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쓰메 소세키 전집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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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나쓰메 소세키 전집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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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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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태풍 평점10점 | h*****7 | 2020.07.11 리뷰제목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덜 읽힌다는 『태풍』 은 1907년 1월에 발표된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과연 이렇다 할 큰 서사가 없어서 밋밋한 느낌도 들었지만 나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러 작품이 제목과 큰 관계가 없듯이 이 작품도 태풍과는 관계가 없었다. 굳이 들자면 ‘신자유주의라는 태풍’(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 속에서 ‘(인)문학이라는 나비’가 처한 상황을
리뷰제목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덜 읽힌다는 태풍19071월에 발표된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과연 이렇다 할 큰 서사가 없어서 밋밋한 느낌도 들었지만 나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러 작품이 제목과 큰 관계가 없듯이 이 작품도 태풍과는 관계가 없었다. 굳이 들자면 신자유주의라는 태풍’(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 속에서 ‘()문학이라는 나비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나카노의 애인이 부르는 노래 속에만 태풍이 언급될 정도다. 여기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시라이 도야라는 가난한 지식인, 부유한 계층의 나카노와 대학 동기 다카야나기다. 시라이 도야는 문학자로서 중학교 선생을 하다가 세 번이나 옮기다가 결국 쫓겨 나온다. 나쁜 선생들이 학생들을 선동해서 도야 선생을 괴롭혀서 쫓아낸 것이었다. 시골에서 도쿄로 온 도야는 아내에게 이제 교사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시골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궁색한 살림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아내는 불만이 가득하다.

 

 나카노는 부잣집에서 잘 자란 수재에 얼굴도 잘 생기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 줄도 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다. 다카야나기는 그런 아무런 걱정할 일이 없는 나카노가 부럽다. 가난하고 병약한 다카야나기와 나카노가 친구가 된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비백 무늬의 오시마 비단과 질이 떨어지는 지치부 비단’(P33)이 하나로 꿰매어 졌다고


 마치 어떤 운명적인 사건이 연결된 건 아닐까 상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나카노는 부자 계층이지만 특별히 두드러져 보이지 않고 온화한 캐릭터로 나온다.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에다 착하기까지 하다. 시라이 도야와 나카노는 자신의 세계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도야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다. 다카야나기 군이 바라보는 세상은 자신을 위한 세상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도 원한을 갖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개의치 않는 세상을 가혹하다고 생각한다.’(P126) 


 이 문장은 도야 선생과 다카야나기의 삶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드러난다. 가난해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간다. 물론 아내는 그런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한다. 결혼 생활이 이런 거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면 시집을 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남편이 자기 말대로 따라 주었으면 싶은데 쉽지 않다.

 

 비 내리는 어느 가을 몹시 아픈 다카야나기는 무작정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도야 선생을 만난다. 서로 같은 처지의 외톨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야 선생을 보면 왠지 힘이 솟는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조금씩 매료된다.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지 자신의 개인사를 들어주지 않겠느냐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일곱 살 때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공금을 횡령해서 구속되고 폐병으로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자신은 죄인의 아들인데 죄악도 유전이 되는 거냐고, 숨이 막힐 지경이라며 괴로움을 호소한다.


