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暗 짐승 獸 한자로는 암수라고 읽는 것을 일본어로 하면 안주라고 읽힌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어느것과도 맞지 않은 안주. 그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고 이름붙여진 에도시리즈는 기이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괴이] - [흑백] -[안주] 이렇게 세편을 모아서 시리즈 속의 변조괴담 시리즈라는 말을 붙여 놓고 있는데 그만큼 연결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흑백과 안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흑백은 조금 더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고 안주는 조금은 더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 다를까. 흑백에서의 주인공이 그대로 연결되기도 한다.
약혼자가 죽고 그 사건을 감당하지 못해서 친척집에 오게 된 오치카. 주인집 아가씨라기보다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있겠다고 하며 열심히 일을 한다. 어느날 주인인 숙부를 대신해 손님을 맞이한 오치카는 그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거기에서 착안을 한 친척은 괴상한 이야기를 듣는 대회를 연다며 이상한 이야기를 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결국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오치카의 임무가 되어 버렸는데 사람들은 자신들만 알고 있었던 괴이하면서도 슬프고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그녀에게 말해 놓는다. 이 곳의 일은 말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는 모토에 맞게 그녀에게 털어놓은 사람들은 가뿐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는데 그 일이 잘못되어 자신마저도 위험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었다.
여전히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있는 그녀. 사건에서 얽혔던 인연으로 만난 남자와 잘 되기를 바랐으나 그 일의 결론은 아직 등장하기에는 이른 듯 하다. 단지 그쪽에서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오치카는 섣불리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와 그녀가 꽃구경을 나서게 된다.
음식점에서 이웃을 만나서 인사를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오치카. 숙모님게 사연을 물어보지만 그집 딸이 결혼을 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남들보다 늦은 결혼, 거기다 결혼이 여러번 성사될 듯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미루어보아 분명 무언가 있음에 틀림없다. 우여곡절 끝에 조용한 결혼식이 치뤄지고 그 집 안주인은 오치카에게 와서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원래 쌍둥이였다는 딸, 그리고 그 딸은 자신이 낳은 딸은 아니라면서 오래전 이야기부터 풀어놓게 된다. 어떤 이유로 그 딸은 이곳에 오게 된 것이고 무엇때문에 결혼이 늦어지게 된 것일까.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사소한 충돌에서도 쌍방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일을 왜곡하며 주장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이득이 되는 일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일을 그르치면 시종 변명을 늘어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옹졸하고, 교활하고, 한심하다. 그런 주제에 욕심은 많다. (358p)
한 사람의 저주가 얼마나 큰 힘을 가져 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손녀인데 그런 저주는 조금은 심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영혼에게 너무 고분고분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 또한 생기게 된다. 처음부터 대등하게 맞선다면 오히려 그렇게까지 끌려오는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책의 제목과 똑같은 이야기 <안주>는 왠지 다 읽은 후에 마음이 짠해진다.
[흑백]에서의 집이 강력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을 다 삼키는 그런 저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안주]에서의 집은 그 형상대로가 아니라 그 속에 살고있는 안주 구로스케로 인해서 더욱 따스함을 준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사람들의 곁에 있고 싶었던 구로스케,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실체를 가지고 있고 단모음밖에 말하지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던 구로스케. 그녀석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부부가 있었으니 그렇게 행복했을 것이다. 수국이 많이 피어있어서 수국의 집이라고 불리웠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집에 사람이 살게 되니 자신도 반가와서 더욱 그들의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석의 마음을 알고 같이 살았지만 그녀석을 위해서 그 곳을 떠난 주인부부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혼자 남겨질 그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고.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라고 해서 무조건 나븐 것이 아님을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계속 보아왔다. 무언가 원망을 하거나 또는 할말이 있거나 또는 자신들이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있다거나, 괴이한 존재는 저마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한권씩 읽어갈 때마다 이야기 속에 숨겨졌던 존재들이 살아이서 이 곁에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존재들이 무서운 경우라면 다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버렸으면 하지만 왠지 마음이 짠하거나 귀여운 존재라면 그녀석들은 이 근처에 남아서 나를 좀 도와주어도 좋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도 여러번 하게 되기도 한다.
