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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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전

우리에게는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하다

홍한별 | 위고 | 2022년 10월 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 9.6 (22건)
분야
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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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아무튼, 사전』언어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들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24.01.14 리뷰제목
책을 읽거나 리뷰를 쓰면서 단어를 찾을 때 어학사전의 검색 기능을 자주 사용한다. 단어를 찾다 읽던 책을 밀쳐두기도 한다. 단어의 세계, 단어가 가진 힘. 그 역할을 사전이 담당한다. 어렸을 때 책장에 꽂혀 있었던 까만색 장정의 사전이 떠오른다. 순서대로 단어를 찾다 시간을 다 보낼 정도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책이나 글을 좋아했던 사람의 특징일 것 같다.   20년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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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리뷰를 쓰면서 단어를 찾을 때 어학사전의 검색 기능을 자주 사용한다. 단어를 찾다 읽던 책을 밀쳐두기도 한다. 단어의 세계, 단어가 가진 힘. 그 역할을 사전이 담당한다. 어렸을 때 책장에 꽂혀 있었던 까만색 장정의 사전이 떠오른다. 순서대로 단어를 찾다 시간을 다 보낼 정도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책이나 글을 좋아했던 사람의 특징일 것 같다.

 

20년 경력의 출판 번역가에게 사전은 특별한 물건이다. 여러 개의 인터넷 사전을 펼쳐두고 번역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사전은 그만큼 특별한 존재에 가깝다. 사전을 주제로 한 아무튼 시리즈의 작가로 매우 어울린다고 해야겠다. 사전이 작가에게 주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언어란 어떤 것인가, 언어가 가진 힘과 그것을 표현하는 감정들을 담았다.

 


 

단어를 좋아해서인지, 사전에 관한 책을 꽤 읽었다.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배를 엮는 작업으로 비유한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와 사사키 겐이치의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다. 사전을 만드는 고단한 작업 과정과 그것으로부터 느껴지는 감동이 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책에서 언급한 위의 책들에 관한 느낌에 마구 공감을 표시하며 읽었다. 짧은 책에서 전해지는 감동에 오래도록 품고 싶은 책이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게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했다. 이 방법을 따라 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분야를 달리하여 소설과 시 혹은 인문학 도서를 읽는 방법은 가능했으나 비슷한 종류의 책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전에서 저자는 아버지가 몇 권의 책을 베개맡에 두고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책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기억들은 작가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좋아하던 아버지,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의 책을 번역하는 작업 또한 작가에게는 남다른 경험이었다.

 

광대한 우주를 우리는 인지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사전, 백과사전, 작은 진리의 조각들을 담고 있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이 알 수 없는 세상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아득한 우주에서 우리가 무한히 멀어지며 한없이 헤매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닻이 되어준다. 그 책들이 무한한 우주로 떠난 아버지의 기억을 우리 집 한구석에 붙잡아놓을 수 있게 해준다. (62페이지)

 

부모가 읽었던 여기저기 놓여있는 책들은 자녀에게 삶의 자양분이 되곤 한다.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한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빠도 소설책을 좋아하셨다. 지금은 눈이 나빠 많이 읽지 않으시지만, 책을 많이 읽으셨고 도서관에도 자주 다니셨다. 그런 이유로 우리 자매들은 책을 좋아한다. 작가에게는 사전을 만드는 출판사에 다녔던 아버지가 있었다. 사전과 책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작가 또한 책을 번역하는 작가가 되었다. 자양분이 충분한 작가답게 작가의 번역은 매끄럽고 문학적이다. 단어 하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고 찾은 노력의 결과다.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책 사전은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에 인터넷 사전을 조금씩 손보는 것에 가깝다. 단어 찾기를 할 때 주로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그 답을 찾는다. 예문을 이용해 쓰임새를 찾아보는데 작가는 전문적인 사전을 이용하고 있었다. <금성그랜드 영한사전이나 옥스퍼드 영한사전>, <롱맨 영한사전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말과 언어는 사라지기도 하고 새롭게 생기기도 한다. 줄임말이나 신조어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용하는 이들이 달라지며 변해간다. 그 역할의 중간에 사전이 있다. 표준어가 아닌 말이 틀리거나 잘못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 없으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사전을 기준으로 삼아 번역한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 엄마의 전라도 사투리 사삭스럽다라는 말이 반가워 전라도 사투리 사전이 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국의 사투리들을 모아놓은 사투리 사전이 있다면 우리의 언어를 보존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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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사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 - [아무튼, 사전]을 읽고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k*****o | 2022.11.16 리뷰제목
사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 <아무튼, 사전>을 읽고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사전(事前)에 사전(辭典)에서 '사전'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의 최신작이자 52번째 책이 사전을 주제로 한 까닭이다. 곧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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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