 그 말을 듣고 안타까워진 도야 선생은 과거는 잊어야 한다면서 당신은 앞으로 꽃을 피울 사람이라고 한다. 다카야나기는 꽃이 피기 전에 시들어버릴 거라고 하자 도야는 시들기 전에 일을 하면 된다고 한다. 당신만이 아니라 나도 외톨이고, 외톨이는 숭고한 것이라고.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창작을 하라고 권한다. 선생의 이 말을 들으며 다카야나기는 외톨이 선생의 얼굴에서 어떤 후광을 본다. 이보다 앞서 도야 선생의 집에 찾아갔는데 문학자에 대한 태도 등의 이야기를 듣다가 중학교 시절의 잘못을 사죄하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친다. 도야 선생이 고코 잡지에 쓴 해탈과 구애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자 다카야나기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한편 생활이 곤란한 도야는 형님 댁에서 백 엔을 빌려 썼는데, 갚아야 할 기한이 되자 심부름꾼이 편지를 가져온다. 그 바로 전에 그 형이 와서 도야의 아내에게 어떻게든 도야를 다른 일에 한 눈 팔지 못하게 하겠다고 작전을 짰지만 자신은 연설 약속이 있어서 형에게 갈 수 없다고 한다. 300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현대 청년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이 타는 아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도야, 그 아내를 보는 마음이 답답해진다. 여기서 도야는 계몽적, 지사적 인문학자의 역할을 한다. 소세키의 육성이 많이 느껴졌다. 도야와 나카노라는 두 계층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 속에서도 부자는 학자를 존중해야 한다고 도야를 통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인격)의 본질을 성찰하고 이것을 수호해야 할 인문학의 투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야 선생의 연설이 인상적인 부분이 많아서 모아 보았다.

 

자신은 과거와 미래의 연쇄입니다.’(P175)

 

자기 속에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자기 속에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자기 속에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입장은 이런 점에서 명료합니다. 난 부모를 위해 존재하는가? 난 자식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 그 자체를 수립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의 생존의 의미는 이 셋 중의 하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P176)

 

바람이 강하게 부는 추운 날 무명옷 차림을 한 도야 선생의 연설을 듣고 야유를 하다가도 열중하는 청중들의 모습이 보인다. 셋 중 하나에 생존의 의미가 있다는 거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 그 자체를 수립하는 삶이라면 만족스러운 삶이 되지 않을까. 도야의 삶은 궁핍하기 그지없다. 자신 그 자체를 수립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출판을 할 수가 없다. 글이 도로 빚이 되는 셈이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상도 없이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입니다. 현대의 청년은 도도하게 날로 타락하고 있습니다.“(P183)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로 만족할 뿐 아니라 앞 다투어 노예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상이 발효할 수 있겠습니까?”(P183)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원대한 이상이 있는 사람은 큰길을 걸어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과는 달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걸어냅니다. 방황하고 싶어도 방황할 수 없습니다. 혼이 이쪽, 이쪽 하고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디까지 걸어갈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후략)”(P184)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 하는 길을 알고 있고, 원대한 이상이 있는 사람은 큰 길을 걷는다는 말에 왠지 힘이 난다. 방황하지 않고 혼이 알려주는 데로 갈 수 있다는 이상의 길. 이것이 청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누구에게나 필요하겠지, 이상의 길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흔들림 없는 나무처럼 여겨진다.

 

어떻게 하면 학문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물음은 없습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학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학문을 통해 돈을 벌 궁리를 하는 것은 북극에 가서 호랑이를 사냥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P187)

 

돈이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학자와 언쟁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품격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려는 것도 잘못입니다. 좀 생각해 보는 게 좋아요.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병이 들었을 때는 의사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금화를 달여 마실 수는 없습니다.……”(P190~P191)

 

학문적 능력이 있는 사람, 이치를 이해한 사람은 부자들이 돈의 힘으로 세상에 이익을 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통해, 학문을 통해 이치를 이해함으로써 사회에 행복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장은 다르지만, 그들은 도저히 범할 수 없는 지위에 확고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후략)”(P191)

 

