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 잡초
이나가키 히데히로/김소영
더숲/2023.2.15.
sanbaram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잡초들이 많이 자란다.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잡초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의외로 잡초를 볼 수 없다. 그만큼 잡초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략가, 잡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들이 어떻게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가는지 하나씩 그 비밀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우리 인간들도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길 저자는 바라고 있다.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생태학을 전공하고 농학박사학위를 받은 식물학자이며 시즈오카대학교 농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세계를 바꾼 13가지 식물>, <생명 곁에 앉아 있는 죽음>, <싸우는 식물>,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식물학 이야기>, <이토록 아름다운 약자들> 등이 있다.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고 특수한 진화를 이룬 특수한 식물이다.(p.8)”고 <전략가, 잡초>의 서문에서 말한다. 미국 잡초학회에서는 잡초를 “인류의 활동과 행복과 번영을 거스리거나 방해하는 모든 식물”이라고 정의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잡초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잡초는 길이나 밭, 공원 등 인간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자라난다. 이런 곳은 자연계에 없는 특수한 환경이다. 이렇게 일반 식물이 살아가기 힘든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잡초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적응해 살아남았고 살아가는지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들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잡초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개성에는 평균이 없다. 평균이란 우리 삶에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개성을 살릴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이라도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잡초를 보통 쓸모없는 풀이라고 하지만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잡초의 여러 가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농경이 시작되자 마을에서 살던 몇몇 잡초는 밭으로 진출했다. 이렇게 인류가 생식 범위를 넓히고 번영할 때 잡초 도한 생식 범위를 넓혀갔다.(p.43)” 인간은 1만 년이라는 농경 역사에서 다양한 작물이나 채소를 개량해 왔다. 잡초는 그 농경 역사 뒤 어두운 곳에서 인간의 농업이나 생활에 적응해 진화해 온 것이다. 일본에는 종자식물이 약 7,000종 있는데, 이 가운데 잡초 취급을 받는 식물은 겨우 500종 정도다. 게다가 우리가 자주 보는 잡초는 채100종도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잡초가 이 세상에 3만 종이나 있다는데, 농사지을 때 문제가 되는 주요 잡초는 250종 정도라고 하니 주요 잡초 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 산소, 온도라는 삼박자가 갖추어져 씨앗에서 싹이 튼다. 그런데 잡초는 이 세 요소가 충족되어도 싹이 트지 않는다. 잡초에는 휴면이라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p.50)” 휴면은 잡초의 중요한 성질이지만 같은 잡초 씨앗이라고 한 톨 한 톨 휴면에 차이가 있다. 휴면하거나 각성하는 시기가 각자 잘라서 어떤 씨앗은 각성하는데 또 다른 씨앗은 휴면할 때도 있다. 씨앗에서 뿌리나 싹이 나는 것을 ‘발아’라 하고 싹이 땅 위로 나오는 것을 ‘출아’라 하는데, 발아시기가 제각각이듯 출아 시기도 씨앗마다 달라서 불쑥불쑥 연달아 출아한다. 발아하는 데는 3가지 조건 외에 빛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잡초에서는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빛이라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어서 빛의 파장에 따라서도 영향이 달라진다. 적색광을 비추면 발아가 촉진되지만, 원색광(적색광 말단에 있는 빛)을 비추면 발아가 억제된다. 여기에는 피토크롬이라는 색소 단백질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식물은 광합성을 해서 빨간색 빛을 흡수하는데 그 파장 범위 밖에 있는 원적색광은 흡수되지 않으므로 잎을 투과한다. 다시 말해 땅에 닿는 빛은 적색광이 아니라 원적색광이므로 그 땅 위에는 무성한 잎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광발아성 종자는 빛이 내리 쬐어서 발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잎이 무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적색광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발아하는 것이다.
“추운 지역으로 가면 갈수록 눈바람에 견디기 위해 키가 작아지거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잎이 작아진 풀이 있다. 또 추운 지역으로 가면 갈수록 꽃이 피거나 이삭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는 풀도 있다.(p.73)” 이렇게 성질이 변하는 것을 가소성이라고 한다. 잡초가 가소성이 크다는 말은 ‘바꿀 수 없는 것은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꾼다’는 뜻일 것이다. 잡초는 환경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밖에 없는데, 잡초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잡초 자신이다.
“아름다운 꽃잎이나 향긋한 향기도 모두 곤충을 끌어 모으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꽃의 색이나 모양에는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p.95)” 꽃은 어쩌다 그냥 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예컨대 초봄에는 노란색 꽃이 많이 핀다. 노란색 꽃을 알아서 찾아오는 곤충은 꽃등에같이 자그마한 등에 종류다. 꽃등에는 기온이 낮은 초봄에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하는 곤충이다. 그래서 초봄에 피는 꽃은 꽃등에를 불러 모으기 위해 노란빛을 띤다. 작은 꽃등에는 나는 힘이 그렇게 세지 않아서 꽃이 한데 모여 피어 있으면 그 근처 꽃들 사이에만 날아다닌다. 이렇게 초봄에 들꽃은 같은 장소에 뭉쳐서 핀다. 봄이 되면 꽃이 한가득 피어 꽃밭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보라색 꽃은 꿀벌 등 꿀벌상과를 짝으로 골랐다. 꿀벌은 보라색을 좋아한다. 보라색 꽃에는 자외선이 많으니 벌은 자외선을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라색 꽃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보라색 꽃은 형태가 복잡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복잡한 형태가 바로 입시문제처럼 적합한 곤충을 고르게 된다.
