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기분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 맛있는 것을 먹고 ‘아, 행복해’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구. 그것은 먹는 것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군. 많이 먹는 것하고는 달라. 무엇인가를 즐기는 사람은 사는 게 좀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사람에 따라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다르겠지. 내가 아주 안 먹는 것도 먹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것 때문에 즐거운 적이 없을 뿐이야. 먹을거리에 정성을 쏟는 사람도 있잖아. 그것은 자신이 먹을 것을 할 때보다 다른 사람한테 해줄 때 그럴까. 자신이 먹을거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 있어. 얼마전에는 화과자 이야기를 보았는데, 또 먹을거리라니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이 소설에서 먹을거리가 앞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얼마 뒤에는 빵집 이야기 만날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책을 만나다니 좀 신기하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내가 정성들여서 하는 먹을거리는 그저 그렇게 생각해도 과자, 빵은 괜찮게 생각해(반대여야 할까). 그렇다 해도 비싼 걸 먹는 건 아니군.
맏물은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 맨 처음에 나는 것으로, 이걸 먹으면 수명이 75일 늘어나서 좋은 것으로 여긴대.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은 처음 알았어. 무엇이든 제철에 난 게 좋다고 하잖아. 수명이 늘어난다는 말 때문일지도. 시간이 지나면 제철에 난 거라도 맏물은 아닐 테지만. 몇해 전에 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에는 에코인의 모시치 대장이 나왔어. 모시치는 치안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인 요리키나 도신 밑에서 범인 찾기와 잡는 일을 맡는 직책 오캇피키야. 지금 생각하니 그때는 나오는 사람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하는 것을 더 봤어. 모시치라는 이름이 자꾸 나와서 이 사람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했어. 지금이라고 책을 두루두루 잘 보는 건 아닌데, 조금 마음 써서 보려고 해(이 말 얼마전에도 한 것 같군). 어느 날 후카가와 도미오카 다리 기슭에 이상한 노점이 나타났다고 해. 새해가 된 때였나. 그곳은 새벽 두시까지 문을 연다더군. 새벽까지 문을 연다고 하니 <심야식당>이 떠올랐어. 나중에 볼 빵집도 새벽 동안 문 여는 곳이야. 에도시대는 밤이 되면 거리는 어두울 테니 많은 사람이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겠지. 새벽 두시까지만 장사하는 건 그 때문일거야. 가게에서 파는 건 유부초밥인데 국물도 있어. 이곳 주인 어쩐지 ‘심야식당’ 주인과 비슷한 느낌이야.
모시치는 유부초밥 가게 소문을 듣고 한번 찾아가 보고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찾아가. 간장을 지고 팔러 다니던 오세이가 죽임 당한 일을 풀 때 그곳에서 먹은 순뭇국에 수제비를 넣은 게 도움이 됐어. 모시치는 유부초밥 가게 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하기도 해. 예전에는 무사였는데 지금은 먹을거리를 팔게 된 걸까. 노점이나 매춘부한테서 돈을 뜯는 뱃집 가지야의 가쓰조와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이런 말이 나오면 이 책을 보는 사람도 알고 싶잖아. 책을 끝까지 보면 ‘끝난 거야’ 하는 말이 절로 나와. 아홉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일은 어떻게든 풀리지만, 유부초밥 가게 주인하고 영감 스님 미치도 일은 더 알 수 없어. 유부초밥 가게 주인이 그 가게를 하게 된 까닭은 나오는군.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였어. 아이일까 아니면 형제일까. 버린 아이를 찾고 싶다고 했으니 아이일지도 모르겠군. 왜 형제일까 했느냐구. 에도시대 때는 무사 집안이나 상인 집안은 쌍둥이를 꺼렸대. 쌍둥이가 나면 재산 나누기가 힘들다고. 이런 이야기도 있고 첫째, 둘째 이야기도 나와. 첫째는 첫째대로 집안을 이어야 하는 부담, 둘째는 둘째대로 집안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하더군.
