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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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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현실성은 안느껴지지만 재미는 있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k****t | 2021.07.15 리뷰제목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1907년 쓰여진 이 소설은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대중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1932년 출간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49년 출간한 조지오웰의 [1984] 보다도 평균 30년 정도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분량은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고 [멋진 신세계] 보다는 구성이 단순하지만 밀도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리뷰제목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1907년 쓰여진 이 소설은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대중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1932년 출간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49년 출간한 조지오웰의 [1984] 보다도 평균 30년 정도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분량은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고 [멋진 신세계] 보다는 구성이 단순하지만 밀도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관이 미래상의 세계관을 좀더 다채롭게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종말론의 한부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 같다. 교황과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며 인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또 종교인들의 우려가 드러나 있는 것도 같다.

 

작품에 그려져 있는 안락사 제도가 현재 일부 국가에서 제도화된 존엄사를 연상하게도 하지만 작품 속에 그려지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이 등장해 세계적 지도자가 된다해도 몰살형 등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한 집단 전체를 몰살해 버린다? 차별에 적대적이기에 그러한 차별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으로 한 집단을 몰살해 버린다는 논리에 수긍하고 동조하는 지도자들이 있을까? 이 소설은 극적이긴 한데 너무 극적이라 현실감각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출간한 연대가 1907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후 등장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를 생각하면 저자가 가정한 미래의 몰살형이 이미 실행되었던 것과도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까운 과거에도 동유럽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종청소라고 불리운 학살들이 일어났으니 (현재의 상식으로 보아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특정 종교인들을 몰살시킨다는 것과는 형태가 다른 집단학살이라면 미래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흡인력있고 재밌는 소설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그가 이야기하는 미래의 세계관이 생각해 볼만은 했지만 재미면에서는 선뜻 다른 분들에게 권하기 그랬다. 그런데 이 소설은 1907년 출간된 소설임에도 옛날 소설식의 늘어지는 주석 같은 묘사가 없다. [1984]만 해도 읽다가 지겨워져서 중단한 바 있는데 이 소설은 제법 빠른 전개이다.

 

저자가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직인 켄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이면서 성공회 사제로 제직하다가 카톨릭으로 전향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카톨릭의 예식에 대한 관찰이나 호감이 이 소설에서 충분히 느껴지기도 한다. 카톨릭 사제가 쓴 종말과 적그리스도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면이 독자에게 남다른 호기심을 불러올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종말론이나 적그리스도를 묘사하는데 그리 치밀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기독교적 시각을 빌려 보자해도 적그리스도라면 좀더 설득력 있게 종교를 탄압하고 인구 감소를 유도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 같은 대감염병을 인위적으로 전파시켜 인구를 감소시키면서 예방차원의 접종 백신에 손을 써 접종자들이 어느 비율로 사망하거나 접종 이후 오랜 시간 후에 사망하게 하고 차츰 불임이 오게 해서 인구를 감소시킬 것 같다. 또 적극적인 방역을 시행하기 위해서라면서 종교 모임을 차단한다던가 하며 종교 모임을 갖는 이들을 금고형에 처한다던가 종교 집회 주동자를 무기징역에 처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종교도 탄압하고 말이다.] 저자가 그린 로마 폭격이나 나자렛 폭격 같은 예는 너무도 만화 같은 발상이 아닌가 싶다.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댓글 0
종이책 구매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소설 평점8점 | s*************k | 2020.04.27 리뷰제목
표지에 둘러진 띠지에서도 알 수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추천한 소설이다. '사상의 식민지화'를 우려하며 누구나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는 추천을 두 번이나 하셨다고 하니 내겐 충분히 읽어볼 만한 이유가 되었다. 당연히 교황님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할텐데,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은 누구를 세상의 주인으로 꼽을까. 억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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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둘러진 띠지에서도 알 수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추천한 소설이다. '사상의 식민지화'를 우려하며 누구나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는 추천을 두 번이나 하셨다고 하니 내겐 충분히 읽어볼 만한 이유가 되었다. 당연히 교황님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할텐데,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은 누구를 세상의 주인으로 꼽을까. 억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를 띄울 수도, 뒤집어버릴 수도 있는 물같은 가난한 민중들인가, 스스로 세상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정치지도자와 억만장자들인가. 종교의 본래 역할을 역설하기 위해 소설의 외피를 빌린 종교 서적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무엇이 그렇게 도발적이기에 저자 서문부터 이 책이 큰 파문을 일으킬 거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현직 교황님이 추천한 소설이기에 최근작인 줄 알았더니 무려 1907년에 출판된 소설이다. 그럼에도 그 때 상상한 미래의 모습이 오늘날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데서 그 통찰력과 상상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볼러)과 통신 체계, 안락사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과 법적 제도, 자동으로 요리가 완성되어 식사가 제공되는 자동화 시스템 등 2020년 현재 실제로 구현된 시스템들이 묘사된다. 이런 상상들이 현실을 가능케 한 부분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디스토피아에서 다양한 은유를 통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사상의 식민지화'다. 사상의 식민지화란, 강대국의 지배적인 문화가 저개발국에 물질적, 세속적 세계관을 퍼트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그런 폭력을 참 많이 자행했지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안다'고 아마 과거에 대한 성찰에서 그런 행위의 위험성을 더 빨리 느끼게 된 것 아니었을까도 생각해본다. 인도 식민지에서 경찰로 일해 본 경험이 조지 오웰을 투사로 만들었듯이 말이다. 


