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섬세하고 균형이 잡혀 있지만,
분량 때문인지 개괄적 설명이나 소개에 머무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기술된 내용은 충분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민족주의의 기원을 근대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나치오/나티오(natio)의 기원이 그보다 훨씬 더 먼 시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아래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얇은 책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프롤로그 - 민족과 민족주의 구별하기
1장ㅣ 민족의 개념
1. 민족의 어원
2, 민족의 정의
"민족"과 민족
민족의 객관적 정의와 주관적 정의
만들어진 전통
3. 민족 형성의 요인
자본주의와 국가
언어와 종교
깊이 읽기ㅣ 민족의 객관적 정의와 주관적 정의
2장ㅣ 민족주의의 개념
1. 민족주의의 기원
근대기원설
전근대 기원설
2. 민족주의의 정의
민족주의와 민족주의
민족적 담론과 민족적 상상계
3. 민족주의의 유형
데모스와 에트노스
호네스티오레스와 후밀리 오레스
깊이 읽기ㅣ 공민적 민족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
3장ㅣ 민족주의의 시대
1. 민족주의의 승리
기원에서 시대로
이탈리아 통일
독일 통일
2. 민족주의의 극성
민족적 상상계의 부상
파시즘과 나치즘
깊이 읽기ㅣ 파시즘과 민족주의
4장ㅣ 민족주의의 전망
1. 세계적 상상계의 부상
세계주의 혹은 세계적 상상계
유럽 통합
2. 민족주의의 종언?
민족주의의 귀환
종언론의 종언
깊이 읽기ㅣ 민족주의의 제 3의 물결?
에필로그 - '민족주의 없는 민족'인가? '민족 없는 민족주의'인가?
개념의 연표 - 민족주의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일상에서 아주 익숙하게 쓰이지만, 그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혈연적 정체성이 강한 국가에서는 민족은 혈연적 연계성을 의미하거나 좀 더 광범위하게 동일한 문화 공동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스위스나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에서 민족은 이런 정의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민족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에 관해서도 각자마다의 주장이 상이하다. 전근대 기원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근대 기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물론 학계의 결정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기나긴 민족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 맞춰져 있다.
민족주의와 파시즘 전문가인 저자는 이런 난해하고 어려운 주제를 명료하고 쉽게 설명해준다. 저자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때로는 명쾌하게 민족과 민족주의를 정의하기도 하고 여러 민족주의 연구가들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책은 민족주의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한 설명서다.
한 가지 흠이라면, 책이 편찬된지 시간이 흘렀기에 최근의 논의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일상 민족주의와 다시 떠오르는 종족중심 민족주의 그리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의 흥기 또는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와 같은 주제들이 하루빨리 추가되길 기다려본다.
책을 읽다보면 민족이라는 개념이 무수히 등장하는데, 민족에 대해 단순한 의미정도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이 책을 읽으며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민족의 의미와 기원, 유형, 역사, 전망 등을 체계적으로 잘 적어놓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개념을 파악한다면 앞으로 다른 책을 읽을때도 더욱 깊이있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책 서두도 아니고 표지에 적힌 글을 옮겨보도록 하겠다.
이 책의 기본 전제는 민족과 민족주의를 구별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뻔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러한 구별은 중요하다.
민족주의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옮기거나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저 부분만 생각하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를 하더라도 충분할 것이다. 저 문장을 이해했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물론 이해할만한 사람은 전공자 이상일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들은 읽는 것이 좋다 본다.
간단한 내 생각만 적고 마무리해보도록 하겠다.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즉, 민족주의는 민족보다는 '주의'로서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가 뭔지 생각해야 한다. 이념 정도로 번역되는 이 말은 어떠한 사회집단이 사회에 대해 품는 현실적인 생각의 형태이다. 그러니까 달리 표현하면 그 사회집단의 사상, 행동 등을 제약하거나 규정하는 사고의 기저에 깔린 무언가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프랑스 혁명 이후 발생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민족주의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은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에서 가장 많이 전쟁터가 되었던 독일(특히 프로이센 이서 지역)을 민족주의의 원류로 보고 있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제2제국의 형성 이전에 이러한 사고를 가지고 뭔가 일어난 사례는 드물다. 심지어 동양의 사례인 멸만흥한조차도 근대의 일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대한 논쟁은 아마 나처럼 민족'주의'로 보는 것보다는 '민족'주의로 보는, 그러니까 민족과 민족주의를 헷갈리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저 시각에서는 나처럼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볼 수 없고, 그저 한 종류의 민족이 갖는 정체성을 칭하는 말이 된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nation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한자문화권에서도, 아니 중국에서도 북적, 서융, 남만, 동이[1], 그리고 왜[2]로 주변 민족을 부르고 있고 북적과 서융을 나누면 아예 선비, 오환, 돌궐, 여진, 흉노, 몽골(중국에서는 몽고), 강, 저 등등 넘쳐나는 이민족이 존재하고 남만도 월남, 민, 산월, 묘 등 다양한 민족이 있었음을 여러 사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 동이는 뭐 에맥과 한(韓)족 하나 뿐이지만.
신기한 점이 있다면 중국인들은 주변인들을 죄 나쁜 말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오랑캐임.
민족과 민족주의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민족주의는 나쁜 것인가, 혹은 좋은 것인가? 아니면 옳고그름이 없는 것인가 하는 사고는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알아야 할 역사적인 부분이 많고 전공자조차 이걸 전부 읽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책 한 권 정도는 구해서 읽어 볼만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얇아서 훌륭하다.
[1] 알고 있겠지만 한반도 쪽 거주자를 말한다.
[2] 키작을 왜. 矮. 자체적으로 '야마토'로 부르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불렀다. 반대로 일본은 자체 군주를 '천황'이라 부르는 식으로 다들 자기 민족에 대한 정체성은 분명히 있었다. 물론 일본은 야마토가 중심이었을 뿐 야마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좀 별개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장 사츠마 지방(현재의 카고시마) 사람인 하야토, 애초에 100년 전만 해도 일본이 아니었던 류큐(현재의 오키나와), 그리고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 등 다민족 국가로 봄이 옳다. 물론 중국처럼 절대적으로 한 종류의 민족이 많지만.
[3] 강족과 저족 같은 경우 대량학살로, 그리고 여진(만주)족은 중화에 동화되는 등 외부 민족들은 대부분 전통 문화나 자기 정체성을 잃었다는 점에서 한족과 같은 민족으로 봐도 무방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