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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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의 시대

초연결 세계에 격리된 우리들

리뷰 총점 9.0 (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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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 사회학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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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고립의 시대에는 누구나 외롭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r*****2 | 2022.05.16 리뷰제목
단연코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다. 주변인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책을 추천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경제학을 넘어선 인문학적, 사회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시대의 자화상이다. 외로운 시대, 고립된 시대에 대한 자화상이자 경고이다. 작가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리뷰제목

 

단연코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다. 주변인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책을 추천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경제학을 넘어선 인문학적, 사회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시대의 자화상이다. 외로운 시대, 고립된 시대에 대한 자화상이자 경고이다. 작가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는지 구체적인 비전까지 제공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가 모르는 새 어떤 사람들은 '고립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 고립을 해체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인류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자극한다.

 

도입부부터 책은 고립의 경제적 대가에 대해 말하며 우리가 자의든, 타의든 고립의 시대를 살며 지불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희생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바이러스에 의해, 국가에 의해, 파편화된 사회로 인해 고립되며 무엇을 빼앗기고 있는가? 작가는 우리가 잃는 것이 단순한 심리적 안정성이나 친구 뿐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건강", "우리의 미래"를 담보로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이미 각종 서적들에서 외로움이라는 심리적 상태가 건강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 논의된 바 있다. 특히 이 분야의 걸작인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라는 서적은 저명한 공중보건학자에 의해 쓰인 글이다. 구체적인 통계 수치와 질병 목록은 우리가 '외로움'의 문제를 축소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문제가 심화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작가는 '1시간에 40달러를 주고 친구를 사는' 사회에서 우리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록 그것이 다소 귀찮고, 단기적으로는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사실 그런 비용이 우리가 얻을 효용에 비해서는 크지도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서오세요, 스타벅스입니다' 라는 형식적 인사만 주고 받아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실제로 심박수가 감소하는 안정 효과를 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동네 상점의 직원과 주고받는 인사, 형식적인 문구들도 신체적 안정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한 '대화'가 길수록, 개인적일수록 그 효과는 더욱 크다.

 

게다가 놀랍게도 우리는 기계로부터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 공포 영화를 볼 때 '사람이 아닌 철제 기계 팔'이 우리 어깨를 토닥이기만 해도 우리의 심박수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는다. 이토록 인간은 조금이나마 '사회적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건강의 이점까지 얻을 수 있다. 

 

요즘 사회는 자꾸만 분열되는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는 극단적 우파로 불리는 포퓰리스트가 득세하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은 어디까지 계속될지 모르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별 것 아닌 것으로도 심각하게 갈등하며, '노키즈존'이라는 해괴한 공간은 사회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자꾸만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얼핏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는 '고립된 사람들'이 전진하고 있는 방향임은 분명하다. 작가는 고립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외로움에 절어 '진화적으로 발달한 생존본능'으로 배타적인 공격성을 갖게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외로움을 제거'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사회는 '외로움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웰빙 지수를 국가 예산안에 반영하면서 성장을 대변하는 GDP뿐만이 아닌 국민들의 웰빙 지수(성차별, 세대 갈등, 장애인 및 노년층 복지, 교육, 환경 등을 수치화)가 국가 운영의 기틀로 삼도록 했다. 뉴질랜드처럼 급진적이지는 않더라도, 이미 유럽 몇몇 국가에서는 '외로움'을 담당하는 공공부처가 생겨나고 있다. 또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각종 교육 제도 개편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점차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우리가 고립의 문제를 보다 정확히 인식하고, 이 문제가 가져오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비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차원에서 쓰였다. 고립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만드는 책이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통찰, 그리고 탄탄한 연구결과와 근거들은 고립의 문제를 낱낱이 해체한다. 그리고 여기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이 책을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립되어 있으면서 고립에 대해 무지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대응이 늦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립이 가속화된 지금, 우리는 더는 행동을 미룰 수 없다.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더 잘 알아야만 한다. 앞으로도 이 책을 주변인들에게 선물하며 고립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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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고립의 시대〉 초연결 시대에 왜 외로운 걸까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b********5 | 2023.08.14 리뷰제목
영국의 학자 노리나 허츠의 책이다. 정치경제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카테고리에 속한 책인데 제목에 이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이 책 너무 띵작 아닌가! 사회과학 서적치고는 그래서 리뷰들도 풍성하고, 리뷰의 내용들도 알찬 것 같다.   외로움이란 뭔가. 관계적, 정서적인 외로움이 1차적인 외로움이라고 저자도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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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학자 노리나 허츠의 책이다.

