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 -나쓰메 소세키 전집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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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나쓰메 소세키 전집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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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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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갱부 평점10점 | h*****7 | 2020.08.18 리뷰제목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전집 14권에 해당하는 작품을 모두 읽었다. 연대순으로 읽었다면 좋았을 것을. 여섯 번째 소설을 맨 나중에 읽은 셈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죽으려고 마음먹고 집을 무작정 뛰쳐나가 산길을 걷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도련님으로 살아왔던 열아홉 살 청년이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리뷰제목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전집 14권에 해당하는 작품을 모두 읽었다. 연대순으로 읽었다면 좋았을 것을. 여섯 번째 소설을 맨 나중에 읽은 셈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가 죽으려고 마음먹고 집을 무작정 뛰쳐나가 산길을 걷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도련님으로 살아왔던 열아홉 살 청년이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사건의 배경에는 두 소녀가 있었다. 두 번째 소녀와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이 있었던 모양인데 두 소녀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모양이다. 그것이 부모와 친척에게 알려져 비난을 듣게 되었고 괴로운 나머지 가출하여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죽으려고 할 만큼 그렇게 큰일일 이었을까. 산 속에서 낯선 남자가 일을 해 볼 거냐고 물으며 접근하는 바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 조조라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겨서 한바 책임자에게 넘겨주는 사람이다.

 

 한 번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는 순순히 따라간다. 일자리만 생기면 그것으로 족했고 갱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기뻤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을 뛰쳐나왔지만, 죽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햇빛을 보지 않고 속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음침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자기에게 너무나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붉은 담요와 꼬맹이까지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모은 조조는 이들을 데리고 산 속으로 산 속으로 향한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똑같이 갱부가 되겠다고 대답을 하는지 모두 다 똑같이 바보였다고 회상을 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 전락하게 되는 것보다 같이 전락할 길동무를 얻은 것을 아주 유쾌하게 생각한다. 소세키의 유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강에서 죽을 때는 반드시 뱃사공 한두 명을 끌고 가고 싶어지고 만약 죽고 나서 지옥에라도 가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이 없는 지옥보다는 반드시 요괴가 있는 지옥을 택할 거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여럿이가 마음은 든든한 법이다.

 

 숨 가쁘게 걸어가면서 자신의 행동이 가출이 아니라 소풍이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후회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얌전하다, 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었지만 광산으로 가는 길에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고 광산 안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한다. 얌전함이 극에 달하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게 된다는 말도. 아마도 갱 안에서 큰 고생을 할 듯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왜 사서 하는 것일까.

 

 조조가 한바의 책임자에게 를 데려다주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는 걸 알고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내하는 할멈을 따라 굿길에 갔는데 모여 있는 갱부들을 보고 압도되어 자신의 결심이 흐려진다. 그 갱부들의 얼굴은 그냥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얼굴이 아니었다. 둥글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런 느낌은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다. 모두 거칠고 난폭해 보이는데 그런 사람들이 만 명이나 된다니 완전히 기가 죽는다.

 

 희멀건 얼굴의 열아홉 살짜리 청년을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을 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 중 서른이 좀 안 되어 보이는 갱부가 여기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돌아가서 신문배달이라도 해라, 자기도 학교에 다녔는데 방탕하게 보내다가 여길 와서 굿길 밥을 먹다가 이렇게 되었다 나처럼 되면 끝장이다, 라는 충고를 해 준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겁이 나기도 하지만, 왠지 는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하층 노동자에게조차 동료로 대우받지 못하는 모욕을 받고 있다고. 그들은 규칙을 내세우며 여기는 십장도 있고 의형제도 있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되니까 어서 돌아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돈을 벌어도 그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기는 걸까. 이렇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는 돌아갈 결심을 하지 않는다. 왠지 젊은 혈기에 못할 일이 뭐 있나 하는 베짱이 느껴지기도 했다.