 청중 속에 있던 다카야나기도 도야 선생의 연설을 듣고 눈이 빛나기 시작한다. 다카야나기 군은 폐병에 걸려 아픈 상황임에도 가장 크게 함성을 질렀다. 태어나서 이런 통쾌함은 처음이었다. 도야 선생은 학문이란 돈에서 멀어지는 기계라고 말하고 있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실업가나 상인이 되어야 한다고. 학자가 돈을 기대하고 학문을 한다는 것은 상인이 학문을 목적으로 견습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돈과 학문은 서로 이질적이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도야 선생의 연설을 듣고 온 다카야나기는 각혈을 한다. 의사도 요양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엄두도 못 낸다. 나카노는 그가 요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만 돈을 빌리는 것도 받는 것도 싫다면서 거절을 한다. 다카야나기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 나카노는 요양을 가서 그 작품을 완성하는 조건으로 돈을 쓴다면 미안한 일도 아니라고 제안을 하자 그것을 수락한다. 백 엔을 받은 다카야나기는 저잣거리로 뛰어 가다가 도야 선생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하려고 찾아간다. 거기엔 빌려준 돈 백 엔을 받으러 온 손님이 와 있었다.

 

 다카야나기가 가진 돈이 딱 백 엔이고, 오늘 밤까지 갚기로 약속한 돈 백 엔을 어서 달라고 추궁하는 손님이 있다. 그런데도 도야 선생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다카야나기는 선생에게 쓴 원고를 보여 달라고 하더니 그 인격론을 백 엔에 넘겨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선생을 괴롭혀서 쫓아냈던 제자였고 잘못했으니, 그 원고를 넘겨달라고. 이로써 요양을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려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보다 더 위대한 인격론을 품에 넣고 나카노와 그 부인이 베풀어준 호의를 갚고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이 부분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읽히는 모양이다. 다카야나기가 선생의 원고를 넘겨받음으로써 돈의 힘으로 인간사를 결정하면 안 된다는 시라이 도야 선생의 가르침을 배반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하지만 다카야나기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해야겠다는 결심이 실현되었고 선행의 결말과 함께 인간성(인격)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가 언급되고 있었다. 꼭 읽어봐야겠다 싶어 검색해 보니 절판된 작품으로 나온다. 아쉽다. 일본작가인 팬이 지은 책 같은데. 나중에 원서로라도 볼 수 있으려나.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문학자란 원고지를 앞에 두고 숙어사전을 참조해가며 머리를 흔들어대는 그런 여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문이 가능한 한 연구를 방해하는 것을 피해서 점점 인간 세상과 멀어지는 것과 달리 문학자는 자진해서 이 장애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P100)


 병약하고 가난한 다카야나기는 그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도야 선생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문학자라는 두 외톨이가 열심히 창작열을 불태우게 되었을까. 도야의 입을 빌어 문학자의 인생을 말해주고 있듯이 가난과 고독과 궁핍을 즐기며 세상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을까. 그래도 둘이어서 덜 외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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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문학이라는 외로운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태풍》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k********2 | 2013.11.14 리뷰제목
소세키 전집 첫 번째 책 《도련님》에 이어 읽게 된 책은 《태풍》이다. 태풍의 집필 시기가 궁금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연보를 찾아보다가 태풍이 빠져 있길래 해설 부분을 먼저 읽게 되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중 가장 덜 읽히는 소설이고 초기의 성공작이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와 < 도련님,1906>의 인기에 밀려 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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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전집 첫 번째 책 《도련님》에 이어 읽게 된 책은 《태풍》이다. 태풍의 집필 시기가 궁금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연보를 찾아보다가 태풍이 빠져 있길래 해설 부분을 먼저 읽게 되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중 가장 덜 읽히는 소설이고 초기의 성공작이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와 < 도련님,1906>의 인기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래서 작품연보에도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태풍1907>은  네 번째 장편소설로 나쓰메 소세키가 교직에서 떠나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한 해에 집필한 소설이다. 태풍의 주인공 도야 선생은 천방지축 도련님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주인공이다.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는 태풍의 주인공은 오히려 <그후> 의 게으른 지식인 다이스케와 더 많이 닮아있다. 도련님이 확실히 재미가 있는 작품이지만, 태풍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소설이다. 재미있고 없고를 따질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이상과 신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태풍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가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본 듯하여 전보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에 더한 애정이 샘솟는다. 도련님에서 웃음으로 승화하였던 사상가의 면모가  태풍의 주인공 도야에게서 더 진지해졌다고 할까. 