정치경제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카테고리에 속한 책인데 제목에 이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이 책 너무 띵작 아닌가!

사회과학 서적치고는 그래서 리뷰들도 풍성하고, 리뷰의 내용들도 알찬 것 같다.

 

외로움이란 뭔가.

관계적, 정서적인 외로움이 1차적인 외로움이라고 저자도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외로움도 크다고 작가는 말한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외롭다면, 성격을 바꿔보거나

비슷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타개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스마트폰, SNS 시대는 보이기, Showing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더 외로움을 부채질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막연하게 나도 느끼고 있는 것들이,

정치경제학자의 해박한 언어들로 표현이 되니 정말 사이다에 팩트 폭격이었다.

 

이번에 주목한 것은 범죄와 테러의 관점이었다.

얼마전에 정유정 사건이라는 게 있었고, 서울과 분당의 묻지마 칼부림 만행이있었다.

그 범죄자들은 물론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일 것이고

정서적 관계적으로 결핍이 많은 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 노리나 허츠는 말한다.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왜곡된 공상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그저 그 개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

 

너무도 묵직하고, 경제, 시사적인 이야기가 버무려진 이야기라서

이번에 간명하게 리뷰하지는 못하지만

책을 관통하고 꿰뚫고 있는 논리가 너무도 공감이 가는 거였다.

 

얼마전에 꼬꼬무에서 조승희 총기난사를 다룬 것을 본 게 불현 듯 떠올랐다.

물론 조승희는 정신적, 멘탈리티에서 뚜렷하고 병리적인 질환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그렇게 끔찍한 총기난사를 저지르고 자신도 파괴하는 비극에 이른데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이고 뿌리깊은 병폐가 없다고 볼 수 없었다.

 

이러한 일은 비단, 미국이라는 커다란 사회만의 일일까.

2의 정유정, 최원종이 앞으로는 안 나올까.

 

이 책 고립의 시대는 그러한 범죄들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학문적으로, 실증적으로 후반부에 제시하고 있었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는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담론이었기에 앞으로 찬찬히 한번 더 읽어야 겠다.

 

경찰이나 프로파일러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치인은 정치로, 기업인은 경제 활동으로,

소비자와 유권자와, 평범한 개인들은 자신만의 할 수 있는 게 분명 있었다.

 

저자의 글은 무척 통렬한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미 지난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분석하였는데,

현재의 우리나라 독자들도 일독할 가치가 크다고 생각이 들었다.

        As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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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평]고립의시대 평점10점 | c******n | 2021.11.16 리뷰제목
늘 북적북적한 시대를 살아왔는데 봉쇄되고 제한을 두고 서로간의 거리를 유지해야하는 시대를 살아가는게 서글프다. 불과 20여개월 전부터 시작된 바이러스의 영향권이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마치 바이러스를 듬뿍 배양한 공기를 뿌려대듯 우리 삶은 모든 접촉을 오염된 것으로 느끼게 할 만큼 변화되었다. 웃으며 별 일있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코로나바이러스는 학교, 직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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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북적북적한 시대를 살아왔는데 봉쇄되고 제한을 두고 서로간의 거리를 유지해야하는 시대를 살아가는게 서글프다. 불과 20여개월 전부터 시작된 바이러스의 영향권이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마치 바이러스를 듬뿍 배양한 공기를 뿌려대듯 우리 삶은 모든 접촉을 오염된 것으로 느끼게 할 만큼 변화되었다. 웃으며 별 일있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코로나바이러스는 학교, 직장은 물론이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들의 입에도 마스크를 피부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얼마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휴교는 조금씩 대면 수업이 진행되지만 근 일년 이상을 온라인 교육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이 자리잡게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얼굴을 줌으로 볼수 있고 예체능조차 비대면 수업으로 이루어지게끔 만들었다. 작은 사각형태의 줌 창문속에서 각자의 아이들이 어딘가를 향해 멍하니 응시하는 모습, 선생님이 외로운 교실에서 혼자 수업을 진행하며 교육을 송출하는 모습이 이제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다.

