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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불안과 시인’ ‘서스펜스의 대가’로 불리며, 우리 시대의 최고의 범죄소설과 심리소설 작가로 손꼽혀온 미국의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하이스미스는 생전에 에드거 앨런 포 상, 오 헨리 상, 프랑스 탐정소설 국제 부문 그랑프리, 미국 추리작가협회 특별상, 영국 추리작가협회 은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인 2008년에는 <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 소설 작가로 꼽혔다.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 소설집 『레이디스』는 그녀의 초기 소설 열여섯 편을 담고 있다.
미스터리나 추리소설 속 긴장감에 대한 기대했는데 사실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주로 다룬 작품집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사랑, 일, 평화로운 일상도 부푼 기대 속에 시작하지만, 불안정하거나 상처가 더 커지며 우울감은 더 깊어진다. 또한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자주 등장하는데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이 아닌 불안감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그려놓았다.
뼈 아픈 건 어차피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절감이었다. 떠나는 행위 바로 그 자체에 내포된 파멸의 감각이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마을이 허물어져 내렸다. (p.85, <최고로 멋진 아침> 중)
“세상의 고요한 지점.” 젊은 그녀가 속삭였다.
"돌고 도는 세상의." 그는 또 죄책감을 느꼈다. 그들 주위에 서 온통 세계가 돌고 있었다. 여기 성역과 같은 초록색 섬에서 기계들도 돌아가고 시계도 돌아갔지만, 그와 그녀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p.163,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 중)
불안한 심리 묘사 가운데 그나마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은 <영웅>이었다. 평화로운 가정에 아이들의 보모로 들어간 루실은 그 가족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루실은 큰 사건이 발생해 아이들을 구해내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결국 집에 불을 지른다.
그녀는 불안하게 방 안을 서성거렸다.
아니면 지진이 난다면 어떨까... 사벽이 허물어지는 가운데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끌고 나오리라. 니키의 납 병정이나 엘로이즈의 색칠 도구처럼, 뭔가 하찮은 물건을 가지러 다시 들어갔다가 깔려 죽어도 좋았다. 그러면 크리스천슨 가족이 그녀의 현신을 알아줄 테니까. (p.266~267, <영웅> 중)
불안한 심리묘사가 대부분이었기에 저자가 추리 소설 대가라는 진가를 발견하기엔 부족했다. 사실 이번에 저자의 작품을 접한 게 처음이었기에 다른 추리소설을 미리 읽어봤더라면 아마 이 작품집에 대한 느낌은 다르겠지만. 오싹한 분위기의 장르물을 잔뜩 기대한 나에겐 심리소설집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집이다.
불안, 두려움, 위험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 책<레이디스>에 실린 열여섯 작품, 심리소설모음집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아무튼 이야기 전개 속도가 빠르다. 또, 이 작품들의 중요한 키워드는 불안과 두려움, 예민함이다. 일상 속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고, 그것이 확신이 되면서 찾아드는 불안,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바탕에 깔려있다. 2020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가 초기에 쓴 심리소설들을 한데 묶어서 펴낸 것이다.
이 책에 첫 번째로 실린<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 의 주인공 메리, 남자아이인데 여자아이로 양육되면서, 뭔지 모르지만, 자신이 남자라는 존재를 감지하면서… 찾아오는 불안감, 수녀원은 불 속에 잠기는데,
<미지의 보물> 지하철 플랫폼에 놓여있는 주인 없는 가방,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장애인과 이를 쫓는 이, 결국…. 그 가방 안에는 뭐가 들어있었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데,
<최고로 멋진 아침>에서 뉴욕의 택시 운전사, 정신 사나운 도시를 떠나 한적한 마을로 떠난 여행, 어린 여자아이와 친구가 돼 날마다 만나는데, 어른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의 만남을 보는 시선, 처음에는 그를 반겨주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마치 불편한 무엇인가를 보는 듯하고, 피하려고는, 또 이상한 눈초리. 택시 운전사는 적대감을 느끼고, 실망과 공포를 느낀다. 대도시 뉴욕으로 옮겨온 여자아이, 낯선 도시 생활에 대해 좋지 못한 예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는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의 젊은 주부는 공원에서 마주친 연인을 관음하듯 바라보면서 불편함을 느낀다.
