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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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말

이 말이 내게로 스며들었다, 살아갈 힘을 얻었다

리뷰 총점 9.4 (15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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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박경리 말, [토지]의 말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j*****3 | 2020.06.30 리뷰제목
읽으리라 큰 다짐을 하고 구입을 했던 <토지>는 10년동안 책장 한 켠에 자리잡고는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맘이 들어서였을까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런 토지를 2017년 6월에 시작해서 10월까지 읽었다. 이후, 2018년에 저자의 <나, 참 쓸모있는 인간>을 만났다.  <토지>를 읽었다는 뿌듯함과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던 때에 만난 이 책은 다시금 <토지> 속으로
리뷰제목

 

 읽으리라 큰 다짐을 하고 구입을 했던 <토지>는 10년동안 책장 한 켠에 자리잡고는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맘이 들어서였을까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런 토지를 2017년 6월에 시작해서 10월까지 읽었다. 이후, 2018년에 저자의 <나, 참 쓸모있는 인간>을 만났다.  <토지>를 읽었다는 뿌듯함과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던 때에 만난 이 책은 다시금 <토지> 속으로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저자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고전 읽기:박경리 <토지>읽기' 를 2012년부터 현재까지 강의해오고 있다.  전작 <나, 참 쓸모있는 인간>에는 <토지> 안팎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897년 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600여명이 만들어가는 <토지>에서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있을까?  그리고, <박경리의 말> 로 다시 한번 저자를 만나게 되었다. <토지> 속 인물들의 대사로써 박경리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함께 그 느낌을 나누고자 했다. 독자와 함께 하고자 했던 것은 어떤 문장들일까? 오랜만에 만난 그들의 이야기들이 새록 새록 떠올랐다.

 

"내사 머어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마는 사는 재미는 사람의 맘 속에 있다 그 말이지. 두 활개 치고 훨훨 댕기는 기이 나는 젤 좋더라." - 1권 126쪽  

 

 목수 윤보의 말이다. 기술은 좋았지만 내킬때만 일했고, 혈혈단신이고 소작농이 아닌지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으며 정말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자유로웠기에 무책임하고 방종한 인물이었을까? 아니었다. 대한제국 군대해산으로 벌어진 항일 투쟁에 참여하고 의병 활동도 했으며, 동학당도 열심이었다.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챈 조준구에게도 당당히 맞서는 그가 참 마음에 들었었다. 자유롭게 살지만, 인간의 도리는 하고 사는 사람. 마음이 가는대로 행하는 것으로 사는 재미를 아는 사람.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지만 사는 재미라는 것이 우리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한번 더 되새겨 보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알아야 하는 상식이나 사회적 잣대는 우리의 공통감각을 형성해주는 힘이기도 하지만, 때로 그것은 우리를 고정시키는 거푸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다는 기준은 우리 삶을 이끄는 지침이기도 하지만, 때로 그것은 우리를 옭아매는 끈이 될 수도 있습니다.- p 74

 

"가는 시간의 슬픔보다 멈춰진 무의미한 시간이야말로 그것은 삶이 아닌 것이다." 18권 24쪽

 

 행동하지 않는 답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임명빈이란 지식인이 있었다. 저자는 그에 대해서 나름의 고민은 있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해결하려고 찾아나서지도 않은채 멈추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우리 모두에게 박경리 선생이 했던 말이 아닐까라고 했다. 일본어를 같이 배우고 있는 86세의 할아버지와 새 교재를 사기 위해 서점에를 갔었다. 일본어 능력시험 책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한 말씀 하셨다. " 이제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자격증 시험을 친다고해도 뭘 할 수도 없으니, 시간도 없고 ······". 현재를 열정적으로 살고 계시는 분도 나이에 발목 잡히고,뭔가를 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아차싶었다. 시간을 잡을 수는 없다. 어차피 흐르는 시간이라면 무의미하게 멈춰서 있지는 말아야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책은 그에게 구원이었고 숨 쉴 통로였으며 외롭지 않았다. 동굴 속과도 같이 차단된 세계 속에서 유일한 벗이었다." 16권 99쪽

 

 송영광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백정의 손자라는 꼬리표때문에 결국 학업도 중단하고 유랑극단 연주자가 되었다. 정말 명민한 그가 그런 삶을 사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었다. 학창시절의 책과 시 습작 노트를 우연히 발견한 그가 책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했던 말이었다. 저자는 아무런 효용가치도 없었던 책 읽기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인간임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같은 맥락으로 2차 세계대전중에 책을 읽었던 병사들이 책은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끼게해주었으며, 살아있는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였다는 증언을 들려주었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분명 책을 읽는 그 순간,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뭔가가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소설을 왜 읽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소설 읽기를 멀리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백마디의 말보다 소설 속 한 구절이 마음을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된 이후, 등장인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이 나라면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등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저자의 이 책을 읽는 동안 새삼 '문학의 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경리 선생이 전해주는 인간의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가 지금 여기의 삶을 길어 올리고자 합니다- 책날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토지>.  지금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시대적 배경이지만 소설 속 사람들은 지금도 그대로 살아 숨쉬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세상은 변했다고 하지만 인간으로서 지켜할 덕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토지>는, 박경리 작가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지>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이 책을 통해 <토지>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느껴보면 어떨까? 저자는 자기 삶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한복'을 이야기하며 영화 '그린 북'을 ,"사시장철 갠 날만 이따믄 그기이 어디 극락이겄나"라는 말과 함께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 희망을 이야기할 때는 리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읽는 재미를 더했다.

