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백세시대다. 중년은 말그대로 '인생 이모작'을 위한 발판이 된다. 중년의 위기는 곧 재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지혜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기회 말이다. 융 심리학자 혹은 심층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는 중년의 위기를 인생의 '중간항로'에 비유한다. 중간항로는 성년기와 노년기 사이에서 한 인격을 재정의하고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자 통과의례다. 통과의례는 반복적인 수행이 요구된다. 십대에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가는 통과의례를 거쳤어도 마흔이 넘어가면 다시금 중년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를 잘 넘기기 위해선 또다른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저자는 중간항로의 의제를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우리는 원래의 자기감을 어떻게 습득했을까? 중간항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삶의 변화는 무엇일까? 자기감을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을까? 카를 구스타프 융의 개성화 개념과 우리의 타인을 향한 헌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개성화를 이루고 중간항로를 지나 어두운 숲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이동하려면 어떤 태도와 행동 변화가 필요할까?"(9, 10쪽)
중간항로는 성격을 재정의하고 삶을 재검토하고 방향을 바꾸는 기회다. 부모, 사회, 문화가 물려준 성격인 '잠정 인격'에서 진정한 자기감을 확립하기 위해 갈등을 겪는 시기, 다시 말해서, 성격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기가 바로 중간항로다. 중간항로에 들어서면 사회적 성격인 페르소나와 지금껏 억압해온 그림자가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림자는 분노, 이기심, 욕망, 질투 등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내면의 모든 부정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후천적 자기감은 내면아이를 지키기 위해 지각 및 콤플렉스와 결합하며, 스스로를 실현하려 애쓰는 더 큰 '자기'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35쪽)
중간항로는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1차 성인기'에서 '2차 성인기'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그런데 중간항로의 통과의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1차 성인기는 약 12세에서 40세까지의 기간이다. 전통 사회에서 소년이 어른이 되려면 통과의례를 거친다. 우리의 삶에 의미와 깊이를 부여하는 통과의례는 보통 '분리, 죽음, 재생, 가르침, 시련, 귀환'의 6단계로 구성된다. 저자는 전통 성인식이나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통과의례의 부재나 결여가 현대사회의 주요 문제나 적폐와 관련이 깊다고 지적한다.
중간항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삶의 변화는 불치병, 사고, 배우자의 상실 등 극단적인 의식의 충격으로 인한 정체성 변화와 관련이 깊다. 유년기, 성년기, 노년기마다 고유한 특징적 사고패턴과 정체성 과제 그리고 정체성 축이 있다. 가령 유년기는 주술적 사고, 정체성 축은 '부모-자식' 관계라면, 1차 성인기는 영웅적 사고, 정체성 축은 '자아와 세계'이고, 2차 성인기는 현실적 사고, 정체성 축은 '자아와 자기', 그리고 노년기의 정체성은 '유한성'이고, 중심축은 '자기-신' 혹은 '자기-우주'이다.
융 심리학은 자아성숙의 길을 '개성화'라는 개념을 이용해 표현한다. 개성화는 운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한계 속에서 우리 모두가 온전한 자신이 되게 하는 개인발달의 필수 요소다. 내가 보기에, 융 심리학의 전반적인 개성화 단계는 결국 속박에서 갈등을 거쳐 자유의 주체로 나아가는 '성장 시나리오'와 다르지 않다.
어릴적 마흔이란 나이를 생각했을 때는 모든게 안정적인 그런 어른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덧 내가 그 시점에 이르러보니,
10년 전이나 다를바 없는 내 모습을 보게되었다.
오히려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보며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삶의 방향성에 의문이 드는 혼란스러운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시기라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느끼는 2차항로, 즉 2차 성인기로 명명하며
이 시기에 겪게 되는 마흔의 스트레스 증상에 대해 정신 분석학적 시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성인기의 성격은 어린시절 형성된 다양한 무의식적 반응들을 통해 결정되며
부모의 역할 또한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형성된 내면의 자아는 성장과정에서 어린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찾으며
역할에 맞는 후천적인 성격과 그에 따른 페르소나를 갖게 된다.
마흔의 스트레스 증상은 후천적 성격 아래 숨어있던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며,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성격과 내면의 자신의 욕구 사이에 무시무시한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 사이의 불균형이 클수록 더 큰 불안감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공포는 전적으로 내가 스스로 해결할 일이며,
고독감을 통해 내면에 있는 자아를 파악하기 위해 온힘을 쏟아야 한다.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삶의 불안함과 불만, 고통을 타인의 탓으로 전가시키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이나 결혼생활, 더 나아가 내 존재 자체를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p.93] 덜 바람직한 본인의 특성을 마주하는게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이를 인정해야만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일을 멈출 수 있다.
최고의 일은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예시를 통해 내면의 나를 만나는 일이
내 삶이 나아감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삶의 불만족스러움에 대해 상대방을 탓하며 불화를 겪는 경우가
생각보다 상당히 많을 것이며 나도 그런적이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면의 나를 알아가며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이전과 같은 신경증적 고통과 불안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며
생각이 여유로워지고 삶의 경험이 풍부해진다고 말한다.
"그림자에는 삶의 원초적 에너지가 들어있으며,
이를 제대로 다루기만 하면 자신을 변화시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
내면에 숨어있던 나를 발견하고
외면의 나와 불일치에서 오는 고통과 불안을 없애는 것.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며
내 안의 에너지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의 변화와 내면의 불안을 가볍게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근본적인 원인을 심층적으로 발견하고
불안의 해결책을 알게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를 통해 지금이라도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