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이 팬데믹 시대의 한복판에 있는데 지난 행적을 되짚어보며 내가 그때 이 팬데믹 시절의 어느 시점, 어느 곳에 있었나, 전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던가 아니었던가, 하는 식으로 생각해보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짧은 기간 동안에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변했다. 2020년 달력을 들여다본다... 나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랬듯이 1월과 2월 내내 완벽하게 정상적으로 살고 있었다. 헬스클럽에 가고, 1.5킬로미터씩 수영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나는 얼마나 한 치 앞도 못 보고 있었던 건가. 불과 며칠 안에 삶 전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얼마나 모르고 있었던 건가. p.37~38
올리버 색스의 연인으로 알려진 뉴욕의 작가이자 사진가인 빌 헤이스는 팬데믹의 정점을 지나는 도시 뉴욕의 풍경들을 글과 사진으로 포착해냈다. 미국 전체 확진자 수의 3분의 1이 뉴욕에서 나왔을 정도로, 다른 주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고, 대중교통 이용자가 많은 도시이다. 교통체증도 심하고, 유동인구도 많고, 관광객도 많았던 곳이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이기도 한 8번 애비뉴의 풍경은 2020년 4월 6일에 찍었다. 낮 시간인데도 거리가 턴텅 비어 있고, 가끔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수술용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있다. 저자가 거주하고 있는 18층짜리 아파트 건물도 반 이상이 비었다. 많은 입주민들이 별장으로 떠났고, 젊은 사람들은 부모와 같이 지내려고 떠났고, 몇몇 이웃들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거의 매일 누군가가 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팬데믹 이후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많은 일상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다시 여행을 하게 될까, 낯선 사람과 악수를 하고, 헬스클럽에 가고, 영화관에 가고, 아무 두려움 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거닐고, 아무 걱정 없이 마스크를 끼지 않고 밖에 나갈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행할 수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들의 기억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코로나의 상처가 가장 큰 도시 뉴욕에서 사태가 시작된 후 백 일까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는 한 사람의 삶이 문자 그대로 하룻밤 새에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전하고 싶었고, 지금의 이 끔찍한 상황으로부터 의미 있고, 아름답고, 솔직하고,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아냐. 안 잃어버렸어. 난 여기 있어.” 내가 말한다.
우린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부두에서 만나기로 한다. 우린 어떤 규칙도 어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운동하고, 공공장소 에서 만나는 건 허가된 일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한. 기다리고 기다린다. 마침내 그가 블록 저쪽 끄트머리에서 후디에 코트를 걸쳐 입고 발을 끄는 듯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p.118
발 밑에서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 마른 풀들을 모아 화환 모양을 만드는 젊은 여자, 위기 상황에 대비해 뉴욕으로 와서 운동 중인 미국육군사관학교의 위생병들, 한 명도 타지 않아 텅 빈 러시아워의 지하철 풍경, 팬데믹 초반 코로나에 걸렸다가 항체가 생겨 연구용으로 혈장을 기부한 뉴욕대학병원의 마취과 레지던트들, 한순간에 동료를 잃은 야외관리업체 직원, 소독제와 장갑을 지닌 채 거리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은 노숙인 등 이 책에 수록된 흑백 사진 속 풍경들이다. 저자가 사진을 찍고, 이 책에 수록될 글을 쓰고 있었던 올해 3월에서 5월 중순 사이의 어느 날, 뉴욕에서는 며칠째 하루에 800명씩 죽어가고 있었다. 사망자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계급이 몰려 있는 브롱크스와 퀸스 구역에서 나왔다. 800명이라는 수치는 구체적으로 체감되기 어려운 숫자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도시의 모든 것이 바뀌고 있으며, 우리는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 이후 우리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살아있는 동안 삶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이상한 시절'인 셈이다. 카메라를 들고, 마스크를 쓰고, 손 세정제를 주머니에 넣고, 이 사태의 증인이 되고자 거리로 나선 빌 헤이스의 사진과 글들이 뭉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바로 그 혼돈의 중심에서 일상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구의 거의 절반이 죽었던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처럼 언젠가 2020년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로 기억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 슬프다. 그래서 더욱 이런 책이 필요하다. 이 시기를 함께 통과하면서 우정과 존중을 나누고, 연대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에게 다정한 안부를 건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 당신 잘 지냈나요? 요즘 지낼 만한가요? 그리고 강요된 고독과 고요 속에서, 우리 생애의 어떤 순간들을 돌이켜보자. '말해진 것들과 말하지 않은 것들, 행해진 것들과 행하지 않은 것들, 표현된 사랑과 표현되지 않은 사랑, 네가 받은 그 모든 감사한 일들, 네가 느낀 그 모든 감사함.(p.880' '의지와 노력만으로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불안과 우울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바로 그런 당신을 위한 안부와 위로를 안겨주는 근사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