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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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리뷰 총점 9.3 (36건)
분야
인문 > 서양철학
파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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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차라투스트차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평점10점 | t******y | 2021.02.19 리뷰제목
내 인생을 통틀어 책과 가장 친했던 시기는아이러니하게도 입시에 한창 열을 올려야했던 고교시절이였다.그 시절 친구들보다 유별나게 사춘기를 온몸으로 표현했던 나.그때 내게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지옥과 같아서 누군가 툭 치기만해도 오늘 내가 야자를 빠져야 하는 이유를 술술 댈 수 있을 정도였다.물론 나중엔 선생님들도 거짓열외사유를 간파하셨고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를 지어
리뷰제목

내 인생을 통틀어 책과 가장 친했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입시에 한창 열을 올려야했던 고교시절이였다.

그 시절 친구들보다 유별나게 사춘기를 온몸으로 표현했던 나.

그때 내게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지옥과 같아서 누군가 툭 치기만해도

오늘 내가 야자를 빠져야 하는 이유를 술술 댈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나중엔 선생님들도 거짓열외사유를 간파하셨고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를 지어가도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나는 꼼짝없이 야자시간을 견뎌야했다.



하지만 나는 열공 대신 열독을 택했고

그 시절에 처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짜라투스트라라고 발음했다.))



벌써 2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인데,

지금의 나보다 더 큰소리로 자신있게 나는 세상을 다 안다고 외치던

무모할 만큼 당돌하고 미숙했던 아이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책을 다시 읽고 보니,

분명 이책을 읽었음에도

왜 지금까지 '초인' 두 글자로만 이 책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 , 이내 이해가 됐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어렵다.

비유와 은유로 가득하고 상징과 함축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이토록 주제가 뚜렷하고 간결한 책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명확하다.

까만 표지에 새하얗게 대비되는 꼬리를 문 뱀, 우로보로스

바로 이 책의 표지처럼 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우선 그대들에 의해 창조되어야 한다.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이미지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이 세계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행복에 이르게 되리다.

창조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 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가 있으려면 고통과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

그대들의 삶에는 수많은 쓰라린 죽음이 있어야한다."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내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랐고 결국 다시 책을 꺼내들었다.

다시 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헤세는 데미안에서

니체와 함께 살며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꼇고 그를 쉴 새없이 몰아간 운명을 감지했으며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고

싱클레어의 입을 빌어 고백했다.



실로 데미안 곳곳에서 짜라투스트라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있었다.



나는 짜라투스트라의 노래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헤르만 헤세가 그랬듯이, 그의 노래에 감동받고 기꺼이 자신의 입으로 다시 새로이 불러주는 이들이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새삼 니체가 위대한 인물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끝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손에 들고

아찔한 공중에 의지할 것 없이 줄을 타는 이 광대들에게

기꺼이 친절한 역주를 제공해주신 이진우 교수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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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신 없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 평점10점 | h*******l | 2021.02.18 리뷰제목
"신은 죽었다!"라는 너무나 유명한 명제를 남긴 19세기 독일 허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성은 철학의 문외한인 모든 이들에게조차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그의 대표작 중 한 권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치게 된 순간 많은 사람들이 본서를 읽다가 포기했다고 말한 이유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확인할 수 있었죠. 마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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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는 너무나 유명한 명제를 남긴 19세기 독일 허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성은 철학의 문외한인 모든 이들에게조차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그의 대표작 중 한 권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치게 된 순간 많은 사람들이 본서를 읽다가 포기했다고 말한 이유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확인할 수 있었죠. 마치 글자의 미로 속으로 빠져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니체만의 사고와 글의 향연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에 걸맞듯 책은 마치 어떠한 독자에게도 쉽사리 자신의 속 마음을 내비치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더군요. 그만큼 이 책은 손쉽게 접근해서 그 진의를 모두 이해하고 빨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인 저작이 맞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개신교 신자로서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성경과 대척점에 서 있는 대표적인 허무주의 철학자로서 니체의 저작 한 권 정도는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메시지의 난해함을 느꼈을 때 찾을 수 있는 꿀팁은 바로 역자 해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죠. 역자의 해제는 책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나 같은 가련한 독자들에게 니체가 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key를 마치 지름길을 알려주듯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해제를 먼저 읽고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을 때 대략적인 책의 윤곽이 보였습니다.