소설 속 세계에서 종교는 인간성의 발현을 위해 제거해야 될 대상으로 여겨진다. 번역이 정확한지는 몰라도 일단 '인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인간 외의 다른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 중심주의'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아도 되겠다. 인본주의는 결국 신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인간성, 배려, 존중과 같은 인간 본연의 가치가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종교는 증명할 수 없는 헛된 미신이며 인간들 사이에 오히려 갈등을 가져오는 해악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연히 모든 종교는 형태를 바꾸거나 소멸되는데 로마 카톨릭만은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오히려 초기 기독교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그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해 나간다. 


이때 등장한 것이 줄리언  펠센버그라는 미지의 인물이다. 이 세계는 유럽, 아메리카, 동방 제국 셋으로 나뉘었고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나타난 그는 권위를 지니면서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이 세 세계를 통합해 다스리는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다. 인본주의자들이 숭상하는 가치들이 실체를 가진 채 세상에 나타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온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해 그의 통치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그를 위한 새로운 예배 의식을 만들고 과거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 예식의 집행을 맡긴다.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싸우고 갈등해왔던 인류가 비로소 펠센버그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치고 평화를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집단이 로마 카톨릭이다. 인간은 결코 신이 아니며 인간성 외의 초자연성을 부정하게 되면 자신들의 믿음과 존재의 의미 자체가 상실되는 것이므로 펠센버그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히 펠센버그를 따르는 이들로부터(전세계적인 입장에서 보면 로마 카톨릭 신자들은 극소수이므로)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 책을 추천한 이들이 경고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보였다. 흐릿한 불빛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장대와 기이한 형상, 현수막 같은 천 조작이 솟아오르더니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두리번거리며 움직였다.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광기로 일그러진 얼굴들이 메이블을 향해 무슨 말들을 쏟아 냈지만 그녀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 와중에 그들이 들고 있는 이상한 상징이 눈에 띄었다. 찢어지고 부서진 그 형상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했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대략 짐작 가는 것이 있었으나 두려움에 생각을 멈췄다. 그때 처마 아래에 숨어 있던 가로등에 갑자기 불이 들어왔다. 지하의 거대한 발전소에서 만들어 낸, 환하고 은은하고 익숙한 불빛이 피어올랐다. 그 비극적인 날의 광기에 휩싸여 모든 사람이 잊고 있던 불빛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유령의 무리와 알 수 없는 형상이 삶과 죽음의 잔혹한 현실이 되어 드러났다. 메이블 앞으로 한쪽 손에 못이 박힌 채 커다란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몸이 흔들거리며 지나갔다. 그 뒤에서 자수가 놓인 천이 격렬하게 나부꼈다. 이어 벌거벗은 아이의 하얗고 불그스름한 몸이 무엇인가에 꿰뚫린 채 나타났다. 고개를 축 늘어뜨린 아이의 팔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다. 곧이어 목매달려 죽은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가운을 입은 그 남자는 밧줄이 칭칭 감긴 목을 옆으로 길게 늘어뜨릭 있었다."


