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순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대상 그 자체에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이 없음'이라고 기술 되어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 가면서도 순수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의미를 찾고 싶어했다. 과연 이책의 제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순수, 깨끗함, 백색의 아름다움, 때 묻지 않은 세계, 무지, 미지, 격리, 동떨어짐, 등등...
나만의 모순일까? 고전을 읽기 사작하려면 참으로 힘들다. 낯선 시대적 배경에 많은 등장 인물들로 정작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되는것은 4분의 1이 넘어어서야 가능하다. 읽다가 또 앞으로 찾아가 보고 누가 누구인지 찾아보고... 그래서 고전을 읽을때는 뜸을 많이 들인다. 이해력이 떨어지는것인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것인지...
이 소설은 결국 삼각관계에 처한 한 남자와 두 여자에 관한 사랑 이야기이다. 물론 시대를 떠나 온갖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하고 지저분한 이야기로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순수의 시대라고 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충분히 순수하다고 볼수도 있다. 지금도 뉴우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연인 폭력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너무도 쉽게 살인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사랑을 빙자로 구속하고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한다면 과연 사랑이라고 해야할지... 무서워서 사람을 만날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럴수록 요즘에 이런책이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참는것이 무엇인지... 상대를 배려한다는것이 무엇인지...
1870년대의 미국 사교계. 유럽인들이 찾아와 만든 사교계이지만 유렵과는 또다른 문화와 전통이 만들어져있다. 오히려 더 허세적이고 격식에 매여있는 시재적 배경에 세 남녀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주인공 아처는 대단한 매력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면당할만한 못난이도 아니다. 긴 사교계의 설명으로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엘렌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가봐도 아름답고 현모양처감인 메이를 신부로 맞이한다는 발표를 할 즈음에 그녀의 사촌이자 어린시절 첫사랑이었던 엘렌이 등장한다.
그것도 폴란드인과 결혼을 했다가 그의 비서와 바람을 피웠다는둥,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는둥 조금은 유쾌하지 못한 소문을 달고 나타난다. 그래도 매력적인것은 어쩔수 없다. 메이와의 약혼마저 흔들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엘렌. 아니 아처만의 혼자생각이 더 많았을것이다. 지고지순한 메이와 자유분망한 엘렌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아는지 결국 메이와 결혼을 한다. 엘렌은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그는 용기가 없는것일까 아니면 현실주의자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남자라면 아처 같은 선택을 할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요즘 말로 결혼따로 연애따로가 가능하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엘렌에게 가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악한 메이의 전략이었다. 그녀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그렇게 쉽게 빼앗길수는 없는 처지가 아닌가.
세월이 흐르고 자식도 다키우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을때도 그는 엘렌을 감히 찾지 못한다. 시대적으로도 더 자유스러워졌고 그 누가 탓하지도 아닐진데, 더군다나 아들마저 아비를 돕고자 하는데도 끝내 발길을 돌리는 그 남자. 그의 아내 메이를 위함일까. 양심일까. 아니면 순수라고 해야할까. 끝내 마음속으로만 사랑을 했던 그 남자는 육체적 불륜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과연 마음속의 불륜은 괜찮은걸까? 과연 세사람중에 진정한 사랑을 한 사람은 누굴까.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패자는 누구일까. 마음속에 다른 여인을 품고 평생을 메이와 산 아처. 아처의 마음을 훔쳤지만 얻은것은 아무것도 없는 엘렌. 마음을 빼앗지는 못햇어도 평생을 그의 아내로 살아온 메이.
승자도 패자도 없다. 자신만의 사랑을 자신의 방법으로 지켰으니까. 사랑을 빼앗았든 빼앗기었든 마음속의 전쟁을 스스로의 방법으로 절제 했던 만큼 모두의 승리가 아니었을지... 요즘 젊은분들도 극단적인 방법만을 취할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먼저 시작되어야 사랑을 얻을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순수가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책에 몰입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역시 제목만으로 내용을 판단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특히 소설에서는!!!
항상 느끼면서도 이번에도 또 당하고 말았다.
