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부가 온다>를 읽고
더 나은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인문학자 안상헌 작가의 신간 <새로운 공부가 온다>를 읽는다.
나는 1982년에 대학을 갔다. 그때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은 37.7%였다. 1981년부터 대학졸업증원제로 30%의 대학증원이 늘어서 그러했다. 1980년대의 본고사 시절 대학진학률은 27.2%에 불과했다.
그때는 대학졸업장 하나만으로 경쟁력이 되던 시절이었다. 절대성장 시대로 사회에는 새로운 기회들이 넘쳐난 시절이었다. 1994년에 45.8%, 1995년 51.4%, 1997년 60.1%, 2001년 70.5%, 2004년 81.4%, 2008년 83.8%로 상승곡선을 그리던 대학진학률은 2016년 69.8%로 하향곡선을 그린 후 70%대 전후로 횡보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모든 고등학생 졸업자의 80% 정도가 지식인의 삶을 지향했다. 공부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평균 학력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 대중사회를 낳았다. 어린 시절부터 외우고 시험 치는 공부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지식 대중들은 라이센스가 있는 전문직이거나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 신분이 아닌 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좀 더 나은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위해 석·박사, 자격증 시험에 연거푸 도전하지만, 노력이 특별한 성과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30여 년을 공부하는 카테고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사람의 이론과 개념을 익히고 외우는 공부는 더 쓸모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새로운 공부에 대한 지평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이 책을 만난다.
인공지능과 경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
학위나 자격증이 공급초과에 있는 사회를 사는 잉여 인간이 된 대중들!
기존의 학제나 자격증보다 더 빨리 변하는 사회!
언제나 역량이 대체될 수 있는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
직업에서 쌓은 노하우가 새로운 사회에 통용되지 않는 단절을 느껴야 하는 퇴직자들!
졸업장만으로는 사회로부터 무용한 도구가 되어버린 대학졸업자들!
수축사회와 감속사회, 플랫폼 세상으로 전환된 사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을 도구로 생존과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야 한다면, 공부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변혁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이런 면에서 안상헌 작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공부가 온다>는 아젠다는 대한민국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하나의 등불을 제공해 준다.
부제가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 공부법’인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새로운 지식이 온다’로 지식의 경계에 선 이 시대에 변방적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암기된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무장된 지식의 차별화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다양한 사람을 읽고 변화에 민감한 유목민이 되는 삶을 제시한다.
2장은 ‘벤치 인사이트를 키워라’로 메타인지 능력, 철학적 사유의 중요성을 말한다. 또한 벤치 인사이트 능력을 높이기 위해 호모나랜스 본능 깨우기, 글쓰기, 시의 중요성, 지식 다이어트 등에 대한 사례와 대안들이 제시된다.
3장은 ‘어떻게 배울 것인가’로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공부 방법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새로운 독서의 방법은 디지털 리터러시,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 지식이 해석이 아닌 현실을 만나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가, 공부와 사건, 학교 공부를 넘어 자기 주도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어진다.
4장은 ‘벤치 노마드를 위하여’로 유니크니스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로 학습 민첩성을 높이고, 절학무우가 현실에서 접목될 수 있는 방안들이 제시된다. 또한 살아있는 공부가 되기 위해 자신을 변방으로 내모는 역할,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 더 나은 유토피아를 위해 지성인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창의적 인재에 대한 시대의 요구는 절박하지만, 교육제도는 창의성과 관계없는 훈고학을 배우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이 즐겁지 않다. 하지만 선생님과 교육제도는 바뀐다고 요란한 목소리를 내지만, 근본적으로 바뀔 것 같지 않다. 기득권의 목소리는 늘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무시하고 만다. 신분이 보장된 그들에게 현실과 미래는 결코 절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용한 지식은 금방 퍼져나가고 새로운 지식은 금세 고철이 된다. 중심에 포획되지 않는 지식인, 자기 자신을 벤치에 앉히는 성찰이 유니크니스를 지키는 방법일 수 있다.” p10
“냉정한 세상에서 고착된 지식인이 설 땅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p11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를 알릴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럴 때마다 경계에 내 몰린다. 왠지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할 것 같은 압박과 함께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허무가 공존한다.”