 

 ‘는 걱정이 되면서도 사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할멈이 밥 먹으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는데.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이 떠지지 않는다. ‘벽토로 불리는 안남미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다. 그들은 안남미도 모르면서 갱부가 되려고 한다고 조롱을 하기 시작한다.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그것도 적응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은 갱부의 조수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시추, 호리코, 야마이치가 죽었을 때 하는 장례식이라는 잔보의 행렬을 보고 숙연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산 속 추위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불을 돈을 내고 덮어야 한다. 집에서 쓰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럽다. 자다가 빈대에 물리면서 비참한 생각이 든다. 갱 안의 둘러보는 일을 안내하는 하쓰 씨는 여기가 지옥의 입구라고 하며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 말에도 조롱이 섞여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갱부로 전락한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네가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경멸까지 느껴졌다. 따라서 들어가는데 하쓰 씨는 살아서 나갈 생각이라면 건방지게 굿길 같은 곳엔 들어오지 않는 게 좋다고 혼잣말처럼 한다. 그럼에도 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돌아가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이렇게 갱 안의 묘사를 실감나고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갱 안을 따라가는 과정이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암담한 기분이었다. 속세의 길과 전혀 다른 굴곡진 길, 절벽을 넘어 급기야는 허리까지 차는 물웅덩이가 있는 마지막 갱까지. 서서 갈 수 없고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곳도 있다. 열다섯 개나 되는 사다리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식은땀이 나게 했다.

 

 ‘의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처음엔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모면하려고 가출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갱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뻤다. 다음엔 그곳에서 속세의 사람 모습이 아닌 그들을 보고 후회와 호기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하쓰 씨의 안내를 따라 갱 안을 둘러보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는 여기서 죽으면 큰일이다,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게곤폭포로 가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서 갱 밖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하쓰 씨와 굿길 입구에서 8번 갱까지 견학을 하고 돌아 나오다가 길을 잃는다. 갱부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인품을 가진 야쓰 씨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일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갱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마음을 되돌린다.

 

어둡기만 했다. 손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는 손발도 보이지 않았다. 손에 닿는 감촉, 발에 닿는 감촉만으로 살아서 간다. 살아서 올라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오르는 것이고, 오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 사다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P268) 

 

 어둠 속에서 손발의 감촉만으로 앞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과 함께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다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건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는 갱부는 되지 않았다. ‘먹물을 좀 먹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장부를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 와서 며칠 동안은 그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외계인 취급을 당했었는데 갱부들의 월급을 계산하고 나누어 주는 장부 정리원이 되자 상황은 역전된다. 그 일을 다섯 달을 하고 나오게 된다. 갱부가 되려고 했으나 갱부가 되지 못해서였을까.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능청스러움을 보인다.

 

 하지만 소설가 장정일은 해설에서 반론을 펼친다. ‘소설이 되지 못했다는 작가의 허튼소리는 모두 잊어야 한다고. 어쨌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가출했지만 여태까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이 갱부가 되진 못했지만 갱부의 일상을 접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또 소세키의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폭포에서 자살한 일에 대한 석명이라고도 한다. 후지무라 미사오가 죽기 전에 남긴 글에 인생은 불가해(不可解)!’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 고뇌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며 힘써 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래서 여로(旅路)소설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교양소설이라는 그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 소세키의 바람이 퇴색되어 이웃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이 갱부로 전락한 일은 심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1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5 댓글 4
종이책 소세키 스타일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평점8점 | v*****r | 2015.02.05 리뷰제목
젊었을 때 아픔을 한두 번 겪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심각하게는 자살도 고려한 적도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주인공이 여자 문제로 자살하려고 하다가 갱부의 삶으로 들어가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살을 하게 된 동기가 불분명하게 표현돼 있어 의구심을 자아냈는데 해설에는 두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쳐
리뷰제목

젊었을 때 아픔을 한두 번 겪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심각하게는 자살도 고려한 적도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주인공이 여자 문제로 자살하려고 하다가 갱부의 삶으로 들어가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살을 하게 된 동기가 불분명하게 표현돼 있어 의구심을 자아냈는데 해설에는 두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쳐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해석했다. 책을 읽을 때는 다음과 같은 단서가 있긴 했지만 양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일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면 그 중심에는 한 소녀가 있다. 그리고 그 소녀 옆에 또 한 소녀가 있다.... (중략)..... 나는 내 마음이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구부러지거나 비뚤어지거나 하는 것을 어떻게든 숨겨보려고 애썼지만, 어쨌든 첫 번째 소녀가 전혀 그만 두지 않고 무턱대고 늘려 보여주기도 하고 줄여 보여주기도 했으므로 끝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부모에게도 친척에게도 들키고 말았다. 괘씸한 일이 되었다. 나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차차 들어보니 괘씸하다는 의미가 상당히 달랐다. (p.52)