물론 은유적인 표현일 수 있다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지만...도무지 집중하기 힘들었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그럼 살펴보는걸로~
책 이야기하기전에 사담을~
아는 동생이 여행을 다녀와서 사다준 작은 가방이다.
내가 좋아하는 토토로~~~
요즘 요아인 필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필통에 연필이 들어가지 않아서..ㅠㅠ
정말 잘 쓰고 있다규~ 고마워~^^
주인공 아처와 메이, 엘런은 기묘하게 삼각관계에 속에 있다. 메이와 엘렌은 심지어 사촌지간이다.
이 무슨 막장드라마인가?
하지만 현대의 극처럼 막장을 표면에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게 이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처의 답답한 성정은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도저도 아닌 그의 흐리멍텅한 태도는 정말 짜증을 극에 달하게 한다. 이여자가 아니면 저여자? 내원참. 이리도 본인의 마음에 확신이 없으니원...
그런 아처의 태도와 유사함을 보여주는 인물이 또 있었으니 바로 엘렌이다. 자신의 불행한 결혼을 깨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깨고 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답답한 느낌아다. 물론 그 시대 사회가 그런 것을 용납하기가 힘든다는 것은 안다. 또한 가족들이 너무나도 이혼을 반대하고 있으니...그녀가 제대로 나아갈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다만 그녀도 흐리멍텅한 태도를 보였던 아처와 마찬가지로...둘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아 어중간하게 걸려있는 상태를 보인다. 그냥 떠나지...
아처와 엘런에 비해 자신의 감정과 태도에 솔직함을 보이는 사람이 바로 메이다. 개인적으로 그녀도 간을 보는 모습이 보여서 살짝 실망하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순수하게 그녀의 남편을 믿으려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다. 아마도 제목은 그녀를 위해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싶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니 감정이 그래로다라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도 있긴 하다.
다만 그런 것들이 과연 서로에게 옳은 감정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맺고 끓음을 명확히 하려 노력하고 대부분 그렇게 행동하는 나로선 그들의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누군가 '사랑을 많이 안해봐서 그래~'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데...)
극중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소위 말하는 상류층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예나 지금이나 상류층 남자들 중엔 왜이리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들이 많은지 원...언젠가 아는 분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남자건 여자건 돈이 많아지면 안돼. 그럼 꼭 밖으로 돌더라.." 흠...요즘은 돈이 없어도 돌긴 하던데..라고 반박하면 이 소설에 빗대어 말할 수 없으니...
정신들 차려라!!! 누구와 만나도 현실이 되면 환상은 깨지는 법!!!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얼마 전에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설득>때문이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가 이야기하는 당시의 연애와 결혼.. 그녀들의 시각을 비교해가며 읽으면 좋겠다.. 는 의견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다.
<설득>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지 두 소설의 차이점과 공통점들을 생각해 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같다.
인생의 어찌 보면 가장 큰 일일 될 수 있는 결혼.. 이 소설들의 배경이 되었던 그 당시가 지금보다는 더욱 더 결혼이라는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설득>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특성과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한 조건들 ,특히 남성들보다는 여성이 스스로 독립을 하여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결혼을 통해 안정적이면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순수의 시대>에서는 결혼을 앞둔, 그리고 결혼을 한 이후의 남편과 아내의 역할과 그 안에서 소멸되어 가는 자아, 그럼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등을 보여주는 듯 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뉴랜드 아처.. 그의 신붓감인 메이 월랜드는 당시 사교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인이었다. 그가 바라는 아내상은 처세술에 능하고 , 자신을 반하게 했던 유부녀만큼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여인이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결혼전 누군가에게 반하고 좋아했던 경력들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도덕(?)같은 것이었다.
