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었던 정신분석학 내용 중에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말로 유명한 라깡의 언어를 통한 무의식과 의식을 다룬 내용을 접하면서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알고 있던 언어의 의미가 보다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어의 뇌과학』도 원래 이러한 관점에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비록 문자로 언어를 쓰고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을 말하고 듣고 그에 따른 사고로 이어지는 과정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뇌과학'을 통하여 그 흐름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점도 이 책을 읽는 이유라 할 수 있다.
1장. 어린아이가 두 언어를 동시에 학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관하여
2장. 성인 이중언어자의 뇌에서 두 언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관하여
3장. 일반적인 언어 처리 과정에서 이중언어 학습 및 사용 결과에 관하여
4장. 이중언어 사용이 다른 인지 능력, 특히 주의 체계 발달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5장. 외국어 사용이 의사 결정 과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이 책에서 다루려는 5가지 주제는 누구라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각 주제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중언어'는 이 책에서 주로 등장하는 미국, 유럽과 같이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여전히 영어가 취업과 학업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곧잘 활용되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위의 5가지 주제를 뇌과학이라는 학문으로 어떻게 설명하려는 것일까? 전두엽과 피질과 같은 뇌와 관련된 용어와 함께 뇌를 촬영한 영상 사진으로 설명하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지만, 흥미롭게도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통하여 위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뇌과학의 전문적인 용어는 등장하지만, 사례를 통한 접근에 대한 정리로 이어지는 시점에 나오기 때문에 이해에 큰 무리는 없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한국인이 있다. 물론 태생이 한국인이기에 아무래도 한국어가 더 익숙하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서커스의 저글링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한국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는 것과 영어에서 한국어로 전환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쉬울까?
위 사례는 책 속의 스페인어와 영어 사용을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한국과 영어로 바꾼 것인데,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한국인인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영어로 말하다가 한국어로 전환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크다.(답이 너무 쉽다는 이유로 그 반대가 정답이라 답할 수도 있겠지만...)
정답은 놀랍게도 한국어에서 영어로 전환이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은 『언어의 뇌과학』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의외의 사례이다. 보통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이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중언어 사용자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우세 언어(한국어), 비우세 언어(영어)를 말할 때 뇌에 그 역할을 담당하는 영역들이 서로 교차하여 'On/Off'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연관이 있다. 이는 'Off'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말하는 동안 영어를 말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뇌 영역에 대한 통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두 언어 중 어떤 언어를 말할 때, 통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답은 바로 비우세 언어(영어)를 이야기할 때, 우세 언어(한국어)의 기능을 통제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이는 외국어를 배울 때 왜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와도 연관되는데, 우선 위의 사례에 초점을 맞춘다면 영어를 말하는 동안 익숙한 한국어에 대한 통제력에 대한 비용이 크기 때문에 뇌의 입장에서 영어에서 한국어로의 전환이 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두 언어의 피질 표사 사이에는 어느 정도 기능적 분리가 나타나는 것 같다. 즉, 모국어를 처리하는 기본 영역과 제2언어를 처리하는 기본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
둘째, 두 언어 처리에 함께 관여하는 영역도 있다.
셋째, 모국어와 관계된 피질 표상은 단일언어자의 피질 표상과 비슷해 보인다. 이것은 제2언어 학습이 모국어의 피질 표상을 크게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 p. 81 ~ 82 中에서 -
단일언어 사용자와 이중언어 사용자의 비교를 통하여 뇌과학자들은 위와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 3가지의 뇌 속에서 이중언어 사용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상황들을 이해한다면 외국어를 배우거나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보다 더 쉬워질 수 있다. 가령 셋째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면 다른 언어를 배우면 원래의 언어를 잊어버릴 수 있다는 통설이 낭설임을 곧바로 알 수 있게 된다. 원래 모국어의 피질 표상을 크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나아가서 이 책에서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아이들이 왜 한국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프랑스어만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례 분석을 통하여 뇌의 피질에는 분명 변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입양된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입양 이후에 전혀 할 수 없음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외국어는 어린 시절에 배울수록 유리하다라는 말이 있다. 과연 이 말은 진실일까? 정답부터 말하면 진실이다. 심지어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들리는 다양한 언어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구분이란 정확한 뜻을 이애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구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엄마 뱃속에서 엄마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자라기 때문에 그 시기에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는데, 태어나서도 그것을 기억한다고 한다. 이러한 각 언어의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은 어린 나이에 더 뛰어나고 시간이 흐르면 그 능력이 점점 약화된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이해한다면 왜 어린 시절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유리한지 과학적으로도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최근 6살인 아이가 동영상 보는 것을 좋아해서 그 영상들을 볼 때마다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겠거니라는 마음에 영어로 된 영상을 보고 나서 동영상 보는 것을 허락하는데, 이와 관련된 사례도 이 책에 등장하여 흥미로웠다. 보통의 부모들 입장에서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에 자주 노출되면 도움이 될거라는 굳은 신념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신념을 과학적인 실험과 분석을 통하여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중국어로 된 그림이나 영상을 자주 들려주면 분명 영어와 구분할 수 있지만, 학습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중국어 선생님과 함께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을 포함시키면 실제 중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빈번하게 노출시키더라도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별다른 효과가 없고, 상호 소통과 학습이 이루어져야 효과가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니 단순히 아이에게 영어로 된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외국어 학습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 부모님에게 영어 공부를 핑계로 워크맨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워크맨으로 가끔(?) 영어를 공부하면서 이대로 영어를 들으면서 잠들면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몇 번 시도한 적이 있다. 심리적으로는 그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뇌과학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음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아이가 영어를 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들이 실상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마저 알게 되었다.
이처럼 『언어의 뇌과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외국어 학습 또는 이중언어 사용에 대한 공감할 수 있는 다수의 사례를 통하여 뇌과학으로 바라본 언어의 특성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언급한 것 이외에도 이중언어가 사람의 의사결정 및 행동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물론이고 사고를 당한 이중언어 사용자가 과연 뇌에 이상이 있다면 둘 중 어떤 언어를 말할 수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언어와 관련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마냥 전문적인 뇌과학으로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에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읽은 내용을 언어 학습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