 

"쓰는 행위 이상의 절실한 무엇과의 대결 상태, 문학은 하나의 방패였었는지 모른다. 싸움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래도 좋은가. 이래도 좋은가. 수없이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낫질도 도끼질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내부, 자신을 둘러싼 외부와의 대결은, 그러나 언제 끝날지, 과연 끝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10권 55쪽

 

 청백리 이부사댁의 후손이며 독립투사 '이동진'의 아들 '이상현'의 글쓰는 마음을 통해, 박경리 작가의 글쓰기를 보고, 저자는 앞으로 어떤 글쓰기를 해나갈지를 생각했다. 왜 쓰냐고, 왜 사냐는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라고 하는 저자, 다음에는 어떤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ps  권, 쪽수는 마로니에북스 판본.

      나는 나남출판사 책을 가지고 있는데 찾아보니 페이지가 조금씩 차이가 났다.

 

yes 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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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내게로 스며든 [토지]속 박경리의 말..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1 | 2020.07.23 리뷰제목
일전에 저자의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 [토지]가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던 그 책에서 저자는 ‘어쩌면 [토지]는 겹겹의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얼굴 같아 보입니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얼굴로 때로는 그럭저럭 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때로는 사는 게 참으로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 말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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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저자의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 [토지]가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던 그 책에서 저자는 ‘어쩌면 [토지]는 겹겹의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얼굴 같아 보입니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얼굴로 때로는 그럭저럭 살만 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때로는 사는 게 참으로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 말입니다. 아마도 그 갈피갈피의 주름을 하나하나 들춰보는 일이 [토지]를 읽어내는 일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글을 읽고서 [토지]를 다시금 완독해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의 말 마냥 책 갈피갈피 사이에 들어있는 주름을 하나씩 들춰보면서 과연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인지 알아가는 과정으로 삼았던 것 같다. 그렇게 [토지]를 읽은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대학에서 몇 년 동안 매 학기마다 학생들과 [토지]를 함께 읽는다는 저자는 [토지]의 말과 박경리 선생의 말을 모으고 싶었다고 한다. ‘언제 어느 세상일지라도 나는 나이고, 내가 내 삶을 살아간다는 대단히 소박한 사실은 그대로’이고, ‘단순한 그 사실이야말로 일제감점기의 [토지]속 사람들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인간이, 아니 인간이 인간인 한 그렇게 살아야 할 모습’이며, ‘박경리 선생은 그 인간을, 그 삶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제 각자의 삶을 [토지]로부터 읽어내고, 그래서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토지]를 곁에 두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그런 [토지]속에서 찾아낸 박경리의 말을 화두로 저자의 생각을 적은 글들이 모여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박경리의 말 중에는 [토지]를 읽으면서 나에게 스며든 말도 있고, 그렇지는 않지만 [토지]속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내가 읽었던 나남출판사의 [토지]와는 권수와 쪽수가 같지 않아서 그 부분을 찾아 다시한번 펼쳐볼 수 있게 해주었기에 행복한 책읽기이기도 했다. 저자가 모았던 말들, 그 중에서 내게도 스며들었던 말들을 다시금 읽어본다.

 

‘산다는 거는… 참 숨이 막히제?’ (17권, 359쪽/나남본 18권 345쪽) 홍이가 만주로 떠날 결심을 하고 평사리 부친의 묘지에 가 성묘를 한다. 그리고 한복의 집에 들러 얘기하던 도중 홍이가 만주에서 김두수에게 욕을 본 사실을 두고 한복이 미안해하며 한 말이다. 한참 뒤에 홍이 말한다. ‘숨이 가쁘지요.’

산다는 거는 어떻게 보면 당시에는 숨 가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숨 돌리는 것이지 싶다. 그래서 한복이와 홍이가 했던 말에, 절박하고 절실했던 것들도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이라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때로는 숨 막히는 시기도 있었고, 때로는 가쁜 숨을 내쉬며 관조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순환하는 절망과 희망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 역시도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안 하는 것은 쉽고 하는 것이 어려워.’ (11권 296쪽/나남본 11권 284쪽) 서희가 만주에서 국내로 송환되어 교도소에 갇힌 길상을 면회하고 오던 날, 환국은 걱정이 되어 조퇴를 하고 기다린다. 기죽지 말고 명년 진학을 생각하라는 서희의 말에 환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희가 한 말이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안하는 것은 쉽다. 우선은 몸이 편하고, 다소 찝찝한 마음이 든다 해도 자신의 마음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이유는 수천, 수만 가지나 된다. 그럼에도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한 내면의 불안과 고통을 대면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우리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 [토지]의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안하고,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핑계삼고 싶을 때마다 환국과 서희의 마음을 헤아리며 박경리의 이 말을 떠올려본다.