 

스미에 씨는 쿨쿨 자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고 있을 것이다. 내 앞에서는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재주를 부려 사람을 꾀지만, 내가 없어지면 금방 잊고 평소대로 밥을 먹고 잘 자는 여자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쓰야코 씨는 일어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울고 있을 것이다. 정말 가엾다. 하지만 내가 반한 기억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반하게 할 만한 장난을 친 적도 없기 때문에 아무지 자지 않고 있다고 해도, 울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p.303~304)

 

역시 다시 읽어보아도 양다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데 제3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주위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압박을 가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해서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둘러대 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생각처럼 정리되지 않을 거라는 결론이 났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말해 내가 괴로워하고 있으므로 나 자신이 그 고통을 그치게 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p.52~53)

 

대다수 사람들이 '뭐야, 결국 이런 관념적인 것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라고 하겠지만 경험이 일천한 19살의 도련님에게는 심각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세키는 제일 막장의 삶인 탄광 갱부로 주인공을 이끌었나 보다. 막장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소설 구석구석에서 잘 보여주었다. 안락한 집안 보다 추운 방에서 이와 빈대에게 뜯기며 잘 자지도 못하고 탄광 속에서는 그저 둘러보기만 하는데도 물에 빠지며 그 한기를 연약한 몸으로 오로지 받아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자살하고 싶으면 시장을 둘러보라고 한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라는 의미겠다. 이 책은 이와는 다르게 순전히 주인공이 피폐한 삶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쪽으로 몰아간다. 독자로 하여금 극한의 삶을 엿보게 해서 현재의 삶이 비록 고통스럽지만 슬기롭게 대처할 것을 이 책은 주문한다. 아울러 내면의 고통과 현실에 드러난 육체의 고통을 적절히 섞으며 삶을 돌아보게 하므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저항력이 생기고 좀더 성숙해지리라.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 댓글 10
종이책 죽다 살아난 이야기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k********2 | 2015.02.02 리뷰제목
현암사에서 출간되는 나쓰메 소세키의 2차분 전집은 [우미인초], [산시로],[그후], 이후 [갱부]이다. 이번 2차분 전집의 공통분모는 '청춘'이라 할 수 있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 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의례에서 한 번쯤은 겪어 보았던 일말의 감정들을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갱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죽음에 대한 관조적 성찰이다. 이제 막
리뷰제목

현암사에서 출간되는 나쓰메 소세키의 2차분 전집은 [우미인초], [산시로],[그후], 이후 [갱부]이다. 이번 2차분 전집의 공통분모는 '청춘'이라 할 수 있다.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 사랑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의례에서 한 번쯤은 겪어 보았던 일말의 감정들을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갱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 보는 죽음에 대한 관조적 성찰이다. 이제 막 열아홉인 주인공 ''가 죽기 위해 가출한 것도 계획적이거나 오랜 시간 고민하여 행동에 옮겼다기보다는 10대 청소년들이 다 그렇듯이 충동에 의한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유복하게 살았던 ''가  죽고 싶어 집을 뛰쳐나왔지만 그런 '나'에게 다가온 현실은 '갱부'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브로커와의 만남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보호막이었던 집을 뛰쳐나온다라는 것은 막연한 가출이 아니라 보호막을 걷어 찬 성인으로서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잣집 도련님과 갱부, 이 어마어마한 직업의 간극에서 보듯 세상물정 몰랐던 도련님은 순진하게 (물론 죽음앞에서 이것저것 가릴 형편은 아니었겠지만) 브로커를 따라가는데 이틀 동안 기차를 타고 산을 올라 깊고 깊은 광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순례의 길과 다름없다.  힘든 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던 '부잣집 도련님'이 겪는 생전 처음의 배고픔과 굶주림이라는 고통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 간 구리 광산에서 만난 갱부의 얼굴은 뼈인지 뼈의 얼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각진 얼굴을 하고 있으며 짐승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공 '나'는 처음으로 자기가 떠나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직감한다. 반대로 짐승 같은 갱부들은 풋내기와 같은 어리숙한 모습의 신참을 보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들의 적개심 가득한 얼굴은 흡사 해골을 연상케 했고 그들의 대화는 동물들의 은어와 같이 알아들을 수도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 목격하게 된 갱부의 장례식 행렬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나'는 갱부가 되기 위한 테스트를 거친다.  갱 입구에서부터 지옥의 냄새를 맡은 '나'는 갱부가 될 수 있을까?

