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사랑』, 이서희 지음, 한겨레출판, 2019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 감정들과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기를 쓰면 꼭 누군가가 볼 것을 염두하고 일기를
쓰게 되고, 감정을 너무 감정적으로 표현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그 어리숙함에 손발이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구체적 사랑>은
40대에 이른 저자가 젊은 날의 회상과 현재 일상에 겪는 일들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이다. 감정 표현들이 너무 솔직해서 저자의 일기를 보는 듯하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이지 않다. 어쩔 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신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분명 나라면 감정이 복받칠 만한 일들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전혀 감정적이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니까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고,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어려움은 나만의 어려움을 아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어려워하는 부분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일기를 쓰는 순간에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쓰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볼 것을 염두하고 쓰는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누군가가 볼 것을 염두하고 감정을
왜곡한다고 하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는 “내 감정을 감정적이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 또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과 유사한데, 감정을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면 더 격양되어 솔직하지 못하고 편향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하고 싶은데, 표현이 너무 감정적이라 오히려
역효과만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쌍방의 주장이 있다면 둘의 의견을 고루 들어봐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 시각을 갖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에세이 서적을 보거나, 성공을 이야기하는 자기개발 서적을
볼 때면 의례 작가의 시각이 편향되어 있지는 않은지, 본인의 감정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고, ‘그렇다’라고 느껴지면 더는 글의 내용이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된다.
혹은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
당신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자신의 일부 경험을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는 미화하게 된다. 흑역사는 어느 순간 머리 속에서
까맣게 지워지고 작은 무용담도 전설로 만든다. 그래서 내 일에 객관적이긴 쉽지 않다.
깊이 생각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감정들을 거르고 걸러
알맹이만 남긴 것처럼 정제된 언어로 쓰여 있다보니, 저자의 에피소드에 내 과거 경험들이 투영되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감정에만 머물러 있는 내 감정을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해준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거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내 삶을 성찰하고자 한다면 꼭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결코 한번만 읽고 책을 덮지 못할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욕망은 강압이고 폭력이다.(…)
악다구니하듯 욕망하고 원망하기를 멈추고
나의 욕망에 거리를 두니 상대방이 보였다.
비로소 관계에 나만 있고 상대방이 없다는 말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48~49쪽)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일단은 인정한다.
상대의 의견이나 감정을 수용하고 확인한 뒤 공감을 보내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면 공격적이지 않게 묻는다.
다른 의견이나 감상이 있다면 그 뒤에 덧붙인다.
상대 또한 같은 과정으로 대화를 이어간다.(130쪽)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여성이기에 겪는 부당한 고통이나 일방적 불편함에 대해서도
무작정 감수하지 않고 떳떳이 말하고
사회적 대책도 요구하며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어.”(172쪽)
내 몸이 소중하고 귀한 이유는 내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지
다른 삶을 담보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몸은, 생명으로서의 몸, 끊임없이 알아가고
발견하고 돌보며
사랑하는 삶으로서의 몸이다.
수치의 근원도 아니며 숨겨야 할 이야기도 아니다.
보호받을 대상이나 숭배받을 아름다움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독자적인 힘이며 물질이며 움직임이다.(173쪽)
어렵다면 노력하고 설득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리라.
무산되어도 노력의 과정은 가치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 속에서 내가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래서 더 행복하고 주변을 기쁘게 만들 수 있다면.(1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