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님 글에서 <하지 않는 삶> 책을 만났다. 그때는 아래 문장이 내게 와 박혔다.
규칙적인 루틴과 적절한 충동이 씨실과 날실처럼 엇걸려 있어야 탄탄한 일상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하지 않는 삶> 히조
루틴을 잘 지킨다 생각하며 살고 있기에 충동이란 말에 넘어갔다. ‘그게 맞지, 맞아’하며 그간의 충동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유혹에 약한 나는 '내겐 지금 적당한 충동이 있나? 뭐가 필요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 답을 바로 찾지 못해도 이 말이 위로되었다. 루틴으로만 삶을 채워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일깨움을 주었다.
삶의 위로가 필요했던 날 도서관을 찾았고 이 책이 생각났다. 읽어보니 따뜻하고 좋다. 가만히 오래 두고 읽고 싶단 생각과 그래도 얼른 읽고 후기를 남겨야지 하는 마음이 교차되었다. 새벽보다 밤에 읽기 적당한 책인데 오늘 마무리하고픈 마음에 새벽에 책을 들었다. 오늘은 이 문장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며 울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을 여행이다.
<하지 않는 삶> 히조
처음에는 지금 내가 깨어서 무언가 하겠다고 애쓰는 새벽이 그 순간이라 생각되었다. 조금은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다. 새벽마다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일어날까? 무얼 그리 찾고 싶나? 답을 찾지 못했어도 애쓴 내 시간들이 지나서는 눈물로 돌아보는 시간이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러다 요즘 고민하던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04년 11월 깜깜한 새벽 양재역에 모여 면접 버스에 올랐던 그날부터 합격 소식에 놀랐던 시간. 12월 차가운 공기 속, 대강당 수백 명 속에서 내가 여기 있는 게 맞을까? 내가 꼴찌 아닐까? 생각하며 긴장했던 시간. 반도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바보로 보이긴 싫어 고군분투했던 시간. 다들 좋다고 하니까, 무조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시간. 내 적성을 찾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며 적응하고 맞추고 눈치 보던 시간. 이왕 있는 거면 잘해보자고 다독이고 견디고 해내던 시간.
그 시간이 떠오르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혼자 오래 고군분투했는데 그걸 나만 아는데 스스로 너무 인정해 주지 않았구나. 책임 진급을 했을 때도 잘못된 건가? 앞으로 어떡하지? 걱정만 했었고 부장이 되었을 때도 이런 나도 정말 되는 거야?라며 의심했던 시간들. '너 잘했어, 고생했어. 자격 있어'라고 말해준다. 예전 같으면 또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뭘 이런 거 가지고. 더 노력해야지. 안주하지 마'란 생각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 내가 받고 싶은 인정을 내가 해주기로 했다. 그래도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것도 충분히 의미 있고 효과적이란 걸 이제야 진심으로 알았으니까. 걸려있던 문고리가 하나 열리는 느낌이다.
요즘 새벽에 일어나면 보리차를 끓인다. 따뜻하게 끓인 보리차로 아침을 여는 시간이 좋다. 주전자에 물을 받는데 '생긴 대로 산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까마귀 이야기였나? 동화도 떠올랐다. 다른 새들의 멋진 깃털이 부러워 온갖 깃털을 하나씩 가져와 자기 몸에 붙였던 이야기. 내가 그 까마귀는 아닐까? 부러워 보여서 좋다는 것은 모두 하나씩 떼와 내게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생긴 대로 산다'가 '난 이러니 아무 노력도 하지 않겠어요' 가 아니라, 내 생김새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게 맞게 산다로 이해되기도 하는 말이구나 생각했다.
온전히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부러웠다. 베르가못향도 구월 마님이라는 분이 부러워서 알게 되었다. 인스타에 구월 마님이라고 치면 살림살이를 끝내주게 잘하는 분이 나온다. 아이들의 매일 아침을 고급 한정식집 혹은 브런치 맛집처럼 차려주신다. 처음에는 어쩜 저렇게 살 수 있지? 신기해하고 감탄하며 지켜보게 되었다. 밥상도, 집안도 모든 것에서 그녀의 취향을 가꾸며 살았다. 그녀가 그녀로 사는 게 부러웠다. 그러면서 따라 했다. 그녀가 쓰는 그릇을 쓰면 그녀랑 비슷하게 살아지려나? 그녀가 쓰는 향기를 쓰면 나도 그렇게 될까? 내가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마 그런 부러운 사람을 찾기 위함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찾고 찾으면 결국 자신에게 집중한 사람,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쓴 책이 진짜 울림이 되고 감동으로 이어졌다. 나답기. 그게 내가 찾아야 할 답임을 알고 있다.
이런 나도 괜찮나요? 가끔 아무도 듣지 않지만 물어본다. 그러다 내가 가여워진다. 이런 나를 데리고 살고 가꿔야 하는 사람이 나인데 왜 계속 부족하다고만 생각하면서 더 채우려고만 하는 걸까? 나는 고민하고 있다. 나만 봐도 되나요? 엄마이고, 선배인데도 나만 생각해도 되나요?라는.
그런데 내가 아는 많은 곳에서 이런 글만 보인다. 어쩌면 내가 이 글만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맞다고 근거를 모으고 있는지도.
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보다도 자주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내 모든 결정과 행동의 목표는 단 한 가지다. 바로 나를 잃지 않는 것. 다수에게 옳다고 해서 내게 맞는 것은 아니며 삶의 문제가 언제나 한 가지 결론으로 도달하는 건 아니기에 나는 이랬다저랬다 간을 보며 최적의 나를 찾는다. 때론 빠르고 때론 느리게.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갑게. 인생은 모순 투성이니까, 인생을 사는 나도 그래도 된다.
<하지 않는 삶> 히조
알고 있다. 성향상 나보다 남이 먼저 보이는 사람이란걸. 어떤 것이든 리액션이 빠르다. 관심이 외부로 많이 향해있다. 그럼에도 내 안에 나를 충분히 알고, 파악하고, 확인하면서 남도 같이 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요즘 느낀다. 그래보자. 이 책에서 내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은 "바로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니까.
이 글은 히조 작가의 에세이 하지 않는 삶에 대한 리뷰입니다 좋아하는 유튜버 분 책이 나왔다길래 나오자마자 구매했어요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조언뿐 아니라 모든 걸 완벽하게 따라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나에게 맞춰서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말들이 좋았습니다. 가벼운 책이지만 생활 전반을 둘러보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라 좋았어요. 중간 중간 들어가 있는 사진들도 유튜브의 연장선 같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