 

 

 

순식간에 생명이 확실해진다죽음에 다가가면서 좋은 기분으로 삼도천앞까지 간 사람이 수로를 터벅터벅 돌아오는 과정을 생략한 채 불쑥 속세의 한가운데에 출현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죽다 살아난 경험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철모르는 십대때 나도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집을 나선 댓가는 혹독했다. 돈도 없었고 잘 집도 없었다. 다행히 갱부의 주인공 '나'처럼 브로커 같은 유형의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하루도 채 넘기지 못하고 기어 들어간 집의 안도감은 두번 다시 가출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했다.  주인공 '나'가 가출하여 사회의 새로운 면모에 눈을 뜨게 되는 것처럼 나와는 다른 세계를 살짝 맛 본 것으로 족했던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세계란, 시비와 인정에는 문외한이었을 것 같았던 갱부들에게서 삶의 진경을 배우게 되면서 열린 세계이다.  죽음의 입구와도 같았던 갱 앞에서 '죽다 살아난 경험'을 했던 '나'는 카뮈가 말하였듯 죽음이란 생명이 가진 시간적 한계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죽음으로 인해 새 빛을 얻는 갱부의 삶, 어쩌면 그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사로서의 영감을 주는 수원지가 아니었을까. 마치 모든 소설의 첫 시작이자, 나쓰메 소세키의 첫 소설 같은 느낌의 갱부였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2
종이책 【 갱부 】자살 또는 자멸을 향한 여정 평점9점 | e*******e | 2015.01.08 리뷰제목
솔직히 갱부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보았다. 보통은 광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 ‘갱부’가 광부일꺼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기사 제목만 보고서 ‘이것이다’라고 추측하지 못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 후’의 그 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와 가출을 하며 자멸을 생각하는 도련님의
리뷰제목

솔직히 갱부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보았다. 보통은 광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 갱부가 광부일꺼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기사 제목만 보고서 이것이다라고 추측하지 못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 후의 그 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와 가출을 하며 자멸을 생각하는 도련님의 사회진출기라는 점이 두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내 생각엔 주인공이 그저 배부른 도련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살에 대해서 조금은 철학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엔 자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는 자체가 아름다울 수 없음에도 주인공은 화려하고 멋진 자살을 생각한다. 가출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책에서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하긴 주인공의 이름자조차 나타내고 있지 않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그저 두 여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이라 추측할 뿐), 그저 어쩌다 갱부가 되어 버리기까지 그리고 굿길에 들어서서 둘러 보면서 맞딱뜨리는 순간의 생각이나 대처법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결국에 이 도련님은 그저 불편한 상황을 피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장정일 소설가의 평론을 읽어보면 이 책은 자살한 제자에 대한 석명이라고 한다. 그때의 정황상 어쩌면 작가가 제자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는 해석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때문에 작가는 주인공이 시작부터 끝까지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리라.

주인공은 상황에 따라 자살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좀 더 고차원적인 인간인 듯 갱부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절망의 순간에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데 어디 자살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의 안에도 분명 생존본능은 살아 있었을 것이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주인공이 가출을 단행한 후 배를 곯으며 소나무 길을 걸으며 생각에 빠진 이야기이다. 4장부터 10장까지는 찻집의 조조 씨가 주인공을 일할 생각 없나?’는 말로 꾀어 낸 후 갱부로 소개시켜 주겠다고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작가의 신성한 노동에 대한 의견이 주인공의 생각을 통해 드러난다.

P37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을 생각이었다. 죽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어 살아가기 위해 일할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에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돈만 벌자는 주의를 몹시 경멸하고 있었다.