아빠가 겉표지를 보더니 물으신다. 안주냐? 아빠 그 안주가 아니라 안주라고... 아, 그 안주.. 나 또한 몰랐다. 안주가 어떤 안주인지 말이다. 책을 한참을 읽고야 알았다. 안주가 어두울 暗에 짐승 獸자를 써서 한자로는 암수라고 읽는 것을 일본어로 하면 안주라고 읽힌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어느것과도 맞지 않은 안주. 그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고 이름붙여진 에도시리즈는 기이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괴이] - [흑백] -[안주] 이렇게 세편을 모아서 시리즈 속의 변조괴담 시리즈라는 말을 붙여 놓고 있는데 그만큼 연결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흑백과 안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흑백은 조금 더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있고 안주는 조금은 더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 다를까. 흑백에서의 주인공이 그대로 연결되기도 한다.
약혼자가 죽고 그 사건을 감당하지 못해서 친척집에 오게 된 오치카. 주인집 아가씨라기보다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있겠다고 하며 열심히 일을 한다. 어느날 주인인 숙부를 대신해 손님을 맞이한 오치카는 그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거기에서 착안을 한 친척은 괴상한 이야기를 듣는 대회를 연다며 이상한 이야기를 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결국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오치카의 임무가 되어 버렸는데 사람들은 자신들만 알고 있었던 괴이하면서도 슬프고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그녀에게 말해 놓는다. 이 곳의 일은 말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는 모토에 맞게 그녀에게 털어놓은 사람들은 가뿐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는데 그 일이 잘못되어 자신마저도 위험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었다.
여전히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있는 그녀. 사건에서 얽혔던 인연으로 만난 남자와 잘 되기를 바랐으나 그 일의 결론은 아직 등장하기에는 이른 듯 하다. 단지 그쪽에서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오치카는 섣불리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와 그녀가 꽃구경을 나서게 된다.
음식점에서 이웃을 만나서 인사를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오치카. 숙모님게 사연을 물어보지만 그집 딸이 결혼을 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남들보다 늦은 결혼, 거기다 결혼이 여러번 성사될 듯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미루어보아 분명 무언가 있음에 틀림없다. 우여곡절 끝에 조용한 결혼식이 치뤄지고 그 집 안주인은 오치카에게 와서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원래 쌍둥이였다는 딸, 그리고 그 딸은 자신이 낳은 딸은 아니라면서 오래전 이야기부터 풀어놓게 된다. 어떤 이유로 그 딸은 이곳에 오게 된 것이고 무엇때문에 결혼이 늦어지게 된 것일까.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사소한 충돌에서도 쌍방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일을 왜곡하며 주장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이득이 되는 일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일을 그르치면 시종 변명을 늘어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옹졸하고, 교활하고, 한심하다. 그런 주제에 욕심은 많다. (358p)
한 사람의 저주가 얼마나 큰 힘을 가져 올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손녀인데 그런 저주는 조금은 심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영혼에게 너무 고분고분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 또한 생기게 된다. 처음부터 대등하게 맞선다면 오히려 그렇게까지 끌려오는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책의 제목과 똑같은 이야기 <안주>는 왠지 다 읽은 후에 마음이 짠해진다.
