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아이들은 복잡했다. (중략) 때론 잔인한 처제의 규칙을 사용할 때도 있다. 그들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비열한 거리의 규칙을 몸에 익힌 아이들은 또 다른 피해자를 먹잇감으로 포획하려는 유혹에 빠져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길 위의 아이들이 먹고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생존의 세계. (102)
세상에는 다양한 나쁜 범죄가 있지만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집이 아닌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이용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없어질 수 없는. ‘씨발 년으로 태어나지 말고 씨발 놈으로 태어나라는 말.’ 세상이 여자에게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반증 아닐까
예지는 상습적으로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감행하지만, 매번 다시 집으로 끌려(?)온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친구의 돈을 빌려 피시방을 전전했지만, 이제는 친구도 돈도 없다.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길거리를 떠돌다 예지가 간 곳은 새벽에도 문을 여는 맥도널드 매장. 그곳에서 예지는 가출팸 구성원인 정화를 만나고 신도림역 원룸촌 지하 방으로 간다. 이후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은 반반한 얼굴로 인해 랜덤 채팅앱으로 성매매를 시도하는 가출팸의 일원이 되고 결국에는 스너프 필름에 출연하게 된다. 돈벌이와 쾌락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며 돈은 벌지 못하는, 최악의 상태가 되어 가는데...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무섭고 소름 끼친다. 이렇게도 어린 여자아이를,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 책은 얇지만, 그 내용은 가볍지 않다. 세상 가장 따뜻한 곳은 가정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많은가보다. 집이 차가운 거리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곳이 되는, 어떻게 아버지가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하고 있는 것인지, 이게 상식적인 걸까? 어떤 삶을 산 사람이어야,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어야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집이 무서운 아이들은 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런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집에 세상보다 더 무서운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기댈 곳은 결국 가출팸일까
2019년이었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공론화되고,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 청소년임을 알게 되었고 가해자가 검거되었지만, 이런 사건이 근절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고, 순간의 쾌락을 위해 여자아이들을 도구처럼 취급(?)하는 어른들이 있을 것이다. 무섭고 잔인한 일.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아빠라는 인간은 그걸 이용하기도 하면서. 가정이라는 곳에서 피해자였지만, 세상에 나와 가해자가 되는 아이들. 살기 위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다. 계속해서 나쁜 짓을 한다. 자신이 뭘 잘못한지도 모른 채. 아니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살기 위해 한 것이니까.
세상엔 좋은 어른도 있지만 나쁜 어른도 많은가 보다. 딸 같은 아이를 성 노리개로 만드는 나쁜 어른들. 세상 모범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악마의 탈을 쓴 어른.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과연 무엇인지. 좋은 어른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프다. 이런 일은 책 속에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음을 알기에 책을 덮고 나서도 아프고 아팠다.
··· 가족에게 외면받거나 가정이 해체된 친구들 혹은 집 밖보다 집 안이 더 지옥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던 친구들을 장기 가출을 감행합니다. ··· 생존은 인간의 본능인지라, 원하든 원치 안 든 사회에서 강제로 추방된 친구들은 스스로 악의 먹이사슬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설은 범죄에 연루된 가출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 소설이 가출 청소년을 미끼 삼고 폭력과 착취가 난무하는 밤의 카르텔을 선정적으로 전시하는 작품으로 기억될까 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현실의 폭력성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 주원규 작가님의 말 중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습적인 친족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감행한 주인공
예지의 이야기다.
작가가 2011년 부터 10년동안 꾸준히 만난 가출 청소년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논쟁적인 르포소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무엇이 진실인 걸까?
어떤 것이 작가의 경험이고 취재이고 상상인 걸까?
따스한 눈빛을 지닌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보통의 삶 바깥을 상상하지 못한다.
나는 내 삶의 바깥을 얼마나 아는 걸까?
온실 속에서만 살아온 화초는 아니었는데..
왜 이 소설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바람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걸까?
가슴이 먹먹하다.
주원규 작가는 십수 년째 가출 청소년들 곁을 배회하는 중이다.
그는 왜 그럴까? 그냥 누구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것이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러 집을 나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그의 유일한
설명이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라고 미리
고백하겠다.
이렇게 피 튀기게 잔인하게 쓰는 것 말고는 달리 그들의 말을 전할 방법이 없다고
그는 느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 잔혹한 일은 모든 것이 다 '비즈니스'인 세상,
'자, 이제 돈 벌러 갈 타임'인 세상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 작가 정혜윤
아버지의 성폭력을 피해 집에서 가출한 예지.
예지가 겪게 되는 길에서의 일들은 너무나 잔혹해서 책을 읽어나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소설에 묘사된 잔인한 일들보다 더 무서웠던 건 이런 말도 안 되게 비인간적인 일들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랑은 관계가 없을, 나는 겪을 일이 없을 일들이라서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기함할만한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일들이 사회의 그늘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N번방, 버닝썬 등등...
