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교수의 신간이 소개되었을 때,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렵긴 해도 읽어봐야할 것 같다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의무감과
읽어봐야 또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될 것 같다는 당혹감.
카트에 넣어두고 몇번 고민을 하다 서점을 들러 내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의 책이 늘 그렇듯 책이 두껍지는 않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기 때문인건지 그의 성향인지.
열장 정도 읽어보고 그래도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서서 읽어보기로 했다.
뒤로 갈수록 어려워졌다는 후기가. ㅎㅎㅎ
제목에서부터 의아함을 자아낸다.
서사의 위기라니. "스토리텔링"의 시대가 아닌가.
오히려 이러한 스토리 중독 사회가 서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 한병철 교수의 화두이다.
정보 과잉 사회는 그 속에서 '스토리텔링'을 외친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전시하듯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찰나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공감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그 안에 의미는 없다. 사라져 버릴 정보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끝없이 공유하고 타인과 교류하면서도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셀링'이라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무기가 되어 마치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 세상으로부터 충격받고 저항하고 간극을 느끼며 자신만의 철학을 쌓아올릴 기회를 빼앗고 그저 '좋아요'를 외치게 만든다.
스토리는 서사가 아니다. 스토리, 즉 정보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음 스토리로 대체되어 사라진다. 반면 서사는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 삶 그 자체다. 나의 저 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기에 방향성을 띤다. 곧 사라져 버릴 정보에 휩쓸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역자 서문의 일부이다.
역자 서문만 읽어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 책과 함께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있었던 터라 개인적으로 수많은 복잡한 생각이 오갔다. 나에게 서사는 있는가. 스토리만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비교적 최근에 '스토리텔링' 관련해서 업무지시를 받고 열심히 알아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홍보 관련 업무를 전혀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놀랍게도 한 기업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주는 회사들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한줄, 또는 한 페이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그에 따라 홍보컨셉과 방법을 정해서 일관성 있게 홍보를 진행한다는 것인데 꽤 그럴듯해 보였다.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것 역시 스토리텔링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보니 오히려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 것도 없었다면 창작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역사도 오래되었고 꾸준히 내놓았던 스토리텔링 기조가 있었다. 그것을 증폭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
하겠다는 업체가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 업체에 맡기는 것은 포기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단발적으로 스토리텔링을 남발하며 제각각의 홍보를 하고 있다.
하나하나 보면 그럴듯하지만 뭔가 연결고리가 없는 이런 상태가 답답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특별한 해결책도 보이질 않는다.
스토리텔링만이 답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내놨지만 사실 눈에 띄는 곳은 몇 없다.
<성심당>과 같은 스토리텔링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은 일차적으로 상업과 소비를 뜻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없다. 탈진한 후기 근대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가 강조된 '초심자의 기분'이 낯설다. 후기 근대인은 어떤 것도 '신봉'하지 않는다. 이들은 영원히 편히 쉴 곳만 찾는다. 어떠한 서사도 필요로 하지 않는 편안함 또는 좋아요에 예속된다. 후기 근대에는 어떠한 갈망도, 비전도, 먼 것도 빠져 있다. 따라서 후기 근대는 아우라가 없는 상태, 즉 미래가 없는 상태이다.
한병철 교수의 진단은 꽤 뼈아프다. 스토리텔링이 일차적으로 상업과 소비를 뜻하는 스토리셀링으로 규정하며 결국은 미래가 없는 상태로까지 발전한다. 시간과 폭이 없는 좁은 궤도로 단축된 우리의 삶은 업데이트 강박을 불러오고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했다.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은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태,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 없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 한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 시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
소비로 환원되는 스토리셀링의 시대에서 새 시작의 힘이 있는 서사의 시대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한병철 교수가 진단한 새로운 화두 , <서사의 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