 

‘머릿속에 도판을 그리기보다 땅을 먼저 밟아야 하네.’ (18권 436쪽/나남본 19권 341쪽) 지리산에서 해도사가 이범준의 사촌동생인 이범호가 앞날을 위해 준비하자는 말에 이범호에게 한 말이다. 이어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서둘지 말게, 산에는 철 따라서 꽃이 피고 잎이 지네. 서두는 것은 사람뿐이지.’ 이범호는 해도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수긍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해도사의 말은 서로 모순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이범호와 같은 나이였을 때라면 해도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행에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 두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다. 백가지 생각보다 한가지의 실천이, 조급함보다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필요함을 해도사는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 일게다. 해서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말들이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저자는 박경리의 말들을 소개하면서 비단 [토지]속에 있는 말에 한정하지 않는다. 박경리 선생이 다른 곳에서 했던 말들도 길어 올리고, 그 말들을 따라가며 음미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말들을 길어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을 사유하며 오늘도 힘든 삶을 견뎌내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그래서 [토지]는 백수십년 전의 이야기이고, 50년 전에 쓰인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토지]의 해당대목을 찾아 읽는 시간이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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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소설 속의 구절들에 옷을 입혔다.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j****3 | 2020.07.26 리뷰제목
유명인의 유명한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복된 일이다. 특히 박경리의 ‘토지’란 작품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문학 학습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이다.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문장력을 길러주기도 하면서 우리들 곁에 함께했다. 참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저자는 나름대로 문장을 골라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이런 책이 요즘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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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유명한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복된 일이다. 특히 박경리의 토지란 작품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문학 학습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이다.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문장력을 길러주기도 하면서 우리들 곁에 함께했다. 참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저자는 나름대로 문장을 골라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이런 책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유형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새롭게 음미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이 책도 그런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작품 토지에 나오는 명구들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고 있다. 그 말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일깨워 보고 있다. 토지가 가져다주는 삶이, 토지가 만들어 내는 삶이 그 문장들에 녹아 있다. 그 삶을 보석을 캐듯 기록하고 있다. 그 언어들에 풍겨나는 향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고운 글이다. 글을 통해 문장을 고른 저자의 성향과 마음도 느껴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무척 행복해 진다. 그것은 동질성을 느끼는 민족의 삶이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책들의 부분 부분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살았다는 것, 세상을 살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는 살았다는 흔적이 없다. 그냥 그날이 있었을 뿐, 잘 견디어내는 것은 오로지 권태뿐이야.

 

봉순과 이상현의 딸 양현은 미인이자 여의사다. 봉순이 죽자 서희의 양녀가 되어 사랑을 받지만 나중 이상현의 집안으로 호적을 옮긴다. 서희는 둘째 윤국과 양현이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이루어진 상황 앞에서 영현은 혼란스럽다. 그래서 평소 잘 챙겨주던 명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때 명희가 한 말이다. 그러면서 양현의 고통, 슬픔이 투명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

 

어 가자. 간장 녹을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산 보듯 강 보듯 가자.

 

토지의 내용이 기억 속에 가물거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석이가 큰일을 하겠다고 관수를 따라 나서는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과 정겨운 장면을 연출하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고 관수가 한 말이다. 의병으로 나섰던 관수는 석이에게 강단 있게 말한다. 아베 원수를 갚겠다는 그 따위 시시한 생각이면 따라나설 염도 내지 마라 한다. 사내란 원한도 인정도 크게 가져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큰마음을 가질 것을 종용하는 말이다.

 

내사 머어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마는 사는 재미는 사람의 맘속에 있다 그 말이지. 두 활개 치고 훨훨 댕기는 기이 나는 젤 좋더마.

 

이는 윤보의 말이다. 그는 조금 특이한 인물이다. 토지의 인물들이 거의 농부인데 반해 그는 목수이기에 자유로운 처지인 모양이다. 홀홀단신으로 유유자적하며 살고, 마음이 내켜야 일을 하며 토지에 나오는 600여 명의 인물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의식과 행동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의 방랑벽이 제대로 이야기 되고 있는 글이고, 나름의 삶의 철학이 들어있다 하겠다. 제멋대로인 사람, 동학교도도 농민도 아니면서도 혁명에 끼어들고, 의병활동에도 모습을 보이고 조준구가 최참판댁 재산을 가로채는 상황에서도 맞선다. 자유롭지만 의식을 가진 그는 역사적인 인물로도 행보를 보이면서 소설을 이끌어가는 청량제 역할을 감당한다. 이런 자가 하는 방랑의 삶, 기억되는 바가 된다.

 

늙고 못생겼으면 난쟁이같이 볼품없는 체구 그 어디에선가 풍겨나는 당당함,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막딸이는 늙고 못생긴 아낙네다. 난쟁이라 놀림도 받고, 남편에게 대우도 받지 못한다. 자식을 둘이나 낳아 길렀지만 남편은 대처에 나가 딴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마을 사람들이 막딸이를 가련하게 생각한다. 막딸이는 남편에게 내처지고 다 성장한 아이들도 냉랭하다. 하루는 대처에서 남편과 함께 산다는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기생 첩, 분결같이 희고 고운 여인이 찾아온다. 기생 첩이라고 하지만 호구지책으로 여길 뿐 욕심내는 것도 없다. 남녀 간의 사랑도 본처 자리도 욕심이 없는 여인이다. 막딸이는 이혼당한 본처다. 누가 봐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박경리 선생은 이런 막딸이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당당함이 있다고 한다. 꽃 같은 기생 월화가 난쟁이 같은 본처를 보고 인생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니 말이다.

