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수임 받은 대의정부의 모습은 점점 1인, 1정당, 1국가 독재에 귀결되는 양상을 보이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상실해가고 있다. 자유주의 또한 그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와해되어 사전적 규제의 부정을 통하여 민주적 정당성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대의정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적 헌정주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당초 국민들의 “삶의 근원적 다양성을 수호하고, 동시에 삶 그자체가 다원적 이익들로 용해되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공성을 보전”하려는 헌법의 기획은 심하게 손상되고 있다.
이제 극단적 자유주의의 팽창이 낳은 화폐권력에 대해 사후적 판단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법률의 해석자인 법률가들에게 헌법을 판단케 하는 법률가 수호주의라는 위험한 현상까지 빚어내고 있다.
이 저술은 바로 이러한 주권과 민주헌정의 변질이라는 우려스러운 현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가를 표상정치의 역사적 변화양상과 그 의미 해독, 근대적 헌정주의의 본질과 의의 등 배경지식의 전개를 기반으로 하여‘표상정치’와 ‘헌정권력’이라는 핵심개념을 통해 탈근대적 민주주의를 위한 표상정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표상정치’라는 어려운 어휘가 이 저술보다 쉽게 설명된 책은 없으리라 여겨지기까지 하는데, ‘호머’의『일리아드』속 인물들이기에 더욱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 즉 수많은 전사(戰士)들과 시민들이 결부된 전쟁이지만 단 두 사람만의 대결로 끝내려고 한다. 바로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대결인데, 이처럼 전쟁이나 정치를 단 두 사람의 결투로 환원하려는 것, 이런 식으로 정치를 생각하는 것을 바로 ‘표상정치’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헥토르’의‘개입(介入)’으로 표상정치는 붕괴되고 다시금‘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또 다른 대결(표상정치)이 이루어지지만 살육전은 중지되지 않는다.
왜 표상정치는 실패하는 것일까? 즉 시민과 전사들을 대표하는 자들을 내세운 합의가 번번이 깨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헥토르의 개입이나, 오디세우스의 간계처럼 바깥으로부터의 개입이 표상정치를 무너뜨리는데, 이는 탐욕과 야심, 속물근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결국 표상정치는 다시 건설해도 곧이어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즉 정치적 현안이 표상정치를 통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표상’이란 것은 태생적으로 불완전 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표상정치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과 표상정치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같을 수 있겠는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이며, 단지 ‘닮음’의 묘사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표상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획들이 역사 속에서 수 없이 착안되고 진전되어 왔다. 선거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여 대표제를 합리화하지만 여전히 대표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궁극에는 표상정치의 동일성에 대한 보다 정밀한 접근으로서의 집착이나 아예 불가능의 인정을 통한 포기라는 딜레마의 해결방안으로서 “표상정치에 투항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기획으로서 ‘헌법’의 고안, 즉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의 발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 법이 존재한다는 고차법 사상의 저변이나 혼합정체의 논리, 근대적 헌정주의의 역사적 이론들의 친절한 설명이 배경지식으로 풍부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자연권의 실정화를 통해 성문헌법을, 헌법과 법률을 구조화하고 의회를 탄생시켰으며, 법의 지배를 체계화하는 식으로 표상정치를 재건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상정치는 오늘날 “대중적 산업화와 이에 따른 사회내부의 계층 분화가 심화 되면서 의회주의의 전제라 할 시민적 동질성이 급격히 상실”됨으로써 민주주의가 오히려 지도자 체제로 대표되는 1인 독재주의를 초래하였으며, 자유주의는“자유에 기초한 계약적 사회 구성이 가능하다고 보고, 그 모델을 모든 대상을 화폐가치로 환원하여 개인의 선호에 따라 교환 할 수 있다는 완벽한 자유 시장에서”찾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자유가 없으면 작동 할 수 없는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따돌리고 표상정치를 넘어서는 독자적인 팽창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화폐권력의 그림자 노릇이나 하는 근대적 헌정주의의 전제가 붕괴된 현실에서 저자는‘주권 개념해체와 재구성’을 위해‘헌정권력’의 개념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우리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고 묻는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에서와 같이 ‘대한국민’이 우리 헌법의 주어다. 바로 헌법의 발화자는‘대한국민’이다. 발화자가 있다면 수화자는 누구인가? 물론 수화자도‘대한국민’이다. 허나 저자는 “조선총독부에게는 해방의 선언이며, 미군정에는 독립선언이고, 다른 독립국가에는 평등의 선언”이듯이 수화자는 여럿이 될 수 있음과 같이 새로운 읽기를 주장한다.
이는 “헌정권력에는 다양한 차이 속에서 공통의 것을 이끌어내려는 다시 말해, 그 누구도 특권적일 수 없다는 평등한 네트워크”를 전제로 하고, “장애인, 할아버지, 주부, 아이, 여고생, 예비군, 이주 노동자 등 이들의 차이를 그대로 둔 채 그들 사이에서 공통의 것을 끌어내 그들 자신의 권력이 바로 헌정권력”이며, 이로써 헌정권력은 소통과 대동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차이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획으로서 헌법민주주의의 강화를 통한 소수자의 정치적 기회제공과 이러한 틈새를 활용한 헌법민주주의 정당성 입증, 나아가 탈근대적 민주주의의‘차이에 대한 공적 확인’과 ‘정치화의 성취’, 다소 급진적으로 이해 될 수도 있겠으나 규범의 강약에 따른 지역공동체, 국가, 국제사회의 존재를 그리는 새로운 모델은 표상정치를 극복하기위한 단순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갖가지 시행착오와 시련을 마주하는 집단적 실천의지가 된다.
이 저술은“법치의 논리로 입법을, 민주의 이념을 밀어내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본질에 부합하는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의 입법을 법률가들이 헌법해석으로 무효화시키는 것은 정당한가?”, “누가 헌법재판관이 되느냐가 어떤 법률을 만드느냐 만큼 결정적인 문제가 된 사회”의 부정의를 떠나 본질적으로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에 대한 답변을 사유케 한다. 심각하게 훼손되고 비뚤어진 오늘의 헌정질서와 표상정치의 왜곡을 시정하고 근원적인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 헌법의 새로운 읽기는 중차대하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각성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