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Finance + Retire)족-40대 초반정도까지 극한의 절약 또는 재태크로 은퇴자금을 만들어 빨리 은퇴하고 남은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신청할 때 FIRE족이 유행이라 그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자는 열혈기자로 한국사회에서 보면 나름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러기 가족 생활에 지쳐 있었고, 자신이 하는 일에도 한계에(또는 매너리즘에) 부딪치면서 사표를 던지고 미국 시애틀로 날아간다.
그때가 40이었다.(지금의 나랑 비숫한 나이다) 40이라는 나이가 감성적으로 만들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 가서 저자는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한국어로 기사를 쓰던 기자 출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특히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 더욱 그랬다. 여기저기 원서를 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창업은 너무 위험했다. 사실 대기업(D일보는 대기업 이상 수준이니까)에서 10여년 일을 하다보면 자신이 맡은 작은 분야의 일만 해낼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남은 도전정신과 기업가 정신은 사라져 버린다.
저자는 집앞에 있는 전문대에서 기술을 배워볼까, 또는 아는 사람과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대학을 졸업해서 기자생활을 하며 박사과정까지 밟은 저자가 하기에는 자신 안의 자부심, 말도 안되는 엘리트 의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이것은 같이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사무직으로 근무한 나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와서 한국에서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봤다고 한다. 그러자 과거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나도 그랬다. 별로 공부하고 싶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이 하니까 박사과정도 하고, 가족을 멀리하고 회사와 가까워지고, 주말에 나가서 일을 했을까.
또 철마다 해외여행 다니고, 고급 수입 자동차를 타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물론 나는 여기서 해봤기 때문에 그게 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안 해봤으면 지금까지 그것을 동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저자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잘 살고 있다'라는 말에 위안을 얻고 안도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기러기 생활에 지쳤으리라. 나도 이점은 공감한다. 기러기 생활을 하며 서울 광화문 한 복판에서 혼밥을 하고, 아내나 자식은 방학 때나 보고 아내와도 제대로 못보고 산다면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사회는 특히나 그런 부분이 많다. 남들이 정해 놓은 굴레를 따라가는 것을 '제대로 살고 있다'라고 하는 것 말이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와서 번듯한 직장에서 또 적당히 승진해주고, 소위 말하는 좋은 지역 (강남 아니면 강북, 아니면 분당, 판교, 광교 등등)을 살아야 하고, 마흔살 전후에는 외제차도 한 번끌어주고, 이제는 석사나 MBA정도는 가볍게 해주고, 자식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며, 1년에 1~2번은 으레 해외에 나가줘야 하는 등 그 틀이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만큼이나 획일화 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살다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1년 넘게 놀면서 나를 돌아보니 현재의 행복을 담보로 미래의 행복을 사는 건 무용지물이었다. 뭔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었지만 그 뭔가는 실체가 없었다. 남들이 앞만 보고 달리니까 따라서 달렸던 거다. 어른들이 좋다고 하니까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냥 따랐던 거다. 이제부터는 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우선 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접고 가족과 함께 현재를 헤쳐 나가면서 즐기기로 했다.
너무 미래만 그리면서 살다 보니 내 생각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게 아닐까.
행복은 고생 끝에 오는 게 아니라 이미 현재에 와 있었다. 포기를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 p.73
하지만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기러기 생활하면서 학문적 성취를 위한 아내의 유학도 선뜻 시켜주고(그것도 비싼 미국유학을) 그 자신도 대학입시에 삼수까지나 해서 실패하자 학비가 비싸다는 캐나다로 유학을 떠밀려서(?, 남들은 가고 싶어도 부모님의 돈이 없으면 못간다) 다녀왔고, 자녀도 미국에 보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면서 마흔에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6년전은 지금처럼 집값이 오르지는 않았다는 점은 감안하고) 그렇게 살기가 쉽지는 않다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저자의 부모님은 중산층 이상으로 어느 정도 원래 있던 재산을 가지고(나중에 정 안되면 돌아와서 한국재산을 가지고 살아도 되는 사람이) 야인 놀이를 즐기는 사람 정도로 봤다.
또 한국에 많은 직장인이나 일반인들에게 나처럼 한 번 살아봐 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부자로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미국에 간 부르주아 같은 사람까지는(적어도 책에서 준 정보로는) 아니었고, 실제 시골에 살면서 가족들 모두가 '시골체험'이나 삼시세끼'를 찍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에서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과연 행복한가 하는 생각도 가져봤다.
다행인 것은 저자의 아내가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에 감명 받았고, 그러한 삶을 실천하기를 바래서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디서 살든 귀촌을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아내가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다면 저자의 집은 분명 심각한 다툼이 일어났고, 아내는 지루한 시골생활에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다. 조건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밥솥도 TV도, 스마트폰도 없이 사는 삶이 몇 년은 좋을 수 있는데 과연 그것만이 또 정답일까 하는 생각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져봤다.
몇년을 놀면서 살아보니 소비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은퇴 후의 생활에서는 소비 말고도 중요한 일이 많다. 노후 대책을 너무 경제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공포때문에 은퇴 전에는 모두가 퇴직금과 연금, 생활비를 놓고 계산하기 바쁘다. 하지만 은퇴 뒤에 다가오는 진정한 어려움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해온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삶의 전부와도 같은 직장을 그만 뒀을 때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경제력이 대략 갖춰져도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소비 수준을 낮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고민해봐야 한다. 큰 마음을 먹고 시골로 이사 왔을 때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 말고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여름에는 열심히 일했지만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심심할 수 밖에 없다.
요즘엔 60세에 은퇴를 하더라도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은퇴 후의 삶도 길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노후대책은 경제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p.195 ~ 196
사실 이 글에 답이 있었다. 나는 평균수명이 길어진 요즘 빠른 은퇴보다는 바쁜 사회에 부딪쳐보면서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해도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자신이 하고싶은, 또는 더욱 보람있는 일을 찾는 것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중요한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역사 공부에 대한 미련이 항상 남아 있다.
나는 아마도 돈이 많은 사학과 강사나, 아니면 좀 더 성공해서 사학과 교수나 그것도 아니라면 1년에 방학 3개월이 보장되는 역사 선생님이 됐다면 정말 인생을 재밌게 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은 한다.
특히 나이 드니까 금슬좋은(반드시 금슬이 좋아야 한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선생님 부부가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결국 앞의 상황(내가 직업을 바꾸기에는)은 이미 늦었고, 나는 한국에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인으로 살아도 그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끼리 특별한 애정과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만족을 얻으면서 살아가도 잘 살아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 책은 서평단으로 받은지 벌써 석달이 다 되어가는데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읽지도 못하고 처가인 부산에 놔두고 와서 독서도 리뷰도 힘든 상황이 생겼다.
늦게 리뷰를 작성하게 되어 출판사와 저자에게 미안하다(물론 사전에 양해를 구하기는 했지만)
저자의 귀촌 생활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앞으로 남은 40~50년의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 것이 좋은 점이었다.
30~50대 직장인들은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