<영웅> 베이비시터, 강박행동으로 집에 불을 지른다. 성경에서 읽은 대역병이 돈다면, 그녀는 불안하게 방안을 돌아다닌다. 지진이 일어난다면…. 아니 불이 난다면…. 집에 불을 지른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절묘한 타임이 될 때까지…. 보란 듯이 나설 때가 됐다. 주인공의 강박, 신경이 쓰이는 마음, 어떻게 해서든지. 벗어나려는 불편, 불안감과 그 세계의 경계. 또 보자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 주인공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남편을 피해 달아나지만 낯선 곳에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미래에 관한 기대, 그 속에서도 불길한 기운이.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미래가 과거의 반복이 될 수 있다는 예감 때문에….
하이스미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평범하다. 어두운 감정을 드러내는데도 특별히 꾸미거나 한 흔적도 없다. 소설들은 대부분 불완전한 감정 속에서 경험하는 미묘한 심리, 그리고 변화, 강박으로 이어지는 방식과 집착, 또 해소를 담고 있다.
문득,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오래전에 쓰인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뭐, 심리는 과거나 현재나 또 미래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듯한데, 현대인의 불안,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찾아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닥쳐올 위험을 느끼는 예리함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 아니, 하아스미스 시대가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신과 현실의 적들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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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하면 영화로도 친숙한 '리플리' 시리즈나 <캐롤> 등이 먼저 떠오른다. 둘 다 지금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될 만큼 신선하고 세련되어 하이스미스가 얼마나 오래 전에 활동한 작가인지 감을 잡지 못했는데, 2021년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출간된 소설집 <레이디스>에는 하이스미스가 1936년부터 1949년까지 집필한 단편 16편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하이스미스가 '리플리' 시리즈,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캐롤> 등을 발표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기 전에 쓰인 작품들이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미숙하고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이 있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의외로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읽을수록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금남(禁男)의 공간인 수녀원에서 어릴 때부터 여자로 키워진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을 시작으로, 지하철 플랫폼 위에 버려진 가방을 둘러싼 두 남자의 갈등을 다룬 <미지의 보물>,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린 뉴욕의 택시 기사가 시골 마을로 휴가를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최고로 멋진 아침> 등 작품마다 등장하는 인물 유형과 배경, 소재 등이 다양하고 전개를 종잡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이스미스가 이후에 선보이게 되는 작품 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여럿 있다.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이라는 단편에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온 남편을 살해하고 예전에 살았던 항구 마을로 돌아가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생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은근하고도 질긴 차별과 억압을 무서우리만치 예리하고 섬세하게 그린 점이 지극히 하이스미스답다.
"엄마, 이 집은 뭐가 문제예요?" 목소리가 울먹이며 날카롭게 쇳소리로 나왔다.
"다 괜찮아, 아가! 무슨 말이니?"
엘스퍼스는 당혹스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아버린 느낌이었다. 순간 엄마도 안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이 집과 이 아침의 시간은 어딘가 통째로 잘못되어 있었다. 느끼고 듣고 맛보고 냄새도 맡을 수 있는 불편한 무언가가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었다. -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중에서, p.127
제럴딘은 클로로포름 병을 들고 밤새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자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간다. 병뚜껑을 열고 작은 헝겊을 흠뻑 적신 뒤 천천히 남편의 코 쪽으로 다가간다. 남편의 맥박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낡고 검은 여행 가방을 들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집을 나온다. 버스에 타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안전하고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한다. 누군가 관심을 보이며 그녀에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고 묻는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해주겠다고. 남편은 그녀를 함부로 대했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으며, 그녀의 모든 행동을 트집잡고, 미워했다. 남편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던 그녀는 낯선 도시에 도착해 새로운 장소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너무 행복해서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던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불길한 분위기에 잠식당하게 되고,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이 이야기는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들은 불안과 강박, 공포와 서스펜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어져 나오는 어두운 상상력으로 버무려져 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분위기가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해주곤 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영웅>이라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불안하던 주인공의 강박적인 행동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걸 그리고 있다. 입주 가정교사로 새로운 집에 들어가게 된 루실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쓰고 있다. 정신질환을 겪다가 삼 주 전에 돌아가신 엄마로부터 자신도 비슷한 병력을 물려받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불안은 급기야 아이들에게 뭔가 위험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 자신의 용기와 헌신을 입증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고, 결국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하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이 정말 오싹한 작품이었다.