 

 

1,도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구도는 주로 삼각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에서도 세 명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태풍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1900년을 지나고 있는 사회적 격변기이다.  ‘수억의 돈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실업가들이 내놓는 티끌 같은 돈 부스러기로 연명해가는 사람이 바로 문학사이다’ 라는 도야의 독백에서 보여지듯 소설은 신구파간의 갈등과 충돌로 혼란한 사회상 뿐만 아니라 돈이 만능인 시대가 되면서 문학이라는 정신적인 의미가 퇴색해져 가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융통성 없고 학자로서의 권리만을 주장하다가 중학교에서  퇴학과 전학을 여러번 하게 되자 도야 선생의 집안 형편은 순식간에 빈곤해져만 가게 되고 돈에는 관심이 없고 도道에만 관심이 있는 백면서생 도야를 바라보는 아내의 가슴은 쪼그라드는 살림 앞에서 더욱 싸늘해져만 간다.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게 목적이다.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고, 가벼운과 무거움의 차이를 인식한다. 또 좋고 그름을 판별한다. 선과 악의 경계를 이해하고 현명함과 어리석음, 참과 거짓, 바름과 사악함을 제대로 판별해내는 것이 바로 학문의 목적이다.

 

 

2, 나카노와 다카야나기

 나카노 기이치는 잘 생긴데다 현명하고, 인정을 베풀 줄 알 뿐만 아니라 사리분별이 분명한 수재다. 다카야나기 군은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비아냥거리기 좋아해 염세가라 불리는 남자였다. 반면 나카노군은 대범하고 원만한 성격에 다양한 취미를 가진 수재다.(p32) 학교를 졸업한 후 나카노는 부잣집 도련님이라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다카야나기는 먹고 살기 위해 문학사 즉,  글을 쓰는 일에 이제 막 한 발을 내딛는 중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외톨이였고 내성적이며 예민한 성격탓에 세상으로부터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고 타인의 시선에 늘 두려워하며 불안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폐병이 점점 다카야나기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아무런 꿈과 희망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도야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죽어가던 다카야나기는 문학사로서의 이상과 신념을 되찾아 간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문학사인 도야와 다카야나기의 삶은 가난하다는 점에서 같았다. 그러나, 똑같은 가난에도 도야선생이 바라보는 세상과 다카야나기의 세상은 전혀 달랐다. 도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었고, 자신이 깨달은 이상과 진리를 문학으로 다른 사람을 이끌어주고자 하는 희망을 지녔지만, 다카야나기가 바라본 세상은 자신이 중심인 세상만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보았고 자신의 기준에서의 문학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길은 시작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하는 신념과 이상에 대한 연설을 하는 도야 선생의 모습은 마치 빙의된 나쓰메 소세키의 연설을 보는 것처럼 장렬함이 전해진다.  문학사라는 , 인간의 삶을 대변하는 외로운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같은 이야기였다. 삶에서 불어닥치는 태풍과 같은 강렬한 고독과 외로움은 '이상' 이 있는 이들에게는 한낱 그치는 빗방울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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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태풍/나쓰메 소세키 평점10점 | k*****7 | 2014.03.26 리뷰제목
나쓰메 소세키 님께   인연이란 것 운명이란 것 그런 것이 나에게 살며시 다가온 이 순간 당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책을 사랑하고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일본 문학이란 것에 대해 아직도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으로 현암사에게 전집을 출간하면서 이렇게 우리는 만났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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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님께

 

