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가 되기란 여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작품자체의 매력과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출판사의 대대적인 홍보, 서점직원들의 판매를 위한 부단한 노력, 저자가 그간 출간해온 인기작품들이 만든 쌓아온 명성인 ‘이름값’이 있어야만 한다. (아무것도 해당안되면 ‘문학상’ 후보에라도 올라야만 한다) 여기, 그 모든 것을 가뿐히 뛰어넘고 보란 듯이 ‘작품의 매력’ 그 재미하나로만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 있다. 출간 즉시 15주 연속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라는 기염을 토한, <사일런트 페이션트>이다.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의 조건을 다시 쓴, 스릴러 소설이다. 왜냐, 장기집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어느날 남편을 살해한 화가, 그녀의 입을 열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로 한 범죄심리상담가. 소설 <살인자들의 섬>, 영화 <돈세이워드>가 떠오르는, 얼핏 보면 별다를 것 없어보이는 내용. 과연, 어떤 점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걸까?
‘이제 알 수 있었다.
나는 절대로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절대로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내 모든 희망은 꺾이고 모든 꿈은 부서져 아무것도 전혀 남지 않았다.‘
- 남편을 총으로 쏴버린 여인, ‘침묵의 환자’ 앨리샤
그런 희대의 악녀이자, 천재화가인 그녀의 입을 열려는 상담가 테오. ‘진실은 무엇인가?'
아내이자 화가인 앨리샤는 행복한 여자였다. 그의 남편은 유명 사진가로 그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해주는 남자였으며, 경제적으로도 능력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둘은 화려한 예술가부부로 살아갔다. 바로 그날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어느 날, 앨리샤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 가브리엘을 죽인다. 그의 얼굴에 다섯 발이나 총을 쏴버린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것. 경찰이 출동할 당시, 남편의 시신은 손과 발이 묶인 채 의자에 앉아있었고, 아내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채, 그 앞에 피를 흘리고 서있었다. 심지어 총에는 그녀의 지문뿐. 정황과 증거는 모두 그녀를 가리켰고, 진술만이 남은상태. 하지만 앨리샤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대신 손으로 무언가를 대답한다. 재판을 하기 전, 자택에 구금된 앨리샤가 한 작품을 완성한다. 그 작품으로 인해, 대중은 그녀가 남편을 살해한 잔혹한 살인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녀는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모습은 남편을 죽인 뒤, 나체로 피를 흘리며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제목은 ‘알케스티스’. 어떤 아내가 남편이 죽은뒤 아무렇지 않게 그림을 그릴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희대의 악녀’가 되었고, 남편을 죽인 아내의 그림은 높은 가격으로 치솟았다. 재판부는 그녀의 오래된 정신병 이력으로 정신질환 범죄자로 결론내렸고, 앨리샤는 감호병원에 수감된다. 그리고 6년후 어두운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사건에 매료된 범죄 심리상담가 테오는 앨리샤의 입을 열기위해 감호병원의 의사로 지원한다. 자신의 과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호기심과 열망에 사로잡힌 그는, 앨리샤의 담당심리사가 되고, 그날의 진실로 다가서는데...
- 모든 힌트는 이미 주어졌다 ‘알케스티스’. 끊임없는 혼란에 빠트릴 놀라운 교차서술의 심리스릴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반전’
<사일런트 페이션트>는 서스펜스를 만들어가는 놀라운 심리묘사, 독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두 인물의 교차서술, 그리스비극과 연관된 소재를 활용한 지적연계, 저자가 정신병원에서 일한 경험이 만들어낸 소설속 환경의 사실성까지. 모든 조합들이 제 자리에서 역할을 해내며,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반전으로 결말을 선사하는 ‘심리 사이코 스릴러’이다.
<사일런트 페이션트>를 읽다보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알케스티스’라는 자화상 제목이 언급된다. 이것은 그리스비극에 등장하는 한 여인의 이름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커다란 단서로 적용한다. 잠시 신화를 언급하면 이렇다. 아드메토스는 운명의 신에게 죽음은 선고받지만, 아폴로에 의해 구원받을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다른 이를 설득해, 그가 자신 대신 죽어 지옥에 갈 경우, 본인은 구제 받을 수 있다는 것. 아드메토스는 자신의 부모에게 죽음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이를 본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가 기꺼이 스스로의 목숨을 내놓는다. 그녀는 지옥에 가게되나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다시 죽음에서 살아돌아오지만, 기쁨과 눈물을 보이는 남편에게 단 한마디 말 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 예상이 되는가? 알케스티스는 곧 앨리스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처럼 사일런트 페이션트는 처음부터 실마리를 내놓는다. 하지만 앨리샤의 시점과 테오의 시점, 과거 정신병 이력이 있는 살인피의자와 자살경험이 있고 알 수 없는 호기심으로 매료된 심리상담가의 교차서술은, 이 실마리에 대한 ‘확신’과 ‘의심’을 반복하게 만든다. 읽는 내내 둘중 누가 진실에 이르고 있는지, 또한 앨리샤의 일기의 내용과 테오가 조사한 주변인물의 진술들이 왜 엇갈리는지, 심지어 이 혼란들은 겹겹이 쌓여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을 넘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기묘한 서스펜스를 선보인다.
이 소설, 어렵다 재밌다 대단하다! 여태 보아온 심리스릴러와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이 있다. 인간의 욕망, 광기, 이기심, 사랑이 복잡하게 뒤엉켜, 그 어두운 심연의 그림자를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드는 작품. 그리고 그 떠오른 수면위에서 순식간 모든 것을 뒤엎어오는 해일같은 반전이 있다. 이 책을 읽어보자. 모든 베스트셀러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될 것이다.
+@ 그리스비극을 이용한 실마리 제공은 인간의 내면을 어둡고 심층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주제와 연계되, 지적 호기심과 스릴러적 만족감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정신적으로 부정확한 두 인물, 진실을 향해 문을 닫은 자와 그 문을 열려는 자, 비슷한 성향이 있지만 다른 목표를 가진 두 인물의 기교넘치는 교차서술은 커다란 초반 실마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여운과 반전의 결말까지, 버릴게 없는 소설이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