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의 시를 접해본 사람 이라면 아마도 이 소설을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란 생각을 해 본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게 되면 여느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처음부터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아울러 해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시를 쓰듯 주변의 사물 하나하나를 심오하게 묘사하며 그냥 스쳐 지날 수 있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표현해 주는 소설 속에서 얼토당토 들릴 수 있겠지만 장대한 인생의 서사시(敍事詩)는 물론 서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서정시(抒情詩)의 인상도 느낄 수 있었다. 바꾸어 표현 하자면 독자들로 하여금 약간의 지루함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나름 시(詩) 읽기를 즐겨 하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절로 흥분 이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테의 수기》에서 릴케는 말테 라는 인물을 통하여 파리에서의 자신의 경험담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에 유난히 죽음에 관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죽음을 통해 겪었던 어린 시절의 충격과 공포,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통해 릴케의 성장과정과 더불어 그 때의 시대상을 어렴풋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소설 이지만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은 듯 하단 느낌은 떨쳐 버릴 수 없다. 사실 흥미롭지는 않은 소설임에 틀림은 없지만 문학적인 가치는 훌륭하단 생각도 해 본다.
우리는 자주 꿈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꿈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선택하려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 면에서 보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몸은 병약했을지언정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 하고 싶다. 물론 릴케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짐작으로 추정 할 뿐이지만 적어도 나의 관점으로 바라본 릴케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주어진 환경이 행복을 결정 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것이 나만의 오래된 생각 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부부간의 불화, 백혈병등... 어찌 보면 행복과는 관계가 먼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 되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강조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섬이 넓어집니다. 천막이 쳐지고 있습니다. 파란 무늬 직물로 짠 천막으로서, 금빛의 물결 무늬가 있습니다. 동물이 그것을 좌우로 벌리고, 여인은 눈부신 의상이 검소하게 보일 정도로 아름답게 걸어나갑니다. 진주 목걸이도 여인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인은 시녀가 열고 있는 작은 궤에서 언제나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묵직한 아름다운 보석 사슬을 꺼내고 있습니다. 여인의 옆자리에 만들어져 있는 높은 장소에 조그마한 개가 앉아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천막의 위 끝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았는지요? '오직 하나뿐인 나의 소원을 위해서'라고 적혀 있습니다. (P140)
번역이 예전 꺼여서 읽는 데 좀 불편했다. 미리보기로 보니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 (내게는) 잘 읽히는 편이었다. 얼마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샀다. 하지만 예전에 산 전집은 잘못 산듯 하다;; 도서관에서 다른 출판사 책으로 갈아타려다 원래 이 소설이 이런가 보다 생각하고 그냥 읽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전은 최신 번역판으로 사는 게 좋을 듯. 아니면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는 고전 문학은 직접 보고 자기에게 잘 맞는 걸로 골라야 할 것 같다.
<말테의 수기>는 많은 작가들이 추천하는 책이라 한 번은 읽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했나 했는데 다른 독자들의 평을 보니 이 작품은 딱히 말할 줄거리는 없는 것 같다. 기억, 회상, 현실이 뒤섞여 있다. 어떤 게 환상이고 실재인지도 애매모호하다. 분위기로 읽는 책이다. 그의 묘사는 시와 같아서 여러번 읽고 싶어진다.
그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지않아 모든 것이 의미를 상실하리라. 앉아 있는 테이블고, 찻잔도, 움켜쥐고 있는 의자도, 눈에 익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낯선 불투명한 것이 되리라. 56쪽
대학교 1학년 때 평일에 박물관에 갔을 때 기분이 떠오른다. 평일이라 관람객은 나랑 친구 단 둘이었다. 고려 시대인지 조선 시대인지는 잘 생각이 안 난다. 다만 예전 사람들의 화려한 의상들에 울컥하며 마음이 슬퍼졌다. 이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지금 없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사라지고 물건들만 남겠지 하는 생각에. '내가 사라지고 없다'는 생각에 압도당했다.
그런 강렬한 감정은 바쁜 일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동료와 홍대에서 저녁에 술을 마실 때 다시 울컥해졌다. 자신이 잘 아는 집이라고 소개한 곳에서 술을 마시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곳도 몇 십년만 지나면 사라지겠지. 결국 나도 없어지고;; 이런 얘기를 하자 상대는 이상한 소리라는 표정이었다.