[흑백]에서의 집이 강력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을 다 삼키는 그런 저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안주]에서의 집은 그 형상대로가 아니라 그 속에 살고있는 안주 구로스케로 인해서 더욱 따스함을 준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사람들의 곁에 있고 싶었던 구로스케,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실체를 가지고 있고 단모음밖에 말하지 못하지만 그렇게라라도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던 구로스케. 그녀석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부부가 있었으니 그렇게 행복했을 것이다. 수국이 많이 피어있어서 수국의 집이라고 불리웠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집에 사람이 살게 되니 자신도 반가와서 더욱 그들의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석의 마음을 알고 같이 살았지만 그녀석을 위해서 그곳을 떠난 주인부부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혼자 남겨질 그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고.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라고 해서 무조건 나븐 것이 아님을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계속 보아왔다. 무언가 원망을 하거나 또는 할말이 있거나 또는 자신들이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있다거나, 괴이한 존재는 저마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한권씩 읽어갈 때마다 이야기속에 숨겨졌던 존재들이 살아이서 이 곁에서 움직이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존재들이 무서운 경우라면 다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버렸으면 하지만 왠지 마음이 짠하거나 귀여운 존재라면 그녀석들은 이 근처에 남아서 나를 좀 도와주어도 좋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도 여러번 하게 되기도 한다.
하루내내 봤던 《흑백》은 그것에 맞춰서 바로 쓰려고 애썼는데, 사흘 동안 본 《안주》는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몇 시간을 그냥 버렸다. 책을 보고 그것에 대해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미시마야의 흑백방에서 이루어지는 별난 괴담 대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미시마야의 조카딸인 오치카다. 《흑백》에서는 오치카한테 어떤 일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하고 나중에야 그 일이 나오는데, 《안주》에서는 바로 나왔다. 이게 다음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순서 관계없이 봐도 좋다는 말이 있어서 이런 말을 썼다. 하지만 잘 모르고 《안주》를 보고, 《흑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도 있으리라고 본다. 순서 관계없이 봐도 괜찮다는 말은 그런 사람을 위한 말이 아닌가 싶다. 모르고 봤다가 나중에 알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니까 말이다.
오치카는 그저 신기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인데, 그것을 해결까지 해준다고 여긴 사람도 있었다. 본래 이야기가 잘못 전달될 수 있기는 할 것이다. 아니, 해결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말로 해결이 되기도 했다. 첫번째 이야기 <달아나는 물>을 보니, 《나츠메 우인장》이 떠올랐다. 여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필요할 때는 신으로 모셨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신을 잊어버렸다. 신을 믿는 마지막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신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달아나는 물>에 나오는 신은 마음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 사람들한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랬지만 결국 헤이타와 본래 살던 곳에서 쫓겨났다. 물을 먹어서 해를 입지 않게 해주는 오히데리 씨는 헤이타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헤이타 말을 듣고 신한테 부탁해 보자고 한 사람이 오치카다. 어떤 부탁이냐 하면 우물물을 마르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물이 많은 곳에서는 오히데리 씨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물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헤이타는 한동안 미시마야에 있으면서 견습점원 신타와 친구가 되었는데, 오히데리 씨를 위해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오히데리 씨 힘이 도움이 되는 곳으로.
두번째 이야기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는 사람 마음이 만들어 낸 저주와 같았다. 나쁜 것을 쫓아 내준다는 부적과도 같은 사람 오카쓰를 썼다. 오카쓰는 천연두에 걸렸던 자국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이때 사람들은 그런 사람한테 귀신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오치카는 오카쓰한테 관심을 가지고 자기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오카쓰는 미시마야에 일하는 사람으로 들어갔다. 오치카는 흑백방에서는 듣고 버리고, 이야기하고 버리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관계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짚신 가게 에치고야의 세이타로와 혼담 이야기가 오간 일이 있었다. 오치카는 아직도 자기 마음속에 어둠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도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기는 했다. 그 사람은 미시마야에서 견습점원으로 있는 신타가 다니는 습자소에서 만난 친구 나오타로의 예전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였다. 좀 복잡하구나.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세번째 이야기 <안주>는 좀 슬프다. 나는 슬프게 느꼈다. 무엇이든 이 세상에 나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말을 생각하게 했다. 사람을 그리워하던 집이 만들어 낸 검은 덩어리(구로스케)는 사람이 그 집에 오자 살아가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구로스케는 사람을 찾아왔다. 그 집에 살던 사람은 구로스케를 위해서 그 집에서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집이 불에 타서 없어진 것과 함께 구로스케도 없어졌다. <으르렁 거리는 부처>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한식구를 죽게 하려고 하고, 그 사람이 마을에 복수하는 이야기이다. 오치카는 앞으로도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는 나이 들어가는 오치카를 그리겠다고 했다.