<아무튼, 사전>을 읽고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사전(事前)에 사전(辭典)에서 '사전'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의 최신작이자 52번째 책이 사전을 주제로 한 까닭이다. 곧이어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 소개를 읽고나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밀크맨』, 『몬스터 콜스』, 『클라라와 태양』, 와 에세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었음에도 이 책들을 한 사람이 모두 옮겼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유의 여신상이 한 손에는 횃불을, 다른 한 손에는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는 것처럼 양손에 각각 펜과 사전을 들고 글을 옮기고 있는 번역가를 상상해보자. 이때 그에게 사전은 생필품인 동시에 어떤 의미로는 무기와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인 홍한별 번역가에게는 필연적 혹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 '사전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무튼, 사전>을 펼쳐본다.

 

사전은 지금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더라도 앞으로 지식에 부족함을 느낄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책이다. 다시 말해 지금 무언가를 알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앞으로 모를 것에 대비해 소장하는 책이다.

(17~18쪽, 「단어의 힘」 중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에 어떤 한 단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죽을 뻔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후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때에 제대로 하기 위해 그의 단어 수집욕도 커지게 된다. 번역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머릿속에서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단어의 수는 제한적이기에 "단어를 게걸스럽게 모아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어디에서 주웠는지는 모르나 언젠가 그 쓸모가 있으리라는 기대로 메모를 하거나, 특정 분야의 책을 옮길 때는 인터넷에서 찾은 단어들을 모두 합쳐서 자신만의 용어집을 만든다. 부족하나마 블로그에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 관리한다면 그때그때 인터넷 사전에서 애매한 낱말을 바로잡는 수고를 덜어주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사전은 의미의 닻일 뿐이다. 닻줄을 얼마나 길게 늘이느냐에 따라 배는 꽤 멀리, 때로 위험스러운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사전을 닻으로 삼아 최대한 멀리 뻗어나가야 한다. 단어의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야 한다.

(29쪽, 「네 사전을 믿지 말라」 중에서)

 

  어떤 언어와 다른 언어가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무슨 일이 생길까? 저자는 '사전 만들기'라고 답한다. 번역가는 이중언어 사전이라는 닻을 내려 서로 다른 언어로 말미암은 불통을 소통으로 연결하려 애쓰는 사람이 아닐까. 흥미롭게도 사전 속 단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 밖으로 나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언어를 어떻게든 붙들어서 고정하려는 사전의 이면을 재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사전뿐만 아니라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어쩌면 시시포스의 후예일지도 모를 사전 편찬자들의 이야기에도 주목한다.

 

언어는 『1984』의 '신어(新語)'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어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당연히 점점 자라나야 하고 새로이 세포분열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 있는 언어다. 아무리 사전으로 옭아매려고 해도 우리가 쓰는 언어는 붙들어놓을 수가 없다.

(105쪽, 「새로 만들어지는 단어」 중에서)

 

  먼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주인공 윈스턴의 직장동료로 사전 편찬자가 등장한다. 그는 영어, 곧 구어(購語)에서 기본 단어 하나만 남기고 의미가 겹치는 것들을 모두 없애는 일을  한다. 단어의 선택권이 줄어들면 사고의 폭도 좁아지고 그마늠 대중을 통제하기가 수훨해진다는 전체주의 논리와 함께 단어가 사전 속에 완벽히 갇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설정이다. 다음으로 일본어사전 집필자 두 사람의 활동을 추적한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사전의 기능과 목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정석처럼 객관성을 추구한 『산세이도 사전』과 집필자의 주관적 생각을 담은 『신메이카이 사전』이 세월이 흐르면서 판매량과 독자들의 반응이 역전되는 사건을 다룬다. 그동안 사전을 '찾는' 것으로만 여겨왔는데, 사전을 '읽는' 것도 가능함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사전의 '배'에 해당하는 부분을 비스듬히 기울지게 펼친 다음 쓰다듬어보라. 꽃종이처럼 얇은 종이가 촘촘히 겹쳐진 사전 옆면을 만지면 마치 고양이 이마를 만질 때처럼 만족스러운 느낌이 든다. 살살 긁으면 가르랑거리는 소리도 난다. 나처럼 고양이가 없는 사람도 "종일 키보드 근처에 드러누워 가르랑거리는" 사전은 키울 수 있다. 내 고양이의 이름은 '웹스터'이다.

