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진보계열 신문사 중 하나인 K신문에서 대기업 취재 기사가 편집 데스크에서 막혀서 기사를 내지 못했다고 사과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 하면서도, 또 아직은 그런 용기 있는 기자들이 있다는데 박수를 보내고 싶은 사건이었다.
신문, 어릴 때는 신문기사가 마치 절대적 사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생기면서 신문이라고 결코 진실을 담고 있고, 세상의 모든 일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신문은 결국 사람이 만들고 한정된(이 부분이 중요하다) 인력과 지면에 의해 당연히 '편집'이라는 가공이 들어간다. 또한 지면에 '광고'라는 것도 실어야 한다. 결국 신문사도 사기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학시절 한겨레 신문을 만났다. 신선했다. 내가 보던 세상과 다른 곳-하지만 어찌보면 너무나 가까운 나 주변-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줬다.
나의 대학시절, 내 또래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보적이고,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고경태 편집장의 한번 씩 읽어봤을 것도 같다.
이 책은 편집장을 위한 매뉴얼이 아니다. 편집장론도 아니다. 그저 어느 전직 편집장의 에세이다. 편집장이 등장하는 언론사의 풍경이다. 저자는 자신의 한계를 안다고 말한다. '편집장의 모든 것'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어느 기자의 자신의 기자생활을 돌아보는 에세이요, 작은 역사책이요, 자신의 30여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기록이다.
최근에 신문의 위기를 논한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아직까지는 21세기 최고의 위대한 발명품인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었다)에는 지하철 앞쪽에는 신문을 펼쳐든 쩍벌남 아저씨, 옆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대학생,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는 대학생, 음악을 들으며 자는 고등학생 등 다양한 모습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두 부류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과 보지 않고 조는 사람이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직 편집장의 말처럼 "결국 종이 미디어의 석양을 장식하고자 그 세월동안 잡지를 만든 걸까요?"라는 말이 와 닿는 시기였다.
내가 언론사에서 일했던 초기 10년(1991년 ~ 2000년)은 압도적인 종이의 성시였다. 중간 10년(2001년~2010년)은 인터넷의 주류 진출기이자 종이의 혼란기였다. 마지막 기간(2011년~2019년)은 모바일과 SNS가 지배하던 종이의 파시였다. 종이는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는 위기에 놓여있다. 종이신문, 종이잡지는 나같은 60년대 출생 세대(이른바 86세대 또는 586세대)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p.7
저자가 신봉한 것은 재미와 새로움이라고 한다. 편집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 저자는 재미를 강조했고, 무엇인가 처음 해보려고 노력했다.
한겨레 신문을 요즘 가끔 본다. 아래 사진은 금요일 신문인데 고경태 편집장이 기자일 때는 토요일에 이렇게 책&생각이 나왔다.
(나는 이 책& 생각 섹션을 너무 좋아하고, 특히 한겨레의 책&생각 섹션은 다른 회사들이 대기업 광고에 치중한 면을 구상할 때, 한겨레는 정말 책을 읽은 것처럼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부분이었다. 일주일에 꼭 해야하는 것이 보수언론지와 진보언론지의 책 소개 섹션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다양한 스토리와 섹션이 나왔다. 뒤에 나오지만 저자가 기획한 꽤 인기가 있었던, 또는 매우 단명했던 섹션이 나왔다. 나는 이 토요일 신문을 너무 좋아해서 한겨레, 경향, 조선, 중앙 4가지 정도는 사서든, 도서관에서든 봤던 기억이 난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지만(이 책에서는 한겨레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토요일 신문은 Soft 해지기 시작했다) 각 신문사들이 경쟁하듯이 토요일 신문을 재밌고 알차게 한 권의 책처럼 만들었고, 나중에 일요일 신문도 나왔다.
단지 한겨레처럼 토요일 신문 1면에 사진으로 채우고, Soft한 또는 이야기 기사인 피쳐 기사를 싣는 시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는 주말에 매체나 언론이 끊기는 시대였다. 지금은? 누가 토요일 신문에 눈길을 줄까...신문을 보는 사람도 토요일에 잠깐 보고 나머지 시간에 스마트폰을 하면 된다.
신문에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나는 그동안 한겨레 신문이 왜 토요일에 책 섹션이 사라졌나 몰랐는데, 토요판을 고경태 기자가 주도해서 전혀 다른 신문으로 시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나의 한겨레 읽기도 조금은 시들해졌다. 대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그걸 뭐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요즘 대학도서관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무판에 투명한 아크릴을 넣고 그 속에 신문을 펼쳐서 넣어둔다.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쉴 때 그것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각 언론사 헤매면서...
하지만 회사에 와서는 주로 흔히 말하는 보수 언론지를 받아보는 편이 많다. 조,중,동. 어르신들이 보다 남겨둔 신문을 저녁에서야 봤다(얼마 안 하는 거였지만 신문을 돈주고 사보기가 힘들었다, 물론 그 이유는 주말에 자주 집을 비우는 자취생이라 더 그랬다. 원룸 앞에 신문이 쌓여 있는 가당치 않은 일은 좀...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겨레와 조금은 멀어졌다. 그래서 간간히 사서 보거나 친구들이 읽던 신문을 얻어 보거나 그정도여서 한겨레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반성한다.