오후에 한번 문득 위층의 방과 그녀 자신의 관계가 생각났는데, 그러자 길 잃은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소유물, 관습적 의무, 고독의 순간 들과 멀어진 사람은 어디에 있게 되는 걸까? 어떤 존재가 되는 걸까? 그녀는 홀퍼트 부인의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반쯤 졸고 반쯤은 이상하게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로 고민했다. 우주에서 떠다니는 티끌이 된 듯 기묘하지만 그리 불쾌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낯선 자유와 이동성에 힘입어 그녀는 자신이 사물을, 그 시야를, 심지어 사물의 향유를 증폭하는 느낌이 들었다. - '루이자를 위한 초인종' 중에서, p.209
이 작품집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국내 초역작이다. 그녀의 단편소설들은 여러 차례 출간되었지만, 청년 시절에 쓴 심리소설들만을 모아 선보이는 기획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하이스미스가 1936년부터 1949년까지 집필한 작품들로 오 헨리 상을 수상한 <영웅>을 비롯해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등 이번에 처음 출간되는 작품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다. <리플리> 시리즈를 비롯해서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캐롤>, 아내를 죽였습니까>, <올빼미의 울음>, <유리 감옥> 등 국내에도 하이스미스의 작품들이 꽤 많이 소개되어 있다.
하이스미스의 작품들 중 스무 편 이상이 영화의 원작 소설로 쓰였는데, 알프레도 히치콕, 르네 클레망, 토드 헤인즈와 같은 거장들이 그녀의 작품을 영화화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영화로 먼저 하이스미스의 작품들을 만나본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영화도 참 좋았지만, 그녀의 진짜 매력은 바로 소설 속에서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던 걸로 알려진 그녀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해서 어울리기를 꺼렸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심리와 본질에 대해서는 비상한 감각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안과 갈등과 예민함을 작품을 통해서 토해내게 된 것이다. 덕분에 그녀의 작품들은 어두운 내면과 감정의 심연을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잘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초기 소설 열 여섯 편에도 그러한 하이스미스의 독특한 매력들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 있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위협하는 불길한 분위기가 읽는 이들을 홀린 듯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영혼을 잠식하는 어두운 상상력의 끝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의 여성 심리소설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1921~1995 >
-> 초기 소설 16편을 묶은 탄생 100주년 소설집 (단편 소설 묶음집) 이다.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 독자들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결말이다. 우선 채 한 살도 안된 갖난아이를 거둬 열두살까지 키워진 소년 "메니"는 모든 것이 여성이어야만 했던 수녀원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시간이 갈수록 곁에 있던 여성들과 달라지는 체형과 목소리 "메리"는 탈출을 감행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급기야 이곳에서 나를 보내주지 않으면 수녀원을 폭파시키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남성성을 찾은 "메리"는 결국 수녀원을 떠나지만, 이후 수녀원은 아이의 협박대로 폭발해 산산조각나버린다.
-어쩌면 수녀원들이 "메리"를 거두지 않았다면, 생명을 이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남성 "메리"는 자신이 여성으로 키워졌다는 점에서 앙심을 품는다. 후에 "메리"는 대학에서 공부해 과학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단편을 읽고, 정말 수녀원을 폭파시킨 것이 "메리" 였을까? "메리"가 아니라면 누가 폭파시킨 걸까? 하는 궁금증이 계속 일었다. 시원한 답이 아니라 예상에 가까운 작가의 말에 독자가 해석하기 나름에 따라 누가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는지 결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메리"가 범인이라면 수녀원에서 길러준 은혜도 모르고 그저 남성성을 없애고 "여성"으로 키워졌다는 것에 복수를 품은 것이다. 반면에 수녀들은 정말 아이를 학대한 것일까? 남성이 된 소년의 자유는 이미 예견된 부분이었다. 간난아이에 수녀들이 "메리"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미지의 보물] 지하철 플랫폼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카키색 백이 놓여있다. 군인이 플랫폼을 지나 음료수 자판기를 뽑고 다시 승차를 할 때에도 한참을 가방을 주시하던 장애인 남자는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 작은 키의 녹색 중절모를 쓴 남성이 같은 가방을 두고 바라보고 있다.