주인공 말테처럼 나도 죽음, 정확히 말해 소멸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강렬하게 느끼는 부류인가 보다. 말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환상이나 유령을 보지는 않는다. 소설 속 말테가 경험한 것들은 정말로 초현실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정신적 문제인지 모르겠다.
말테의 수기는 릴케의 자서전처럼 읽힌다. 극도로 예민한 시인 같은 사람들은 그런 초현실적인 존재를 유년기부터 느끼는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정신적으로 비정상인걸까. 난 초현실적인 존재를 믿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없다고 확고하게 믿는 내 생각이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 때도 가끔 있다.
어쨌든 이 고독하고 가난하고 생각많은 젊은이는 '헛것'을 수시로 본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그를 좇아다닌다. 파리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인상에 남는다.
책이 쉽게 읽히지 않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진다. 분명 재미난 영화인데 외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안타까운 그런 기분이랄까. 죽음에 대한 내용이 압도적이지만 <말테의 수기>는 남녀관계와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변화를 거듭하는 남자 옆에서 여자는 운명을 모르고, 활줄처럼 긴장되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존재처럼 선다.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받는 남자를 능가한다. 생명은 운명보다도 위대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사랑은 끝없이 퍼져 나가려고 한다. 그것이 여자의 행복이다. 여자의 사랑의 형언할 수 없는 고뇌는 그 한결같은 정열을 억제하도록 요구당하는 데 있다. 225쪽
줄거리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고, 줄도 치지 않고, 그냥 물 흘러가듯 책을 넘겼다. 다시 한 번 재독하고 싶은 책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교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랭보, 릴케, 한하운, 포우 등 많은 시인의 작품을 가슴으로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지막 시집을 산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잘 안난다. 릴케. 포우의 소설을 만났었던 것처럼 릴케의 소설을 읽는다는게 꿈만 같다.
[말테의 수기]는 1부, 2부로 나누어지는 그닥 뚜렷한 줄거리는 없는 소설이다. 굳이 정리한다면 1부에서는 성숙한 28살의 가난한 처지의 말테가 어지러운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떠오르는 상념들을 정리하고, 가끔 회상도 하고..2부에서는 좀 더 밝은 분위기의 말테의 어린 시절과 그의 첫 사랑인 아벨로네를 추억한다. 이 수기에는 말테와 릴케가 거의 동격인 듯 하다. 첫 딸을 잃은 릴케의 어머니가 그를 여자아이처럼 키웠다던가, 부모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 등이 그러하다. 이 책에서 추억 속의 어머니가 '말테야~' 하고 속삭이고, 대화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말테는 전체적으로 고독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가난한 처지의 방 한칸. 성능이 떨어지는 난로. 병약한 몸. 의지할 곳이 없는 가족. 뚜렷한 직업도 없으며 하고자하는 글쓰기는 잘 안되는 생각많은 청년이다. 2부에서의 유년 시절의 회상은 세상을 대하는 말테의 맑은 눈을 느낄 수 있으며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는(공포) 그도 잘 표현되고 있다.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포우의 시같은 느낌이다. 릴케의 시집도 한 권 사고싶게 만드는 가슴떨리는 작품이다.
말테의 수기의 시작은 우수에 젖은 쓸쓸하고 맬랑콜리한 청년 말테가 프랑스 파리의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느끼는 우울하고 애상에 젖은 정서를 서술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말테는 이작품속의 내용으로 보아서 릴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청년이다. 릴케자신이 겪은 경험과 깊은 감수성과 예민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인것 같다. 릴케의 분신인 말테는 도시의 사람에 대한 불안감, 고독, 주변인의 죽음에 관한 서술, 어릴적 회상을 통한 현재의 자기모습, 어머니에 대한 어릴적 추억에 대한 기억, 특히, 어릴적 회상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다루면서 기술되어있다. 말테의 수기를 읽을때에는 화자인 릴케의 정서를 깊이 있게 이해가 되어야만이 충분한 가독력이 생겨날만큼, 난해하고, 정서적 감정적인 동조화가 일어나야만이 이작품을 음미할수 있을것이다. 릴케의 정신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