어떤 사람은 쌍둥이에서 하나를 버렸는데 시간이 흘러서 딸이 죽었어. 버린 딸을 다시 찾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딸을 데려다 키우는 사람한테 큰돈을 쓰려고 했어. 아이를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버린 거니 잘못이 있는 건데. 돈으로 잘못을 씻을 수 있을까. 그럴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딸이 가난한 집에서 사는 게 불쌍했대. 돈이 없다고 해서 안 좋은 건 아닌데, 행복을 돈이 있고 없고로 생각했나봐. 쌍둥이여서 일곱살 때 집안에서 쫓겨나고 다른 집 사람이 됐는데, 후계자가 죽었다고 쫓아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인 일도 있어. 불러들이는 건 괜찮은데 지금 가진 가정을 버리라는 거야. 그런 억지를 쓰다니. 가정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니 재산을 노리는 사람이라 했어. 그 사람은 집에 돌아올 마음이 없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안 좋은 일을 한 사람도 있었어. 그다음에는 그 사람이 집안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죽었어.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벌을 받는다 하는 말이 떠오르는군.
아무리 좋아해도 그 사람이 예전과 달라지면 마음이 식기도 하겠지. 사람은 사람 욕심을 내도 화를 당하는 듯해. 돈 때문에 어린 자식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더군. 모시치는 그런 것을 아주 싫어했어. 현실에서는 아무리 괴로워도 참지. 참지 못하고 상대를 죽이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미야베 미유키 에도시대 소설에서는 언제나 마음을 잘 다스려라 하는 것 같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뿐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도.
*더하는 말
예전에 에도시대 소설(일본소설이라고 해야겠군)을 보면서, 다리 이름과 다리라는 말이 있는데 왜 또 다리를 쓸까 했어. 본래도 그렇게 쓰였을까 했지. 강이나 산도 그래. 산은 많이 못 봤지만. 도미오카바시에는 다리라는 말도 있어. 이것은 도미오카(富岡) 다리(橋)야. 우리말로 옮길 때 도미오카 다리가 아닌, 도미오카바시 다리라고 하기로 약속한 걸까(나는 이것을 보면서 다리 다리라고 생각해) 후지산은 후지산인데. 이건 일본말로도 후지야마가 아닌 후지산이라 하더군. 일본 지역 이름에 강(川)이나 다리(橋)가 들어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산(山)도 들어갈지도.
희선
☆―
“가난뱅이는 일하고 또 일하고,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더욱이 너는 몸집이 크니 제대로 된 인연은 없을 게다. 스스로 벌어서 잘 살아야 한다고, 저는 줄곧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30쪽)
“오늘 밤에는 어디를 가도, 도깨비들은 바늘방석이지요. 도깨비는 밖으로, 도깨비는 밖으로, 하면서 콩으로 팔매질을 당하고 도망쳐 나와야 하니까요. 그러면 너무 가엾다면서, 주인장이 도깨비들에게 술을 대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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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도깨비한테도 갈 곳이 필요하다. (390~391쪽)
미미여사의 사회성 짙은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로 에도 이야기를 담고 있는 미야베 월드 2막이다. 예약해 놓고 기다리다 받은 새로운 신작 '맏물이야기' 맏물이 무슨 뜻일까 보니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로 그해의 맨 처음에 나는 것으로 이것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여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맏물이야기' 각 계절의 식자재를 기이한 이야기가 합쳐진 오캇피키 (치안을 담당했던 하급 관리인 요리키나 도신 밑에서 범인의 수색, 체포를 맡았던 직책)란 직업을 가진 '모시치' 인물의 활약상을 담고 있는 마음 따뜻한 에도 이야기다.
모시치는 혼조 후카가와 일대를 책임지고 있으며 그에게는 두 명의 부하가 그를 도와주고 있다. 곤조와 이토키치로 모시치를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나름의 생업이 따로 있다. 곤조는 자신이 사는 공동 주택의 관리인을 도와주고 있고, 이도키치는 고쿠라쿠유라 목욕탕에서 일을 하고 있다.
