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작가님의 <크리스마스 캐럴 - 문예 세계문학선 075>을 읽었습니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네요. 오랫만에 다시 읽는건데도 역시나 재미있고 감동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작품은 찰스 디킨스의 단편이 3작품이 실려있는 책인데요, 다들 많이 들어서 아시는 스쿠르지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마도 제일 유명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 말고도 다른 작품도 역시 너무 재미있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랫만에 읽어서 너무 좋았고, 가끔씩 이렇게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외에 <크리스마스 잔치>,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 등 세 편이 실려 있다. 영국의 위대한 작가 찰스 디킨스가 들려 주는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으로,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 영감의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꼭 책이 아니더라도 연극이나 텔레비전 인형극을 통해서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 보았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더더욱 인기가 많은 작품으로 어린 어린아이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이 작품을 텍스트로 완벽하게 읽은 적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이리저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책으로 읽으니 짤막한 연극 한 편의 기억보다 더 깊이 있는 읽기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인정머리없기로 짝이 없는 스크루지 영감의 행태를 텍스트로 만나니 정말 그렇게 인색하기도 어려울 듯하다가도 요즘 세상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 더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무원이나 조카, 아이들을 대하는 스크루지의 태도에서는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조카에게 스크루지는 '사랑'이라는 말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보다 더 우스운 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스크루지의 삶에는 그렇게 '사랑'이나 '정'보다 단호함과 차가움, 음울함, 어두움이 채워져 있었다. 그러던 스크루지 영감에게 크리스마스 전날 밤, 동업자였던 죽은 말리가 유령이 되어 찾아온다. 말리에 이끌려 스크루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들을 따라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경악한다. 그런 스크루지에게 말리 유령은 지금처럼 그렇게 살면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심하게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꿈에서 깨어난 스크루지는 지난 날을 반성하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을 통해 스크루지 영감을 손가락질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새롭게 태어난 스크루지 영감의 마음을 본받아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깨닫고 최대한 실천해 보는 기회로 삼아 보면 어떨까.. 우리 주변에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 추운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며
내가 도울 수 있는 다양한 기부 방법을 한번 생각해 보자.
겨울이 오면 다들 12월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면 더욱이 그러하고 연인이어도 그리워하는 날이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로든지 혹은 만화로 익숙한 내용인데 정작 내용은 다 알지만
책으로 읽어본적이 없는 그러한 책중에 하나인 크리스마스캐럴을 읽어보기로 했다.
스크루지 그 인물은 사회 문화속에서 비판적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고 어른들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는데 왜 그러련지...읽으면서 느껴진다.
당시 영국 사회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빈부 격차는 벌어지지만 사람이 기준으로 돌아가던 세상이 더이상 그러하지 못한 기분으로 피해를 받거나
혹은 돈에 의해서 가치 판단이 되어버리는 기준 대상이 되어지기에 스크루지는 힘들었던 그 과거를 현재 돈이란 가치에 억매이면서 대상을 판단한다고 볼수 있다.
그의 동업자의 죽음으로 다시 유령으로 나타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면서 그동안 그가 보고 싶지 않았던 그 대상을 찾아서 보여주는데...
현재의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그 이야기이다.
소외된 계층을 다시 보고자 하는데 그 날만이 아닌 늘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한 우리를 한번더 이야기 한다고 볼수 있다.
유령의 도움으로 그는 다시 예전의 인간다운 사람으로 돌아가고
주변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여도 그는 변화된 삶을 찾아가도록 한다.
변화된 모습을 조카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순간 그 미소가 저절로 같이 짓게 만든다.
그 당시의 이 소설이었다면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크리스마스캐럴 말고도 단편 이야기가 3편이 더 실려 있다.
크리스마스의 풍경이 글 속에서도 찰스 디킨스의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구성 표현들을 가지고 그 시대적 상황을 느끼게 만들어 버리는 글속에서
이미 지나가버린 12월 25일의 서양의 풍경이 상상이 간다.
해피엔딩을 넘어서그의 관점 하나가 사로 잡는다.
“유령님이 횃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에 무언가 특별한 조미료라도 들어 있습니까?”
스크루지가 물었다.
“그렇고 말고, 나만의 특별한 조미료라네.”