점차 모든것이 비대면이 되어가는 시대이긴 했지만 급작스러운 온라인, 비대면 상황으로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많은 서비스들이 온라인이나 기계화되면서 뉴테크의 급진보로 오히려 이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을 소외계층으로 밀어넣고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극명한 세대갈등, 직장내 갈등, 정치적 반대성향,경제, 사회, 세계 어디서나 갈등하고 분열하며 실제로 감행된 극악무도한 범죄양상에 이제 정말 더 나빠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마비되었고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함유한 세대임에도 상황은 더 나빠졌다.

밤낮없이 올라오는 수많은 SNS 소식과 링크들이 있지만 정말 우리는 끈끈하게 맺어진 관계일까?

그리고 우리는 정말 친구일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의 60%이상이 일년간 한명의 방문자도 받지 않는다는 데이타가 있고, 인구의 삼분의 일가량이 늘 고독함을 느끼고 있다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곧 오리라는 걸 우리는 알까?

SNS를 즐기는 나는 사실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회수가 올라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예전에 조회수나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 구입을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비지니스를 위한 계정도 아닌데 정말 그런일이 있어? 라고 놀랐던 일이다. 마치 '라떼'에는 결혼식에 참석할 친구들이나 가족을 돈을 주고 고용한다는 일들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보여주는 것이 진짜가 아닌데도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빈깡통같을 수 있는지도 속속히 내막을 들여다 보면 참 부질없는 짓임에도 말이다.

두가 기쁜듯 좋은 곳에서 좋은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먹고 행복한 인증샷을 남기지만 실상 우리, 정말 행복한가를 <고립의 시대>를 넘기며 씁쓸하게 본다.

고립이 되면서 더 재미있는건 어떤 의미를 추구하며 뭉치고자 한다.

이번엔 더 강력하고 배타적인 벽을 세우면서 말이다

전통적 사회의 특징인 공동체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개인의 자유, 권리를 위해 탈 공동체했고 해체하고 파괴하며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던 시기가 있다면 이제는 오히려 인권을 주장하며 서로의 인권을 밀어내는 강력한 벽을 세우고 내것, 내가 속한 곳만 옳다고 주장한다. 작년 1월이었던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격렬한 시위를 펼치고 상상못할 어마어마한 증오의 범죄의 영상이 전세계에 충격적인 화면으로 펼쳐졌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절규하는 부모들의 모습, 담장을 넘지못해 아이라도 자유를 주기 위해 알수 없는 세계로 자신의 아이를 넘기는 모습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슬프고, 아프고 외롭고 고립된 곳곳의 모습과 코로나로 제한되는 수많은 일상이 그냥 남의 일처럼 흘러가고 있다.

어쩔때는 고통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자조도 있다

영화도 아니고 꿈도 아닌데, 울부짓고 있는 우리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크롤바를 내리는 모습을 발견한다.