인연이란 것 운명이란 것 그런 것이 나에게 살며시 다가온 이 순간 당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책을 사랑하고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일본 문학이란 것에 대해 아직도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사후 100주년 기념 완역본으로 현암사에게 전집을 출간하면서 이렇게 우리는 만났습니다. 이런 만남이 아무래도 운명 같아요. 저에게 일본 문학 아니? 나쓰메 소세키라는 분을 더욱 더 사랑하라는 그런 운명 말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봄날의 개구쟁이 같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따뜻함이 묻어나고 나를 누군가가 믿어주는 도련님>, 잔잔하면서 강렬한 색체가 매력적인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풀베개모두다 저를 더욱더 빠져들게 만드는 그런 책들이랍니다. 그렇게 사랑스런 책들이 있기에 더욱 더 사랑하게 만들었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태풍 은 지금까지 작품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다른 이들에게 그리 인기가 없었다는 이 작품이 저에게는 왜? 더 가깝게 느껴지고 주변에 지인 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라 더욱 좋네요.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 이 작품을 읽는데 현재 우리네 삶? 아니 작가의 길을 가고자하는 분들에게 더욱 더 가깝게 느껴지는 그런 글이랍니다. 특히 이 부분이 생각나네요. 문학은 인생 그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이상하게 문학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서 문학자가 탄생하는 것 같아요. 배고픔을 알지 못하면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도야를 통해서 교사를 그만 두지만 이 사람의 생활상이라고 해야 할지? 참 태평했다는 것입니다. 일부로 태평하려고 한 건지? 아니면 부인을 통해 어려움을 부각 시킨 건지? 그렇지만 신문에 실린 글이라든지 연설을 하는 부분에서도 저도 도야에 빠져서 박수를 보냈답니다. 정말이지 돈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 말에서 맞아요. 맞아!! 그리고 부유한 나카노군을 보면서 더욱더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고 특히 다카야나기군을 보면서 사람은 죄를 짓고는 살기가 힘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더욱 비참한 삶을 보는 것이 안타깝게 만들었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마음의 짐을 덜어가는 부분에서 안타까우면서 이렇게도 하는구나! 하는 삶을 보았답니다.

 

사랑이라는 것? 예술이라는 것? 문학이라는 것? 그리고 여러 가지 인간관계들이 모두 좋은 쪽으로 잘 돌아가면 좋겠지만 삶 자체가 다 다르듯이 인생도 다 다른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것은 하나의 나무가 자라듯이 그 나무를 바라보는 우리네 인생도 가지가지이고 그 나무가 자라나는 형태도 다르고 거기에 입이나 열매 모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희망사항이 있다면 모두 올바르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저의 희망사항이자 삶이 된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삶이 즐거운 이? 삶이 힘든 사람, 누군가에 의해 자기 인생이 변해도 그냥 바라보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물론 저는 아무 탈 없이 그런 사람이고 싶지만 말입니다. 이상하게 저는 지금까지 읽은 작품 중에 이 작품이 편안하게 저에게 다가 온 것 같아서 더욱 기분이 좋네요. 한마디로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님의 책은 저에게 더욱더 좋은 면으로 다가온 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작품 태풍 을 읽으면서 저자님의 인생이 들어간 것은 아닌가? 저자님이 처음에 작품을 쓸 때의 그런 모습들을 표현하고자 했던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자님은 100년 전 사람이기에 만나서 이야기는 할 수가 없고, 그리고 이 편지는 전해지지 않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고 저자님의 작품 세계의 다양함을 알기를 희망해봅니다.

 

다음 작품이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번역자님께 사정이 생겨 늦어지게 되어 무척이나 안타깝지만 그래도 저는 저자님 작품을 만나는 날만 기다리면서 잘 지내고 있답니다. 나쓰메 소세키 님도 저를 팬으로 두셔서 정말 기분이 좋지요. 저 같은 팬들이 아주 많답니다. 그리고 궁금한 점은 저자님 작품 속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언제 등장할지 기대를 해봅니다. 꼭 등장하기를 바래봅니다. 이 작품에 멋진 노래를 마지막으로 적어 봅니다.

