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백은의 잭’ ‘질풍론도’ ‘눈보라 체이스’에 이은 설산 시리즈의 4번째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연애소설이다.
*책 날개에 적힌 소개글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이 아닌 연애소설을 썼다는 문구에 끌려서 읽은 책. 뭔가 독특한 연애소설일거라는 기대감과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아, 그렇지. 이런 것도 연애(戀愛)지.’ 굳이 사랑이야기라고 하지 않고 연애소설이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였나? 그간 나는 너무 애틋한 사랑이야기 만을 ‘연애’라고 생각했나 보다.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등장인물들이 사토자와 온천스키장을 배경으로(찾아보니 실제 모델은 노자와 온천스키장으로 1998년 제18회 겨울올림픽이 열린 나가노현에 있다고 한다 - 출처 : 동아일보), 우연과 인연으로 겹쳐나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읽는 것이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가장 좋겠지만, 중간 에피소드부터 읽어도 될 듯 한 흐름(아, 마지막 장은 제외이다)으로 이루어진 구성도 독특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첫 장과 마지막 장이었는데, 두 에피소드를 연결시켜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 소설의 구성도 흥미로웠다.
리뷰에서는 7개의 에피소드 중 첫 번째 이야기만 살짝 소개해 볼까 한다(이 책을 읽으실 예정이신 분들께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약혼녀 미유키를 두고 소개팅으로 만난 모모미와 함께 스키장에 온 고타.
스노보드 활주를 위해 탑승한 곤돌라에서 네 명의 여자들과 동승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중 한명이 약혼녀 미유키였다. 다행히(?) 새로 산 옷과 장비, 그리고 고글과 페이스마스크로 무장해 미유키는 고타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
그때부터 고타의 갈등은 시작된다. 이제라도 용서를 빌어야 하나? 미유키가 혹시 알아본 걸까,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 졸이며 함께 온 모모미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미즈키가 고타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은 나도 조마조마 했는데, 게다가 착신음이 스타워즈 주제가라니. 곤돌라 안에서 스타워즈 음악이 울려퍼지는 걸 상상만 해도 말 그대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불안정한 통신상태 덕분에 연결이 불발된 채 드디어 곤돌라가 종점에 도착하고 고타는 드디어 이 곳을 벗어나는 듯 싶었다. 하지만 곤돌라에서 내리며 소개팅녀 모모미가 고글을 닦으려 벗는 순간 약혼녀 미유키가 그녀를 알아본다. 이런..알고 보니 그들은 고교동창이었던 것이다. 반가워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녀들을 보며 고타는 생각한다.
거센 현기증이 몰려들었다. 당장이라도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이유도 없이 곤돌라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기막히게 멋진 눈이 내렸다. 세상이 온통 새하얗다. 그리고 머릿속도 새하얗다. 이 눈에 파묻혀 자취를 감춰버리고 싶다, 라고 고타는 생각했다. p.46
그리고 그런 고타의 앞에서 미즈키가 자신의 약혼자(다름 아닌 고타)의 사진을 모모미에게 보여주는 대목에서 에피소드는 마무리가 된다. 고타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진행되다보니 뭔가 긴박한(?) 느낌마저 드는 에피소드였다.
자,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독자는 과연 등장인물들의 ‘연애’는 어찌될지 궁금해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동행하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힘을 빼고 그와 그녀의 연애가 어찌 전개되는지 따라가는 흐름인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마지막 장을 넘겼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으려는 분들을 위해 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읽으며 개인적으로는 다소 연애와 거리가 먼(?) 등장인물인 히다가 가장 안쓰러운 캐릭터라 여겼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그들의 ‘연애’ 때문에 자신의 연애의 행방을 잃어버린 모모미 역시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당연히 모두가 스키복과 보드복을 차려입고 있어서 체형 등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고글과 페이스마스크 때문에 얼굴도 거의 감춰졌다. 그들이나 이쪽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그렇긴 하지만, 이래서는 마치 가면무도회 같다고 생각했다. p.137
*등장인물들이 겔팅(스키장 겔렌데에서 하는 소개팅)을 하는 장면
참을 인 세 번이면 세상을 구한다, 세상을 구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모모미는 무념무상의 세계로 입문하고자 했다. p.299
참을 인, 참을 인, 안 들린다, 안 들린다...... p.300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모모미의 노력을 읽으며 웃픈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