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역사가 함대와 상인(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사상과 종교의 이동 또한 언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 물건과 생각이 이동한 방식에도 관심을 두었다. (...) 역사에서 섬들은 매우 중요하다. 시칠리아 같은 섬들을 지중해 세계의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징검다리'로 묘사하는 것은 진부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진실이다. (p.20)
처음 이 책을 보고 내가 떠올린 것들. 요거트, 치즈, 샐러드, 콩, 생선!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음식들) 몰타, 산토리니의 하얗고 파란 건물들. 크루즈여행. 안타깝게도 지중해의 역사와 관련된 키워드는 빠르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중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서문을 읽으며 미노스의 해군, 트로이전쟁, 이집트나 미노스 문명,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연결까지 지중해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그저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곳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물론 기후에서 교역, 바다로 전해진 종교와 문명 등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더욱이 선사시대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내용에, 그동안 익숙하게 읽어온 시각의 지중해도 아니기에 생경한 이야기도 많았고. 그러나 원작의 풍부한 내용(특히 좋았던 것은 아불라피아교수의 논평)에 역자의 지식과 자상함이 더해져, 집중하여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음은 분명하다. 내가 지중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테지만, 요거트 정도의 사전지식만으로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으니 모든 독자에게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50여 장의 화보는 이런 호기심에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하고.
페니키아인들의 서방 진출은 몇 가지 이유로 대단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그리스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 민족들, 리비아인, 이베리아인들에게도 페니키아인은 강력한 교역 활동의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모형, 사회 제도, 생활방식 전체의 확산에 기여했다. 사치품의 확산은 복잡한 여러 통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에서 오는 원료(특히 금속)의 교환과 긴밀하게 이어진 통로다. (p.134)
지중해 안에서 벌어진 한가지 결정적인 사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끊임없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이민 행렬의 엄청난 증가다.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 국가들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독일, 스웨덴, 영국이 특히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중심지다. (p.399)
막연히 세계지도를 보며 한자어로 된 이름들은 아마 오래전부터 우리와 교역이 있는 곳일 거라는 생각은 해왔다. 그러면서도 지중해와 우리의 연결고리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유럽 역사를 지닌 곳이었달까. 이 책을 읽으며 지중해 역사가 결국 이슬람 문명의 전파이나 로마 언어 등으로 우리에게도 은밀히 닿아있었음을 느낀다. 지중해가 병에 담겨(포도주) 세계로 옮겨진다는 저자의 문장이 감사하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발전이나 '세계화'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측면만을 가진 것이 아님을 막연히 느끼기 때문일까. 그 속에 숨겨진 역사의 어두움을 배워가기 때문일까.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고 지중해를 모두 이해할 수 없음을 안다. 심지어 부족한 나는 이 책조차 완전히 소화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승리한 나라'의 시선에서 그 공간 자체의 역사로, 그 공간에서 흘렀던 시간으로 시각을 옮겨나가면 역사는 한층 풍부해진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이라는 대륙을 연결하는 지중해의 방대한 역사, 인간의 역할, 역사 속의 인간을 만나볼 수 있는 깊은 책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바다와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모든 바다는 육지를 합치고 나눈다.
이 책은 지중해라는 바다의 관점에서 당시 세계사를 수 놓았던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삶은 대부분이 육지(대륙)에서 펼쳐진다는 것은 당연하다. 바다에서 싸움이 나거나 바다를 이용해 교역을 하지만 결국 인간의 역사는 육지라는 공간에서 주로 이뤄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바다 또한 육지만큼이나 인류의 역사를 강하게 추동하는 역할을 해왔고, 떄로는 그 중요성이 육지보다 클 때가 많다. 대영제국이나 콜럼버스는 결국 바다를 지배했고, 바다를 통해 도전했다.
또한 육지에는 없는 것이 바다에 있기도 해서 인류는 항상 이 바다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지배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바다는 우선 우리가 살아가는 대륙을 감싸고 있다. 지중해는 그리스, 로마, 북아프리카 지역에 걸쳐져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은 바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바다는 교역, 전쟁, 전도, 이민 등 주요한 역사의 흐름이 육상만큼이나 해상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지중해 지역에서 중요한 것은 바다로 인해 생기는 도전의 규모이며, 너른 대양에 비해 한계 내에서의 이동이 비교적 손쉽다는 점이다. 이동의 편의는 추가적인 이점이 있었다.
지중해의 역사는 곧 공존의 역사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업·문화·종교·정치적으로 비교적 이동이 쉽고 연결되어 있고, 또한 육지가 바다를 감싸는 모양세여서 이웃과 이웃의 교류와 대결이 빈번했다.