                                           - 꿈에서라도 만나기를 바라는 나쓰메 소세키 님께

 

흰 나비, 흰 꽃에

조그만 나비, 조그만 꽃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기나긴 근심은, 긴 머리카락에

어두운 근심은, 검은 머리카락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부질없이, 부는 태풍

부질없이, 사는가 속세에

흰 나비도, 검은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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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태풍】 평점10점 | e*******e | 2014.01.30 리뷰제목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 바닷가의 모레 알만큼이나 많은 책들 중에 평생을 통틀어 내 손에 닿는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 ‘태풍’은 그냥이라면 절대로 나와 연이 닿지 않는 책이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책의 해설에서도 이 책은 나쓰메 소세끼 시리즈에서 가끔은 제외되기도 한다니 말이다. 전작들도 좋았고, 뒷부분의 해설을 읽는 기분도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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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 바닷가의 모레 알만큼이나 많은 책들 중에 평생을 통틀어 내 손에 닿는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 태풍은 그냥이라면 절대로 나와 연이 닿지 않는 책이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책의 해설에서도 이 책은 나쓰메 소세끼 시리즈에서 가끔은 제외되기도 한다니 말이다. 전작들도 좋았고, 뒷부분의 해설을 읽는 기분도 쏠쏠하고, 결론부터 놓고 보자면 이 책 참 마음에 든다.

 

P20 도야가 세 번이나 직장을 그만둔 것은 스스로를 궁지에 빠뜨리는 것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죄도 없는 아내를 고생시키려는 건 더욱 아니다. 세상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왜 자신이 세상에 용해되려고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만일 자신이 세상에 용해되려고 한다면 그 순간, 도야 자신은 완전히 소멸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시대를 반영하는 세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라이 도야는 교사이면서 문학사이다. 하지만 세상에 용해될 수 없는 그는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못해 늘 외면당하고, 지역을 바꾸어가면서까지 교사생활을 했지만 그나마도 세 번째로 끝이다. 지식인으로써 나름 생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그는 밥벌이보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게 더 중요하고 그의 아내는 먹고 사는 문제로 늘 고민이다. 그들은 대화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항상 제자리이고, 해답은 없다. 부유하고 자신감 넘치는 나카노와 가난하고 소심한 다카야나기 사이의 우정은 참 특이하다. 둘이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모든 면에서 여유로운 나카노는 늘 외톨이라고 생각하는 다카야나기를 염려한다. 어쩌면 외톨이인 다카야나기에게 나카노와 같은 친구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에는 비슷함이라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세상은 자신에게 가혹하다고 믿는 다카야나기는 늘 받기만 하는 입장이기에 그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때 도야 선생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데 일조했던 일로 죄책감을 느끼는 다카야나기는 죄라는 부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폐병보다도 아버지가 지은 죄가 자신에게 유전될까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렇기에 도야의 어떤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100엔과 관련한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죄책감을 크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써야 할 100엔을 죄책감을 덜어내는 대가로 아무런 미련없이,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시키면서까지 단숨에 던져버릴만큼 말이다. 100엔에 대한 이야기는 갑작스런 해결 국면을 던져 주는 것 같아 약간 당황스러운 부분이었지만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가 조금은 허탈한 미소 한 조각으로 마무리될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85페이지에서 92페이지까지로, 다카야나기가 고코 잡지에서 나카노의 나의 연애관이라는 기사를 읽고 난 후, ‘해탈과 구애라는 제목의 글을 읽는 부분이다. 그 이야기는 도야가 쓴 글로 읽는 나로 하여금 읽는 즐거움을 불러 일으켰다. 글의 내용은 몸 어딘가에 이상이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는 내용의 글로 다카야나기의 표현대로 좀 묘하다. 도야의 주장은 한 가지 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은 한 가지 재주에 구애를 받고, 또 비싼 오비를 두르고 음악회에 간 여인은 그 오비가 신경 쓰여서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는 그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 풀이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누구나 아는 내용임에도 잘 정리되어 있다. 구멍 난 양말을 신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인사할 때 다른 발로 그 구멍을 감추게 된다는 부분에서는 즐겁게 와 닿기까지 했다. 솔직히 왜 그 부분이 그렇게도 마음에 통쾌하게 와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그럴 수 있음을, 그것을 공개함으로써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웃어 넘길 수 있는 지금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야기는 확장되어 구애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고(내 눈에 이것은 유혹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읽혔다), 세상의 속된 것으로부터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고 본연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그것. 그리고 그것을 해탈이라고 부르고, 또 이 해탈은 도덕으로 점점 확대된다. 읽으면서 매우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175페이지 자신은 과거와 미래의 연쇄입니다는 말로 시작하는 연설문은 정말 감동적이다. 자신의 의지를 그렇게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연설은 처음이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다카야나기와 같이 기립박수를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본주의를 무조건 비판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어쩜 그렇게도 설득력 있게 대중을 선동하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긴 내용이지만 정말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감동적인 연설을 실제로 들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이 풀베개보다 좋다. 편안하게 읽히기도 했고 문장들도 설득력 있었으며, 작가의 주관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글이기에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상관없게 느껴진다. 작가에게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의 책들이 모두 100년도 더 된 이야기이건만 현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때, 사회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고민은 시대를 거듭해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군중속의 고독, 자신감의 상실, 보편화에 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럼에도 희망을 얘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말이다. 내용도 좋고, 문장도 좋고, 해설도 좋고,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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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사회 변화 속에서의 가치 찾기 평점9점 | v*****r | 2014.04.07 리뷰제목
책의 앞면과 뒷면.   소수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고는 일반 글쟁이들은 춥고 배고픈 게 현실이다. 수입도 일정치 않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없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시라이 도야라는 사람은 돈에 구애됨이 없이 생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연히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아내와의 다툼도 적지 않다. 생활이 고만고만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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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면과 뒷면.