왜 이렇게 되어갈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스마트폰을 한 원인으로 주목한다. 약 십년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할 정도로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식당을 가봐도 함께 밥을먹지만 스마트폰을 다 꺼내서 보기도 하고 잠깐 길을 건너는데도 스마트폰에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상이다.만남을 위해 시간내서 만나서 서로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람을 앞에 두고 계속 스마트폰과 상대방을 한자리에 모시고 어찌보면 스마트폰이 더 우선순위에 있는 듯해보이기도 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중독상태가 계속되고 우리 시대는 어린 중독자부터 나이든 중독자 그리고 신생아 중독자까지 계속 양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들여다 보는것이다. 시선과 우리의 관심을 빼앗는 것들은 자극적이고 공격적이고 가학적이기까지 한데 알게 모르게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성장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뇌에도 아무렇지 않게 노출이 되고 우리의 행동은 이러한 자극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고를 하게 된다. 두려운것은 이것이 아무런 경고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규제하고 막으려는 시도를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이 흐름은 누구에게도 제한이 없다. 어찌보면 막으려는 일이 무의미 할 정도로 거대한 파도와 같아 이 시대를 점점 더 고립의 시대로 잠식해간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과 연계를 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에게 최악의 고립을 준다. 멀리 볼게 없는게 스마트 폰 하나 있으면 방문을 닫고 절대 나오지 않을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고립으로 인한 황폐함이 역사적으로 어떤 광기로 분출될 수 있는지에 대한 흐름과 반복패턴을 보며 다른 모양인듯 하나 결국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고립> 이 인간의 역사에 주는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등에 우리 주변의 고립이 어떤것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행동변화를 권고한다. 고립속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혐오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고 결국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되는지 그 내면을 본다면 저렇게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상 수치스러운 비인간적인 행동을 집단광기적으로 할 수 있었는지 답이 될 수 있다. 고립의 고리를 끊으려면 직접 만나야하고 광장으로 나와야한다. 공동체가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조정할 수 있는 넓은 장으로 나와야한다. 비대면이 주지 못하는 인간의 표정과 직접 만나지 못하면 느낄 수 없는 공감과 모방이 역사속 그림이 되지 않으려면 더 늦기전에 그 흐름에 인간애를 찾아 함께 공감하고 의미있게 느낄 수 있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리나허츠의 <고립의 시대를 통해 표류하는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 고민 할 수 있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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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왜 그들은 포퓰리즘에 현혹되는가 평점9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 2022.09.30 리뷰제목
우리 이모는 태극기 부대다. 시작은 교회에서부터였다. 이모가 다니는 교회는 예배 시간에 정치 연설을 한다. 나라가 망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재앙이 왔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정권 탓이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렬히 외친다. 하나님께서 저 사악한 좌파 정부를 심판할지어다! 아멘! 나라를 더 이상 공산당에 빼앗길 수 없습니다. 우리 다함께 광화문으로 갑시다! 그러면 신도들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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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모는 태극기 부대다. 시작은 교회에서부터였다. 이모가 다니는 교회는 예배 시간에 정치 연설을 한다. 나라가 망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재앙이 왔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정권 탓이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렬히 외친다. 하나님께서 저 사악한 좌파 정부를 심판할지어다! 아멘! 나라를 더 이상 공산당에 빼앗길 수 없습니다. 우리 다함께 광화문으로 갑시다! 그러면 신도들이 우르르 일어나 뒤쪽 출입구로 나간다. 교회 입구엔 대절버스가 주르르 서있다. 사람들이 차례대로 탑승하면 버스는 광화문으로 향한다.

집에 돌아온 이모는 극우 유튜버 영상을 보면서 공부를 한다. 열심히 필기도 한다. 그 유튜버들은 내일이라도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얘기한다. 이모도 덩달아 심각해진다. 종일 나라 걱정만 하다 하루가 지나간다.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모여도 이모는 정치 얘기만 한다. 그걸 듣는 가족들 반응은 영 좋지 않다. 유튜브 좀 그만 보세요. 그거 다 가짜 뉴스에요. 이모는 가족들 말을 믿지 않는다. 점점 대화가 없어진다. 이모는 생각한다. 역시 통하는 건 같이 집회에 나가는 우리 교회 사람들뿐이라고. 이모는 오늘도 열심히 교회에 나간다.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 같겠지만 불행히도 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이런 이모를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각자 가진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무엇이 저렇게 이모를 열렬한 정치 신봉자로 만들었을까 알 수 없었다.

저자인 노리나 허츠의 주장에 따르면 이 모든 건 외로움이 만들어낸 환경을 극단주의 정치인(포퓰리스트)이 악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외로움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전체를 아우르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외로움을 뜻한다. 저자가 새롭게 정의한 외로움은 다음과 같다.

외로움이란 사람들과 단절된 기분이면서 우리 자신과 단절된 느낌, 사회와 가족에게 제대로 지지받지 못하는 느낌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 단순히 남과 가까워지고 싶은 소망 이상으로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봐주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욕구, 힘을 갖고 싶은 욕구, 공정하고 다정하게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다.’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사람들, 한때 지지했던 정당이 이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고충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 이런 외로운 사람들이 수십 년째 극단주의 정당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렇게 21세기는 새로운 포퓰리즘의 시대가 되었다.

포퓰리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분열과 불신, 혐오를 키운다는 것이다. 포퓰리스트는 우리를 강조하면서 우리를 뺀 타인을 배척하게 만든다. 공포심을 조장해 추종자들의 불안과 걱정을 부추기고,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위기 상황인 듯이 분위기를 조장한다.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악마 취급하기도 한다. 포퓰리즘이 퍼질수록 우리는 더욱 흩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저자는 외로움의 원인을 다양한 데서 찾았다. 사회, 경제, 정치, 기술, 개인이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세상을 고립과 단절의 시대로 만들었으니 지난 40년간 외로움 위기에 기름을 부었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협력적인 형태의 자본주의, 돌봄과 온정이 있는 자본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것부터 국가와 기업이 사회적, 인종적 정의를 실현하고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까지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회 변화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도 우리만의 할 일이 있다.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해보자. 가족과 더 많은 시간 보내기, 혼자 있는 동료에게 말 걸기, 마을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마을 행사에 참여하기, 새로운 모임에 가입하기 등 우리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자.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분열이 아닌 통합을 말하는 정치인을 지지해보고, 부당하게 차별받는 집단에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보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역시 마음가짐의 변화이다.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무심한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바뀌자. 가끔은 자신의 이익에는 맞지 않더라도 공동체에는 득이 되는 선택을 받아들이겠다고,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공감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해보자. 여유를 가지고 주변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다. 늘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도 잊지 말자.

