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인물들이 하나같이 평면적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평면적 인물들이 모여 구성된 극이 어떻게 이토록 사랑받고 고전으로 칭송받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캐릭터들은 마치 각각 어떤 관념의 현현처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게다가 핵심적인 대목들을 제외하면 인물들의 동기와 심리조차 명확히 묘사되지 않는다. 이아고가 구체적으로 왜 오셀로에게 이렇게까지 하게 되었는가, 데스데모나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가 같은 것들은 모두 무대 바깥에 있다.
그렇다면 이건 엉성함일까? 인물들의 동기와 배경을 더 자세히 설명하거나 인물에게 입체성을 부여하면 작품이 더 개선될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 <오셀로>는 그 평면성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상호작용하며 불가피한 비극을 초래하는 것이 셰익스피어 비극의 전제이다.
마침 이렇게 특정 속성을 인격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다른 고전이 있다. 호메로스다. 시대도 주제도 형식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는 구체성을 모두 쳐내고 핵심만 보여주는 이야기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며, 바로 그 점(필요한 것만 무대에 올린다) 때문에 고전으로서 불멸의 가치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덜 살아 있는 인물들의 극이 이렇게나 볼 만하고 공감이 가는 것은 우리 현실에 실제로 '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