P45 게다가 갱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왠지 모르게 기뻤다. 첫째로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을 뛰쳐나왔던 것이다. 둘째로 죽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떠나왔다. 셋째로 그런 마음이 어느새 아무튼 일을 하자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중략) 그저 일을 하겠다는 결심이 둘째 조건을 뿌리칠만큼 엉뚱한 것도 아니었고 첫째 조건과 무관할만큼 멀리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도 사람이 없는 곳에 있으며, 죽음에 가장 가까운 상태에서 일할 수 있다면, 최후의 결심이 뜻대로 진행되면서 얼마간 당초의 목적도 달성하게 되는 셈이었다.

11장부터 39장까지는 찻집을 출발해서 광산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이 더 조조 씨의 수완에 넘어가 주인공과 함께 갱부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나는데, 주인공이 자신을 위한 선택을 뒤로 하고 자신의 도피가 자신을 어디로까지 이끌지 방관한다.

P92 나는 어차피 버릴 몸이지만 혼자 버리기보다는 길동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전락하는 것은 둘이서 전락하는 것보다 쓸쓸한 법이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면 실례되겠지만 나는 이 사내를 한 구석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저 함께 전락해준다는 점만이 고마워서 아주 유쾌했다. (중략) 이로 미루어보면 강에서 죽을 때는 반드시 뱃사공 한두 명을 끌고 가고 싶어질 것이다. 만약 죽고 나서 지옥에라도 가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이 없는 지옥보다는 반드시 요괴가 있는 지옥을 택할 것이다.

 

40장부터 60장까지는 조조씨가 주인공을 한바 책임자인 하라씨에게 무조건 갱부로 써달라고 밀어 넣고 난 후부터의 이야기이다. 책임자는 주인공에게 갱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라고 얘기하고, 이후 만난 갱부들도 모두 주인공에게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충고한다. 하라씨와 이야기하다 보니 오히려 오기가 발동해 갱부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마저 든다. 61장부터 75장까지는 주인공이 안내인 하쓰씨와 굿길로 들어가 점점 땅 속 깊이 내려가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조롱하는 까닭에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호기롭게 하쓰씨를 따라 굿길 안으로 들어간다. 76장부터 88장까지는 다시 밖으로 되돌아 나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가는 길이 들어올 때만큼 만만하지 않다.

P262 나는 일곱 번째 사다리의 중간쯤에서 화염과 같은 숨을 내뱉으며 노동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그러자 뜨거운 눈물이 눈 안 가득 차 올랐다.

주인공은 복잡하고 불편한 굿길을 또 다시 되짚어 올라오면서 내려갈 때와는 또 다른 상황에 당황하기도 하고 애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길을 찾으려고 하고 화를 내기도 하다가 뜻밖의 인물 야쓰씨를 만나게 된다. 교육 수준이 상당한 사람. 작가의 지식인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주는 부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P282 “일본인이라면 일본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구하는 게 좋을 걸세. 학문을 한 사람이 갱부가 되는 것은 일본에 손해네. 그러니 얼른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도쿄라면 도쿄로 돌아가야지. 그리고 적당한자네한테 적당한 일, 일본에 손해가 되지 않는 일을 하게.”

 그 이후로는 그래도 남기로 마음을 굳힌 주인공의 남은 이야기들이다. 주인공은 불편한 이부자리에서 자신의 포근한 잠자리를 그리워하고 부모님을 떠올리며, 두 여자에 대해 떠올리며 울적해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끝에 소세키식 반전이 숨겨져 있다. 마지막에 범상치 않은 반전을 주는 것. 이 책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었고 주효했다.

P326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며 힘써 사는 것은 소세키가 만년에 표방한 측천거사 이전의 자기본위주의 시대나 그 이후에나, 그가 그렸던 바람직한 일본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북쪽이 훗카이도가 아니라 조선이나 중국이 되고 남양군도가 될 때, 소세키의 자기본위주의적 일본상은 제국주의로 일그러졌다.

