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다 좋은 엄마의 말은 없습니다>를 읽고
하루하루 아이가 자란다는 증거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이의 옷을 개다가도, 혹은 언제부턴가 까치발을 들지 않고 물건을 집어내리거나 그림책을 혼자서 읽어내는 아이를 보다가도 종종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평소 엄마와 아빠가 쓰는 말이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를 볼 때면 신통방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뒷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부모의 말(언어)이 아이라는 리트머스 종이에 닿을 때 어떠한 색이 나올지는 오롯이 부모의 언어 수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시보다 좋은 엄마의 말은 없습니다>는 아이의 언어 수준과도 직결되는 부모의 언어력을 높여주는 데 '시를 통한 질문과 대화'를 제안하는 책이다.
시는 '언어'라는 재료로 지은 집입니다. 시를 읽고 분해하는 시간을 통해, 아이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언어의 크기와 범위를 넓혀 아직 배우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요. 더 나아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저절로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5쪽, 프롤로그)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을 통해 다양한 자녀교육법을 제시하며 많은 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김종원 작가는 "부모는 아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아이를 사랑한, 이 세상의 유일한 사람으로 아이를 위한 시를 평생 써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하며 기쁨, 슬픔, 분노, 후회, 사랑의 롤러코스터를 날마다 타면서 그것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詩人)이 부모라면, 나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쉬이 시인(是認)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진정한 시인처럼 제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익혀 아이와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용기, 지혜, 통찰, 사랑'에 관한 언어로 지어진 스물여덟 편의 시를 놓고 부모와 아이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를 해체하고 변주하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아이 스스로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삼학년
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만일 네가 좋아하는 매실액을 물통 한가득 넣어서 물이 매실차로 바뀐다면 정말 기분 좋겠지? 그게 저 친구의 마음이야." 먼저 아이가 시의 주인공인 삼학년 친구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상황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친구가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네가 만약 저 친구라면 엄마, 아빠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아픈 네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통해 평소 아이가 부모에게 원하는 위로의 표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운데, 좀 더 확장해보면 시를 통해 아이 마음 속 언어를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이 퍽 흥미롭다.
"저 친구는 왜 우물에 미숫가루를 넣는 무리한 방법을 선택했을까?", "너도 무언가를 빠르게 갖고 싶을 때 어떤 마음이 드니? 저 친구처럼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친구의 행동이 올바른 선택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킨 뒤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아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면 시를 통해 일상에서 지혜롭게 자신의 욕심을 제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유를 배우게 된다.
답
호피촉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마라.
"네가 좋아하는 반찬을 친구도 좋아할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람 입맛이 모두 다른 것처럼 생각의 모양과 크기도 모두 다르지 않을까?" 이 질문을 통해 세상에 모두에게 맞는 답이 있을지, 나아가 답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줄 수 있다.
"왜 호피촉은 우리들에게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라고 했을까?" 라는 물음에 욕심 내지 말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즉답을 피해야 한다. 대신 아이가 천천히 '소박하다'와 '조심스럽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줌으로써 아이가 자연스레 그 이유를 깨닫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네가 찾은 그 답이 너에게 맞는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을 실천하면서 너에게 더 잘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답이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늘 곁에 있을 거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느리지만 배움의 과정을 성실히 실천해 나가는 아이를 격려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게 부모의 몫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작별
이시영
민들레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가장 아끼던 씨앗을
바람에게 건네주며,
아주 멀리 데려가
단단한 땅에 심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 민들레는 어디에서 날아온 걸까?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을까?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일상에서 늘 마주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거나 사소하게 여겼던 존재들을 아이가 한 번 더 돌아보며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질문을 통해 아이가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
"민들레 씨앗은 무슨 색일까?" 대부분 노란색이라고 알고 있으나 민들레 씨앗은 옅은 녹색과 붉은색도 있다. 이어서 묻는다. "뱀의 혓바닥을 그려볼까?" 대개 붉은색이라고 답하는데, 실제로는 검은색이 주를 이룬다. 이런 식으로 지레 짐작하기보다는 아이가 자문하며 실제로 대상에게 다가가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면 타자를 이해하고 상상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너는 바람에게 무엇을 맡기고 싶니?" 아이가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곳곳에서 사물의 가치를 찾아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묻되, 아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하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릴케
마음속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인내를 가지고 바라보자.
먼저,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문제를 살아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릴케의 시를 모르지 않으나,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젊은 시인'이 비단 릴케의 직속 후배들만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부모는 평생 아이를 위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했던 저자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오늘도 자녀 교육에 골몰하는 부모라면, 먼저 '아이' 그 자체를 사랑하고, 당장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것이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라는 조언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이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동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직 배우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우치고, 모르는 것을 저절로 알게 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게 된다. 시를 함께 읽는 부모는 아이가 내놓은 답변의 수준을 평가하기보다는 좋은 마음으로 감탄과 공감을 해주고, 아이가 생각에 열중하며 한껏 진지한 그 순간, 곧 '말의 공간'을 놓치지 말고 공유함으로서 시 읽기의 기쁨도 나누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둘러싼 여러 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싶은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책(속에 시들)을 읽는 내내, 아이는 물론, 부모 역시 같이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이에 관한 시를 쓰고 있을 시인들에게 아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고 아이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줄 '언어로 지은 시'를 띄워 보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