“광대나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지만 아주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먼저 아랫입술꽃잎에는 반점 모양이 있다. 이것이 꿀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밀표다.(p.99)” 벌은 안내 마크나 넥타 가이드라고도 불리는 이 밀표를 보고 꽃잎에 착륙한다. 아랫잎술 꽃잎이 헬리포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광대나물은 벌이 찾아오기에는 작기 때문에 작은 꿀벌이 찾아온다. 그리고 꽃잎에 내려앉으면 착륙한 비행기를 유도하는 라인처럼 꽃 안쪽을 향해 밀표가 이어져 있다. 이 이정표를 따라 꽃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깊숙한 곳에 꿀이 있다. 제비꽃도 맨 아래 꽃잎에 줄무늬의 밀표가 있다. 그리고 밀표를 따라가면 꽃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다. 제비꽃을 옆에서 보면 꽃 속을 길게 만들기 위해 꽃의 끝이 아닌 가운데에 줄기가 붙어 모빌처럼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풍매화에서 충매화로 진화하는 일은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속씨식물은 이 씨를 감싼 씨방을 만들어 이 속에서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p.104)” 씨방 속은 안전해서 그 안에 미리 배주를 준비해 둘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속씨식물은 수정부터 씨 형성까지 속도를 크게 올리는 데 성공했다. 풍매화 식물은 꽃가루를 많이 만들어 여기저기 흩뿌려야 했다. 그러나 곤충은 꽃에서 꽃으로 이동하므로 만약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준다면 효율이 무척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곤충들의 활동은 늘 같지는 않다. 그래서 식물이 준비한 것이 자가수분이다. 닭의장풀은 하루만 피는데 오전에 피었다가 오후에 진다. 만약 이 사이에 곤충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닭의장풀은 꽃가루받이를 해서 시를 남길 수 없다. 그래서 달의장풀은 꽃이 오므라들 즈음이 되면 암술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간다. 이때 툭 튀어나와 있던 수술도 마찬가지로 휘어 들어가 암술에 꽃가루를 붙여 제꽃가루받이를 한다. 별꽃이나 큰개불알풀 등도 꽃이 질 즈음 수술이 중앙으로 모여 꽃가루받이를 하는데 이또한 제꽃가루받이를 알아서 하는 구조다. 보랏빛 제비꽃이 봄에 핀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제비꽃이 여름에도 꽃을 피우는 폐쇄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름에 날이 더워지면 꽃을 찾아오는 곤충이 적어진다. 그런 여름에도 제비꽃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는데 결코 봉오리가 벌어지는 일은 없다. 사실 제비꽃은 꽃봉오리를 열지 않고 그 속에서 수술이 암술에 직접 붙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폐쇄화인데 꽃봉오리 상태에서 폐쇄화는 녹색을 띠므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식물은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이라는 두 종류로 분류된다. 하지만 잡초는 이런 분류와 상관없이 크게 벼과 잡초와 광엽 잡초로 나눠서 생각한다.(p.156)” 사실 잡초는 제초제의 효과가 달라서 벼과 잡초와 광엽 잡초로 나뉘게 되었다. 잡초학에서 제초제는 그만큼 매우 중요한 존재다. 때로는 잡초를 작물로 이용하기도 한다. 오트밀로 유명한 귀리는 원래 메귀리라는 보리밭의 잡초였다. 호밀빵의 원료인 호밀도 귀리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보리밭의 잡초였는데 작물로 이용한 것이고, 율무차 재료인 율무도 잡초인 염주를 개량해 만들어진 2차작물이다. 조는 강아지풀과 친척관계라고 한다. 공통된 야생식물 조상에서 작물인 조와 잡초인 강아지풀이 각각 발달했는지, 아니면 잡초 강아지풀을 개량해 작물 조를 만들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잡초는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잡초는 밟히고 또 밟혀도 반드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긴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삶,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잡초의 혼이다.(p.198)” 마케팅에서는 니치전략이라고 하면 틈새를 노리는 전략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생물에게는 단순히 틈새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자신만의 니치를 가지고 있다. 퍼즐 조각이 딱 맞춰지는 것처럼 생물은 니치를 서로 나눠 가졌다. 가령 니치가 겹치면, 그 부분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어느 한 종만 살아남는다. 이처럼 인간의 생존경쟁도 1등만 살아남을 수 있다. 다만 다양한 영역 중에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면 ‘열매를 맺지 않는 잡초는 없다’는 말처럼, 1등으로 살아남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