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에 가기로 결정했다. 6개월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고 은행에 가서 환전을 했다. 해당 국가의 지폐가 얼마 없다고 하여 일단 달러로 바꾸었다. 한국돈으로 치면 대략 250만원 정도 되는 수준이었다. 더 가져갈까 하다 다 쓰면 그때가 돌아올 날이다라고 마음 먹고 더 마련하지 않기로 했다. 항공권은 국적기가 아닌 그 나라 항공기로 구입했다. 30%이상 저렴했기 때문이다. 여행사 다닐때 알던 관계사 직원이 거의 원가 수준으로 사줘서 큰 도움이 되었다.
여행사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여행 일정을 짜주거나 항공권을 구매해주고 다녀온 뒤 컴플레인을 걸면 거기에 대응해주던 일을 하며 조금씩 지쳐갔다. 가끔 인솔자로 다녀오긴 하지만 현지 가이드만도 못한 대접에 오지로 들어가면 운전기사하고 겸상을 하고 입이 짧은 탓에 현지식이 아닌 콜라에다 밥 말아 먹는 일도 많았다. 나중에 돈 벌면 나도 패키지 여행 와야겠다라는 생각을 그때마다 했다. 그리고 여행사를 그만 둔 뒤에서야 그 바람이 이뤄진 셈이다. 패키지가 아닌 6개월을 한 곳에 머물며 말도 배우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는 걸로 계획을 했다.
짐은 단출했다. 매는 가방하나와 기내에 반입가능한 작은 캐리어 하나. 큰 짐이 필요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이걸 가지고 6개월을 살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게스트하우스지만 혼자 쓸수 있는 방을 구했고 하루에 한국돈으로 6천원만 쓰기로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 한달치를 환전해 봉투에 넣어놓고 아침에 나갈때 그 정도만 지갑에 넣고 나섰다. 텅빈 방안엔 기존에 있던 침대와 작은 책걸상, 더 작은 미니 냉장고가 전부였다. 늦은 가을이라 에어컨도 필요없고 대신 조금 불안하게(?) 보이는 조악한 전기요를 하나 샀다.
한국에서 잘 안입던 옷과 곧 헤질 것 같은 옷으로 골라 가져갔다. 그 옷만으로 가을에서 겨울동안 줄기차게 입고 오기전 버렸다. 그런데 구멍나기 직전의 옷을 버리려고 하니 게스트하우스의 청년 하나가 자기 달라고 해서 줘버렸다. 히죽 웃는 모습이 아마 자기가 걸칠 요량으로 달라고 한 듯 싶어 조금 성한 티셔츠와 가디건도 함께 그에게 주고 왔다. 처음에 가져간 가방에서 옷가지를 빼니 매는 가방은 홀쭉해져 있었다.
아무리 물가가 헐한 나라였어도 한국돈 6천원으로 하루를 버티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아침은 봉지 커피와 전날 사놓은 식빵 한쪽, 수업을 듣고 점심은 패스하거나 길거리에서 국수나 만두를 사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저녁무렵에 숙소 근처 교포 식당에서 3천원 정도 하는 단품 식사를 했다.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하니 현지 신문을 한 부 사고 과일 몇 개를 집어 오면 그걸로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었다. 물론 거기서 아껴서 사설 어학원 수강료도 내야 했다.
귀국하기 직전 옷가지 말고 그동안 모아놓은 신문과 무가지 잡지등을 내놓으려고 밖으로 가져가니 뜻밖에도 고물상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한끼 밥값이 생겼다. 귀국하는 날 체크아웃을 하고 텅빈 방을 돌아보았다. 6개월 동안 몸을 의탁했던 곳, 짐을 정리하는데 30분 걸렸고 내가 들어간 그날 처럼 정리를 해두었다. 청소하는 직원이 와서 보고는 이렇게 해둔 사람, 처음 본다고 어리둥절했다. 일손이 줄어서 그랬는지 빙긋이 웃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동전을 모두 그에게 주고 잘 지내라 인사를 하니 그제서야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빈 곳에서 수행하듯 살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원래 내방을 차지하던 물건들이 보기 싫어졌다. 6개월이나 주인이 없었는데 결국 쓸데가 없지 않았나. 썪지 않는다는 이유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을 그것들을 시간나는 대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때의 정리벽은 지금까지 지속되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하고 여행업에 종사하는 저자는 "삶이란 채우기보다 비우는 것"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책에서 읽어낸 총평이다. 비움이란 시쳇말로 미니멀라이프, 심플라이프 등등으로 불리는데 용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자세나 태도를 말한다.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해지면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라고 할 수 없고 어느 정도 갖고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비우는 삶을 지향하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그게 더 의미있는 일이라 여긴다.
그가 비우면서 사는 건 역마살이라도 끼었나 싶게 정주하지 않는 노마드로서의 면모와 일치한다. 한국에서도 최저의 셋집을 고집하고 외국에 나가서 사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그런 행동을 지지하는 아내가 있어 가능해 보였다.
책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물품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유튜버로서 필수적인 장비를 제외한다면 그것만으로 생활이 영위가 되나 싶을 정도로 간소했다. 극강의 저소유자인데 더 줄일 여지도 있다한다. 말미에 그가 미니멀리스트로 살면서 느낀 점을 100가지 열거했는데 그 중에서 나와 비슷한 구석도 있어 골라보았다.
1. 물건 찾는 시간이 줄었다.
2. 물건 정리하는 시간이 줄었다.
3. 물건 관리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4. 물건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5. 물건 줄이는 상상이 즐겁다
6. 물건 맡길 일이 없다
7. 식후 바로 설거리를 한다
8. 머무는 곳을 더럽히지 않는다
9. 환경보호를 의식하게 되었다
10. 대중교통을 타는 게 즐겁다
11. 샤워하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12. 우연히 상점에 들어갈 일이 드물다.
13.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다.
14.관광기념품을 사지 않는다
15. sns를 멀리한다
16. 크게 돈 쓸 일이 없어졌다
17. 재산을 무작정 불리고 싶은 욕망이 없어졌다
18. 육식, 탄산음료를 줄이고 건강식을 찾게 되었다
이 정도를 골라보았다.
저자는 미니멀리스트를 4가지로 구분했는데 나의 경우는 귀차니즘 미니멀리스트정도에 해당하는 것 같고 저자는 그런 타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나 역시 동의한다. 언젠가 마음이 바뀌면 다른 생활 패턴을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루과이 전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의 말로 정리를 해보면
가난한 자는 '많은 걸 필요로 하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족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살아간다는 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