 

이 책은 나의 여행 후 귀가길에 동행해준 책이었다. 12시간의 비행시간중에 상당부분을 흠뻑 빠져 읽게 만들었던 책. 어떻게 보면 매번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또 매번 재미있게 끝까지 읽게 만드는 참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작가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분명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통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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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삶의 의미를 찾아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k*****k | 2014.12.22 리뷰제목
영국유학후 라프카디오 한 ([괴담 (일본문학내 가치는 높겠지만 흥미와 재미는 떨어져)]의 후임으로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 강사가 되었지만, 어느날 그의 힐난을 받은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투신자살을 한다 (p.42). 그 원인은 유서를 봐도, 나쓰메 소세키 때문이 아니라 번민, 염세적이 것이었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19세의 나'을 통해 인생의 고민찾기를 보여주고 있다.    도쿄
리뷰제목

영국유학후 라프카디오 한 ([괴담 (일본문학내 가치는 높겠지만 흥미와 재미는 떨어져)]의 후임으로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 강사가 되었지만, 어느날 그의 힐난을 받은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투신자살을 한다 (p.42). 그 원인은 유서를 봐도, 나쓰메 소세키 때문이 아니라 번민, 염세적이 것이었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19세의 나'을 통해 인생의 고민찾기를 보여주고 있다. 

 

도쿄의 이름난 집안의 자식인, 19세의 '나'는, 삼각관계에서 심적인 고통과 자괴감, 그리고 주변의 비난 등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고 어두운 산으로 들어온다. 어두컴컴한 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특히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않기를 바라는 그는, 한 사내로부터 갱부로의 제의를 받고 아주 쉽게 그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 시대에 소, 말 다음으로 신분이 미천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지만, 죽음을 결심한 '나'는 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감각이 무뎌질만큼해서 도착한 한바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문장이 너무나도 좋다. 일어 원문으로 읽는다면 더욱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게다가 나쓰메 소세키가 좋은 것이, 주변이나 생각 등을 표현함에 있어 그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들어가는 지라 나도 모르게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이야기 즉 플롯이나 수사적인 표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철학적인 내용으로 꽤나 깊은 여운과 인상을 주며 매번 하나씩 깨달음을 준다 (지난번 [우미인초]에선 '흔들리는 건 얕기때문'이란 문장이 있었는데...).

 

 

...흔히 소설가가 이런 성격을 그린다느니 저런 성격을 창조한다느니하며 득의양양해하고 독자도 그 성격이 이렇다는 등 저렇다는 등 아는 척을 한다. 그건 다 거짓말을 쓰며 즐거워하거나 거짓말을 읽고 기뻐하는 일일 것이다. 사실상 성격같은 것은 정리된게 없다. 소설가 따위가 사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설령 썼다고 해도 소설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묘하게도 진짜 인간은 정리하기 어려운 법이다. 신까지도 애먹을 정도로 정리되지않는 물건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해도 정리되지않게 생겨먹었기에 남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야무진 데가 없는 인간임에 틀림없다고 지레짐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례되는 일이다...p.24

 

인간 안에서 하나로 뭉친 것은 몸뿐이다, 몸이 하나로 뭉쳐헸으니 마음 역시 하나로 정리된 것이라 생각하고, 어제와 오늘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도 역시 원래대로의 자신이라며 아무렇지않게 넘기는 일이 꽤 많다...자신의 영혼이 흔들흔들 불규칙하게 활동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자신을 타인처럼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나온 진상에서 생각하면 인간만큼 믿을 수 없는 존재도 없다. 약속이나 맹세같은 것은 자신의 영혼을 자각한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일찌감치 이것을 알았다면 함부로 남을 원망한다거나  번민한다거나 괴로워한 나머지 집을 뛰쳐나오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p.43

 

...병에 잠복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상이나 감정에도 잠복기가 있다. ..지배당하면서도 전혀 자각하지못한다....그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반대의 언행을 해보인다....p.62

 

..인간의 허영심이란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p.89

 

눈물이 날 정도라면 안심할 수 있다. 눈물이 나는 동안에는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p.112

 

대체로 인간은 자신을 네모난 불변체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리는...타인을 단숨에 밀어붙이고 싶어하는 일이...그렇게 단순하고 변화가 없게 하려고 하면 입체세계에서 벗어나 평면의 나라로라도 가지않으면...내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보른채 움직이지않는다, 변하지않는다....p.112~113

 

인간의 성격은 매시간 변한다...모순이 생각난다...p.125

(모 연예인이 모순적이라고 비난하던데, 인간이 과연 모순이 없을 수 있을까? 그만큼 열정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게, 그러지않은 것보다 나은거 아닐까?)

