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 역사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쓴다. 아주 정통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 그런 진지한 역사가 울림을 주는 경우도 많다. 요새 유행하든 “세계(사)를 바꾼” 어쩌구 저쩌구 하듯이 쓰는 경우도 많다. 어떤 소재나 주제에 집중하는 방식인데, 그런 경우에 잘만 하면 역사에 흥미를 더해준다(언제나 과장의 위험성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좀 다르다. 소재가 우리 몸, 정확히는 몸의 일부분들이다. 손, 발, 다리, 코, 심장, 머리, 장, 혀, 턱수염 등등. 그리고 그 몸의 주인들이 특정되고 있다. 머리의 주인은 찰스 1세와 올리버 크롬웰이고, 코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클레오파트라이다. 다리의 주인은 티무르, 턱수염의 주인은 고대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핫셉수트, 심장은 앤 불린, 장은 마르틴 루터가 주인이다. 바이런 경은 발을 내놓았고, 카를로스 2세는 (역시 당연하게도) 턱을 내놓았다. 미국 독립의 영웅이자, 미합중국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무엇의 주인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을까? 바로 의치(醫治)다. 예상했는가?
아무튼 그렇게 우리 몸의 스물 일곱 부분의 주인이 있고, 그 몸의 일부분과 그 주인을 통해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물론 그 역사 이야기들은 다소 파편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순서대로 다루고 있으며, 그저 단순한 흥미만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 시대에 왜 그 몸의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다보면 시대적 모순도 따라오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 인간의 분투도 느껴진다.
읽으며 기분 좋은 것은 의외의 것들을 참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여왕의 권위를 위해 턱수염을 달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음경이 작은 것을 선호했다는 아주 뜻밖의 사실도 알게 된다(그래서 제우스 조각상의 음경이 그리도 작은 것이다). 성 커스버트의 손톱은 성물(聖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찌에우 티 찐의 가슴, 쇼크 부인의 혀라든가, 알 마아리의 눈, 치우진의 발, 프라다 칼로의 척추와 같은 얘기들은 이 책이 그저 유럽과 미대륙 중심의 서양 역사만을, 그리고 남성의 역사만을 위주로 다룬 천편일률적인 책이 아니라는 것을 적절히 보여준다(순서대로 베트남, 멕시코, 아랍, 중국, 다시 멕시코의 이야기다). 그래서 신난 건 나와 같은 독자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것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세계를 헤엄치며 야금야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더 매력적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새로운 방식의 역사 서술은 재미있으면서, 그만큼 새로운 것을 많이 알려준다.
언드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역사에 관해 얼핏 알고, 소설로도 읽었지만, 그 조직의 영웅이었던 해리엇 터브먼을 처음 알았으며, 리처드의 굽은 등이 셰익스피어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도 처음 알았다. 바이런 경이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그의 시와 여성 편력에, 그리고 일상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그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바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빌헬름 황제의 팔이 그랬다는 것도 그렇다. 이 책은 이런 것들을 알려준다.
몸을 통해 세계사를 이야기하는 책, 몸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