발가벗겨 상태로 물에 빠져 죽은 여자의 죽음을 다룬 오세이 살해 사건...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라 가족 한 사람이 아프자 불안함에 안정적인 생활을 꿈꾼 여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루고 있다. 길에서 사는 집 없는 아이들 다섯 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뱅어의 눈... 세상에 악마적인 행동을 태연히 즐기는 솔직히 이런 인물이 지금 세상에 있다면 엄한 처벌을 넘어 사형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 이야기다. 엄청난 금액을 주고 기다랑어를 사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본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건을 다룬 천 냥짜리 기다랑어... 이길 수 없는 사람?으로 인해 안타까운 설움을 가진 부부가 가지지 말아야 할 과한 욕심을 부린 이야기다. 화려한 문양의 기모노를 좋아하는 여자와 맞선을 앞둔 남자가 갑자기 살해를 당한다. 그 남자를 살해한 사람은 혈육이다. 본가를 떠나 혼자 지낸 남자가 죽음을 맞게 된 이야기 다로 감, 지로 감, 부엌에 있던 자반 한 손이 없어지며 범인이라고 자백한 여인이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 얼어붙은 달...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상대에 대한 실체를 보고 자신이 갖고 있던 마음을 놓아버린 이야기다. 세상에는 남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영험한 능력을 가졌기에 나이와 상관없는 대우를 받는 인물이 하나의 사건을 의뢰받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원한의 뿌리... 솔직히 항상 그렇듯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이를 이용하려는 인물들이 더 나쁘다. 오캇피키인 모시치는 다로 감, 지로 감부터 남다른 능력을 보이며 영감 스님이란 이야기를 듣는 소년 니치도에 불쾌한 감정을 가진다. 허나 이 감정의 배경에는 니치도가 또래와 같은 모습으로 생활하기 바라는 그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모시치의 부하인 이토토키는 우연히 유채꽃밭에서 한 여인을 보고 첫 눈에 반해 버린다. 우연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모시치에게 털어놓았다가 사이가 어긋나고 만다. 이제 스물 살 청년의 열병과도 같은 사랑에는 그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데 영감 스님 니치도와 모시치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는 이토키치의 사랑,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사람이 있다. 그로인해 상대는 고통을 받는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밝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해 경고를 보낸다는 것이 잘못된다. 좋은 사람의 안타깝게도 죄를 짓게 된 독, 번성하는 방물 가게 주인 내외는 그 옛날 다른 곳으로 보낸 오라버니를 불러들인다. 허나 그가 진짜 오라버니란 느낌을 주지 못해 사건을 의뢰하는 도깨비는 밖으로... 순간의 질투로 인해 잘못된 행동을 할 수가 있다. 허나 돌이키지 못하는 실수도 있다. 실수의 업보는 아니더라도 그에 합당한 죗값이라고 할 수 있는 벌을 받은 사람이 얽힌 사건을 다른 이야기로 끝이 난다.
맏물이야기에는 총 9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건을 해결하는 오캇피키 모시치와 그의 부하 곤조, 이토키치의 나름의 활약이 있고 영감 스님인 니치도, 사건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 유부초밥 주인아저씨의 존재감이 있다. 분명 전직 무사였던 그를 건드리지 않는 인물과는 어떤 관계일지 앞으로 모시치가 접하게 될 사건이 더 나올 거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탐정 모시치는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다. 사람이 가진 본질을 파악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옳고 정의롭게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려는 모시치란 인물이 있어 재밌었던 '맏물이야기' 미야베 월드 제 2막이 가진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에도 시대를 다룬 작품들을 보면 ‘오캇피키’라는 직책명이 자주 눈에 띄곤 합니다.
작품 속 각주를 그대로 옮기면,
‘치안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인 요리키나 도신 밑에서 범인의 수색, 체포를 맡았던 직책’인데,
공식적인 관리가 아니라 민간인으로서의 성격도 강해서 비교적 운신의 폭이 자유롭고,
특히 관할 주민들과 좀더 밀착 가능한 캐릭터라 시대물 미스터리에 단골손님이 된 듯 합니다.
주인공 모시치는 혼조 후카가와 일대를 맡고 있으며 일명 ‘에코인의 나리’라고도 불리는데,
5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관할지역에서 벌어지는 대소사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인물입니다.
