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명강'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은 수학을 주제로 한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이다. 그런데, 이전에 읽었던 이 시리즈의 책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왠지 우려와 걱정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도대체 숫자와 기호가 아닌 글로써 수학을 어떻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일까? 또한 수학이라는 영역을 과연 어떻게 확장시켜서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걱정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순간이라는 점으로 이루어진 삶의 도형을 만들어 간다. 한 사람의삶은 이 우주 공간에 시간의 축과 더불어 하나는 삶의 도형으로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만들어내는 삶의 점은 무엇인가. 그 점은 어떤 도형을 그리고 있는가.
- p. 16 中에서 -
이 글을 보는 순간 저자의 의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하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점과 선, 도형만으로도 우리의 삶을 매칭시킬 수 있으니 이외의 다양한 수학의 모습을 통하여 많은 진리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것들을 곧 목격하게 되었다.
자연수와 짝수의 일대일 매칭을 통하여 그 집합의 농도, 즉 원소의 개수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무한의 의미를 새삼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f(n) = 2n'(단, n은 자연수)이라는 식은 모든 자연수를 짝수에 매칭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짝수는 자연수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n이 무한하게 존재한다면 그에 매칭되는 짝수 역시 무한하기 때문에 위의 식으로 매칭되는 자연수와 짝수는 그 농도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수학적인 깨달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루살이와 인간의 삶, 인간과 지구의 삶을 비교해 본다면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그 차이는 엄청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매칭과 무한의 개념을 도입한다면 하루살이의 하루는 인간의 삶과 매칭시킬 수 있으며, 인간의 삶도 지구의 생애와 역시 매칭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그 순간을 의미있게 보내라는 만고의 진리를 수학에서 찾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수(數)'가 원래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자연수부터 실수와 허수의 개념을 포함하는 복소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 본다면 '수(數)' 역시 정적이 아닌 역동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수도 생명체처럼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왔고 또 성장해간다. 수는 절대 정적이지 않다. 수는 역동적이다. 그래서, 수학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는 매력적인 학문이 아닐 수 없다.
- p. 78 中에서 -
우리가 배운 수학 과정을 떠올려 본다면 저자의 이러한 설명은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예전에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수 -> 정수 -> 유리수 -> 실수 -> 복소수'라는 숫자의 확장을 마주하면서 그저 점점 수학이 어려워지는 것만을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들이 바로 수학의 발전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이 많은 연구를 통하여 만들어낸 것이기에 왠지 인간의 삶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수학을 역동적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수학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수학을 통하여 진리를 찾을 수 있고, 또 그 수학이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 책의 내용은 나를 비롯하여 수학을 그저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확실히 수학의 새로운 면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는 수학이 그저 문제를 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수긍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문구에서 우리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에서 '모든'은 100%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문구를 지향하는 현재에서조차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은 '모든'의 의미를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수학에서 말하는 정답은 바로 '모든'을 염두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아래의 저자의 말은 그저 수학에 대한 자아도취처럼 보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진정 알지 못했던 수학의 또 다른 의미처럼 다가온다.
수학을 통해 완벽함을 생각하고, 무한을 생각하고, 신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수학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 아닐까.
- p. 120 中에서 -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실을 수학을 통하여 들여다보는 저자의 관점 역시 인상적이다. 한국 학생들의 수학 실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수학 실력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문제를 푸는 최적의 방법에 한정된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심지어 대학에 들어가면 그 수학은 전공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것이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저자는 이것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와일스의 이야기를 통하여 지적하고 있다. 평생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것에 전념했던 그가 결국 자신의 증명 방법을 세상에 발표했지만, 그 방법은 약간의 오류가 있었기에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와일스는 다시 1년간 연구를 거듭하여 결국 증명하는 것에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를 통하여 우리의 수학 교육이 입시 위주의 문제 풀기 기술에 그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절대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 것과 연관짓는 부분은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부분이 아닌가 싶다.
발견의 기회는 위기를 통해서 온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대다수의 교육 기관에서는 위기를 겪지 않게 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러한 교육 방식으로는 발견의 논리도, 애매함을 견디는 능력도 키우지 못한다. 우리의 교육이 미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과는 반대 방향에 서 있는 격이다.
- p. 187 中에서 -
한국의 교육에 대한 저자의 쓴소리는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식만 알면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문제 풀이에만 몰두하는 교육 체계는 장기적으로 퇴보를 가져올 뿐이다. 오늘 접한 수능 문제에 스페셜 문제라는 이름으로 교사 또는 교수들도 수 십분을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출제된다는 뉴스도 이러한 저자의 우려를 현실로 보여주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스페셜 문제에 대한 공식을 안다면야 곧바로 풀 수 있지만, 그것을 풀기 위하여 기본적인 실력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많은 문제를 풀면서 그 방법을 암기하는 우리의 교육은 확실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한국의 교육으로 인하여 이 책을 빌어 저자가 말하는 수학의 다양한 의미를 우리는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저자 역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차라리 수학을 흥미가 생겨서 스스로 하고픈 마음이 들 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수학을 입시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어느덧 수십년 째 수학에 손을 놓고 있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던 내가 갑자기 수학을 공부하고 싶어졌기에 저자의 말이 응원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동안 책 속의 글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 왔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을 읽는다면 숫자와 도형 역시 글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서 마음 속에만 존재하던 관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사유의 시선을 높일 수 있다는 수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그래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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