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소설 독자로서 내가 어느 단계쯤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SF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사실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도 SF 소설을 즐기는 태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름 자신감을 갖고 있으니까 딱 그만큼의 자부심으로 말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은 SF 소설의 배경을 알아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소설 구성의 3요소라는 게 있다. 인물, 사건, 배경. 4지 선다형 시험 문제용으로 자주 쓰인 것인데, 한창 외울 때는 몰랐으나 이제야 이게 소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듯하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때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떤 식으로 버무리고 합치고 나누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는데 적어도 조각퍼즐처럼 낱낱이 늘어놓았다가 이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끼워 맞추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닌가, 어떤 소설가는 그렇게 하기도 하는가, 그러면 상당히 복잡할 텐데, 뭐 이런 내 생각은 쓸데없는 것이지만.
작가가 이번에 내 놓은 책은, 솔직히 읽는 재미는 덜했다. 상상이라서, 아직은 현실에서 좀 많이 떨어진 먼 미래에 있는 듯 보이는 내용이라서, 이걸 대체로 건조한 문체로 설명하고 있어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꾸민 재미있는 이야기에 익숙한 나로서는 덜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작가도 들어가는 말에서 이런 사항을 미리 말해 놓고는 있지만, 책 제목만으로 기대했던 바와 차이가 있었으니.
그렇지만 책에서 다루는 소재의 활용 내용이나 각각의 상상력의 범위가 섭섭했던 건 결코 아니다. 다들 조금씩은 예상하고 있었을 미래의 어떤 것들을 작가가 하나씩 꼭꼭 집어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 놓았는데 정말 이렇게 될 것 같은, 이런 상점이 생기고, 이런 물건을 돈을 주고 사게 될 것 같은, 누군가는 이런 물건을 팔게 되기도 할 것 같은,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지금 내 나이에서 얼마를 더 살아 있어야 이런 물건들을 착착 만나 볼 수 있게 될지 그건 모르겠지만, 의외로 빠른 시일 안에 만나게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소설에서 배경은 인물이나 사건에 비해 한 차원 뒤로 물러나 있는 듯이 보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배경의 어느 한 지점이 소설의 흐름에서 어떤 이유로든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물이나 사건의 강력한 영향력과 관계없이 소설을 읽던 마음의 맥이 풀리고 만다. 이건 실수일까, 실력일까. 의심이 든 순간부터 소설 전체에 대한 호감도는 무너져 내리고. 결국에는 작가의 힘도 의심하게 되고. 이 사람은 배경에 대한 공부를 좀더 해야겠구나, 책도 간접경험도 더 해야겠구나, 지식도 더 쌓아야 하고 이를 전달하는 방법도 더 탐구해야겠구나 등등으로.
반면 배경이 잘 제시된 소설에서는 오히려 배경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 사이에 잘 녹아 들어 있어 뭔가가 걸리적거리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SF 소설에서 이런 차이를 종종 발견하곤 했다. 배경을 굳이 설명하는 소설과 설명이 없는데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소설, 배경에서의 맥락을 잇지 못한 상태로 함부로 넘겨 버리는 소설과 끊어진 느낌 없이 이어지는 소설. 글에서 SF의 배경을 말하겠노라고 나서는 순간 인물과 사건은 공중으로 떠 버리고 말았던 작품들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이를테면 그런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잠깐 궁리한 바가 있다. 이제는 내가 해 볼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여 SF 소설을 쓰는 수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책 속에서 한 가지 이상의 요소를 골라 소설을 써 보고 이를 발표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 동아리 수업에서 해도 좋겠고, 요즘처럼 원격 수업을 하는 시기라면 각자 집에서 글을 쓰고 온라인으로 서로의 작품을 미리 나눈 뒤 화면 수업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러면서 배경의 중요성을 익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남고 말겠지만. 그래도 SF 소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꼭 권해 주고 싶다.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든가, 아니면 취재해서 갖고 있든가, 그런 연후에 글을 쓰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작가의 나눔 정신도 돋보였다. 국가 기관 사업에 참여하면서 얻은 성과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자신의 상상 아이디어를 내놓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자신감도 있다는 뜻일 테다. '배경은 다 나누어 줄 수 있다, 내게는 인물과 사건을 창조하는 능력이 충분하므로'와 같은. 이 책에서 상상한 바를 담은 작가의 신선한 글을 곧 읽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