펠센버그 아래 인본주의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뭉친 이들이 카톨릭 신도들에게 저지른 광기어린 행동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척 위험해질 수 있다. 초자연성에 대한 존중이 없이, 인간을 모든 사고와 행위의 중심에 놓고 무한 긍정하는 것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고 자칭 <세상의 주인>이라는 인간들에게 작가는 하나가 된 세상을 상상함으로써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식민지화에 앞장서고 있는 '사상'은 아무래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보인다. 강대국에서 시작된 세계화는 저개발국가의 희생과 착취에 기반하고 있으며,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해 더욱 공고화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빈부격차를 더 늘리고 갖지 못한 절대 다수가 희망을 꿈꾸기 힘든 사회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세계의 죄는 스스로 자신의 폭력성을 제거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함에서 비롯됐다."는 르네 지라르의 말을 통해서도 인간에게는 언제나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함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그래서 결국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형식과 권위가 정제되어 있는 카톨릭이야말로 종교가 지나치게 감상적이게 되는 것을 경계할 수 있고 신을 내 안에 모심으로써 생의 고통과 죄를 이겨낼 수 있는 겸손한 인간으로서 살게 도와주는 필수불가결한 장치라고 주장한다. 


이 소설을 많은 사람이 읽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인간의 오만함을 반성하게 할 수 있는 의외의 존재가 나타났으니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활동을 멈추게 하자 파란 하늘이, 멸종 위기종이 돌아왔고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직 경제 성장만을 외치던 정치 지도자들 역시 효용과 비용 대신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 언젠가는 인간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다스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계기는 또다시 등장할 것이다. 이 <세상의 주인>이 지금 다시 호출된 것은 그럴 만한 때가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인간이 너무 나간다 싶을 때 함께 읽고, 살아가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도와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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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매 편집 오류 평점2점 | YES마니아 : 로얄 a******3 | 2020.04.15 리뷰제목
종이책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e-book으로 구매했는데, 프롤로그부터 편집오류인지(17페이지 문단이 20, 35페이지에도 반복 등) 내용이 겹치고 끊겨 도저히 읽을 수가 없네요. 꼼꼼히 재검토 및 수정 부탁드립니다. 많이 기대했던 책입니다. 수정되면 다시 읽고 제대로 평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왜 150자를 넘기라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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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e-book으로 구매했는데, 프롤로그부터 편집오류인지(17페이지 문단이 20, 35페이지에도 반복 등) 내용이 겹치고 끊겨 도저히 읽을 수가 없네요. 꼼꼼히 재검토 및 수정 부탁드립니다. 많이 기대했던 책입니다. 수정되면 다시 읽고 제대로 평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왜 150자를 넘기라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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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세상의 주인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h | 2020.04.11 리뷰제목
세상의 주인   이 책은    이 책 『세상의 주인』은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저자는 로버트 휴 벤슨, 가톨릭 신부다. 저자의 경력을 보니,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본래 그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는데,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신부가 되었다.<성공회 사제이자 캔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인 벤슨이 가톨릭교 사제 서품을 받은 일은 당시 유럽 종교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436쪽)큰
리뷰제목

세상의 주인

 

이 책은 

 

이 책 세상의 주인은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저자는 로버트 휴 벤슨, 가톨릭 신부다.

저자의 경력을 보니,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그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는데,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신부가 되었다.

성공회 사제이자 캔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인 벤슨이 가톨릭교 사제 서품을 받은 일은 당시 유럽 종교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436)

큰 신부님(몬시뇰) 칭호를 받은 가톨릭 사제이면서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는 점, 또한 기록해 둔다.

 

이 작품의 의의

 

이 작품은 1907년에 발표되었는데, 지금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가 무얼까 

그건 책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했다는 점이다. 교황은 세계화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이 책을 언급했다.

교황은 세계화의 위험성을 사상의 식민화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강대국의 지배적인 문화가 저개발국에 물질적 세속적 세계관을 퍼트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교황은 그러한 현상을 경계하며,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9)

 

등장 인물들

 

줄리안 펠센버그 : 미국 버몬트 주 상원의원, 유럽 연합의 대통령이 된다.

퍼시 프랭클린 신부 : 추기경이 되어 그리스도십자가회를 이끌며 펠센버그에 대항한다. 로마가 폐허가 된 후, 그는 교황으로 추대된다. (334)

프랜시스 신부 : 퍼시의 동료, 후에 배교하여 유럽 연합의 수석 의례관이 된다.

올리버 브랜드 : 영국 의회 의원

메이블 브랜드 : 올리버의 부인

필립스 : 올리버 브랜드의 보좌관

 

이 책의 내용은 

 

사상의 획일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소설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런던, 영국의 국교회는 사라지고 없다.

국교회의 몰락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템플턴과 퍼시 프랭클린 신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진행이 된다.