희선
☆―
멀리 떨어져서 살더라도 늘 너를 생각하고 있을 게다. 달이 뜨면, 아아, 이 달을 구로스케도 바라보고 있겠지, 하고 생각할 게다. 구로스케는 노래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꽃이 피면, 구로스케는 꽃 속에서 놀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비가 내리면, 구로스케는 집 어딘가에서 이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게다.
얘야, 구로스케.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게다. 하지만 이제는 외톨이가 아니란다. 나와 하쓰네는 네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441쪽)
편집자 후기에도 '진화'에 대해 적혀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은 분명 『흑백』에서 변했다 ㅡ 그래서 '변조 괴담'이다. 여기서 나는 하나를 더 생각한다. 『흑백』에 이은 이 『안주(暗獸)』에 이르러서 한 번 더 진화(란 표현이 과연 적절할는지는 모르겠다)했다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인 주인공 오치카를 보면 확연히 알게 된다. 전작이 어딘지 모르게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인상이었다면 이번에는 무대가 되는 미시마야의 '흑백의 방'에서 더 한 발짝 내딛는다. 바깥이란 현실로. 그러니까 어떤 보이지 않는 필터를 통해 이야기되었던 것이 지금은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언제라도 그것을 열고서 목전에 할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꼭 메세나의 성공사례 같다). 다만 작가의 말대로 '괴기소설이면서 이렇게 귀여운 이야기뿐인 거야?' 하는 기분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표제작 「안주」를 치워놓으면 외려 전작만큼 혹은 전작보다 더 사람들의 '다른 마음'이 흉물스레 전해져오니까. 그런고로 흑백의 방의 이야기는, 듣고 버리고, 이야기하고 버리고 ㅡ 이긴 하지만 인간의 마음만은 남게 된다. 조금씩 변하면서, 이따금 똘똘 뭉친 정념이 되기도 하면서. 사람을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있어 사람은 그것을 없애는 존재이긴 하지만, 사람 자체가 먼저 나서서 그리움과 미움이란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으니까 말이지 ㅡ 자꾸만 흘레붙는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니까. 얄궂다면 얄궂은 얘기다.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록작 「달아나는 물」과 「안주」에서 그런 애틋한 뭔가를 접할 수 있다. 두 작품에서만큼은 악과 미움에서 선 혹은 사랑으로 그 테마의 이동이 이루어진 듯하다. 물론 여기에도 유령이나 귀신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쩐지 산뜻함이 느껴진다(심지어 나는 이야기가 '맛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 기분이기도 하고. 「신이든 인간이든 대개 마음이 있는 존재라면 언제가 가장 쓸쓸할까 ㅡ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란다.」(「달아나는 물」) 그런가하면 「안주」에는 구로스케라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 옆에서는 살 수 없는 기교한 생명'이 등장해 신자에몬 할아버지를 울리기도 한다(여기서는 냉혈한인 나도 좀 울컥했다). 중요한 건 '생물'이라는 점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유령이 아니다. 게다가 귀엽다. 그러나 가까이하면 인간의 독한 기운에 쐬어 위태롭게 된다. 내 추측이고 또 책을 읽어야 알 테지만, 좋아하면서도 다가갈 수 없는 그 마음의 정체는 수국 저택에서 도망하지 못하고 죽고 만 하녀의 아이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두운 곳에 외톨이로 살고 있는 생물이라는 의미로 어둡다는 뜻의 '암(暗)'에 짐승을 뜻하는 '수(獸)'를 더해 직접 만든 단어라고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고 만다.