저자는 1994년 한겨레21의 막내기자로 들어와 2000년 편집팀장이 되고 2005년 편집장이 됐다. 30대 후반 지금의 내나이다. 빠른 편이다. 저자의 인생은 그때부터 달라졌다. 그러다 저자는 신문사 주말판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두가지다. 한 번 누려보겠다와 한 번 바꿔보겠다. 어느쪽이든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여하튼 저자는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책의 Part1은 토요판의 탄생 드라마다. 저자가 참여한(혹은 주도했던) <한겨레> 토요판이 한국 언론사에 미친 영향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1면부터 굵직한 정치, 경제 뉴스를 뺀 신문이라니! 우리나라 보수적인 신문 풍토에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한겨레라도 저자 또한 처음에는 무모한(?) 혹은 힘든 도전이었다.
토요판의 기본 개념
1. 당일 스트레이트 뉴스를 포함하면서도 기존 토요일 신문을 대체하는 신개념 주말 페이퍼
(하지만 이 개념은 중앙 Sunday의 개념이기도 해서 조금 비판하자면 그렇게 새로운 신개념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하면 저자가 서운해 하실래나?)
2. '스토리가 있는 주말'로 가져가면서 과감하게 피쳐 기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스트레이트는 브리핑 형태로 압축
2번은 파격에 가까운 시도였다.
*스트레이트 뉴스 (사실 전달 기사), 피쳐 기사(이야기 기사, Soft 한 내용)
저자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우리나라 모든 기업(언론계를 포함)이 굉장히 두려워하는 것이다.
모든 기업의 구성원이 비슷하다. Start-up 정도, 벤처기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료제식의 기업에서 새로운 일을 벌리는 사람은 거의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새로운 변화가 긍정적인 반응을 주고, 무언가 바꾸는 모습을 초기에 보여주면 많은 사람이 따라오고, 변화와 혁신이 이뤄진다.
아니면 초기에 실패를 견딜 수 있는 뚝심이나 심지어 오너의 리더십 등이 필요하다.
보통은 초기에 실패할 경우 "봐라, 거 안된다고 했잖아." 하면서 과거로 회귀한다.
저자의 토요판은 언론계에서도 신선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겨레 신문이 당시 이미 점유율면에서 매우 하방의 위치에 있었고, 미래를 걱정할 처지였기 때문에 조금의 반등도 크게 느껴졌을 수는 있다)
다음으로 중앙일보가 여기에 동참한다. 중앙일보의 변화는 쉬웠을 것이다. 중앙 Sunday의 경험도 있고, JTBC라는 당시 최고의 진보매체로까지 인식되던 방송사의 변화도 주도하는 미디어 그룹이었음으로 신문사도 여기에 보조를 맞춰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가 왔다. 엄중한 대선 시국에서 돌고래 제돌이를 1면에 내세우다니! 파격이었다.
심지어 시민독자들도 항의한다. 결국 저자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을 보면 민간인 불법사찰 기사의 위치가 달라졌음을 볼 수 있다.
제돌이 보도는 ‘그깟 돌고래’의 ‘잉여 읽을거리’가 아니라 인권 존중으로 확장하는 기초적 동물권에 대한 의미심장한 담론이었다. 제돌이를 바다로 탈출시킴으로써 기어코 성공한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난 이 신문 1면을 본 적이 있다. 이 돌고래 제돌이 기사가 저자의 저항과 항거의 장엄한 승리의 결과였다니!
(이 사진 기사가 저자의 저항정신의 승리적 상징이었다니! 1면의 이 시원한 바다와 돌고래 사진을 보라. 당시 보수적인 언론계에서는 파격이었다)
Part2는 기획에 관한 관점과 방법론이다. 통계를 구하며 연구를 한 결과는 아니고, 저자의 수줍은 독백이라고 한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는지, 신문기자는 결국 백지에 그 수많은 활자를 쏟아내야 하는 사람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수많은 그 똑똑한 기자들로부터 기획력에서 이겨야 자신의 신문을 이슈화시키고 더 팔 수 있고, 광고를 따낼 수 있다.
결국 기획력과 영감, 창의성이 모두 중요하다. 사실 신문도 조금은 재밌어야 한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보면 가끔 재미있다(?, 다른 의미로 말이다) 나는 이것을 구독률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아닌가 가끔 의심할 때도 있다.
Part 3는 몇 가지 특별한 기획물의 역사다. 재미를 추구하는 저자의 사고뭉치 기억이다. 쾌도난담(나도 본 기억 있다), 직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 모두 내가 봤다. 한홍구 교수님 이야기는 책으로도 많이 만났다. 나꼼수부터 시작한다. 아, 나꼼수 나도 참 재미있게 들었던 팟캐스트였는데...