(51쪽, 「사전은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또한 저자는 사전이 찾거나 읽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여러 방법으로 소개한다. 사전의 용례를 이어붙여 스토리를 만들고, 사전으로 스크래블(철자가 적힌 플라스틱 조각들로 글자 만들기를 하는 보드 게임의 일종)을 하거나 도서 암호(book cipher)를 만들어 즐길 수 있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사전을 반려묘로 둔갑시키는 마법과도 같은 묘사는 거듭 읽고 상상할수록 마음 한 편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전해준다. 1990년대 초중고 시절까지만 해도 책가방에 하나씩 넣고 다니던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이 2000년대 이후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으로 그 자리를 옮기면서 사전의 물성을 느껴본지도 오래되었는데, 고양이가 된 사전의 눈에는 이러한 모습들이 어떻게 비칠지 엉뚱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렇게 사라진 외국어 사전들이 저자에게는 아버지를 추억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 여러 외국어사전을 가까이하며 평생 지식욕을 추구하다가 뇌경색을 앓고부터는 그리스어사전을 찾아 읽으며 신의 목소리에 가까워지길 소망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현재 저자 곁에서 있는 외계어 사전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언어'를 만나고 있다. 마음 안팎에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비단 저자만은 아닐 것이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조금 비틀어보자면, 저마다의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수록되어 있겠지만 계속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체득한 삶의 지혜로 그 불가능마저 극복해내는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이처럼 사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는 <아무튼, 사전>을 찾아, 아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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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지금 우리 시대의 언어와 사전에 관한 이야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s****b | 2023.01.31 리뷰제목
지난 연말 <월간 채널예스>에서 올해의 책 추천에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이 바로 <아무튼, 사전>이었다. 나도 흥미가 있는 주제는 아무튼 시리즈를 가끔 읽어보는데 덕후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꽤 재미가 있었다. 주제가 사전이다보니 이건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직업과 관련된 부분이 있겠구나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직업적 관련은 없어도 좋아하는 분야이니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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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월간 채널예스>에서 올해의 책 추천에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이 바로 <아무튼, 사전>이었다.

나도 흥미가 있는 주제는 아무튼 시리즈를 가끔 읽어보는데

덕후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꽤 재미가 있었다.

주제가 사전이다보니 이건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직업과 관련된 부분이 있겠구나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직업적 관련은 없어도 좋아하는 분야이니 읽어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이전에 동아출판사 직원이었던 덕에 1984년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전 30권) 완간을 축하하는 행사에도 초대받았다. 그 자리에서 백과사전 할인권을 주는 추첨행사를 했는데 아버지가 당첨되어서 무척 기뻐하시던 게 기억난다(얼마나 할인을 해주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당첨이 안 되었어도 사셨을 것 같다). 이 백과사전을 꽂기 위해 집에 책장을 새로 놓아야 했다. 엄청난 책이긴 했다.

 

저자인 홍한별 작가는 내가 아직도 다 읽지 못한 <클라라의 태양>을 비롯한 다양한 도서를 번역하고, 자기글도 쓰는 작가로 평소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인듯 하다.

아버지가 동아출판사 직원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가족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언급한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은 우리집에도 있었다.

최근 집 리모델링을 하며 책을 대대적으로 정리했고, 그때 살아남지 못했는데

지금도 그 책을 버린게 후회가 된다.

한권이라도 기념으로 가지고 있을걸. 엄마 아빠가 정말 비싸게 주고 사주셨던 책이었는데

가끔 숙제를 할 때 말고는 훌륭한 장식품으로서의 역할만 했던게 아니었나 싶다.

그 엄청난 책을 만들고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하니 "제대로된 백과사전 만들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완벽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사전뿐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노역의 공통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조형물은 쇠락하고 완벽한 이론은 반박된다. 시간의 흐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허황한 노력을 기울여 불가능한 완벽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문명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조금 글이 길어졌는데 사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거품을 물게 된다. 글자로 바벨탑을 쌓는, 터무니없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용과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너무나 쉽게 인터넷에서 사전을 검색할 수 있어서 그것을 만드는 일이 물리적으로 어떤 작업인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망라되어 있는지 감이 잘 안 온다. 거인의 과업에 우리는 그냥 공짜로 올라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 아이들도 종이사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초중고를 졸업했다.

"전자사전" 조차도 유물로 느껴질 정도로 아이들은 사전과 친해지지 못했고

집에 있는 두꺼운 사전을 신기한듯 쳐다보곤 했다.

나는 정철(카피라이터 말고 웹사전 기획자) 작가가 쓴 사전에 관한 많은 책과

<배를 엮다>와 같은 소설을 통해 사전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하기는 어렵다.