이 책의 주인공인 예지를 비롯한 주변인들 청, 사이판, 정화 등등의 아이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한 아이들이 아니다. 착한 사람들도 아니다. 분명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들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사랑받고 자랐다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나는 고등학생쯤부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부유한 건 아니지만 내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사줄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고, 또 그 두 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나를 믿고 지지해주신다는 것. 내 인생에서 어떠한 풍파가 와서 내가 좌절하고 무너질 때도 든든히 응원해주시고 버팀목이 되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인가. 이런 부모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부모님을 가지려고 특별한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그저 항상 나를 사랑해주시니까. 반대로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도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좋은 집에서 사랑받고 자랐다면 거리를 떠돌며 잔혹한 일들을 경험할 필요도 없었겠지. 너무 사실적이어서 더 무섭고 소름 끼쳤던 소설이었다.
소설 내용도 인상 깊었지만, 이 책을 모두 다 읽고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구절은 사실 작가의 말에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무리하려 한다.
"가정으로 복귀하는 청소년이 그러지 못하는 청소년보다 의식 수준이 높거나 도덕성이 강하다고 보는 시각은 단언컨대 거짓에 가깝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간 이유는 계속 집밖에서 생활할 용기가 없고 두려워서였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 저를 찾으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찾는 시늉이라도 하는 가족 구성원이나 가출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는 선생님 혹은 관계자가 있는 친구는 집으로, 학교로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청소년의 의지가 복귀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자, 낮에 사다 놨다."
아빠는 운동복 바지를 입으면서 예지에게도 후드 티 한 장을 던져주었다. 그대까지 예지는 브래지어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아빠에게선 술 냄새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도대체 몇 병을 입에 털어 넣으면 저렇게 독한 소독약 냄새를 뿜어낼 수 있는가. 예지는 술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시험 삼아 한 모금 마셔본 적이 있다. (-23-)
"이제야 깼네?"
정화는 예지의 머리카락에 라이터를 갖다 댔다. 불이 붙었다. 연기가 순식간에 빠르게 솟았다. 예지는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입이 벌어졌다.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머리끝에서 향불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묘한 냄새가 났다. 머리컬이 타고 있었다. 머지않아 다 타버릴 것 같았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니들 왜 이러는데!" (-57-)
아무이 기다려도 정화가 오지 않자 민주는 비명을 질렀다. 남자의 팔목을 깨물었다. 깜짝 놀란 남자가 민주의 몸을 강하게 밀었다. 민주는 그대로 도망쳤다. 정화가 그 모습을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 정화는 자길 방해하는 남자와 도망치는 민주를 번갈아 보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125-)
남자들에게 담배를 건네받은 아빠는 계속해서 머리를 굽실거렸다. 그 순간, 예자는 머릿속으로, 목구멍까지 차고 들어오는 모든 의지를 담아 열광적으로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체 중 입만 남아 있었다. 팔, 다리, 머리, 눈, 어디에도 감각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소리를 칠 때 느껴지는 실감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실감 덕분에 죽음의 문턱을 비껴갔다. 하지만 너무도 압도적인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예지를 더 깊고 아득한 생이라는 지옥으로 빠뜨렸다. (-179-)
이른바 '가출팸'의 우두머리에서부터 행동대원들가지 청소년 범죄 조직의 실체가 드디어 밝혀졌습니다.이들은 인천 지역에서 결성된 조직으로 가출한 청소년을 구슬려 성매매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 무리는 만 14세 미만의 이른바 촉법소년도 포함돼 있어 벌써부터 이들의 사법 처리를 두고 논란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의 파렴치함이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고 있어 충격은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193-)
텍스트로 쓰여진 대부분의 기사에는 맥락이나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다. 단편적으로 짧게 쓰여진 글 하나 덩그라니 남겨져 있을 뿐이다.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육하원칙에 따라,대중들이 원하는 소스를 던저줄 뿐이다. 그 사건이 자극적일 수록, 강한 메시지일수록 , 더 많이 소비되고, 그 기사 속 주인공의 환경은 사라지고, 사건정황만 기록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 소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현대인의 익명성과 무관심이 어떤 아이를, 어떤 소녀를 무침하게 망가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며, 주인공 예지의 비참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예지의 가정환경은 우울하다. 소녀로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조차 없는채 방치되어 있다. 성교육은 물론이거니와 하교 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술에 쩔어있는 아버지,그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무감각하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가치조차 살실된 채 놓여지게 된다. 예지에게 도덕은 사치다. 오로지 생존과 자유만 남아있다. 스스로 밀려난 인생, 보호받지 못한 인생에서, 오로지 돈이 최고,라는 잔인한 사회의 모습이 비춰질 뿐이다. 그 과정에서 가출팸이 되어, 자신의 몸을 팔아야 하는 잔인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담배빵은 기본이고, 자신의 몸 하나조차 보호받을 수 있는 누군가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약자이면서, 가해자로 돌변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예지는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약자로서,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공격당하면, 갚아준다는 그 심정으로 하루하루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로 인해 내 삶이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것, 소설은 사회의 기본적인 보호와 이해,공감이 한 아이의 삶을 회복할 수 있고,치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