이쯤 되면 말할 것도 없이(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와 「으르렁거리는 부처」는 앞의 두 이야기에 비해 '무서운' 쪽에 속하게 되는데 나는 「덤불...」 쪽이 조금 더 그렇다고 느낀다. 바늘 가게의 장남이 쌍둥이(이름은 오하나와 오우메라고 한다)를 낳는다. 그런데 상인들은 쌍둥이는 집안을 나눈다, 재산을 나눈다고 하여 꺼린다. 결국 대장 노릇을 하는 어머니의 노기에 밀려 쌍둥이 중 하나를 차남의 양녀로 보내 분가하게 하고 분가한 아이는 절대 본가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본가의 아이(오하나)가 죽은 후다. 장남과 차남이 본가와 분가를 합치려는 계획을 세우자 죽은 아이의 귀신이 나타난다. 그 계획을 포기하자 이번엔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오우메를 지키기 위해 인형사를 고용해서(여기서부터 섬뜩해진다) 본가에 두기로 하고 오우메가 하는 것은 밥 먹는 것부터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인형에게도 똑같이 해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둘의 처우가 다르면 인형의 얼굴과 몸뚱이에 바늘이 꽂힌다. 그에 따라 오우메의 몸에도 새빨간 습진이 생긴다. 인형에 꽂힌 바늘이 있던 부분에 똑같이……. 미야베 미유키는 일체의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오우메의 습진이 생긴 자리에 희미하게 들었던 멍을 통해 인간이란 생물이 좇는 '다른 목적'과 '다른 마음'을 오롯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오우메 본인의 마음까지도(처음 들었을 때의 멍은 습진에서 나타나는 증상과 비슷하다, 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ㅡ 뭐, 읽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겠다만. 비교적 짧게 쓰는 것이 왠지 미안해지지만 「으르렁거리는 부처」는 마을의 관습이란 것을 차용한 거라고 본다. 고립된 산간 마을의 무시무시한 관습 ㅡ 같은 거라면 다른 곳에서도 접한 적이 있는 이야기지만(마쓰모토 세이초의 논픽션에서였던가) 이 소설에서는 다르다. 관습이란 형태를 빌려 몰래 일을 꾸미는 인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습 자체보다 더 무섭다…….
각설하고, 맨 처음 이 『안주』가 진화하고(며) 변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미시마야의 수수께끼 간판 아가씨' 오치카의 모습에서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발전에서도 그렇다. 새롭게 나타난 오카쓰란 여인과 덜 익은 호리병박 아오노 선생의 등장으로 왠지 모르게 미시마야 변조 괴담이 한층 더 와글와글해질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가 습자소 선생(아오노)이 지금부터 오치카와 어떤 관계가 될지는 비밀이라고 한데다가 ㅡ 그럼 『흑백』의 나막신 가게 아들은 팽(烹) 당하는 건가 ㅡ 흑백의 방을 만든 미시마야의 주인 이헤에는 이것이 '백 가지 괴담 대회'라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흑백의 방을 향한 ㅡ 흑백의 방에서 출발한 여정에 텐징 노르가이처럼 굳건한 조력자가 될지 그저 그런 빠꼼이가 될지는 제쳐두고라도(굳이 말할 것도 없지만), '옛날이야기' 속에서의 사람과 사람이 공유하는 마음과 연대감이 지금의 소위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보이는 양상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는 이 에도 시대물을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계속하자 ㅡ 더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여기와 여기와 여기를 보자.
덧) 『안주』는 독자 펀드로 탄생한 소중한 책이다. 독자들에 의해 십시일반으로 모인 5천만 원(열흘 만에!)이란 마케팅 비용은 일대 사건이었고, 이것은 출판사에서 만든 같은 금액의 것과는 의미도 다르고 차원도 다르다. 그야말로 '원기옥'이다.
덧) 원기옥 :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사용하는 것으로 손을 들고 생물체들의 기를 모아서 쏘는 기술. 그만큼 협력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이에 따른 신조어로는 '베기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