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치고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법조인이다.
그럼에도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솔직한 심정, 그리고 굽히지 않았던 소신을
담백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그가 아직까지 현역인 입장에서 밝히기엔 어려울 법한
사건이라던가 판례에 대한 반성과 아쉬움을 담은 글이기에 충분한 가치가 느껴졌다.
- 법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들 -
총 6장으로 사건마다 2~3장을 차지하는 단편집 같은 구성이라 좋았다.
어려운 법 조항에 대한 나열이 없고 그냥 누군가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는 듯 편했지만
법이란, 정의란,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뇌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신이 내린 판결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깊이 숙고하며,
늦은 밤까지 관련 자료와 사건 기록을 살펴보지만 판결 당일까지도 그리고 판결 후에도
끊임없이 돌아보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 과연 내가 어젯밤에 내린 결론이 옳은 것일까? 최선의 답일까? -
자신이 감당하기엔 벅차게만 느껴졌던 올바른 법의 심판에 대한 중압감에
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조금은 해방된 기분을 느끼길 바랐던 저자는 이내 고통을 호소한다.
오히려 판결에만 집중하던 판사였던 시절이 덜 아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법이 최선인 사회를 결코 희망하지 않는다 -
변호사와 판사, 두 가지 길을 걸으며 겪었던 안타까운 사연이 많이 나온다.
어쩔 때는 답답하게만 느껴진 일방적인 소신적 판결도 보였다. '마약 사건'이
그러했는데, 드라마를 보며 갖게 된 편견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 중에 '성문을 닫아 두시오'라는 일반적 포고령(법)이 내려졌다.
전장에 나간 아군이 적에게 쫓기다 성문 앞에 이르러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수비병이 절대 성문을 열지 말라는 포고령을 어기고 성문을 열었다.
당신은 수비병에게 포고령 위반으로 형을 선고할 것인가?
- 프롤로그_법이란 무엇인가_5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 깊이 와닿는다. 그 누구도 완벽한 판결과 집행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법정에서의 판결이 공정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과연 증거만으로 얼마나 정확한 판결이 내려질 것인가.
가끔은 확률 게임이 아닌가 싶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뉴스에서 나오는 억울한 사건 판결을 볼 때마다 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
그들이 최선을 다했다 한들, 대다수의 사람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는 경우다.
조두순과 오원춘의 판결이라던가, 최근엔 고유정 사건을 맞은 변호사 외에도 많지 않은가.
이러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판사의 가족이 이런 일을 당했어도 이렇게 판결했을까?'란 의견이 참 많다.
나 역시 매우 궁금했다.
고작 이 정도 형벌밖에 내릴 수 없는가! 이런 놈을 변호하겠다는 변호사는 또 뭔가;;
'법전의 글자만이 아닌 올바른 인성에 대한 시험과 평가가 먼저였으면.' 했더랬다.
이 같은 답답함과 의문을 느꼈다면 권하고 싶다.
사람마다 성격과 체질이 다르듯이 법조인들도 각기 인성이 다르다.
박영화 저자의 지난 에피소드를 읽으며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다 보니
판사라는 자리가 주는 고뇌가 얼마나 날카롭고 깊었는지 알게 되었다.
법조인에 대한 실망보다는 희망이 보였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