 


소수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고는 일반 글쟁이들은 춥고 배고픈 게 현실이다. 수입도 일정치 않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없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시라이 도야라는 사람은 돈에 구애됨이 없이 생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연히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아내와의 다툼도 적지 않다. 생활이 고만고만한 시절에는 어느 정도 통용될 법한 얘기다. 하지만 수입에 따라 생활 방식이 크게 차이가 나는 현재에선 그렇지 못하다.

 

 


띠지를 제거한 후의 모습.

 


그렇다고 해서 도야의 신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알고 있다고 도야는 말했다. 또한 학문을 이상으로 삼는 사람은 돈이 목적이 아니란다. 학문을 통해 돈을 벌려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학자와 돈과의 관계는 양립할 수 없다며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둘 수는 없다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단,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그의 자세가 안타깝게 여겨진다. 자신 혼자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자신의 가족 처지도 고려해야 한다.

 

 


책의 내부.

 

 

시라이 도야의 양 옆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두 명이 있다. 다카나야기 군은 가난한 자고 나카노 군은 부유한 자이다. 둘은 절친하지만 생활이 그들을 겉돌게 만든다. 마지막에 이르러 백 엔으로 이들 세 명이 얽힌 것은 작위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준다. 1900년대 일본의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돈이 전부가 되고 사람의 가치는 떨어져가는 것을 개탄하는 소세키의 음성을 듣는 듯하다.

 

지금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돈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해 지는 반면에 인성의 피폐는 사회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시라이 도야의 연설을 들어보면 부자들은 돈으로 풍족하게 사는 세상에서 인문학에 대한 투자들 아낌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백 엔이 결국 시라이 도야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제목을 왜 태풍이라고 했을까? 태풍이 오듯 거대한 사회 변화가 몰아닥치는 상황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럴 때 어떤 자세로 태풍을 마주해야 하는 지를 역설한 책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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