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부 창출이 커짐으로써 전 계층이 부유하게 되는 게 자본주의 이론이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배워왔다. 그러나 극심하면 최악의 모순인 '빈부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는 사실도 함께 배웠다. 그것을 조정하는 것이 국가와 금융기관의 역할이 된다고 배웠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최고의 부를 누리는 부자의 삶을 누린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론은 현실과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도 어느 정도 살게 되었다고 판단되는 지난 90년대부터 각종 경제지표는 부익부 빈익빈을 가르키고 있다.
매년 '최악'이라는 보도를 신문과 방송은 수십년 째 해오고 있다. 그런데 왜 바로잡지 못할까. 경제를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진보정권이 들어서고 금세 풀릴 줄 알았던 빈부 격차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는 중산층의 붕괴를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 이전의 얘기다. 이 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 이 책 『금융 도둑』이다. 저자는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그레이스 블레이클리다. 진보 사회주의 성향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영국 시민의 한 사람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나라에서는 부의 선이동(善移動)인 트리클 다운(tricle down)*이 이뤄져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되리라는 당초 예상과 주장과는 반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실현되는 듯하다가 변질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한다.
* 트리클 다운 : 대기업의 성장을 장려하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가서 경기가 부흥한다는 이론, 역자 주)
저자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부자와 힘 있는 자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들이 미래를 결정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는 자신들의 이득만 챙기는 정계와 재계 지도자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금융 위기는 금융 주도 성장의 종말의 시작이었다. 2007년 이후로 영국은 가장 오랫동안 임금 정체를 경험했고, 미국 노동자의 구매력은 4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고용률은 높아졌지만,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의 빈곤율도 높아졌다. 투자율 감소와 무너진 기업 신뢰도,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불황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세계적으로 금리는 최근까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제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 자신이 가진 힘뿐이다.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갈 기술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정치가 경제를 따라잡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정치경제학 논리에 근거해 금융화와 금융 위기에 관해 원인과 과정을 조목조목 설명해나간다. 경제학자겸 유명 저널리스트인 강점을 살려 다양한 사례와 스토리 중심으로 지식과 의견을 펼쳐나가 읽는 재미도 제공한다(예를 들어, 브레턴우즈 회의장 분위기, 대처 총리가 탄광노동조합을 탄압하던 이야기, 개혁에 미온적인 노동당 정부 등). 『금융 도둑』은 부모 세대가 진 빚을 청산해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경제 모델의 청사진을 제공할 것이다.
책에 따르면 자본주의 논리가 사람과 지구를 상대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뽑아내는 것이라면, 금융 주도형 성장은 미래를 도둑맞을 때까지 현재와 미래의 사람과 지구를 상대로 바닥까지 뽑아내는 것이다. 그렇듯, 경제 붕괴 전에 폭식을 한 오늘날의 자본주의자들이 이제는 미래의 것까지 바닥내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미 부모 세대의 빚을 짊어진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가 그들보다 나아질 거란 희망도 없이 기본적인 생계만을 위해 일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추앙받던 경제 모델이 혼돈과 파괴를 남기며 무너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부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은 과거의 잿더미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지금이 바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자본주의 외에 대안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절호의 기회이다. 저자는 노동자의 희생으로 거대기업과 엘리트의 자산을 불리는 금융화, 즉 금융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며, 현실의 그 이윤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부채임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단순한 비평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명확하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경제 혁신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지침서임이 분명하다.
저자는 책에서 토니 벤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정치인이자 사회운동가인 토니 벤이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마지막 패배란 없듯이 마지막 승리도 없다. 똑같은 전투만이 있을 뿐이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겪는 경제적 시련은 마지막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과거에도 겪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금융자본주의 경제는 부자를 뺀 나머지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주는 데 실패했고, 그 생산 양식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환경 시스템의 붕괴를 앞당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제는 금융 주도 성장의 논리에 따라 경제를 꾸려갈 수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 본다. 새롭지만 또 다른 모순이 내재된 모델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그에 따라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지금까지 금융 주도 성장 모델의 모순들을 연구해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들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제시했다. 그 방안들을 간략하게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객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소매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중앙은행 및 그림자금융의 독점이익을 위한 횡포를 막아야 한다.