 

우선 이 책은 철학자의 책이지만 내용이 모두 철학적 용어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이거나 사변적이지도 않고 수많은 철학적 담론으로 가득한 책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니체의 말을 마치 논술시험 보듯 머리로 이해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하나의 그림을 감상하듯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역자는 이 책을 이미지와 비유의 보고라고 표현했습니다. 논리와 철학적 명제를 개념적으로 연결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기에 문학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철학서라고 보기도 어려운 비철학적 형식의 책입니다.

 

"신은 없다!"라는 대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저작답게 니체는 인간들에게 참된 존재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주어진 삶의 다양한 정황 속에서 넘어서는 인간, 즉 초인(超人)을 지향합니다. 니체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의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이죠. 인간 스스로가 세상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길은 바로 넘어서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은 이 책의 백미입니다.

 

논리적, 분석적,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이미지들의 조합이 코드화된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19세기 독일과 유럽의 시대정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저작입니다. 근대 유럽의 정신세계를 휩쓴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의 사상적 파도 속에서 어쩌면 니체와 같은 철학자와 작품의 탄생은 필연적 귀결인 것이죠. 그런데 책을 통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신은 없다!"라고 외쳤던 니체에게 있어 진정한 신은 바로 삶 자체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삶을 사랑한 무신론적 허무주의자! 표현 자체가 모순과 반전이 가득하죠! 니체에게 있어 참된 신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목사였으며 본인 또한 신학공부를 했지만 그 안에서 목도한 개신교의 신이 아닌 인간 실존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현대, 특별히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니체의 사상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 이유는 도덕적 절대 기준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자신 스스로가 합리적 결정의 기준과 행동의 주체가 됨으로써 주어진 상황들을 극복해내야 한다는 니체의 메시지가 가진 독특한 매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담이지만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신을 배제한 인간 이성의 무한 신뢰와 인본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 유럽의 시대정신은 곧이어 20세기 초 전 유럽을 피로 물들인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통해 사상적 패닉에 빠진다는 것이죠. 아무튼 책을 덮은 이후 프리드리히 니체는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삶을 사랑한 허무주의 철학자라는 반전 가득한 인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논리와 개념이 아닌 이미지로 이해할 것! 저자의 개인적인 삶과 시대적 배경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숙지할 것! 이 두 가지는 니체가 만들어 놓은 지적 미궁에 갇혀 그리스 신화의 우두인신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독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ti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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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평점9점 | g*****6 | 2021.02.19 리뷰제목
살아가다 한번쯤은 마주치는 존재에 대한 의문. 그것을 생각하고 고찰하고 성찰해나가는 학문은 철학이죠. 분명 인간이 묻고 인간이 답하는 철학이건만 왜 같은 인간인 저에게는 이다지도 어렵게만 느껴질까요? 저와 철학자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그래서 한번은 만나야할 것 같습니다. 니체. 그래서 한번은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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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한번쯤은 마주치는 존재에 대한 의문.
그것을 생각하고 고찰하고 성찰해나가는 학문은 철학이죠.
분명 인간이 묻고 인간이 답하는 철학이건만
왜 같은 인간인 저에게는 이다지도 어렵게만 느껴질까요?
저와 철학자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그래서 한번은 만나야할 것 같습니다. 니체.
그래서 한번은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가 말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실존인물이라고 합니다.
기원전에 존재했으며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입니다.
세계사를 배울 때 들어보았던 조로아스터교지만 실은 단어 외에는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세계 3대 종교 중 기독교의 예수가 30세에 성령을 받고 세상을 구원하러 나섰고
불교의 붓다가 29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영적인 삶을 시작했듯
조로아스터 역시 30세에 출가하고 10년 수행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니체는 고대의 현자인 조로아스터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썼는데
그게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실은 철학서로 대단히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상당히 두꺼운 이 책을
펼쳐볼 엄두가 도통나지 않았습니다만 막상 펼쳐보니 상상 밖이었네요.
뭔가 오디세우스를 읽는 느낌 혹은 일리아스를 읽는 느낌이랄까요?
철학의 일반적인 논리와 추론으로 가득한 철학서가 아닌 차라투스트라의 서사시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차라투스트라가 수행 끝에 얻은 깨달음을 설파하기 위해 하산했다가 다시 귀향을 반복하는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삶의 여정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있어서 각오를 단단했지만
최고의 니체 전문가 이진우 교수의 자연스러운 번역과 이해하기 쉬운 해설 덕분에
문학작품을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자주 접하는 단어는 <몰락>, <초인(위버멘쉬)>, <영원회귀>입니다.
사실 <몰락 沒落>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지만 차라투스트라는 '내려감'의 뜻으로
변화와 시작, 상승의 전제 조건이 되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초인 超人> 또한 일반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슈퍼맨의 의미보다는 '넘어선 인간'으로 쓰입니다.
제가 이해하기 가장 어려웠던 단어는 <영원회귀>였는데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보고 이 단어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영원회귀'는 처음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상태, 말하자면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해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이 다시 똑같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한 것이죠.
새삼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 의미심장하게 보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려면 성경을 알고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과학과 신학의 차이와 유사점을 이해한다면 좀더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쓰고보니 모두 다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네요.)