“오늘 같은 날에는 어떤 음식에든 효력을 발휘하나요?스크루지가 계속 질문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이라면 어떤 것에든.하지만 효력이 가장 좋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지.”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에 가장 필요한 것이니까”
"유령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스크루지가 말을 꺼냈다.
"저는 저희를 둘러싼 많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 중에서도 이란 사람들이 순수하게 즐거워할 기회를 유령님이 속박하고자 하시는 것은 아닌지 근심스럽습니다."
이 뒤부분부터는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아지는 대상의 글이 내용이 되어서 그 쪽으로는 깊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러한 향료가 들어있는 음식을 한번이라도 먹고자 한다는 생각이면
그 작은 기쁨이 큰 기쁨으로 바뀌리라 생각이 든다.
내 배가 그러한 향료를 그리워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뭔가 부족한 부분들을 찾아 헤매이더라도
이런 조미료 하나가 작음 기쁨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한다.
춥고 배고픈 이 겨울을 좀 더 다른 이들과 함께 할수 있길 바라는 생각이 이책의 가치를 높이는 것 같다
다른 3편의 단편이 크리스마스 풍경을 살려주는 글이라서 다시 그날이 그리워진다,
영국이 찰스 디킨스라는 대문호를 낳고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작품을 낳은 이후로 아마 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 더욱 특별한 날이 되었을 것이다. 재작년에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를 한 달여 앞두고 귀국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이르게 영국 곳곳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 있었던 것에 대한 의아함이 바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스크루지 영감에게 찾아온 세 유령 때문에 악독한 구두쇠가 자비로운 사람으로 개과천선한다는 단순한 내용만으로 이 책을 해석한다면 왜 이 책이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
찰스 디킨스가 영국인이었고 그가 유년시절을 산업혁명으로 인한 불공평하고도 끔찍한 노동현실에 직면한 이후로 그의 작품속에서 노동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가 된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아동 노동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당시의 아동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리게 되고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퇴치하고자 하는 두 가지가 바로 '무지'와 '빈곤'이고 이 중에서도 무지가 더 시급하게 뿌리 뽑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메세지가 시사하는 것은 바로 찰스 디킨스가 아동들이 교육 받는 권리를 찾아야 함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당시에 이 책이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아마도 크리스마스라는 축복과 빈곤과 열악한 노동현실 등의 타개해야 하는 현실적장애물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야기 속에 문학이 갖추어야 할 자세가 정직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대의 독자들은 바로 그 당시 영국 사회의 현실을 문학 속에서 재발견하면서 작품을 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여전히 모두에게 축복이 되는 날은 아니다.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자에게는 더욱 빈곤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때이고 넉넉한 자에게는 풍요로움이 향유하는 시기로서 크리스마스는 찰스 디킨스가 살아있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인가보다.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몇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인물인 스크루지이다. 그가 등장하는 책의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알고 있지 않을까.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인물이자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을 만났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크리스마스 캐럴과 크리스마스 잔치,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 <험프리 선생의 시계>에 실린 크리스마스 이야기 등 네 작품을 만날수 있다.
어린 시절 처음 동화로 만났던 크리스마스 캐럴. 이야기보다는 등장하는 유령들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욕심많고 나쁜 말이나 행동을 하면 나에게도 유령이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릴적 순수한 생각들 때문에 웃음이 난다. 어른이 되니 현실이라면 스크루지처럼 살아야만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인색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절대로 유령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유령들이 오히려 무서워할 정도로 욕심 많은 사람들도 많다.
동심으로 만났을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니 현실적으로 바라볼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오래도록 남는 것은 추운 겨울 따뜻함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변하지 않을 스크루지들도 있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나눌줄 아는 스크루지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다른 계절보단 겨울에 이 책이 더 와닿는 것은 제목때문만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일수록 추위를 더 느끼지 않을까. 이럴때 누군가 말없이 안아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스크루지를 만날수 있는 이야기이게 추운 겨울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서는 현실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했지만 그런 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책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선행을 베푸는 스크루지들을 많이 만날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허구의 문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반영된 이야기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날수 있는 상황들이다. 평생 자기 안에 갇혀 금전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스크루지를 만나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추위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금전적인 것만을 바라보며 춥게 살아가는 그들이 진정 행복하다라고 말할수 있을까. 추위에 떨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함께 있기에 추위를 잊을 수 있기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