 

밤하늘의 그 수많은 별들의 운행같이 삼라만상이 이치에서 벗어나는 거란 없는 게야. 돌아갈 자리에 돌아가고 돌아올 자리에 돌아오고, 우리가 다만 못 믿는 것은 이르고 더디 오는 그 차이 때문이고 마음이 바쁜 때문이지.

 

서희의 재산을 빼앗은 조준구의 삶이 6년의 시간이 지난다. 그러던 중 서희의 재산 회수 계획을 돕는 공노인이 찾아온다. 공노인은 자산가 행세를 하면서 금광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물욕에 눈이 먼 조준구는 공노인의 재산까지 탐을 낸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다. 원래 자기 것이 아닌데, 다 그 자리로 돌아갈 뿐인데. 더디 움직이고 빨리 움직일 따름이지 다 부질없는 일인데 물욕은 왜 그리 내는지  결국 조준구는 패가망신을 한다.

 

가난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일을 해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사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사로잡혀 사는 거야말로 수치다.

 

서희의 둘째 윤국의 말이다. 윤국의 선배 홍수관은 학생운동으로 잡혀들어 간다. 그리고 형사와 논쟁이 벌어진다. 그 논쟁 속에서 홍수관은 열정적으로 논박을 했지만 노회한 형사의 유도 신문 같은 논리에 말려든다. 그래서 전향이냐 불령선인이 되어 퇴학을 당하느냐의 길림길에 선다. 두 달 후면 졸업인데 지인들의 침묵 요구에도 홍수관은 오열을 터뜨리며 외친다. 조선 독립을 위해 살겠다고. 생존이 무너지는 소리다. 홀어머니 아래서 어렵게 공부하고 있었던 그였으니까. 그 후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난 홍수관은 동창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남루한 모습이다. 수관은 윤국에게 말한다.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후 그는 생활에 찌들고 남의 눈초리에 찌들어 목에 올가미를 쓰지 않고도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이라 말한다. 자신이 경멸스럽다 말한다. 이에 윤국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혼잣말을 한다. 마지막 말 사로잡혀 사는 거야말로 수치다는 무슨 말일까. 자신의 의식 속에 갇혀 사는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

 

어중간히 눈 밝은 자들이 큰일이라 결국은 순결한 마음 순박한 열정만이 저어 수만 리 장천을 나는 철새처럼 목적한 곳에 당도할 수 있는 게요.

 

롯데 타자였던 박정태의 얘기를 하면서 이 글을 설명하고 있다. 박정태는 2루수 골든글러브를 5번이나 탔던 선수다. 이 부분 최다 수상자다. 그야말로 레전드였다. 그런 그는 프로 입단 3년차에 발목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부상을 당했다. 모두가 은퇴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활의 길을 갔다. 22개월 동안 무려 6번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어느 인터뷰에서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무조건 열심히라고 대답했다. 내가 얼마나 연습을 하겠다, 그것이 목표라 말했다. 박경리 선생의 철새가 순박한 열정으로 하염없이 날 듯 말이다.

 

뛰지 말고 걸어가면서 계속하자 일이 보배이니라

 

일이 보배라는 말은 토지의 곳곳에 남겨진 말이다. ‘석이네의 입을 빌려서도 말을 한다. 일이 보배지. 하모 일이 보배고 말고.’ 한다. 석이네는 평사리 소작농 정한조의 아내이자 석, 순연, 복연의 엄마다. 남편은 조준구가 폭도라 지목한 탓에 아무 증거도 없이 처형당한 인물이다. 그들은 정말 어려운 가운데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석이네가 겨울 찬 얼음물에 빨래를 행구며 하는 말이다. 그녀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단지 고단함을 잊으려고 하는 말일까. 온힘을 다해 자식들과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잘난 사람은 일 못한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는 게야.

 

독립운동 자금을 전하러 만주에 온 한복에게 길상이 한 말이다. 한복은 현 김두수가 일본 밀정을 한다는 것이 이유가 되어 만주로 가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형 때문에 조금 일이 쉽다고 여긴 사람들이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한복은 이런 상황에서 하소연한다. 형은 잘나서 일본 밀정을 하지만 자신은 대역무도한 형을 둔 기막힌 처지 때문에 분복에 남치는 애국자가 되었다고. 결국 미천한,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독립운동을 박경리 선생은 바보의 짓이라 하지 않고 길상의 입을 빌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으로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책은 그에게 구원이었고 숨 쉴 통로였으며 외롭지 않았다. 동굴 속과도 같이 차단된 세계 속에 책은 유일한 벗이었다.

 

할아버지를 백정으로 두었던 영광이 한 말이다. 영광은 서희의 아들인 환국의 눈에 비친 모습은 섬세하고 화사한 감수성, 곧은 내면을 가졌던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영광은 백정의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녔다. 부모는 그 연을 끊어주기 위해 대처로 학교도 보낸다. 하지만 세상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영광은 학업을 포기하고 유랑극단 연주자로 만주, 조선을 떠돌아다닌다. 그때 낡은 짐 꾸러미 속에서 찾은 책과 노트를 보면서 어릴 적 책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책은 그에겐 희열이었고, 구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신분 때문에 경멸과 자학으로 가득 했다. 신분이 똑똑한 사람을 잡은 경우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인생은 보석의 빛이 아니요 뿌옇게 타오르는 모깃불, 목화씨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중략) 무슨 놈의 밤도깨비 같은 짓이었나, 허허 하고 웃는다.