둘째, 더욱 저렴하고 민주적인 대출을 제공하도록 지역은행 같은 공공 소매금융의 역할을 활성화해야 된다.
셋째, 공공은행은 더 낮은 금리로 부채를 차환해 기업과 개인의 부채 탕감에 힘써야 한다.
넷째, 장기적으로 노동자의 권한을 강화해 임금을 인상하고 생활 수준을 높여야 한다.
다섯째, 국립 투자은행을 설립해서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지원하면, 크게는 국가의 자본을 사회화하고 그린 뉴딜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여섯째, 국민과 기업을 위해 저축예금을 관리(보호 및 투자)하는 자산관리자를 생성하여, 올바른 투자를 장려한다.
일곱째, 통화정책위원회와 금융정책위원회를 통해 기존 금융 시스템의 제도를 바꾸고 은행과 기업이 투명한 경영을 하도록 민주적 감시의 기능을 강화한다.
여덟째, 기존의 국제기구를 개혁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착취적인 관계를 상호 혜택이 되는 무역 관계로 전환해 세계 경제의 탈금융화를 도모한다.
저자가 제시한 방안들은 몇 세대에 걸친 장기적인 플랜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한걸음들이 쌓여 미래에 우리 자손들이 짊어질 부채의 크기를 훨씬 줄어들게 할 것이다. 저명한 사회운동가인 사라 자페와 바스카 순카라가 이 책을 경제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지침서로 추천했듯이, 이 책은 금융화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가이드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금융자본주의는 착취를 목적으로 기획된 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의 주범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금융화 혹은 금융자본주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자본주의의 원리를 왜곡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원리에 충실한 방식이라는 주장을 이어간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금융화 등 착취 경제가 야기한 부작용에 관한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통해 논거한 후 정치경제적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저자는 계획 경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주장은 세계 경제의 많은 부분이 시장 자율보다는 합리적 계획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민간 영역에서는 벌어지는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계획되지 않은 경우가 없다는 것. 또한 과거에 비해 정보 처리 기술 역시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 경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이야기도 덧붙인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사회주의적 정치 운동 역시 되살려야 할 대안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어 독자로서는 '판단 불가' 상태에 이르고 만다. 분명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았고, 지금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한 예로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데 사회주의적 정치 체제로 현 경제 붕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독자의 경제적 지식이 빈한함을 탓해야 할지, 저자의 주장이 무리하다고 해야 할지도 분간이 어렵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독자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와 공부할 재료를 제공한다. 독자는 그의 논리대로 우선은 받아들일 여지는 있다. 저자는 「나가는 글」을 통해사회주의 정부가 금융 자본의 통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사회주의 정부는 대처 총리와 레이건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상대로 싸웠던 것처럼 은행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오늘날의 금융 시스템은 자본가들이 경제에서 많은 영역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복잡하지만 목적에 부합하는 매커니즘을 창출했다. 금융자본에 대한 공동의 통제는 그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보장하고, 지금 이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점하는 이들의 권력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계획은 사회주의 정부가 부와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로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해야 한다. 세로운 제도의 정착은 과걱의 제도를 지탱하던 권력자들과 싸워야 하는 엄청나게 힘든 과제이지만, 인터레그넘에 정권을 잡게 될 사회주의 정당에게는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저자 : 그레이스 블레이클리(GRACE BLAKELEY)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다. 반긴축운동 세대의 대안 언론 〈노바라 미디어NOVARA MEDIA〉에서 경력을 쌓았다. 친노동당 주간지 〈뉴 스테이츠맨NEW STATESMAN〉을 거쳐 현재는 제러미 코빈을 지지하는 청년 좌파가 설립한 계간지 〈트리뷴TRIBUNE〉의 전속 작가로 있다. 저서로 바이러스와의 투쟁에서 드러난 금융자본주의의 민낯을 파헤친
《코로나 크래시THE CORONA CRASH: 팬데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웠는가》가 있다.
역자 : 안세민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현대자동차 등을 거쳐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슈독》, 《블루오션 시프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안티프래질》, 《베조노믹스》, 《로코노믹스》, 《100세 인생》,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회색 쇼크》,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경쟁의 종말》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