p19
“벤치맨은 하나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들은 길을 모른다. 단지 진리를 추구할 뿐이다. 덕분에 그들은 어떤 길이든 갈 수 있다.” p23
“불안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경계인으로 사는 삶이 가져다주는 불안과 갈등은 우리를 새로운 생각으로 문으로 안내한다. 경계에 선 사람만이 다른 흐름을 감지하고 신선한 물을 끌어와 세상에 맑은 흐름을 제공할 수 있다.” p25
“교육은 미래다. 공부는 가능성이다. 미래의 가능성은 경계를 견디는 힘에 달려 있다. 나와 우리, 이기심과 이타심, 불안과 확신, 시인과 과학자, 밥벌이와 자유의 경계에 선 인간, 모순의 날 선 긴장 속에서 사유를 지속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미래의 가능성이다.” p28
“신선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지식은 곧 부와 권력의 향유에 백기를 들고 죽어갈 것이다. 민주화를 외치던 영웅이 제도권 정치속에서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 정의감과 패기로 가득 찬 사법시험 지망생이 판검사를 거치면서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과정, 끊임없이 질문하며 세상을 신기한 눈으로 보던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학원 승합차를 타러 가는 모습까지.” p38
“다행인 것은 지식 엔트로피가 본격화되면 중심부의 지식이 급속히 와해된다는 점이다. 탈주와 접속을 반복하는 변방적 지식인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p41
“지식의 숲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은 더 이상 지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지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p46
“공부의 뿌리를 찾는 것은 문명의 배우를 아는 것과 관계된다. 어떤 전공을 공부하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문명의 배후, 뿌리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공부에 마음을 쏟자, 그것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새로운 공부다.” p52
“고객의 욕구를 읽으라는 경영학의 메시지도 인간 전체의 눈으로 볼 때 그 맥락이 보인다. 인문학을 나를 넘어 우리와 인간과 세계라는 보편자의 눈으로 보는 힘이다. 그 때 창의성의 눈도 열린다.” p66
“변화의 흐름을 타고 세상을 읽은 후에는 사람들의 선호가 아닌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을 때 대중을 사로잡을 독특한 뭔가가 탄생한다.” p75
“개인화는 외로움을 가져온다. 이것이 악순환이다. 혼자됨을 통해 자기를 알아야 하는데, 혼자인 개인은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지향한다. 우리는 유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착각이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의 취향저격에 시간을 허비한다.“ p 78
“자기가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경우를 메타인지라 부른다. 메타인지는 자기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이다. 이들은 벤치인사이트를 가졌다.” p86
“메타인지를 키우는 방법은 첫째, 질문하고 피드백을 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둘째,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셋째, 자극을 주는 멘토를 얻는 것이다.” p91~94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을 공부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해도 자기 인생관이 없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에게 어울리는 삶은 어떤 방향인지 판단할 힘을 잃었다. 문제는 철학에 있다. 우리에게 철학이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인생관은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인생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은 사회가 제공하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남들이 가는 길, 남들이 하는 일을 추종한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줄을 서게 된다. 줄을 서는 곳은 복마전이다.” p100~101
“우리는 많이 아는 것이 뛰어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많이 아는 것과 생각하는 능력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독서는 지혜로 이어져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글쓰기다. 독서는 지식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유기적 활동이다. 창조력을 발산하는 독서는 비판적이고 변태적이고 생산적이다.” p127~128
“고전은 개별 인간을 다루지 않고 전체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자신의 문제에서 물러나 인간 종의 문제를 사유하고 근원을 파헤친다. 이런 연습은 자기 자신을 벤치에 앉히고 인류의 역사와 본성, 사유 과정의 핵심에 접근하도록 돕는다.” p137
“시는 죽인다. 기존의 관념을 죽인다. 시를 쓴다는 것은 기존의 생각과 인습과 도덕을 끝장내는 일이다. 일상어가 생각의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면 시어는 생각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다. 시는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편지처럼 아름답지만 내가 살지 않는 낯선 곳이다. 그래서 새롭고 불편하고 힘겹고 충격적이다. 자기파괴와 신세계의 발견은 함께 온다.” p140~148
“미래 교육에 필요한 것이 비판력과 창의력이라면 시가 필요하다. 시는 기존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새로운 눈으로 꽃을 보고 사람을 보고 사건을 보고 존재를 본다. 느끼고 깨닫고 감동하는 사람만이 시를 통해 낯선 세상에 닿을 수 있다. 다른 것을 본 사람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구체성은 손에 잡히는 뭔가를 주지만 추상적 비유는 커다란 통찰, 벤치 인사이트를 안겨준다.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 우리가 시를 익혀야 하는 이유다.” p149~151
