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학교
‘유혹’의
정의
아무래도 책 제목의 유혹이란 말이
문제적 단어이지 싶다.
문제적이란 말은 우리의 편견이
작동하는 분야라는 것,
그래서
먼저 저자가 말하는 유혹의 정의를 분명히 해 놓을 필요가 있다.
유혹을 일단
‘관능’과
연결지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부분 유혹,
하면
저절로 관능이란 말이 따라오는 유혹을 떨칠 수 없다.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유혹이란
단어에 긍정적인 면모가 많이 보인다.
<문화에
따라 표현방식과 허용범위가 달라지곤 하지만 유혹은 인간이 그 기원에서부터 함께해온 활동이었다.>
(17쪽)
<사랑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스콧 펙을 인용하여 말한다.>
(46쪽)
<유혹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행위이다.
소통에의
의지,
실천과
노력으로 사회가 함께 다듬어온 행위이기도 하다.>
(47쪽)
<타자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은 두렵고도 지난한 과정이 되기도 한다,
거부당할까봐
두려워 도망가기도 하고 공격적 태도로 미리 무장하기도 한다.
유혹은
이와 같은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위험한 상대가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상대임을 설득하여 다가가고 또 상대를 자발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설득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56쪽)
<유혹은
상대방을 새로운 세계로 입문시키는 것이며 최선의 경우 상호적인 입문이 될 수 있다.>
(65쪽)
그래서 유혹은
이런 기능을 한다.
철학
:
<유혹에
전제가 되어야 할 것 역시 타자성의 발견이다.
상대방과
나와 다름을 깨닫는 것,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대의 욕망을 살피고 탐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즐거움과 너의 즐거움이 만나는 자리를 고민하고,
어느
순간 우리의 즐거움이 부쩍 가까워진 것을 발견하는 경이로움은 유혹의 가장 큰 보상이다.>
(56쪽)
이런 작업이 수반되는 지난한 인고의
시간이 소요되는 인간파악,
그게
바로 철학의 출발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유혹자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인생,
그리고
자아의 확장 :
<유혹자로서의
자아를 발견하고 유혹의 활동에 당연해지는 것은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고유한
매력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남과
내가 다르다는 차이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때로는 출산의 과정처럼 경계를 허물고 뚫고 흔들고 통로를 발견하고 만나고 겹쳐지는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다듬어진다.>
(63쪽)
그래서 이런 기능을 통해 유혹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타인을
인식하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러한
작업을 하게끔 만드는 유혹은 그래서 인생의 학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유혹의
교실』이다.
다시 이
책은
스콧 펙이 말한
것처럼,
사랑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정의한다면,
유혹은
사랑을 방법론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단어가 아닐까?
그렇다면
유혹은 사랑과 연결되어,
사랑을
완성하는 방법의 하나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꼭 읽어 보시길, 사족 하나
앞에서 유혹의 정의를 내리면서
'관능'을
제외한 바 있다.
그래서 관능을 빼고 난 유혹의
개념을 긍정적이라 표현했는데,
이는
'관능'을
밖으로 드러내기 꺼려하는 어떤 '편견'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관능도 얼마든지 건강하고
긍정적이어서 거시적으로 보면 그것이 인류 역사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하다 할 것이다.
저자도
그것을 강조하는데,
이
서평에서 그것을 애써 숨기려 한 것이 미안하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책에서의 '유혹'이라는
말에 관능이라는 요소를 담뿍 집어 넣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아니,
그게
오히려 이 책의 진정한 면모를 만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