사실 모시치는 시리즈물의 주인공치곤 너무 소탈해서 아쉬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시치 시리즈’ 첫 편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나 이 작품 모두
뭔가 대단한 미스터리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충격적인 반전을 다룬 것도 아닌,
말하자면,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나 평범한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라
어쩌면 모시치 같은 인물이 훨씬 더 주인공에 잘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가 일대에 떠도는 7개의 불가사의를 소재로 삼았다면,
‘맏물 이야기’는 절기(節氣), 음식, 기구한 사연 등이 버무려진 현실적 일상 미스터리입니다.
초봄의 뱅어, 여름의 가다랑어, 가을의 단감 등 다양함 음식들이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고,
절기마다 행해지는 전통적인 놀이나 관습들도 미스터리 곳곳에 흥미롭게 배치돼있습니다.
모시치가 마주친 사건들 역시 소소한 해프닝부터 잔혹한 살인사건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나름 기구하고 불가피한 사연들이 깔려 있어서 안쓰러움을 자아냅니다.
그래서인지 사건을 해결한 모시치가 통쾌해 하거나 한바탕 웃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돈도, 권력도, 비빌 언덕도 없는 서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의지가 되는 모시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혼조 후카가와의 수호신 같은 존재입니다.
영웅적인 주인공은 아니지만 모시치는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맏물 이야기’는 미스터리로서의 충격적인 재미는 상대적으로 덜 한 편이지만,
모시치라는 인물을 통해 에도 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보는 일은
개인적으로는 어지간한 미스터리 읽기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시치 만큼 흥미를 유발하는 세 명의 인물이 있는데,
영험한 능력을 지닌 기도사로 추앙받는(하지만 모시치에겐 영 못마땅한) 10살 소년 니치도,
전직 무사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다리 위에서 밤새 유부초밥을 파는 수상쩍은 노점 주인,
그리고 그 노점 주인과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어 보이는 폭력배 두목 가쓰조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아홉 편의 단편 대부분에 게스트처럼 잠깐씩만 등장할 뿐이지만,
모시치와 이런저런 인연을 맺으면서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킵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1994년부터 2003년에 걸쳐 몇몇 잡지를 통해 연재됐다고 하는데,
덕분에 미야베 미유키의 10년에 걸친 성장과 변화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다만, “아, 이 시리즈는 이렇게 끝나는구나.”라는 제대로 된 마침표 없이
모시치 시리즈가 더는 이어지지 않은 점은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모시치를 비롯 ‘흥미유발자’인 세 인물에게 제대로 된 엔딩을 부여할 수 있는
멋진 후속작(이왕이면 장편이면 최고겠지만)이 뒤늦게라도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 수록작이 2003년에 발표됐으니 벌써 16년이나 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시치 시리즈’의 멋진 완결을 바라는 건 저만의 기대는 아닐 겁니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와 더불어 NHK 드라마 [모시치의 사건부]로 제작되었다.는 편집후기에도 나와있지만 맨처음은 1994년 ( 소설 역사가도)에 연재되었던 것을 한권으로 묶었다가 이후 계속 연재를 하면서 시리즈로 나가려고 했던 의도가 잡지가 페간되면서 중단되었다가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몇편이 더추가 되고 하면서 2013년 합본이 나왔다는 긴역사가 있다.
오갓피키 모시치와 그부하들이 혼조 후카가와를 관리하면서 일어나는 아홉가지이야기를 다루었다.
각편이 시작될때마다 그계절에 해당하는 맨처음 음식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을 어떻게 먹고 그시절의 풍습들이 소개되면서 사건과 연결지어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심야식당처럼 마을 다리 기슭에 열리는 유부초밥 행상이 생기고 그곳의 주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보인다는 부하들의 이야기를 듣게된다. 그곳에 들리게 된 모시치는 주인장의 음식솜씨에 반하게 되고 종종 사건이 풀리지 않을때 들려서 잡담같은 이야기속에서 사건의 힌트를 얻거나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강에서 나체로 발견된 여인, 이나리 신사에 발견된 아이들의 시체 ,가다랑어회를 천냥을 주고 사려는 상인,어느날 사라져 버린 여자 일꾼 이야기, 전남편의 시아버지 생일잔치에 죽은 전처 등등
기묘한 살해사건, 실종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사건보다 더욱 재미있는것은 그시대의 일본의 풍습과 음식소개 그리고 유부초밥가게 주인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음식들 소개가 더욱 더 눈길을 끈다.