“간단히 핵심을 찌를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일반화된 지식을 배우는 것이 별 의미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지식을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맥락을 알고 핵심을 꿰뚫고 다른 것들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른바 인사이트다.” p153
“가벼운 간결함이란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짧게 말하는 것이고, 깊은 간결함이란 전문지식을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설명하려면 자기 생각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p156
“벤치 인사이트를 얻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원인과 결과에 대한 논리력을 기르는 것이다. 둘째,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셋째, 주제의식 연습이다. 이런 연습을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토론이다.” p159~162
“벤치 인사이트는 미래 교육의 종착지다.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자기 공부를 주도해야 한다. 그 분야에 관한 생각의 경험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지식을 추론하고 비판하고 비틀어본 누적된 고통이 있어야 한다.” p 163
“공부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지식의 소유다. 뭔가 알아냈다는 생각, 나는 안다는 느낌을 조심해야 한다. 소유와 집착은 두려움에서 온다. 내가 가진 것을 잃으면,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도 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라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p174
“우리는 실제의 내가 아닌 이미지 속에 나, SNS속의 나가 진짜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명품을 걸치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인생의 낭만을 즐기는 이미지의 세계에 사는 나는 실제의 나와 별도로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를 진짜 자기를 찾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p179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리터러시(literacy)라 한다. 문해력이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없는 이들은 무용지식, 아니 해로운 지식에 물들기 쉽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p186~187
“문제는 어디에 접속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정보의 소비자가 될 것인가, 지식의 생산자가 될 것인가는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와 함께 내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느냐가 결정한다. 과거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가 중요했다면 미래는 어디서 접속되었느냐가 중요하다.” p190~191
“인공지능은 인간이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하루를 설계하고, 욕망을 디자인하도록 진화하고 있다. 묻기도 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앞에 가져다 놓는 시대다. 창의적인 사람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창의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p199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까? 첫째, 관찰하고 분석한다. 둘째, 모방하고 응용한다. 셋째, 연결하고 접속한다. 넷째, 현실의 가치를 추구한다. 다섯째, 창의성은 장소다.” p199~212
“우리는 지식이 쌓이면 창의성도 생긴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창의성은 지식의 축적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충격에서 온다. 사건을 만나는 것이다. 사건은 일상에서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무엇이다. 이전의 삶에 충격을 주는 것,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사건이다.” p229~231
“우리가 학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학교 외에 다른 대안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고, 대안을 가졌다고 해도 너무 위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대부분은 현실에서 쓸모없다는 것을. 대안교육 미네르바 스쿨이 급부상하는 이유다.” p238~239
“미래형 인재는 예상할 수 없는 복잡성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창의성을 가진 아이를 평범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몰개성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데 탁월하다. 그러면서 창의력과 비판력, 협력까지 요구한다. 교육방식은 반창의적인데 결과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p243~244
“어차피 서울대 졸업생들도 절반은 실업자다. 학위가 마음의 위로는 주겠지만 큰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학위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다.” p247
“중심부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중심부의 지식이 창의성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힘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이전의 지식이 급속도로 고철화되어 쓸모없게 될 것이다. 특이점이 오면 중심부의 권력이 단번에 붕괴되고 새로운 중심이 등장할 것이다.” p256
“탈영토화 혹은 탈코드화로 불리는 이런 흐름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다양한 접속을 통해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낸다. 탈영토화는 변화의 물결이며 새로운 영토화의 시작이다.” p262
