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드는 생각은 오늘 직장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전쟁 같은 하루가 시작이구나이다. 저멀리 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내게는 매일 매일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을 하다보니 전쟁같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 가는 일이 두려울 때가 많다. 누군가가 곤란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조언해주거나 그 일이 잘 해결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 내 일인데, 참으로 보람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 도움을 당연히 여기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짜증내고 화를 내니까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나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을 하게 되니 보람되기는 커녕 심란함만 가득이다.
그럴 때는 이제 그만 물러서야 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된다. 허나, 가끔씩 일이 잘 해결 되어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뿌듯함도 느끼고,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물러서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것이 인생인 듯 싶기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러나야할 때와 물러서지 않아야 할 때를 잘 맞춰야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그럴 때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온 분들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좋다. <물러서지 않는 마음> 26명의 선인들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 그 이유이다.
미래에 대한 자신, 확신이 있지 않는 한, 우리는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왜냐,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제 <힘을 주는 말이 필요한 순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꿈을 꾸고 있지만 내일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거나, 그런 불안을 뛰어 넘어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기꺼이 해낼 수 있다는 증명을 하다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나 내면의 부족함으로 인해 고통의 늪에서 헤매이는, 한 번 뿐인 인생이니까 이것저것 다 잊고 그냥 순수한 쾌락에 빠져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자, 그리고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이라는 단계에 이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니체, 포퍼, 쇼펜 하우어, 에피쿠로스, 하이데거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는 공간이다.
불안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해서 성취하는 기쁨을 누리거나, 자기 자신을 믿는다면 누군가에게 꼭 무엇인가를 결과물로 보여주지 않아도, 원하는 대로 다 이루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기에, 당장 물질이 풍요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님으로, 지금 짪고 강렬한 쾌락을 추구할지, 아니면 천천히, 오래 즐거울지에 대해서 조언을 듣는 시간이다.
니체-"인간에게 지상과 삶은 무거운 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져서 새가 되려고 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좋아했던 열정을 되찾고 싶다면>이란 두 번째 주제는 노자, 제논, 샤르트르, 헤겔,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제일 공감했던 부분이다. 다른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내 자신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무엇때문에 여기 지금,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한 동안 고민 아닌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왜 태어났을까로 시작되는 의문은 이 챕터의 첫 번째 주제인 쓰임과 연결된다. 현재 속해 있는 곳에서 나는 과연 쓸모있는 사람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나는 행복한가? 내가 태어날 때 이미 내 미래는 정해진 것, 선택된것이 아닐까? 그런 삶에 과연 열정은 존재하는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푸는 지혜가 있는가? 라는 의문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공감하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그 어떤 사람과도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인정받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데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면 좋겠지만, 인원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항상 두 사람 이상이면 어떤 일이든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그 가운데에서 이왕이면 쓸모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살아보니까 내가 없어도 지구가 둥근것 처럼 세상도 그렇게 둥글둥글 잘 돌아가더란 말이지. 노자는 비어야지 채워진다고 했다. 나 없이는 이 조직이 절대 안돌아갈거라는 자만을 가진적이 있었는데,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들은 많았다.
노자 "군자는 때를 만나면 나아가서 벼슬을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뒤로 물러나 숨어야 하는 것이오. 내 일찍이 듣기를 '훌륭한 장사꾼은 귀중품을 감춰놓은 채 아무것도 없는 듯이 행동하고, 완전한 덕성을 갖춘 사람은 겉으로는 다만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라고 했소. 그러니 그대는 몸에 지닌 그 교만과 욕심과 위선 따위를 다 버리시오"
고민의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조금 높이 올라가고 싶은 인간의 열망에 대해서 논의하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변화, 한계, 자유, 평등, 공존이란 주제로 한비자, 장자, 밀, 마르크스, 순자의 이야기를 담은 <멀리 높이멀리 나아가고 싶은 마음>. 사람은 기본적으로 제자리에 오래있다보면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시대가 발전하고 변하면 거기에 발맞춰야 함으로 자연스럽게 변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나는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건이 있는 자리는 수건이 그대로 있어야한다. 수건 자리에 휴지가 있는 것이 불편하다.