유튜브 전의 그 센세이션했던 매체.
사진에는 강준만 교수와의 쾌도난담이 나온다. 한국에서 가장 다작하기로 소문난 그분...
나도 강준만 교수님 책이 거짓말이 아니고 60권 정도는 집에 있다.
다음은 스스로 B급 좌파라고 하는 김규항 씨와의 기억이다. 지금은 대소설가인 시사저널에 김훈 국장과의 인터뷰도 있다. 읽다보면 뭔가 재밌다. 책을 사서 보시라.
책을 읽다보면 고경태 편집장이야말로 사고뭉치였다.
이 사건 나도 기억 나는데 "DJ 유훈통치와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 아마 나도 직접 그날 봤다면 저자에게 욕설을 날렸을 것이다. 나는 며칠 지나고 알아서 욕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아무리 풍자하고 뭔가 시원한 한 방을 날리려 한 전후맥락을 보면 무엇인지 알아도 이거슨 아니었다. 저자는 정말 1분마다 욕을 먹었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그것도 고인이 되신...그것을 그대로 여과없이 정론지에서 담다니. 결국 편집장은 1면에 사과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진보언론계에서는 찬반양론이 펼쳐진다. 강준만 교수는 '빠-팬덤"이 결국 언론 통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선례를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개인의 생각에 따라 다르다. 나는 편집장의 사과를 지지하는 쪽이다. 정론지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게 맞다.
Part 4는 편집장으로서 가장 최신의 기획거리를 담고 있다. 토요판의 커버스토리아 외부 필자들의 연재물이 조금씩 소개된다. 개인적으로 한겨레 외부 필자 중 김두식 교수님이나 한홍구 교수님 저작을 빠지지 않고 다 볼 정도로 팬인 나에게 재밌게 읽힌 부분이었다.
(한겨레 신문의 외부 필진이다. 출판계에서도 익숙한 분들이 많다)
토요판을 만들 때 지면에서는 단독이라는 이름을 절대 안 썼다. 단독 인터뷰, 단독 취재 같은 제목을 달지 않았다. 대신 ‘첫’이라고 했다. 첫 인터뷰, 첫 만남, 첫 고백, 첫 증언, 첫 취재. 그게 더 품격 있다고 여겼다. 요란을 떨기보다 잔잔하게 “사실 우리가 처음이거든”이라고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는 게 더 승자의 느낌에 가까웠다. --- p.229
Part 5는 저자가 만나 편집장이었다. 대화체의 재밌는 그러면서 뜻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매력적이고 언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음직한 4명의 편집장(오귀환, 이충걸, 김종구, 김도훈) 인터뷰를 실어 또 다른 편집장의 세계를 경험케 하는 한편, 편집장의 뒤안길까지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드러낸다. 말미에 편집장 위의 사주 장기영과 한창기 란은 뭔가 역사 전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재미있게 봤다.
(책 중간중간 이 파란 색의 지면으로 나오는 더 읽을 거리도 정말 재미있다, 편집이나 가독성이 좋은 책이고, 굉장히 잘 기획된 역시 전직 편집장의 책이라 다르다. 명불허전)
Part 6은 좀 더 현장에서 느낀 조금은 재밌는 가쉽거리 등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22세기의 편집장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매체는 어떻게 진화할까 물음을 던지며 책을 마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좋은 사회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과일 뿐이다. 한 사회의 운명은 ‘절대적으로’ 편집자의 안목에 달려 있다.
는 여성학자 정희진이 추천사에 밝힌 것처럼 편집자는 ‘바람직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창작자들이고, 사회의 담론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지식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런 편집자만을 가졌는가? 물어봄직하다.
유튜브를 비롯한 새로운 매체와 지면이 아닌 영상과 Story 속에서 언론이, 미디어가 살아남아야 하기에 언론에서 통찰력을 가진 ‘글’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들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돌려 말했지만 '기레기' 사이에서 진정한 '기자'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자, 편집자 고경태의 30년 그 시간의 기록으로『굿바이, 편집장』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에 대한 회고록이 아닌 앞으로의 언론에 한 줄기 기대를 주기에 충분한 그런 책이었다.
한 때 언론인을 꿈꿨기에, 내 꿈은 역사학자 다음으로 토요일에 책 소개 하고 우리나라 유적지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신문기자가 꿈이었다. 더 세심히 본 책이었다.
따분한 이야기 아니냐고? 재미있다. 사실 정말 한가지 더 말해주고 싶다. 한겨레신문을 이렇게 좀 써보지. 내가 한 때 가장 주변에 많이 듣던 이야기가 한겨레신문을 읽고 싶은데, 신문이 뭔가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 재미나고 유머러스한 편집장이었는데 신문 지면으로는 솔직히 많이 읽어내지 못했다.
아니면 편집장은 재밌었는데, 다른 기자들이 재미가 좀 없었거나.
편집장을 떠나 새로운 그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내가 꼽은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알찬 내용도, 가독성도, 편집도, 그 시의성에서도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책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