'품위 있는'남자로서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감추는 것은 그의 의무고, 결혼 적령기의 아가씨로서 숨길 과거가 전혀 없어야 하는 것은 그녀의 의무였다. 그렇다면 그와 그녀가 정말로 서로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두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더 미묘한 어떤 이유 때문에 서로에게 싫증이 나서나, 혹은 서로를 오해한다거나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p55)
뉴욕의 사교계,, 겉으로는 품위와 위엄을 유지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서 위선과 가식들이 난무한다. 그런 사교계에 자유분방한 여인 헬렌이 등장한다. 유럽의 백작과 결혼을 하였지만 그 비서의 도움으로 남편의 곁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온 여인.. 사교계에서는 그러한 그녀를 마치 병자를 대하듯 외면하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어찌보면 그녀의 그러한 자유로움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더욱 그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다. 헬렌은 남편과의 이혼 소송을 하려고 하지만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이혼을 반대한다. 오히려 돌아 오는 조건으로 거액을 제시하는 남편의 뜻에 따라 유럽으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이혼한 가난한 여인보다는 설사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더라도 백작부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그녀를 설득하려고 한다. 헬렌을 설득하는 임무(?)를 맞게 된 아처..
결국 그녀은 이혼을 포기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기로 맘을 먹게 된다.
헬렌이 뉴랜드 아처의 처가 댁이 될 가문의 여인이었기에 그녀를 알게 보르게 도와주게 되는 아처..
그런 과정속에서 엘렌과의 미묘한 감정이 싹 트게 되고 결국 그녀와의 도피 행각까지도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가문의 명예등을 모두 무시한 채 자신의 감정만으로 일을 벌을 수 없는 상황임을 서로 인정한다.
아처는 결혼에 대해 오래전에 지니고 있던 생각들로 되돌아갔다. 구속받지 않던 총각 시절에 장난삼아 매달렸던 이론들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쓰는 것보다 전통을 따르고 친구들이 자기 아내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메이를 대하는 것이 덜 성가셨다.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내를 해방시키려고 애써봐야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는 메이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자유의 유일한 용도가 아내로서 남편을 섬기는 재단에 그것을 바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알았다. 내적인 품위 때문에 그녀는 걸대 그 선물을 비천하게 쓰지 않을 것이다. (p240)
그리고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아처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해 본다. 그리고 자식들과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념이가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이 변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인데 그런 것들때문에 무엇인가를 놓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나 그것을 다시 부여잡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함께 보낸 긴 세월을 돌아보며 그는 결혼 생활이 의무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한 그것이 지루한 의무라 할지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무의 존엄성에서 벗어나게 되면 결혼 생활은 추악한 욕구들의 투쟁이 될 뿐이었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에 경의를 표하며 그것에 대해 슬퍼했다. 어쨌든 옛 방식에는 좋은 점이 있었다. (p419)
제인 오스틴의 <설득>은 주인공인 앤이 주위 사람들의 설득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하지 못한다. 결국 사랑보다는 사회적인 지위와 보장된 안정된 삶을 추구해야한다는 당시의 결혼 전제 조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이 보여주는 일반화된 정서,, 그것을 순수함이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 그러나 그 순수함이라는 것 뒤에서 나오지 못하는 개인적인 정서와 욕구들.. 그러한 것들을 풍자하여 보여주는 듯 했다. 그 중요한 소재가 바로 아처와 엘렌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형상화된 어떤 애정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그러한 사랑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에 따르는 많은 감정노동(?) 그리고 그 제도로 인해 짊어지게 되는 많은 역할들의 버거움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꼭 어떤 관계의 형성만이 아님을.. 사랑이라는 전제 조건이 있기에 그것들 또한 견디고 즐길 수 있음을 알게 해 주고 싶은 맘도 있다.
그 시대가 보여주는 경향이라는 것도 있지만 사랑, 결혼등의 주체는 우리들이기에 복잡 미묘한 그 감정선상위에 있는 결혼이라는 것들을 일반화 하는 것은 어려운 듯 하다.
사랑과 결혼.. 과연 그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역시 시대가 지나 그것이 표현되는 방법과 기준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된다.
이 글은 문예출판사 출판사에서 출판 된 이디스 워튼 저/이미선 역의 [ 순수의 시대 - 문예 세계문학선 084 ] 책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제목에 끌려 대여하여 읽게 됐는데 내용이 정말 참신하고 재밌었습니다. 대여로 구매했지만 내용을 다 읽고 나니 소장하고 싶어졌어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얼른 다른 작품으로 또 뵙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