모시치가 입맛을 다시면서 연신 먹어대는 문장을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가고 " 나도 한번 먹어봤으면" 이런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가령 " 이런 봄눈이 전부 강으로 떨어지고, 바다로 흘러가서 하룻밤이 지나면 뱅어가 되는 겁니다. "
뱅어가 너무 작아서 못먹는다는 부하에게
"의외로 담이 작은 녀석이로군. 그건 살아있는 생선을 먹는게 아니다. 봄을 삼키는 것이지. "
" 마누라를 전당포에 잡혀서라도 먹고 싶다고들 하는 제철 가다랑어다. "
새해가 지나고 정월 칠일째에 먹는 나나쿠사죽( 일곱종류의 채소를 넣어 끊인 죽)은 과음과 과식을 한
사람들이 속을 다스리는 날
우리의 동지와는 절기도 조금다르고 하는 스타일도 다르지만 액운을 쫓는다는 목적은 같은 " 콩뿌리기'
입춘 전날 밤에 액운을 쫓기 위해 콩을 뿌리는 행사, " 도깨비는 밖으로 복은 안으로 라고 소리치면 , 집안에 있던 도깨비가 밖으로 도망간다고 한다.
이처럼 절기에 따라 맛난 음식과 그것에 얽힌 풍습은 우리네 조상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이나 옛날이나 서민들의 삶은 어찌이리 비슷한지, 없어서 슬프고 , 때론 가진것을 지키기위해서 서로에게 등을 돌릴수 밖에 없는 사연이들이 마음에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그속에서 사건을 풀이하는 모시치는 벌을 주고 범인을 찾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죄를 짓는 것도 사람이고 죄를 받는 것도 사람이기에 그속에서 사람의 감정이 안다치고,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벌하고 사죄하는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어쩌면 모시치같은 관리가 있는 혼조 후카가와 가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 를 경멸하지 않고,측은지심을 알고 있는 관리,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뱅이는 일하고 또 일하고,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특히 너는 그렇게 몸집이 크니 제대로 된 인연은 없을 게다. 스스로 벌어서 잘 살아야 한다고, 저는 줄곧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세이도 여자요."
"여자라도, 여자 같은 꿈을 꾸면 살아갈 수 없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 말에는 모시치도 말문이 막혔다.
"오토지로에게는 화가 나지 않소?"
"화내 봐야 별 수 없지요." 이노스케는 입 끝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오세이는, 내가 오토지로 씨와 혼인하면 아버지도 조금은 나은 생활을 하게 해드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요. 분명히 오토지로라는 사람은 가게 일꾼입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오세이가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을 꾸고 만 것도 어쩔 수 없어요. 저는 말입니다, 대장님, 오세이가 죽을 때까지 그런 즐거운 꿈을 꿀 수 있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녀석이 스스로 물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좋은 꿈을 꾸면서 살해되었다고 하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해요. 상대 남자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오세이가 잘못한 거니까요."
완전히 체념한 말투였다.
30-31쪽 [오세이 살해 사건] 중에서
"우동 국물이 아니라 된장으로 국물을 낸 수제비라. 하지만 얼핏 보아서는 이것도 순뭇국으로 보이는구려."
"둥글고 흰 것이 떠 있을 뿐이니까요"하고 주인도 말했다. "맛을 보지 않으면 순무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대개 수제비는 우동 국물 속에 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군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결론을 내려 버리겠지."
그렇게 말했을 때, 모시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겉모습만 보고 결론을 내려 버린다. 수제비는 우동 국물. 된장 속에 떠 있으면 순무라고.
모시치는 입을 딱 벌렸다.
46-47쪽 [오세이 살해 사건] 중에서
아이를 다섯 명이나 죽여 놓고 본인은 태연한 얼굴로 밥을 먹거나 바느질을 배우거나 베개를 높이고 잠들거나 한다-.
