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한마디
[슬픔 속에서도 반짝이는 마음이 있다] 따스하고 섬세한 눈길을 지닌 이주란 작가의 신작. 소설 속 인물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각자의 고통을 겪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세상을 향해 다시금 단단한 마음으로 나서는, 작지만 빛나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와 너무 닮아 놀라운 장면들을 종종 마주하게 될지도. - 소설/시 PD 김유리
일상을 말하는 듯한 소설을 읽을 때면 마치 우리 주변 인물과 마주 앉아 있는 듯하다. 상실을 겪은 이에게 안부를 묻고 가만가만히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별다른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말없이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옆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서 제 갈 길을 가도 다음에 만나면 또 의지가 된다.
이주란의 소설이 그렇다. 『어느 날의 나』 에서도 느낀 바지만, 이번 소설에서도 그걸 느꼈다. 소설집이되 마치 연작처럼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느낌의 소설이다. 어머니를 잃고, 남편을 잃고, 직장을 잃은 상실감에서 그저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 사실은 힘들다. 무슨 말인가를 건네야 할 거 같고, 위로의 말이랍시고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주란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묻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겠지, 하고 기다려줄 줄 안다. 문득 그런 마음이 부러웠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부족한 것도 같다.
잘 도착했나요
네.
별일은 없고요
기차 타고 조금 오는데 별일은요.
아무튼 잘 가셨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저도요. (46~47페이지, 「별일은 없고요 」 중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서울에서 만나 문자를 나눈 관계. 안부를 묻는 그 한마디가 정겹다. ‘별일은 없고요?’라는 문장에서 많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염려와 안타까움, 혹은 무관심을 빙자한 관심 같은 것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로 그 집에서 살 수 없게 된 수현은 직장 동료의 집에서 머물다가 고향도 아닌 곳의 원룸에서 살고 있는 엄마에게 신세를 졌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무심한 질문과 더 이상 묻지 않는 엄마 때문에 그곳에서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일손을 돕고, 엄마 회사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상이 편해 보였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잊고 싶은 것을 잊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며칠을 함께 지내기만 했을 뿐, 가족이 아닌 사람과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집에서 애도의 기간을 보내는 주인공과 함께 머무는 아주머니가 있다. 함께 동네를 거닐고 캔맥주를 마실 수 있는 관계. 때로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처럼 가까운 장소에서 함께 돕고 함께 음식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더불어 사는 인간의 삶을 보는 듯하다.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옆집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경험했기에 알 수 있는 감정들일 것이다.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문장이 와닿는다.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끔은 무섭게, 그래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나요? 저 역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고 상대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 느껴질 땐 조심스레 질문을 더 해보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듣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실패했습니다. (184페이지, 「이 세상 사람」 중에서)
남편을 잃고 집안에 갇힌 것처럼 지낸 주인공에게 첫사랑인 남자의 이메일은 집 밖으로 나가게 한다. 국숫집과 추억 때문에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이에게 때로는 타인의 조용한 침범이 힘을 줄 때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말없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이다.
「어른」에서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힘들 때는 속도를 늦추고 멈출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며 밀려드는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이렇게 또 세상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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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계획한 모든 일이 무사히 그리고 좋은 결과로 나온 뒤, 긴장이 풀려선지 많이 아팠다. 나이가 들어 선지 아프고 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예전보다 배 이상 걸린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생각하면서 그동안 건강관리를 제대로 못 했나? 싶다가도 그동안 몸을 혹사했으니 제발 쉬라는 경고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3주를 지나 4주째가 되니 이제는 다시 ‘생각’이라는 걸 하려고 한다. 2025년 계획은 어떻게 세울지 나는 어떤 걸 해야 빛나는 사람인지에 대한 생각. 감사하게도 아직은 크게 별일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은 마음으로.
이주란의 소설 ‘별일은 없고요?’는 8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줄거리랄 것도 없는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별일’에 대한 이야기. 소설 속 화자들은 특별한 욕심 없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하지만 세상은 이들 화자에게 그런 시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힘겹게 부여잡고 삶을 살아가는 소설 속 화자들. 상처받은 몸으로 소도시에 머물며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 나간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온 시간이 길어지고, 나이를 먹으면서 내 주변에 사람은 손으로 꼽는다. 주말이면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나고 우정을 나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그들은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로 멀어지고 연락이 끊겼다. 애써 내가 노력해 그들의 연락처를 알아본다면 알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인간관계를 조금씩 정리해야 할 시기가 온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는 순간들. 몰랐던 친구들의 은밀한 진심을 알게 되면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 사람을 볼 수 없게 되는 순간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것들 투성이지만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별일은 없냐고 물어보는 그 따뜻함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진심에 조금 더 다가간 느낌. 그래서 나 역시 조금 더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지만 깊어진 사람들. 그렇게 나 역시도 사람에 대한 상처, 아픔을 천천히 이겨나가고 있는지도.
다양한 아픔이 언젠가는 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픔에 매몰되지 않게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우리를 일상으로 되돌려 놓는다.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웃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 별일은 없지요?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야겠다.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맛있는 점심 같이 먹자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나쁜 일에 국한된 건 아니다.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 말하고 싶은 때가 오면 말하게 되는 것들이다. 누군가 그 말을 재촉한다. 누군가 그 말을 강요한다. 가깝다는 이유로,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좋은 의도라는 걸 알면서도 선뜻 말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그게 전부라는 걸 사람들은 의심한다.