아이들은 위키백과를 먼저 찾아보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유튜브에서 먼저 검색을 한다.

과연 이런 시대에 사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국어국립원 조차도 1999년이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낸 이후 사전 편찬실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단다.

업데이트는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국어사전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유지 관리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30년쯤 전에는 사전이 졸업 입학 선물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면서(주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인기 없는 품목이었다(받는 사람 입장에서). 예전에는 학생이라면 영한사전 한 권씩은 갖고 있었고, 집에도, 사무실에도 사전이 한 권은 있었다. 그렇지만 인터넷만 연결되면 얼마든지 사전을 검색할 수 있는 지금은 아무도 사전을 사지 않는다. 수익이 사라졌으니 사전을 출판하던 출판사에서 대부분 사전 사업을 접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영한사전을 들고다녔고,

대학때도 아직 인터넷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토익토플책과 함께 영어사전을 들고 다녔다.

서지학을 배울 때는 한문학과에서나 쓸법한 엄청난 크기의 자전도 사용했는데,

그러고보니 항상 사전을 옆에 두고 공부했던 세대인것 같다.

한번씩 도서관에 도둑이 들면 한꺼번에 영어사전과 토플책이 사라지곤 했다.

학교 주변 헌책방에서 도로 찾아왔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름을 그렇게 크게 써놨는데도 사주냐고 투덜거리기도 했었다.

참 옛날 얘기다.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단어가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요?'라고 묻곤 한다. 동화책 <벨벳 토끼 인형>을 읽어본 사람은 사랑은 무엇이든 진짜로 만들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어떤 단어를 사랑한다면, 사용하라. 그러면 진짜가 된다. 사전에 있고 없고는 임의적인 구분일 뿐이다.

 

신조어에 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신조어는 어느 세대에나 존재했다.

우리는 뜬금없이 "X세대"라고 불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지 ㅎㅎㅎ

기성세대가 되니 오히려 요즘 아이들이 쓰는 줄임말들이 더 이해가 안갈때가 많다.

여섯단어를 세단어로 줄이는게 의미가 있나? 두자를 한자로 줄이는건?

커뮤니티 게시판에 어린이집을 얼집으로, 개월을 갤이라고 올렸다가 무개념이라고 혼쭐이 나는 모습을 보면 이게 세대차이인건지, 꼰대짓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단어는 신기한 것이다.

없던 단어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 인정받고 통용되게 된다.

어떤 소설에서 나왔던 말이, 어떤 유명 작가의 글에서 표현된 말이

실제 단어처럼 사용되는 과정을 보면 흥미롭다.

사전에 있고 없고는 구분일 뿐이라는 말이 이해된다.

 

책을 만들고 읽고 유통하는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다 읽고나니 알 것 같다.

언어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한 사람들이 단어, 사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지.

읽고나서 많은 동감이 되었던 책, <아무튼,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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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아무튼, 사전이라니...더군다나 홍한별작가님이라니...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d******n | 2022.10.19 리뷰제목
홍한별 번역가님의 지난 다정한 서간글이 워낙 좋았어서, 아무튼 사전이라니...아무튼 시리즈로 시작하시는 에세이라니 아묻따 구입각! 근데 솔직히..사전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지?, 너무 지루한거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결과적으로)완전 기우였다. 지루하고 딱딱할 법한 사전이야기도, 결국 누가 쓰느냐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사전편집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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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별 번역가님의 지난 다정한 서간글이 워낙 좋았어서, 아무튼 사전이라니...아무튼 시리즈로 시작하시는 에세이라니 아묻따 구입각!

근데 솔직히..사전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지?, 너무 지루한거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결과적으로)완전 기우였다.

지루하고 딱딱할 법한 사전이야기도, 결국 누가 쓰느냐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사전편집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충분히 매력적인 글감이고 소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또 활자중독이기에 아마 읽을 게 아무것도 없다면 백과사전을 펴놓고 처음부터 차분히 읽어내려가듯, 사전도 그러할 것이기에 일단 읽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네이버나 다음 또는 컴퓨터로 각종 모든 낱말들을 찾아보지만, 예전에는 국어사전은 기본이며 영한, 한영, 영영(왜 샀나모르겠다.ㅠㅠ 있어보이려고? ㅎㅎ), 한자자전에 그리고 얇은거 두꺼운거 참 많이도 샀다. 물론 선물로 받은 것도 있고 특히 졸업식 단골 손님이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시리즈는 역시나 실패가 없었고, 홍한별 작가님도 마음속 작가님으로 혼자 픽! 하기로했다.

