 모든 일체의 진리의 추구를 그는 썩은 공기를 뿜는 수천년의 거짓말이라고 규정한다. 결국 목적점이 없어야만 인간이 위대하지도 비참하지도 않아야만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있어 이런 위버멘쉬(초인)이란 이런 도덕적 체계를 벗어난 창조적 인간이다. 진리란 없다. 목적이란 없다. 생명이 있다. 증폭이 있다. 풀려난 의지와 무엇무엇이 아닌 것들이 있다. 그것은 더 높은(위버) 것인데 어느쪽이 위인지는 모른다. 니체는 거꾸로 서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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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평점6점 | e**********6 | 2021.06.13 리뷰제목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리뷰입니다. 니체의 사상, 니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허무주의 그리고 초인사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던 책인 것 같아요. 그러나 편하게 읽기에는 문장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차이일 수는 있겠으나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매한 경우도 더러 있어 한 문장을 여러 번 읽게 되어 완독하는 데에 시간
리뷰제목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리뷰입니다.
니체의 사상, 니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허무주의 그리고 초인사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던 책인 것 같아요. 그러나 편하게 읽기에는 문장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차이일 수는 있겠으나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매한 경우도 더러 있어 한 문장을 여러 번 읽게 되어 완독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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