사람에게는 가끔씩 기분 전환이 필요하고, 그렇게 새로운 것은 나를, 내 기분을, 내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대로인것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보다는 위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변화가 있어야한다. 더 높이,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저자도 이야기하는 '개인이 성장하고, 사회의 건전성이 유지되며, 인류가 진보하기 위해선 누구에게나 반드시 '자유'가 필요하다. 그러한 마음과 의지를 반드시 실행하고자 하는 행동과 혼자보다는 둘, 둘 보다는 같은 마음을 가진 여럿이 힘을 합해서 더불어 공존한다면 모두가 바라는 일들이 훨씬 더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까.
장자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흔들림없이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가끔은 이게 맞는지 틀린지 모호할 때가 있다. 네 번째는 비트겐슈타인, 공자, 아렌트, 마키아벨리, 롤스, 묵자가 이야기하는 <우리 안의 기준이 흔들릴 때>이다. 말. 한 번 내뱉으면 주워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말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선인지 악인지 때로는 구분짓기가 어려울때가 있다. 선인지 알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그게 악으로 판명난 일이 셀 수 없이 많다. 선악만 확실히 구분짓기만 해도 인생을 꽤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악이라고 단정지을 때 '아니오'라고 말 하는것, '네' 라고 하는 것이 과연 용기 일까.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고 하지만 잘못된 과정을 거쳐서 결과만 바르다면 그게 옳은지 정말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가 옳다고 하는 것 또한 누가 결정지을 일인가. 내 의견에 반하면 그또한 그릇된 일이라고 봐질 수도 있다. 참 어렵다. 개인적으로 경계가 모호할 때는 분명 선과 악이 싸우면 선이 이기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내가 믿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요즈음 시대에 전쟁이 어디있냐고 했는데, 이웃나라에 정말 전쟁이 일어나버렸다. 분단국가로써 우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것이다. 모든 전쟁이나 다툼은 욕심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것을 빼앗고,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심. 더 많이 가지기 위한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꼭 무기를 가지고 피흘리며 싸우는 전쟁만 있어온 것은 아니다. 나라간 경제 무역 전쟁도 전쟁이다. 더 작게 보면 종교, 지역, 개인간의 크고 작은 전쟁도 수도 없이 일어난다. 정말 삶은 다툼의 연속이다. 혼란 그 자체다. 이럴 때일수록 저자는 묵자의 사상을 본받아서 절용을 실천하자고 제시한다. '절용이란 과소비를 없애는 것이다. 땅과 재물을 빼앗아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골몰하기보단 쓸데없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부를 늘리고 백성의 수고를 덜어야한다는 거다.' 완전 공감한다.
묵자 "무게 다는 저울, 곡선을 긋는 자, 직선을 긋는 먹줄만 있으면 충분하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비교, 생각, 마음, 믿음, 철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를 온전히 아끼는 태도> 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우렐리우스, 데카르트, 맹자,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의 지혜를 빌린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부자? 유명한 사람? 우리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높은 자리로 더 높이 올라가려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을 한다. 이 모든 것은 성공하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성공하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인가? 사실 좋은 직장의 그 좋은 곳의 잣대는 누가 정하는 걸까? 성공하면 행복한가? 성공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나야 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타의든 자의든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누구는 뭘 입고 누구는 어떤 차를 타고, 어디에 살며, 누구는 어떤 가방을 들고 다닌다더라, 누구 애는 어느 대학갔다더라. 이런 말은 모두 자기자신과 남을 비교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아래를 쳐다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 위로 쳐다보며 사는 사람들이 많을까? 휩쓸려다니지 않으려면 나 자신만의 줏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서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주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인데, 역시 철학 이야기가 나오니 분위기가 왠지 삭막해지고 딱딱해지는 느낌이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지 철학이 과연 무엇인지 저자는 고민을 해보라고 한다. 인간이 무엇이든 철학이 무엇이든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도움되는 이야기 인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봐야 하고, 연구해야 할 분야인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말이다.
아우렐리우스 "외부 환경으로 인해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면, 신속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라. 불안과 혼란에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지 말라. 끊임없이 너자신으로 돌아간다면 네가 처한 환경을 더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 대단한 철학자들조차 매번 훌륭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의 이야기로 내 인생과 내 생각이 쉽게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세월을 겪어온 사람들의 경험과 시간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는 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쉽게 흘려 듣지 않는다. 변화하고 싶다거나 잠시잠깐 물러서고 싶을 때, 옛 성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지혜를 빌려보면 좋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참으로 유용하다.
<이 서평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