그때, 장애인 남성이 카키색 백을 들고 플랫폼을 빠져나가려 하자, 키 작은 중절모의 남성은 그 가방이 마치 자신의 가방이라도 되는 듯, 장애인 남성을 뒤쫓는다. 그러다 절름발이 남성을 붙잡고, 가시 돋친 말을 내 뱉고 가방을 낙아챈다. "나는 당신이 오기 한 참 전부터 플랫폼에 서 있었어요!" 말을 더듬거리는 장애인은 곧바로 작은 키의 남성을 뒤쫓는다. 가방 안에는 미지의 보물이라도 들어있기라도 하는 듯 두 남성은 서로 자신의 가방이라 우기며, 서로를 뒤 쫓는 형국이다.
반대로 장애인 남성이 작은 키의 남성을 뒤쫓는다. 중절모의 남성은, 이제는 장애인 남자가 가방을 찾는 게 광적인 복수심에 휩싸여 가방이 아닌 자신을 쫓고 있다 느낀다.. 중절모의 남성은 두려움에 가방을 던지다 시피 버리고 내 달린다. 장애인 남성은 가방을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한국의 시민의식이라면 타인의 가방을 절대 건드리지 않을 텐데, (건드려봤자 나중에 도둑놈으로 잡힐 뿐만 아니라 괜히 자신의 이력에 빨간 줄만...) 어쨋든. 그렇게 카키색 가방을 쫓던 두 명의 남자 중에서 장애인이 성공한다. 가방을 두고 여러 의미로 해석되어질 이 단편은 타인의 가방에 욕심을 내는 모든 사람들에게서는 그 대상이 가진 "미지의 보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보물. 미지의 가방 안에 현금이어도, 현금이 아닌 물건이 있어도 되 팔면 될 일이다. 작가가 이 소설집을 펴낸 시기는 1960년대라는 것을 가늠해보면 가능할 법한 이야기이며, 주인이 없는 가방은 누군가의 표적이 되는 게 당연했을테니 말이다.
[엄청나게 친절한 남자] 아홉 살 난 소녀 두 명이 길에서 잡담을 하고 있다. 그때 사탕을 사다 주겠다는 한 남자가 소녀들에게 다가온다. 몇 시간이 지나 남자는 사탕을 들고 아이에게 다가온다. 사탕을 주고, 한 아이의 이름을 알아낸 남자 "로비"는 자신에게 차가 있으니 같이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 여자 아이에게 제안한다. 비열해 보이는 수상한 남자, 하지만 에밀리는 드라이브 제안을 샬럿에게만 했다는 것에 실망하고 있다. 얼마 후, 차를 끌고 온 남자는 샬럿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드라이브를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당부하고, 차에 탄 샬롯. 남자는 차에 탄 샬롯의 손을 잡는다. 샬롯은 남자의 손이 뜨끈하고 축축하다 느낀다.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질 듯 입가가 실룩거린다. 남자는 차에 시동을 걸고 연신 싱글거린다. 엔진 소음이 나고, 그때......
-이제는 5살난 아이도 모르는 남자를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걸 안다. (이는 비단 남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르는 여자도 마찬가지..) 그 시대 1940~1950년대에 모르는 남성을 따라가면 안된다는 교육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어린 소녀의 성을 착취하려는 짐승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운이 좋아 빗겨나가며, 누군가는 그 상처로 평생을 산다. 남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버리는 것도 이런 트라우마가 시발점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런 이야기는 심리 스릴러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성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인간의 사회성을 거미라는 개체에 비유해 표현한 [시드니 이야기] 와 부부가 생각하는 프림로즈색은 왜 다를까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 강박으로 깔끔함과 춤의 대열에 예민한 댄스 선생의 이야기 [미스저스트와 초록색 체육복] 등등 다양한 소재의 단편들이 함께 한다. 다소 난해하거나 혹은 무의미하거나 심리스릴러에서 느낄 수 있는 여성 심리소설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유고집이자 단편집은 제법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