사람들은 단절되었다고 느낄 때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이 세계가 얼마나 분열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제 이 세계를 지금보다도 더 분열시킬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중략)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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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외로움은 나를 공격적으로 만든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j***a | 2022.02.23 리뷰제목
<외로움이 사람을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만든다> 외로움은 혼자 남아있다는 , 고립되었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움은 느껴진다. 내가 사람들과 적절히 연결되어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고, 온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로가 난로가 되고 둥지가 되고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함께 해야한다. 그런데 4명 중 한 명이 단독가구인 서울만 봐도 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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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사람을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만든다>

외로움은 혼자 남아있다는 , 고립되었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움은 느껴진다. 내가 사람들과 적절히 연결되어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고, 온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로가 난로가 되고 둥지가 되고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함께 해야한다. 그런데 4명 중 한 명이 단독가구인 서울만 봐도 외로움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어릴 때 사랑의 학교란 만화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겨울을 나기 위해 일부러 좀도둑질을 하는 에피소드를 본 기억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65세 이상 노령층의 범죄와 수감률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 사회적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옥을 선택하는 경향을 지목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가족이 없고, 혼자 사는 노인일수록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강했다.

이들의 범죄는 공격성이 먼저일까, 외로움이 먼저일까? 일반적으로 외로움, 고립감을 느끼게 되면 안으로 침잠하고 우울해하면서 누군가 만나기를 바라는 심리와 행동을 자극한다. 그런데, 여러 연구에서는 의외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공격성과 배타성, 날카로움이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 에서 외로움, 고립감을 경험하는 이들이 히틀러나 트럼프를 지지하고, 극우적 행동을 한다고 분석한다.

그 메커니즘은 이렇다.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은 인간에 대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것과 타인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며 자신을 보호할 방어책을 먼저 만든다. “날 혼자 내버려둬!”라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낸다. 또 외로움이 지속되면 공감능력이 도리어 떨어진다. 공감할 이유나 기회가 적어지고, 자신의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 느끼는 것도 줄어든다. 고통받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하기보다 주변에 위협을 할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는 경계심이 도리어 올라간다.

테러를 하는 극단적 종교집단의 자살테러를 생각해보자. 어떻게 종교를 믿는 사람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싶다. 이들이 저런 극단적 종교단체에 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내 주변 공동체보다 더 강한 결속력을 가진 곳을 자연스럽게 찾아간다.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는 곳으로 가고, 터널 비젼이 된다. 공감능력은 떨어져있고, 선택적 공감, 즉 자신의 새 공동체의 감각에만 맞춰진다. 그래서 자신의 테러 행위로 일어날 불특정 다수의 가족이나 당사자의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즉, 외로움은 소속감을 얻는 것으로 줄어드는데, 문제는 외로움이 강할수록 강한 소속감을 원한다는 것이다. 외로움이 많은 사회 개인일수록 더 강한 소속감을 주는 곳을 찾는 반작용이 생긴다. 극우, 유사종교단체, 민족주의, 배타적 집단에 호감을 갖고 거기에 기꺼이 들어간다.

또 하나, 코로나19와 4차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자동화는 이러한 외로움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자동화가 많이 진행된 곳, 로봇이 많이 보급된 국가일수록 극수주의적, 민족주의적, 극우정당 투표율이 증가한다는 연구도 흥미로웠다.

정리하자면, 내가 누군가와 커넥트 되어있다는 느낌, 적당한 거리안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외로움을 줄여준다. 외로움 뿐 아니라 의도치 않는 날카로움과 공격성 까지도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나를 위축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주변을 배타적으로 보고, 공감능력을 떨어트려서 나를 어느 순간 공격적이게 만든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그런 성향이 되버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상태에 말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오디오클립으로 들어보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625/clips/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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