 

김환(구천)의 마음 한 자락이다. 그는 동학군 장수 김개주가 최참판댁 윤씨 부인을 범해 낳은 사람이다. 아비가 죽은 후 그는 어머니를 찾아가 하인살이를 자처한다. 그런데 이복형제인 최치수의 부인 별당아씨와 야반도주를 한다. 위의 문장은 윤씨 부인, 최치수, 별당아씨 모두 죽고 꼬일 대로 꼬인 인연을 생각하는 복잡한 심사가 나타난 문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날 윤씨 부인의 제삿날 구천이 생모의 무덤을 찾아온다. 자신의 생애를 무덤 앞에서 생각하면서 역행으로 나타난 삶의 모습을 허허롭게 웃음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 이상 어떤 말이 필요 있으랴.

일하는 사람은 이름이 없소, 일하다 죽은 사람은 무덤도 없소!

 

조선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었다. 신여성들조차도 박에스더, 김엘리스 등으로 서양식 이름을 가져와 썼다. 개화기 신여성들의 이름이 저러했으니 일반 여성들의 이름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어릴 때는 거의 예쁜이, 간난이 정도로 불리다가 시집가고는 친정의 지역을 따라 전주댁, 강릉댁 등으로 불리는 게 고작이었다. 토지도 그런 경향이 많았다. 삼월이, 강청댁, 옥이네 등으로 호칭이 불려졌다. 이런 이름의 변천사는 여성이 인간으로, 주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으로 보면 될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이 말은 이름 없이 대단하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는 사람 말이다. 무덤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어른은 몸으로 날 가르쳤던 말시. 참말로 잊을 수 없을 것이여.......말씸으로 안 허시고 몸으로 허셨단께로. 마지막꺼지 그 어른은 몸으로 허싯어.

 

그 어른은 강의원이다. 실제 모델은 독립운동가 강우규 선생이다. 분은 한약방을 경영하던 사람으로 국권이 빼앗기고 난 후 북간도로 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부임하던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지다가 잡혀 순국했다. 이 글은 선생이 치료해 준 주갑이 선생의 수행을 자처하고 따라나서 선생의 행보 속에서 그 옆을 지키면서 선생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한 말로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동 평사리는 많은 문학인들의 마음 속 고향이다. 바로 서희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구한말, 일제의 어려운 시간을 관통하며 살았다. 그 시간 속을 살면서 많은 성격을 지닌 인물들과 동행했다. 그 사람들의 다양한 말, 다양한 생각들을 박경리 선생은 평사리를 중심으로 그려낸다. 그러기에 토지에 향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게다. 평사리를 거닐다 보면 많은 작품 속의 인물들이 말을 걸어온다. 삶의 어려움도 있고. 사랑과 인내도 있고, 분노의 분출도 있고, 미래의 소망을 그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다양한 삶을 살아보는 일이기에 복된 일이다. 우리는 평사리에 가면 그 삶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그 평사리를 사모하게 만들어 준다. 저자의 언어를 통해 기억 속의 평사리를 떠올려 보고, 토지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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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육화된 언어, 설운 삶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평점10점 | k**u | 2020.07.04 리뷰제목
가끔 어떤 책은 그것과의 적정거리를 둘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슴에 쿡 들이미는 육화된, 몸의 언어들이 발산하는 헤아릴 수 없는 의미들 탓이다.  『토지』의 인물들이 토해내는 켜켜이 체득된 언어들을 화두로 하여 세상, 사람, 관계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고 이해케 하는 저자의 반추로 다져진 곡진한 이야기들은 그대로 좁아터진 내 이해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새로 깊숙히 스
리뷰제목

가끔 어떤 책은 그것과의 적정거리를 둘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슴에 쿡 들이미는 육화된, 몸의 언어들이 발산하는 헤아릴 수 없는 의미들 탓이다.  『토지』의 인물들이 토해내는 켜켜이 체득된 언어들을 화두로 하여 세상, 사람, 관계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고 이해케 하는 저자의 반추로 다져진 곡진한 이야기들은 그대로 좁아터진 내 이해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새로 깊숙히 스며든다.


" 어 가자. 간장 녹을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산 보듯 강 보듯, 가자!"『토지』 6권 370쪽에서


언젠가부터 책을 읽기위해서는 안경을 벗어야 하고,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추기위해서는 다시금 안경을 써야하는 노안이 저자 김연숙 교수처럼 내게도 찾아왔다. 이 현실을 "세상과 다시 관계 맺으라는 신의 명령"이라고, 그래서 "지금껏 바라보던, 세상 모든 것들과 다시금 거리를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이해는 그대로 내 이야기가 된다. 가난한 살림의 어미와 여동생을 두고 독립 운동을 떠나며 가족에 대한 연민으로 독립운동을 향한 발 걸음을 차마 떼지 못하는 석이를 향한 관수의 말에서 비롯된 배움의 사유이다. 이 호기로움의 말, 집착을 벗어나 새로운 거리 감각을 지닐 줄 알게되는 담대함 앞에 또 하나의 산 언어를 배운다.