때로는 강력한 민족적·경제적(그리고 종교적) 차이를 자각하고 있는 이웃들 사이의 대결이 이 곳에서 많이 펼쳐진 이유도 결국 지중해라는 바다의 특성 때문이다.
생태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역사가들이 가장 중점을 두는 생태 환경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곳이 거주하는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생활 조건이며, 그다음은 주민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바꾸어가는 방식이다.
지중해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은 그 표면에서 일어나는 상업·문화·종교적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된 지중해라는 바다를 활용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의지해 온 인간 역사를 쓰는 것이다.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대륙이 만나는 바다의 지리적 특성, 또한 예루살렘(메카)를 끼고 있는 바다라서 기독교·유대교·이슬람 3대 종교의 중심지가 되는 이곳, 지중해.
이집트·미노스·미케네·그리스·에트루리아·로마·아랍 문명 등 세계 주요 문명이 탄생하고 스러져간 곳이 바로 지중해다.
역사학자 8인이 지중해의 반만 년 역사를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책이라 조금씩 문체가 다르거나 그런 부분은 조금 있다.
청동기시대 상업제국이 건설되고 지중해의 교역로를 두고 페니키아인과 에트루리아인, 그리스인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장면부터 책은 시작한다.
지중해 패권을 두고 그 유명한 한니발과 스키피오 장군 등이 나오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대전, 카르타고를 완전히 물리치고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로마 제국 이야기는 언제 봐도 재밌다.
이후 예루살렘(메카)라는 도시에서 동시에 일어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분열과 십자군 전쟁의 발발로 지중해 지역은 언제나 바람 잘 날이 없다.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 오스만제국의 부상과 이슬람 세력의 지배하 지중해 지역의 변화, 18~19세기 영국, 러시아 등 유럽 열강의 전쟁터가 되는 지중해 이야기가 나온다.
신대륙의 발견과 해양술의 발전으로 세계의 중심을 대서양이나 태평양에 내어준 채 작은 동네 바다 정도로 전락한 지중해의 위상 변화가 펼쳐진다.
20세기 들어 세계화 시대 이후 다시 지중해를 넘어 외부와 연결된 지중해의 역할 변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각 장의 끝에는 총괄편집자인 데이비드 아불라피아의 논평이 실려있다.
지중해. ‘땅 사이의 바다’라는 뜻의 바다. 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이 있다.
흔히 아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서유럽 국가들이 있고, 그리스를 포함하는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아랍과 아프리카 북부까지.
세계사를 보는 관점과 분석 시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바다’를 기준으로 그리고 바다를 둘러싼 국가들의 역학을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 있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관점에서 지중해 뿐만 아니라 과거의 지중해를 함께 살펴 볼 수 있었다.
(본 책과는 크게 관련은 없지만) 정치학을 전공하면 다양한 세부 전공들을 만나게 되는데, 다른 나라의 정치제도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비교정치학’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지역학’으로 분류하는데, (내가 잘 모르긴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지중해 지역 관련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많을까 하는 생각도.
이 책은 ‘지중해’의 지리적 특성부터 시작한다. 간단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지중해입니다’가 아니라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의 특성과 기후, 산맥까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지리적 설명을 마친 후, 통시적으로 지중해의 역사를 살핀다. 선사시대부터 차근차근 차례대로. 교역제국의 시작, 해로전쟁, ‘우리 바다’의 형성 등 각각의 제목을 달리한 시대들을 주욱 살펴 나가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 각 장마다 그 장을 맡은 학자가 다르다.
그리고 이 장들이 끝난 뒤, 총괄편집을 맡은 데이비드 아볼라피아가 논평을 단다. 각 장에서 다뤄진 주제에 대한 요약 내지는 앞선 장에서 살펴본 역사 내에서 특이할 점들을 언급하는 느낌. 마치 역사학회 발표에서 발제와 토론을 함께 보는 느낌이었다.
총괄편집을 맡은 데이비드 아볼라피아가 책임 집필한 부분은 마지막 9장, 세계화된 지중해인데 이 부분이 현대인들이 볼 때, 지중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이민자 문제라던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지중해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지중해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꽤 넓은 범위와 꽤 많은 요소들, 예를 들면 정치, 종교, 문화, 특히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상업(해상유통)과 관련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읽다보면 조금 혼란스러울수도 있을 듯.
어느날 갑자기, ‘지중해가 궁금해!’ 라고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없겠지만, 과거에는 분명한 역사의 중심이었고, 패권 중심의 변화로 지금은 그 지리적 중요성이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담긴 ‘지중해사’가 궁금한 사람은 읽으면 꽤 만족할만한 책일 듯!
책 끝에는 지중해사와 관련한 컬러 도판까지 들어가 있어, 생생하게 다가왔다.
책은 책과함께출판사로부터 받아서 읽었고, 금전적인 이익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