문득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유라는 아가씨의 눈에는 이나리 신사에 숨어 살던 아이들이 초간장이 뿌려지고도 아직 팔딱팔딱 움직이는 뱅어처럼 보일 뿐이었던 게 아닐까. 예를 들면 그들이 바라보거나 그들을 바라보아도, 뱅어의 점 같은 눈이 나를 바라보았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감정밖에 느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산채로 꿀떡 삼켜 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82쪽 [뱅어의 눈] 중에서
지금 오센의 마음속에는 긴자의 큰 저울보다도 더 큰 저울이 있고 오른쪽 접시에는 그녀의 꿈이, 왼쪽 접시에는 경계심이 올려져 있다. 저울은 계속해서 흔들흔들 흔들리고, 오른쪽이 올라갔다 왼쪽이 올라갔다 하고 있다. 모시치에게는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102쪽 [천 냥짜리 가다랑어] 중에서
"그럼 그 천 냥은 무슨 속셈이었나? 오하루의 집에 베풀어 줄 생각이었나? 아니면 그런 이상한 짓을 저질러서 그 집과 인연을 맺고 싶었나? 갑자기 찾아와서 오하루, 네 친부모는 우리다, 라고 말하고 사과할 용기는 없었나? 그래서 잔재주를 부리려고 한겐가?"
이세야의 주인은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그 애가 행복해지기를 바랐습니다. 행상을 다니는 생선 장수의 딸이라니, 너무 불쌍해요 -"
"행상꾼이 어디가 나쁘단 말인가? 오하루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네. 그 애는 자네들의 아이가 아니야. 자네들의 아기는 십삼년 전에 버려졌을 때 죽었네. 몇 천 냔을 내도, 도로 사 올 수는 없어."
123쪽 [천 냥짜리 가다랑어]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꼬마가 무슨 나쁜 기운을 알겠나"하고 모시치는 내뱉었다.
아사타로가 세이지로를 죽였을 때, 거기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먹고살기도 힘든 백성의 눈에, 에도 아가씨 오린의 그 화려한 옷이 어떻게 비쳤을까. 내일 먹을 밥도 없어서 머리를 숙이러 온 형에게 빌려 줄 돈은 없다고 말하면서. 먹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정교한 세공을 한 마른 과자 상자를 선물로 내미는 동생을, 아사타로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형제가 아니었으며 좋았을 텐데.'
그런 마음을, 고작해야 열 살짜리 꼬마가 어떻게 알겠는가.
160-161쪽 [다로 감, 지로 감] 중에서
오킨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모시치가 이상하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지껄였다.
"어머나, 당연히 돌아오겠지요. 우리 재산을 물려받는 건데요. 하나카와도의 뱃집 주인 따위로 끝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인생이잖아요."
이런 점에서 오킨의 이름이 그 실체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고 모시치는 생각했다. 마쓰이야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단순명쾌하다면, 그들이 말하는 '매끄럽고 사이좋다'는 것도 그다지 믿을만한 것은 못 될 성싶다. 중요한 것은 돈, 많은 재산이 이어 주고 있을 뿐인 인연이 아닐까.
384쪽 [도깨비는 밖으로] 중에서
자신들의 사정으로 놀고먹게 해 주어, 히사이치에게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기회를 빼앗아 왔다는 사정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잘라내고 무일푼으로 내쫓고도 천연덕스러웠으리라.
도깨비는 바깥으로.
삼십년 전, 주하치로는 그렇게 생가에서 쫓겨났다. 오 년 전에 오스에가 죽었을 때, 히사이치는 이번에는 자신이 '도깨비는 바깥'으로 쫓겨날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책략을 꾸몄다.
모시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주하치로는 비록 생각에서 쫓겨났지만 양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유부초밥 가게 주인이 마련해 둔 긴 의자처럼, 넓은 세상에는 쫓겨난 도깨비에게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428쪽 [도깨비는 밖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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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나 실종 혹은 도깨비 같은 것들이 일으키는 사건과 사고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기이한 일 즉 미스테리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진짜 미스터리는 사람의 마음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한편으로 돈 위에 세운 관계와 팔자를 자기 것으로 삼아 살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
미야베 미유키는 사건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을 묘사한다.
그래서 그가 쓰는 작품은 재미가 있으며 공감을 부른다.
그럴만한 깊이가 있기에 많은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사랑한다.
나 역시.
휴가 길에 그의 작품 특히 에도시대와 당시의 음식 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이 책, [맏물 이야기]를 택한 것은 너무나 좋은 그리고 옳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