이렇게 공감의 문장들을 열거하다보면 책을 모두 베껴야 할 성싶다. 「나에게 스며드는 말」,「질문하는 젊은이를 위하여」,「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3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서 노화가 한창인 내가 '젊은이를 위한' 장(章)의 글들에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빠져 든 것은 어쩌면 여전히 삶의 미숙함에 허우적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여기서의 '젊은이'는 '세상을 이해하고 배우려 하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련다. 대체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왜 지금껏 마치 전방만 있다는 듯이 급하게 질주하기만 했었나, 주변을 보지 못하는 편협과 외곬, 조바심에 이은 성급함, 어쩌면 삶 내내 정말의 생각이란 것을 하기는 했었나를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감상은 철새의 날개짓에 경외의 감탄을 쏟아내는 토지의 문장에 가닿게 한다.


『토지』 7권 274쪽에서


결과에 맞추어진 삶의 태도가 아니라 과정자체에 정성스런 날개짓을 하는 삶의 방식, 몸에 새기는 그것이 곧 배움이며 삶의 영원한 태도임을 다시금 확인케 된다. 어, 배움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야말로 '스며드는' 이야기를 놓칠까 우려되니 말이다.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 강제징용 당했던 이가 탈출하며, 낯선 일본인 할머니로부터의 도움을 받으며 그이를 묘사하는 문장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조건 중 으뜸"이라는 '공감'의 의미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마음속으로 늘 울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토지』 20권 154쪽에서


인간과 인간이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는 이 말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줄 아는 능력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네 모두에게 요구되는 유대와 연대의 요구성으로 어두워졌던 눈을 밝게 해주는 듯하다.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한 둘이 아니다. 이제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와 삶의 태도를 요구하는 그런 분기점에 도달해 있다. 노동가치의 재정의를 비롯해 자본주의적 무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모두 변화되어야 하는 그런 지점에. 그런데 사람이 단지 비용의 대상으로만 인식되고,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라는 비정규, 외주계약,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방식으로 자본이익의 희생물이 되어버렸다. 


『토지』 10권 417쪽에서


세상의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 우리 뒤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아니 보지 않으며,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조차 듣지 못하고, 듣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통해야만 겨우 볼 따름"이라는 말은 위협과 폭력에 시달리던 경비원의 죽음,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청년의 죽음이라는 사건에서 무엇을 보고 깨우쳐야 하는지를 생각케 한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공포가 지속되는 오늘, 우리의 사회, 그리고 나와 너인 우리들의 책임임을 통감하여야 함을.


이 책의 띠지에 써진 문장으로 마쳐야 겠다. "'설움이 왈칵 솟는 삶'을 용케 살아내는 이들에게",  "'박경리의 말'이 전하는 '인간의 말'"이라는 문장만큼 이 책을 잘 설명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책은 감각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다고 오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말처럼 어떤 사태를 현실화하는 시선을 갖추게 해주는 그런 여정이라 해야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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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l*****6 | 2020.07.03 리뷰제목
『토지』는 2019년 나의 독서의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나 방송인들이 모두 토지를 몇 번씩 읽었다고 하니 나도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나름 도전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책이 주는 감동과 깊이에 압도당했고 여운도 지속되었다. 2019년 나에게 최고의 책이었고 주변 분들에게 정말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했었다. 20권이라는 책의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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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2019년 나의 독서의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나 방송인들이 모두 토지를 몇 번씩 읽었다고 하니 나도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나름 도전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책이 주는 감동과 깊이에 압도당했고 여운도 지속되었다. 2019년 나에게 최고의 책이었고 주변 분들에게 정말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했었다. 20권이라는 책의 분량도 그렇지만 토지가 가진 그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이런 책을 집필한 박경리라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과 한국에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 책의 작가 김연숙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고전읽기: 박경리 토지읽기2012년부터 현재까지 강의를 해오고 있으니 김연숙 작가가 가진 토지의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인지 사실 가늠조차 힘들다. 그런 분이 전하는 토지의 인문학적 접근은 어떠할지 무척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이 분이 가진 토지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산다는 거는참 숨이 막히제?” (17359)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 자체는 인간의 공통경험이지만 그 고통 자체는 그때 그 당시의 내 몫일 뿐인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학자가 인간에게 중요한 윤리 덕목으로 공감을 손꼽았나 봅니다. 내가 겪는 고통이 아닌데도, 그 감각을 직접 느낄 수 없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상상하고 짐작하여 함께하려는 노력, 그 노력이 가닿은 곳에서 공감이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요.(p.36)

더불어 사는 것에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 중에 공감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각각 다르게, 그러나 인간이라며 누구나 크고 작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고통을 이겨내는 각자의 자세도 다양할 것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 없을 수 없으니 자신이 놓여진 상황과 환경을 이겨낼 것인지 아니면 환경에 굴복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고통의 깊이가 똑같지 않다고 해도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하는 자세인 공감도 선택일 수 있지만 그 선택에 의해 사회가 더 따뜻해 질 것임을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목이 메어 강가에서 울 적에 별도 크고오 물살 소리도 크고 아하아 내가 살아 있었고나, 목이 메이면 메일수록 뼈다귀에 사무치는 설움, 그런 것이 있인께 사는 것이 소중하게 생각되더라.” (12122)

재난 속에서 폐허 속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절망적인 재난일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재난으로부터, 식민지라는 폐허로부터 새로운 배움을 얻는 자는 그 배움으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자신의 눈물 속에서 길을 찾아나갔습니다.(p.47)

어떤 재난이 닥쳐오면 재난 이후엔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속엔 본인의 생존만 생각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만들어지는 것이라 추측들을 하겠지만 서로 돕고자 하는 이타심으로 서로를 보듬어 주려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우리가 일제시대, 6·25 전쟁, IMF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잘되고 이겨낼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어떤 고난에도 긍정의 마음을 지켜내야겠다.