나는 사랑한다.
행동에 앞서 황금 같은 말을 던지고 언제나 약속한 것 이상으로 행하는 자를.
그는 자신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제게 이렇게 말해주네요.
당신은 어떤가요?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진짜 '삶'을 찾아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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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a********0 | 2021.02.23 리뷰제목
휴머니스트 지원 도서입니다   서른에 뜻을 세웠다는 공자와도 같이 서른이 된 차라투스트라도 고독을 찾아 산으로 은거합니다. 십 년의 수행 후 자신의 지혜에도 실증이 난 그는 뜻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기 위해 하산하기로 해요. 한 방랑자가 그런 차라투스트라를 붙들어 설득합니다. "인간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말게.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간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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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지원 도서입니다

 

서른에 뜻을 세웠다는 공자와도 같이 서른이 된 차라투스트라도 고독을 찾아 산으로 은거합니다. 십 년의 수행 후 자신의 지혜에도 실증이 난 그는 뜻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기 위해 하산하기로 해요. 한 방랑자가 그런 차라투스트라를 붙들어 설득합니다. "인간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말게.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죽이고 말걸세." 결심은 집어치우고 숲속에 머물며 신을 찬양하라는 성자의 말에 차라투스트라는 깜짝 놀라 되려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아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구나!'(p18) 하고 말이죠.

 

처음으로 발 디딘 곳은 어느 도시의 시장이었습니다. 줄타기 광대의 공연을 보려는 구름 같은 관중들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말합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p19) 차라투스트라의 긴 연설을 군중들 모두가 비웃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길, 죽은 신, 행복과 이성, 덕과 정의, 동정심, 무엇보다 초인의 의미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차라리 줄타기 광대가 얼른 나와 재주 부리기만 바랄 뿐이죠. 차라투스트라는 슬퍼하고 광대는 밧줄 위를 잰걸음으로 가로지릅니다. 그런 광대의 뒤를 한 어릿광대가 뒤따릅니다. "빨리 가! 이 절름발이야!" 바싹 다가선 어릿광대에 놀란 광대가 떨어져 죽자 차라투스트라는 차게굳은 길동무를 짊어지고 길을 떠납니다. 어둡고 쓸쓸한 차라투스트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만 같이요.

 