 

...그렇게까지 전락한 것을 자각하고 있으면서 살아서 일하고 있다. 살아거 깡깡 두드리고 있다...자신을 구원하려고 하고 있다. 야스씨가 살아가는 이상 나도 중거서는 안된다. 죽는 것은 나약한 짓이다....p.290

 

 

난 자살을 하는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내가 그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않았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렇게 절망적인 인간에게 손을 더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들었는데, 죽는날까지 월세도 밀리지않고 살았던 송파세모녀.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 또한 병에 걸려 짐이 되지않고자 자살을 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왜 그들은 손을 내밀지않았을까. 손을 내밀었다면...도움을 요청했다고도 한다, 깔끔하고 자존심이 강한, 독립심강한 그들도. 그런데 왜...). 화자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오지를 걸어들어가는 게 아니까...그래도 나쓰메 소세키니까 하고 읽어내려갔다. 중간엔 좀 읽기가 힘들었다. 글쓴이가 거부하대로 소설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야쓰씨를 만난 순간 뭉클해졌다. 갱부들은 전락하게 위해 온 인간을 더 밟아 전락한 자신들의 발밑으로 몰고자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처럼 되지않기를 바란게 아닐까. 경멸하고 비웃고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 신분은 전락하였지만 결코 인격적으로 전락하지 않은 하쓰씨, 야쓰씨를 보면서, 마치 인생의 고통이 빈대와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관심을 보여주는한, 화자가 빈대에 익숙해지듯 그렇게 견디게 되는건 아닐까. 인간의 모순, 변화를 받아들이며, 절대적이 못함에 견디지 못하여 '도 아니면 모'란 식으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상태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변하고 모순적이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비난하지않고 자기 눈으로 바라보지않고, 조금 더 손을 내밀며 다가갈때 혼자 견뎌야할 절망과 괴로움은 극복되지않을까.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이 힐난한 제자가 자살을 하였을때, 그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도 번민으로 자살하였다는 것을 알았을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조금만 귀를 기울여주었다면...하였을텐데.

 

그래서 이 작품은 여러번 화자가 언급하듯, 소설이 아니다. 거짓이야기, 만들어낸 이야기 픽션이 아니다. 그 화자는 나일수도 있고, 가슴아픈 작가의 일부분이다.

 

 

 

참, youtube에서 이 작품에 대한 자작곡을 부르는 것을 보았다. 다소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했으나, 그 사람은 이 작품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았던거 같다. 그 열정이 대단했다.

 

 

 

p.s: 뿌듯하네, 물론 다시 읽겠지만 그의 작품을 다 읽는 날이 오겠거니 싶어서.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1867.2.9~1916.12.9)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吾輩は猫である), 1905~1906

  1) 100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그러기에 반갑지만 그러기에 다소 슬픈 인간풍자의 이야기

  2) 신랄하지만 정곡을 찔러 유쾌했던, 끝까지 멋졌던 고양이. 

도련님 (坊っちゃん), 1906 봇짱 (坊ちゃん)
풀베개 (草枕), 1906 아름다움이 남았네
이백십일 (二百十日), 1906

태풍 (野分), 1907 백년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지금의 이야기
우미인초 (虞美人草), 1907 當年遺事久成空 慷慨樽前爲誰舞
산시로 (三四郞), 1907

  1) 20세기초 일본과 20대초반의 연애심리까지 섬세하게 묘사된 수작

  2)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은

갱부 (坑夫), 1908
그후 (それから), 1909

  1) Awesome and admirable in writing and philosopy 

  2) awesome
문 (門), 1909, 당신이 문을 열고 봄을 맞이하기를....(다이스케도))

춘분 지나고까지 (彼岸過迄), 1912
행인 (行人), 1912
마음  (こゝろ), 1914
한눈팔기 (道草), 1915
명암 (明暗),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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