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펴자마자 웃음이 났다. 식구들이 모두 눈치를 보는 폭군인 큰딸. 쏘아붙이고 흐르는 적막이 어찌나 우리 집이랑 똑같던지. 아니 이 사람, 집에서는 또 이런단 말이야??역시 사는 건 다 똑같구나, 하고 어쩐지 실실 웃음이 났다. 글이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촌스럽게 계속 눈에 눈물이 고였기 때문이다. 옆에서 엄마가 어이없어 하며?쳐다본다. 뭘 이렇게까지 사는게 비슷할 일이람. 단어 하나하나마다 내가, 또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여자들이 겹쳐서 대롱거리니 책장이 쉽게 넘어갈리가 없다. e북이 아니어서?다행이다. 그랬다면 모든 문장에 밑줄을 쳤을걸. 얼마나 한글자 한 글자 한문장 한문장?마음으로 기워 냈는지가 훤히 보였다.?
그리고 가정사 오픈에 내심 약간 놀랐다.?아이참, 이제 나는 눈물을 줄줄 흘려야 했다. 선생님, 미리 주의하라고 언질이라도?주시든지요. 이렇게 깜빡이 안 키고 들어오시면 어떡합니까.?
나도 그런적이 있었다.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아니면 안 만날거야.' 순수해서 해로운?말에 아무렇지 않은 척 맞장구치던 적이. 혹시나 내 결핍도 드러나버리면 어쩌나?눈치를 봤던 적이. 하지만 나는 언니처럼 그런 어떤 공백없는 사람과의 작별을?고하지 못했고 이제껏 내게 가정사는 어떻게 할 줄 모르고 그저 손에 꽉 쥐고
뒤로 숨긴 어떤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취한 전략은 제풀에 덥석 손에 쥔 것을?내 보이며 '봐봐, 너 이런 것들 감당할 수 있어?' 하고 상대를 겁박하거나 시험하는?것이었다. 그건 아마 책에 쓰여진 대로 부서진 관계의 단면에 베여 상처투성이인?손이었으리라. 나는 연애가 깊어지면 성급하게도 아직 먼 얘기인 상견례 자리부터 걱정했다.?그만큼이나 내 치부로 여겼다. 그런데 이 사람은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다. '빈자리로 겪은 변화들을 모르는 척 하기 아깝'노라고. 아니 그게 아까울 일이야? 막 소중한 일이야??
그런데 기실 그랬다. 정말 사실을 말해서 얄미운 마음까지 든다.
이 작가 참 잘났다. 글을 참 잘나게도 쓴다. 근데 그냥 멋부리는 글이 아니라 글에서 따뜻함이 뚝뚝 흘러내린다. 작가의 제일 큰 재능은 바로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시선이다. 정말 많은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전 제 자신이 외로워봐서. 그토록?사람을 깊이 바라보고 소중히 여기는 건 저 스스로가 아파봐서. 그리고 그건 정말로
'그런건 누구나 갖게 되는 건 아니었다.'.
또 놀랐던 게 나 역시도 이혼을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안 맞는 조각들이 서로 소모적이고 지겹고 의미없는 불협화음을 내는 것보다?일찌감치 갈라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예 결혼을 한다면 결혼사진 옆에 이혼서류를 같이 걸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영원을 갈망하는 만큼이나?믿지 않았다. 연인에게 좋은 사랑 생기면 만나라고 말하던 버릇까지도 같았다. 소오름.
그런데 역시 상실을 아는 사람이 제대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별을 아는 사람이?제대로 만날 수 있다. 상실에 값어치를 치루어야 한다는 걸 처음 배운다. 나도 이제 상상력이 크지 않은 어떤 사람들을 기꺼이 잃을 것이다. 그 역시 내 사람으로?곁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 상실의 이름은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고 다른 이름은
내 다정함을 옳은 자리에 둔다는 것이며 여기에는 구속이라는 값을 치루었다. 시선으로부터?이제 나는 자유다. 내게 자유를 선사해준 이 책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정말 누구나 갖는것은 아니다. 따뜻한 글들이, 마음들이 흘러넘친다. 작가의 지치지않는 다정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다정하고 강인한 여성의 존재는 늘 소중하다. 앞으로의 행보를 마음다해 응원하고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