국교회 몰락이 종교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여러 사건의 결말이었어요. 국교회가 사라져서 바뀐 것은 없습니다.”(20)

 

여러 사건이 일어난 결과 영국의 국교회가 사라져버렸는데, 안타깝게도 국교회가 사라진 것이 사회 전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이다교회의 권위가 없어져서,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 교회 대신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유럽연합이다. 유럽 연합을 이끌고 있는 줄리언 펠센버그는 교회(가톨릭)에 대항하여, ‘세상의 주인자리에 오른다. 전세계를 새로운 가치로 통합하여 적그리스도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때, 그에 대항하는 힘은 오로지 가톨릭밖에 없다.

영국 국교회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이제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디스토피아가 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그려진다.

 

저희가 전에 말하던 신앙은 없습니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지요. (247)

 

수도회 소속 신자 40명이 산채 불타 죽었다.(260)

세상 사람들은 다수의 폭력을 비난하면서도 저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61)

 

학살의 흔적이 남지 않은 거리는 거의 없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쑥대밭이 되었다.(304)

 

로마가 함락되었고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거리가 피로 물들었으며 불길과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다고 했다. 인간이 잠시 짐승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317)

 

다시, 이 책은 

 

영원한 로마는 폐허가 되었다. 어떤 남자가 동방과 서방에서 신의 왕좌에 올라 찬양을 받았다. 세계는 크게 진보했다. 사회 과학은 절정에 이르고 인간은 무모순성을 배웠다. 그리스도교에서 배우던 사회적 교훈을 다른 곳에서 배운다. 교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333)

 

그렇게 이제 적그리스도가 신의 자리에 앉았다.

교회가 힘을 잃고 사라진 세계, 과연 세상의 주인은 누구일까? 과연 이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유토피아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는 것일까 

 

교황이 이 책을 추천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신이 사라진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신 대신에 물질주의, 인본주의 등 이런 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구체적으로 모습을 지닌 형태로 나타난다면, 과연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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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앙의 외로운 투쟁! 평점10점 | l****1 | 2020.04.15 리뷰제목
넷플릭스에서 <두 교황>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원래 교황은 종신직이라 이전 교황이 죽어야만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는데,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때는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살아 생전에 교황직을 넘겨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화는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것을 주로 제목 그대로 두 교황을 중심으로 풀어 간 영화였다. 영화에서 두 교항은 그야말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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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서 <두 교황>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원래 교황은 종신직이라 이전 교황이 죽어야만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는데,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때는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살아 생전에 교황직을 넘겨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화는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것을 주로 제목 그대로 두 교황을 중심으로 풀어 간 영화였다. 영화에서 두 교항은 그야말로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분들이었는데, 그 때 특히 남미 출신이자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에게 참 많은 매력을 느꼈었다. 그런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 번이나 추천한 책이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이 바로 이번이 나온 로버트 휴 벤슨이 1907년에 쓴 <세상의 주인>이란 책이다.


 <세상의 주인>은 마치 세계 제 1차 대전을 예견하기로 하듯, 전쟁의 기운이 한창인 세계를 다룬다. 그런데 이 세계는 기독교를 그 무엇보다 무시하고 배척하고 있다. 신의 도움을 바라는 것을 아주 어리석은 짓이라 여기며 어떤 일이든 오직 인간의 힘에 기대려 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영국의 관료, 올리버다. 이런 세계에 사람의 힘으로 세계 평화를 가져오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펠 쉔버그. 그는 동방과 서방이 한창 갈등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미국의 정치인으로 홀연히 나타나 그저 존재감으로 세계 평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그를 거의 신처럼 숭배하는데, 그건 올리버와 그의 아내 메이블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수세에 몰리게 되는데 퍼시 프랭클린 신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추기경에 이어 영국의 추기경이 되는데, 교황의 부름으로 로마로 향하다가 뜻하지 않게 못 가게 된다. 그런데 그 때 로마는 펜 쉔버그의 지휘 아래 무차별 공중 폭격을 당해 퍼시를 포함한 두 명의 추기경 빼고는 교황을 포함하여 모두 죽음에 이른다. 이제 실질적인 교황이 되어버린 퍼시는 사람의 아들로 신에게 가장 강하게 맞서는 자이자 자신의 뜻을 거스리는 이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펜 쉔버그와 맞서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디스토피아를 가져오는 데, 소설이 무엇보다 주목하는 건 인본주의다. 오직 인간의 의지와 힘에만 기댄하는 인본주의가 가진 어둠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인본주의는 펜 쉔버그가 그러했듯이, 타자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쉽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그런 그림자를 과도하지 않게, 독자가 충분이 납득할 수 있는 속도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읽고나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신이든, 인간이든 어느 하나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하기 보다는 공존 가능한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 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아주 좋은 책 하나를 선물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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