이후로 거듭되는 방랑.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짐승들 사이에 있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차라투스트라는 고독한 동굴 또는 소란스러운 인간세계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해요. 세계를 부유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뒤를 그의 잠언으로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이 뒤따릅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산에서, 들에서, 항구에서, 바다 위에서, 작은 선박 한 켠에서까지 차라투스트라에게 배움을 청하는 이들이 나타나지요. 그를 비웃던 자들이 이제는 차라투스트라만한 이가 없다고 감탄하네요. 차라투스트라는 거듭 말합니다. 세계를, 몸을 경멸하는 자들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죽음을, 전쟁과 전사들을, 우상과 순결과 이웃 사랑과 젊고 늙은 여자를. 하다 못해 아이와 결혼에 관해서까지도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매 편이 끝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되고 전개되고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와 왕들과,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와 늙은 마술사와 교황과 자발적으로 거지가 된 자와 그림자, 나귀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끝이 납니다. 아침 태양처럼 이글이글 불타는 마음으로 동굴을 떠나는 그는 정말이지 후련해 보이는데 독자인 저는 그가 남긴 동굴 앞에서 어쩌면 좋은가 하고 망설이고 있어요. 그를 따라 하산할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의 동굴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꿀을 핥으며 그가 남긴 말들을 되새기고 일깨우고 비판하고 따져 물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모든 말들이 수수께기인 것만 같아요. 제가 잘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차라투스트라가 너무나 많은 말을 했는데 그 중 하나도 다 알지 못하는 것만 같아 읽는 내내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내 집에 머물러 있는 한 그 누구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p491)고 말하거든요. 그러니 완독이지만 실은 완독이 아니라며 계속해 그의 동굴에 머물러 있으면 어떨가 싶어요. 또 말하기를 "용기를 내라,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얼마나 많은 일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대들이 실패했고 절반만 성공했다 하더라도 무엇이 이상한가!"(p514) 라고 하니 쪽수를 해치웠다는 외에는 의미를 갖지 못한 이번 독서에도 지나치게 실망은 하지 않을래요. 게으름뱅이 독자는 밉다는 차라투스트라. 무엇이든 곧이 듣지 말라구요. 쉬이 설득 당하지도 말라구요. 차라투스트라가 전하는 탁월한 이야기들, 그 한 마디 한 문장 모두 의구심을 가지며 용감하게 또 해석에 개의치 않고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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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평점10점 | d******n | 2021.02.18 리뷰제목
우연찮게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책을 연거푸 읽고 있다. <맹자>를 읽으면서 비슷한 시기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함께 읽고 있으니 말이다. 두 책 모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고, 각각에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전공 덕분인지 니체보다는 <맹자>가 상대적으로 눈에 익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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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책을 연거푸 읽고 있다. <맹자를 읽으면서 비슷한 시기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함께 읽고 있으니 말이다. 두 책 모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고, 각각에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전공 덕분인지 니체보다는 맹자가 상대적으로 눈에 익숙한 편이다. 

니체는 언제고 제대로 한 번 읽어야지생각은 여러 번 했으면서도 어쩐지 선뜻 시작하기는 좀 어려웠다. 왠지 모를 진입장벽이 느껴지던 니체인데, 이번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니체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기도 하지만, 니체 스스로가 대표작이라고 하였으니 니체 철학의 입문서로서 딱 알맞을 것 같았다. 니체 철학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지만, 그런 부담감은 내려놓은 채 그냥 천천히 읽기로 했다.

책은 주인공인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로 시작하고,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1~4부로 계속 이어진다. 본문 중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용어는 굵은 글씨로 표시해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보게 했고, 각주를 달아 설명을 덧붙였다. 덕분에 표시가 없었으면 무심코 지나갔을 내려감’, ‘몰락의 의미를 도입부에서부터 다시금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니체 읽기의 어려움은 이런 부분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강렬한 영감을 받아, 처음 3부를 쓰는데 각각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p.586)고 하는데, 우리가 니체를 이해하려면 우선 니체 특유의 용어부터 먼저 이해해야 하니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특이했던 것은 이미지로 읽힌다는 점이었다. 읽는 것은 글이지만, 차라투스트라의 몰락, 군중 앞에선 차라투스트라, 죽은 사람을 길동무하여 밤길을 걷는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이 계속 이어졌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이나 불교의 공() 같은 개념이 연이어 겹쳐진다는 점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이 일반적인 뜻의 몰락이 아닌 쇠()함이고, 그 쇠함이 그저 사라지고 마는 소멸이 아니라, 재생과 부활을 의미하는 탄생의 의미로 이어졌다

나중에 후반부의 해설을 읽어보니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면서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대신에 이미지와 비유에 내맡겨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 부분을 읽고 나니 앞서 읽은 본문이 이미지와 비유로 읽힌 것이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며 내심 이해가 되었다. 불교 경전에도 수많은 비유와 상징이 등장하듯 이 책 역시 논리적 추론보다는 영감과 비유의 측면에서 읽을 때, 훨씬 더 잘 읽히는 듯하다.

 

번역자인 이진우 교수는 해설에서 학자들의 경우에는 문학이라고도 할 수 없고 철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차라투스트라의 비철학적 형식 때문에 관심을 덜 갖는다고 하였다. 차라투스트라의 그런 특성이 일반 독자에게는 오히려 철학에 대한 부담감 없이 니체에게 다가서기 더 좋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심오한 니체 철학을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천천히 다가가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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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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