이주란의 단편집 『별일은 없고요?』은 그런 마음을 안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이어도 괜찮다고, 과장된 표현을 요구하거나 속내를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이주란의 단편은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가라앉은 마음이나 지그시 누른 슬픔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소설집을 읽는 게 답답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주란의 소설은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 사고, 이별을 암시할 뿐 자세한 내막은 들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아직은 때가 오지 않는 말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를 포함한 8개의 단편 가운데 몇 편은 두 번째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단편도 있고 중반 이상 읽고서 기억한 단편도 있다. 이주란 소설의 특징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그리는 것, 그 안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것, 전반적으로 상실을 다루지만 지독한 슬픔을 뿜어내지는 않는다고 할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돌림노래나 도돌이표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반복적인 돌림노래와 비슷하지 않는가. 관계는 늘 어렵고 쉽게 오해하는 대신 오해를 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 상대를 안다고 생각한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가, 얼마나 부족한가 깨닫기도 한다.
이주란의 소설은 그런 마음을 인정하라고 괜찮다고 위로한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말하고 싶은 때가 오면, 지금이 아니라 그때 말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에서 수연은 연인과 헤어지고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가 일하는 지방의 원룸으로 온다. 낯선 동네를 오가며 산책하고 엄마가 밥을 해주는 곳에서 일하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두 번째 읽으면서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새집이어도, 아무튼 언젠가 그 방에서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어.” (25쪽)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것, 죽음과 상실이었다. 「별일은 없고요?」의 뒷이야기처럼 여겨지만 인물의 이름은 다른 「사람들은」에서는 얼마 전 엄마를 잃은 은영의 집에 직장 동료였던 은영이 며칠 신세를 지겠다고 연락이 온다. 집 주인인 은영이 일하러 나간 사이 은영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나중에 은영의 엄마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상실을 겪은 이에게 잦은 안부를 묻고 괜찮냐고 묻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정말 그럴까. 혼자만의 방식과 애도의 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은영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애도를 하는 「어른」 속 경아의 곁에는 아줌마가 있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관계지만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고 시골 동네를 산책하고 두부를 사러 가고 곁에 머물러 주는 어른이다. “울고 싶은 만큼 울었어?”(103쪽)라고 물어주며 아줌마는 돌아가신 고모 이야기를 꺼내며 경아에게 “마음 놓고 울라는 거야”(104쪽)란 마음을 건넨다. 아줌마와 지내며 아줌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인해 경아는 위로를 받는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 「어른」, 114쪽)
그런가 하면 남편을 잃고 대학 후배의 집에서 지내는 「파주에 있는」 현경은 매일 후배가 전하는 안부와 염려를 받는다. 집 밖을 나가지 않는 현경은 첫사랑이었던 재한의 메일을 받고 외출을 한다.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며 사람들의 분주함을 마주한다. 재한은 소소한 일상을 건네며 그저 곁에서 걸어준다. 그리고 헤어질 때 잘 살라고 말한다. “잘. 잘 살아야 돼.” (275쪽)라는 그 말에 담긴 진심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이주란의 소설은 밋밋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건의 개요나 핵심 설명은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이 아닌 그 이후의 감정들에 집중한다고 할까. 그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보내야 할 삶이고 버티고 견뎌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실의 슬픔, 부족한 애도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그것이 지독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들은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말하지 않고.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는 것 같아.
응?
결국엔 자기가 결정하는 거지.
뭘?
행동, 태도, 반은, 그러니까…… 모든 것.
모든 것? ……
거의 대부분.
마음이 어떤 쪽으로 아주 많이 기울면 어쩔 방도가 없잖아. (서울의 저녁」, 214쪽)
이주란 작가의 소설이 너무 궁금했던 것도 있지만, 책 제목이 참 마음에든다.
5월들어 갑자기 몸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졌다. 특히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비염이 상상 이상으로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누군가 내 안부를 물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인 생활이 길다보니, 종종 안부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을 때면 너무나 고맙다.
평소에는 그게 귀찮은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아무도 나의 안부를 물어보지 않을 때, 유일하게 물어봐 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것이다.
이주란 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이번 작품도 그래서 어떨까 기대하고 읽는데,
첫 번째 단편을 읽고 두번째 단편을 읽다....
슬며시 스믈스믈 올라오는 생각에 놀랐다. 일상의 평범한 대화와 생각이 적혀있는데, 그 몇 줄의 대화 속에 담긴 생각들과 주인공이 겪었을 삶의 이야기들이 너무 함축되어, 인생의 많은 의미들을 담은 몇 줄의 표현들이 그냥 일상속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것처럼 적혀있다.
"
이런 날에 빗물을 맞는 경우는 흔하다고 사람ㄷ르은 말하겠지만 나는 그 순간이 괴로웠다.
.....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한것 같은데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 지겨웠다......
왜 나는 빗물을 맞았을까. 알것 같았고 나는 내가 어느날 태어난 이후로 줄곧 빗물을 맞으며 살아왔다는 것이 싫었고 앞으로도 계속 빗물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
담담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이 스치듯 지나갈지라도, 콕 박히는 알알이 박히는 글들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