앞으로 번역도 많이 해주시고, 이렇게 글도 많이 써 주세요!!! 작가님~~~

p.95 단어의 수를 줄이는 까닭은 사고의 폭을 제한하여 전체주의적 통제를 더욱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p.111 좋은 책을 끝까지 다 읽었을 때 상실감을 느끼는, 너무나 친밀하게 여겼던 책 속 인물들의 삶을 뒤표지가 묵직하게 닫아 가두는 듯하다고 생각하는

p.113 사랑은 무엇이든 진짜로 만들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어떤 단어를 사랑한다면, 사용하라. 그러면 진짜가 된다.

p.149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정의가 가득 쓰인 사전, 요즘 쓰는 말과 알고는 있지만 이제는 쓰지 않는 말, 나만 아는 것 같은 말, 좋아하는 말과 싫어하는 말이 담긴 사전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있는 셈이다

또 우리는 불분명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혼란스러운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흔들리는 감정을 고정하기 위해, 더 많은 단어를 원하고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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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건조한 사전 속에 담겨 있는 습기 가득한 에피소드집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y | 2024.03.29 리뷰제목
사전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떠올리게 한다. 집안 형편이 좋았던 시절 아빠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사 와 벽면 가득 책장에 전시물처럼 꽂아두셨다. 당시엔 인터넷 보급 초창기라 사전은 무조건 책자로 된 것을 보았어야 했다. 그 후 가세가 기울며 살던 집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을 때도 부모님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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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떠올리게 한다. 집안 형편이 좋았던 시절 아빠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사 와 벽면 가득 책장에 전시물처럼 꽂아두셨다. 당시엔 인터넷 보급 초창기라 사전은 무조건 책자로 된 것을 보았어야 했다. 그 후 가세가 기울며 살던 집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을 때도 부모님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만큼은 처분하지 않으셨다. 아빠가 엄마에게 결혼기념일로 맞춰준 귀걸이 반지 세트를 몇 번이고 팔고,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전축과 같은 부피 큰 가전을 내다 버리실 때도 백과사전은 그대로였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보지도 않는 백과사전 좀 제발 버리자고 했을 때도 부모님은 사전을 지켜내셨다.

  우리 가족의 변화만큼 사전의 모습도 변해갔다. 그러나 습기를 먹고 눅눅해져 두툼한 책 모서리가 구부러지고, 뽀얀 먼지를 뒤집어써도 사전은 묵묵하게 차갑고 낡은 바닥 위에 잘도 버티고 서있었다. 한창 학업에 매진해야 했을 삼 남매의 뒷바라지는커녕 그날 하루 뭘 먹고살아야 하나를 걱정했을 그 시절, 엄마 아빠에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은 우리 삼 남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대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면 하는 단단한 희망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물건에 대한 추억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아무튼 사전’에서 작가가 건져 올려준 사전에 담긴 아빠와의 추억이 나를 그 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들어 주었다. 사전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건조해 보이는 낱말에서 이렇게 무궁무진한 이면이 펼쳐질 수 있는구나 하는 놀라움이 있다.(아마, 작가의 역량이지 않을까.) 작가가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떼어낼 수 없는 사전과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사전을 대하는 진중한 자세와 직업정신에 대한 존경심이 인다. 읽다 보면 작가가 번역과 상황에 적합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고심하는 미간의 주름도 함께 읽힌다.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글자로 바벨탑을 쌓는, 터무니없는 과업’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보다 정확히 사전을 만드는 중노역을 설명한 방도는 없어 보인다.

  우린 어렸을 적 모두 천진난만한 아기공룡 둘리였지만, 어른이 되고 사회의 씁쓸한 뒷면을 겪으며 둘리와 친구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머리가 벗겨진 고길동의 마음을 헤아린다. 어떤 사물을 마주할 때 마냥 유용하다, 예쁘다, 귀엽다의 단순한 생각으로 끝나는 게 아닌, 이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수고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가끔 철부지처럼 ‘아, 다 모르겠고 힘들어 죽겠다고!’하며 허공에 발차기하고 싶지만, 그것마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해야 하는 아줌마가 된 지금. ‘거인의 과업에 우리는 그냥 공짜로 올라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라는 책 속의 한 문장을 잊지 않고 싶다. 비단 사전뿐 아니라 모든 것에 고루 적용되는 저 한 문장이 철부지의 마음을 다잡아 줄 것만 같다. 

  추신으로, 글이 너무 재밌어서 다른 책을 더 쓰셨는지 찾아봤는데, 없어서 아쉬웠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단어를 많이 알고 잘 활용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의 표현을 조금 더 읽어보고 싶다. 오랜만에 만난 결이 잘 맞는 에세이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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