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기준이나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전혀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같은 대상이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잣대로 보면 마치 처음 보는 작품인 듯 낯설게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문학 작품에서는 흔히 쓰이는 기법으로 작품에 대한 긴장감을 주어 독자(관람자)로 하여금 더욱 흥미를 유발하게 마련이다. ‘낯설게 하기’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뿐 아니라, 미술 작품을 볼 때도 적용된다. 익히 알고 있는 예술 작품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전혀 낯선 새로운 작품처럼 느껴지게 된다.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는 얼핏 봐서는 미술과 전혀 상관없을 듯한 ‘해부학’이라는 시각으로 미술 작품을 바라본 책이다. 이 책은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미술관에 간 수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등 ‘어바웃어북’출판사의 “미술관에 간 OO학자” 시리즈 중 하나다. 이번 책은 특히 일반인으로는 거의 접할 일 없는 ‘해부학’이라는 시각을 통해 미술 작품을 본 책이라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해부학 교수인 저자는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예술 작품을 보면서, 작품 속에 암호처럼 숨겨진 인체의 비밀을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저자는 우리에게 명화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그 작품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뇌, 심장, 혈관, 피부 등 인체의 여러 부분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한 페이지에는 명화가, 연이어 다음 페이지에는 해부도가 나오는 장면을 보다 보면, 이 책이 미술에 관한 책인지, 의학책인지 새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소한 조합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자, 눈에 익은 예술 작품을 낯설게 보도록 해주는 통섭의 시각이기도 하다.
책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나 ‘피에타’, 뭉크의 ‘절규’ 등은 제목만 들어도 머릿속에 금방 떠올려질 만큼 유명한 작품들도 미술이 아닌 ‘해부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면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다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몇 번씩 보았던 작품인데 그 뒤에 숨겨진 심층적인 의미를 알고 보면 ‘아, 여기에 이런 뜻이 있었어?’하며 다시 보게 된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작품 곳곳에 알게 모르게 숨겨진 인체의 기호를 발견하게 되고, 그 이후에는 작품에서 그 부분만 유독 더 눈에 뜨이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뤄진 작품들은 대개 미술관의 작품이나 책을 통해 자주 접하고, 우리가 눈에 익어서 ‘안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해부학이라는 낯선 시각으로 다시 살펴보면 이제까지의 익숙함과는 다른 신선함이 느껴진다. 또한, 화가 자신이 신체의 고통을 숙명처럼 안고 살았던 프리다 칼로, 샤갈, 고흐 등의 작품 역시 더 깊이 있게, 공감하며 바라보게 된다.
크로스 오버 혹은 통섭의 시각이 필요한 것은 기존에 알던 한정된 시각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부학이라고 하면 얼핏 미술과 전혀 상관없을 듯하지만, 알고 보면 예술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렌즈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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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