어 가자. 간장 녹을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산 보듯 강 보듯, 가자!”(6370)

노화란 나이들어 세상과 다시 관계를 맺으라는 신의 명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이 듦이 자연의 섭리라면, 그것은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멀리 바라보라는 그런 도리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싶습니다. 물론 그 이치가 노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자기 범주를 넘어서 자기 시야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일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p.59)

얼마전부터 책보는데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결국 돋보기를 맞추며 우울해 했다. 나의 나이듦을 그저 생물학적 관점에서 한탄했다. 그런데 돋보기를 사용해 이 책을 읽는 내게 이 구절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내가 왜 나이 듦을 부정적인 면만을 생각한 건지 부끄럽기까지 했다. 나는 나이듦을 이렇게 멀리 바라보며 세상과 다시 관계를 맺어 내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눈은 비록 글씨를 읽어내는 능력은 줄었을지라도 내가 가진 좋은 영향을 주위에 전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이대로가 좋다! 나는 이렇기 사는 것이 몸에 맞은 옷 입은 것겉이 좋단 말이다.”(13322)

자신의 능력을 긍정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 첫 번째 긍정이라면, 두 번째 긍정은 그렇게 자신이 긍정하여 선택한 삶으로 야기되는 어떤 결과도 긍정하는 것입니다.(p.103)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두 부정하기 보다는 그 상황을 바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결과까지 인정하는 긍정의 삶을 살라는 의미인 것 같다. 현재 코로나 장기화 사태로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나의 일상도 너무 많이 변했기에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모스크바의 신사를 얼마 전에 읽었는데 러시아 백작의 호텔에서 감금된 상황에서 백작은 한순간 죽음도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갔다. 그 책이 전하는 주어진 환경에 굴복할 것인지 환경을 지배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인데 그 선택의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음이 궁극적인 긍정일 것이다. 이 코로나도 나에게 선택을 하라고 하는데 지금 내 선택들이 모두 정답일 수는 없지만 정답이 되도록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

 

가는 시간의 슬픔보다 멈춰진 무의미한 시간이야말로 그것은 삶이 아닌 것이다.”(1824)

내가 그 시간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고유하고 신성한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일일 겁니다. 그때야 비로소 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요. 삶을 살아가는 시간, 그리고 나의 시간으로부터 말입니다.(p.132)

토지에는 일제 강점기에 사람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여러 군상들이 나온다. ‘임명빈이란 사람은 지식인이지만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이 고민만 가득한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누군가를 독립운동을 누군가는 일에 매진하거나 누군가는 하루하루 먹고 살는 것이 하루하루 힘든 나날들을 보내지만 그는 그냥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듯이 지낸다. 내게 큰 인상을 준 인물이 아니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니 사실 이 사람도 참 가엾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닌 물리적인 시간만을 흘려보내니 가엾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슬픔에 처할 수도 있고 고통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들 뒤엔 반드시 내가 일구어야 하는 시간들도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을 만들지 않고 그냥 그냥 내 시간이 안닌 양 흘려보내는 것은 어쩌면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주어진 시간에 맞춰진 시계침 같은 삶이라 생각된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의 시간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살아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안 하는 것은 쉽고 하는 것이 어려워.”(11296)

책을 읽는 일 또한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로 이어져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책을 읽고 난 후의 가히 혁명과도 같은 놀라운 변화라고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변화 때문에, 앎과 삶을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은 쉽고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나 또한 아는 것은 많으나 실천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귀찮아서, 어려워서, 시간이 없어서 등등의 여러 가지 핑계거리를 만들어 실천하지 않고 머리속에만 담겨 있으면 그것은 단지 머릿속에 입력된 이미지일 뿐이다. 책을 읽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당장 실천하고자 마음먹지만 내일부터 모레부터 이렇게 실천하지 않는 쉬운 길로 가는 경우들이 많았다. 이 글귀를 보며 내가 얼마나 쉬운 삶에 빠져있는지 반성을 했고 앎과 삶을 일치시키도록 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사시장철 갠 날만 있다면 그기이 어디 극락이것나.”(4316)

고통은 고통대로, 밝음은 밝음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그 모든 것이 함께 흘러가는 삶 말입니다. 그러하니 사시장철 갠 날만 있다면 그것이 어찌 극락이겠냐는 토지속 윤보의 저 말은, 어리석은 우리들을 가르치는 박경리 선생의 목소리인가 봅니다.

극락이라 하면 너무 평화로운 고요한 곳이라 생각되는데 박경리 선생님은 그게 극락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 한다. 극락이라는 것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여기 고통과 슬픔, 기쁨과 행복이 함께 존재하는 이 곳이야 말로 극락이라 가르치시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마음가짐도 바뀌는 것이니 이 현실이 어찌 극락이 아닐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더 해빙이란 책에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 그 감사하는 맘이 나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극락은 특별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감사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극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잘난 사람은 일 못한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는 게야.”(9394)

오늘의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다 했고, 오늘 일어나지 않은 일이 내일 혹은 내년 아니면 백 년 후에라도 일어날 수 있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앞에는 자신들이 이 일을 할까 말까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만이 존재하고,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들보다는 똑똑하다는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구분하는 데 능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할까 말까 대신 지금이 일이 될까 안 될까를 구분하려 합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 때문에 그러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종종 내가 하지 못하는이유를 찾는 데 열심입니다. 우리들의 분별력은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 나를 변명하기 위해 작동하는 셈입니다.(p.179~180)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모두 다가 그 사회에서 배운사람 잘나가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힘들지만 독립운동을 통해 일본의 지배에서 반드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비천한 신분이었어도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제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입에 맛는 사람으로 변절한 사람들 또한 많다. 그들은 당연히 독립이라 헛된 꿈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희망과 간절함이 없었다면 독립운동가들이 그런 힘들고 고된 길을 걷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꿈꾸는 자들의 몫일 것이다. 내가 꿈꾸지 않은 미래는 미래가 아니고 계속해서 변치 않는 머물고 있는 오늘일 뿐일 것이다.

 

책은 그에게 구원이었고 숨 쉴 통로였으며 외롭지 않았다. 동굴 속과도 같이 차단된 세계 속에 책은 유일한 벗이었다.”(1689)

백정 자손인 영광과 전쟁터의 병사들의 책 읽기는 결국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습니다. 책 읽기로부터 정보를 얻고 배움을 구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이전에 내가 인간임을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백정의 세계와 전쟁의 세계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야 할 세계와 전쟁의 세계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세계가 그 어딘가에 있음을 그들은 믿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 믿음 때문에 그들은 삶을 버티어나갈 수 있었던 겁니다.(p.197)

영광에게 책 읽기란 자신이 가진 신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다. 독서란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독서의 순간은 우리에게 주는 여행이라 생각된다. 책과 내가 같이 만난다는 것 그리고 글자 속을 떠다닐지라도 그것조차 우리에겐 의미 있는 것이다. 나도 힘이 들때나 내가 잊고 지냈던 순간들을 책을 통해 새롭게 느끼는 경우들이 많고 반성하고 다짐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매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그렇게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내가 인간임을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일깨우는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개미 뫼 문지듯이, 일이란 그렇기 혀야제잉. 세월이란 것도 개미 뫼 문지듯 가는 거 아니더라고?”(1497)

하루하루 아니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하나를 알려준 것입니다. 하나하나 옮겨놓는 모래알로부터 내 삶이 쌓이고, 차곡차곡 쌓인 모래알들이 높은 산을 이룬다고 말입니다. (p.223)

개화된 집안의 외동따로 남부러울 것이 없이 살다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려다 기독교 전도에 힘쓰며 독립운동까지 참여하다 모진 옥살이를 겪은 여옥이라는 인물에게 조밭을 매던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툭 던진 말이다. 뭔가 한순간의 변화된 오늘과 다른 삶이 갑자기 펼쳐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것 같다. 한순간, 한걸음, 하나하나가 차곡차곡 쌓여야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내가 매 순간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세상이 한순간 날 위해 변화해주길 바라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벗어나고 싶은 현실을 차근차근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미래를 하나하나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인 것이다.

사람이 사람 아니게 되어가는 공포.”(681)

노동자가, 사람이 비용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이 연장선상에 위험의 외주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청업체에게 떠넘기는 방식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사람을 보지 않고,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비용을 일으키는 요인을 최대한 줄여 나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p.247)

우리곁에 있는 사람과 우리 위에 있는 사람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잘못된 것은 우리들,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p.248)

일제 강점기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일제 앞잡이가 되어 자신이 동포들은 한낱 물건처럼 취급되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 또한 물질 만능주의 시대로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닌 모든 게 돈과 연결이 되어 어느 순간 돈이 더 우선시 되고 사람의 목숨이나 삶의 질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뭐든지 비용을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목숨 따위는 한낱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것이 돈인데 어느 순간 돈이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 아니게 되어가는 것이 공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건비라는 단어아래 숨겨진 깊은 의미를 단순히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들, 저금임자들 등의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감됨임을.

 


 친근함과 위대함을 가진 작가 박경리. 그의 글에 표현되는 삶이 아무리 소소할 지라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위대한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라면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인간의 삶을 살아가야할 것이다. 박경리의 말이 전하는 깊은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소개된 모든 글귀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글귀들 하나하나가 참 소종한 말들이었다.  김연숙 작가의 토지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고찰은 다년간 하나하나 쌓아온 깊이 있는 생각이며 작가의 삶 한 부분을 깊이 있게 차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토지를 한 번으로 부족하고 여러 번 읽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토지속 하나하나의 말들이 내 마음과 삶 속에 차곡차곡 쌓여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자 소망한다.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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