“시뮬라크르의 유니크니스를 지키려면 자기 욕망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이 뭐라든 자기 길을 가야 한다. 세상은 타자의 욕망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것을 하면 돈이 되고, 저것을 하면 성공한다는 목소리는 타자의 욕망이다.” p264
“끌리는 공부, 재미있는 공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한다. 외롭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라. 그것이 시뮬라크르의 방식이다.” p265
“세상에는 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에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선수가 코치가 되고, 해설자가 되고, 스포츠 기자가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허구에 가깝다.” p275
“자기의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하나의 직업에 속박되지 않으면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이다. 그럴 수 있을 때 민첩성을 확보할 수 있고 변화 적응력도 높아진다.” p279
“인공지능 시대에는 일부 특별한 지식을 제외하면 인간이 가진 일반적인 지식이 더 유효하지 않다.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들이 거대한 쓰레기로 변해버린다. 산업혁명 시대의 말(馬)도 그랬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지식, 자격증, 박사 학위 등도 말의 처지가 될 것이다. 지식의 죽음이 눈앞에 와있다.” p283
“배움에 대한 배움이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아는 것은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능력이다. 지적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갈수록 빈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란 두려움은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할 것이라는 터미네이터적인 암울함이 깔려 있다.” p285
“잡다한 공부를 멈춰야 한다. 지식 엔트로피를 낮춰야 한다. 인문학은 저엔트로피 학문이다. 인문학은 생각을 자극하고 사유의 확장을 장려한다. 공학이 달리자고 외칠 때 인문학은 멈추고 돌아보라고 말한다. 인문학은 공학적 엔트로피를 낮춘다.” p287~288
“인문정신을 지키면서 과학의 성과를 포용하고, 인문정신을 수용하면서 과학은 나아가야 한다. 지식 엔트로피를 넘어서 절학무우(絶學無憂)의 정신이 꽃 피우려면 융합과 통섭이 필수적이다.” p290
“승리한 순간 몰락의 순간이 다가온다. 몰락은 자만심, 원칙없는 욕심, 위험과 위기의 가능성 부정, 구원을 찾아 헤맴, 유명무실과 파산의 다섯 단계의 길을 걷는다.” p292
“인간은 자기반성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 적이 없다. 지성인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기모순을 마주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괴물과 싸우는 동안 괴물이 되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p295~298
“지식인은 단순히 지식을 소유하는 자라면 지성인은 그 지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사유하는 자다. 그런 면에서 지식인은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지성인은 자신을 벤치에 앉히고 자본의 유혹을 뿌리치며 전문성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사람이다.” p299
“아는 것은 힘이다. 지식은 재산이다. 이런 양적 사고는 구시대적이다. 지식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인간 문명의 최고 진리를 전달하는 곳이라는 주장은 허구다. 기성세대들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후세대에 전달하는 장치일 뿐이다. 장치는 노인을 만들고 괴물을 양산한다. 자신이 품고 있던 미망이 깨지는 것이 앎의 시작이다.” p304
“신념으로 하여금 사실을 몰아내고, 환상으로 하여금 기억을 몰아내게 하라.” p307
“신화적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신화적 사유는 뒤꼍으로 밀려났다. 그와 함께 삶과 세계의 의미도 멀어졌다. 물질적 풍요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상상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삶을 놓쳤다.. 존재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객체가 되었다.”
p312~313
“그동안 우리는 도피하는 삶을 살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의미로부터의 도피, 인간의 역사는 도피의 역사다. 편안과 안락을 위해 살아왔지만 결국 그것을 얻었는가? 물질적 풍요가 그것을 가져왔는가? 이제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평안은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물질적 풍요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 충만해지는 것에 있음을.” p323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이 책은 어떤 정답을 제시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독자에겐 고민을 제시할 수도 있고, 어떤 독자에겐 벤치 인사이트를 위한 성찰의 시간을, 어떤 기성세대에겐 꼰대와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공론장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 어떤 독자에겐 아픈 머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상태에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서 덮어 버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독자 입장에서는 이 책에 어떤 정답을 위해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해답을 찾아가는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들에 대해 바램을 담는다.
1.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국가의 정책을 담당하는 국회의원
2. 청와대에서 정책을 조율하고 국가 비전을 만드는 사람들
3. 교육의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교육 담당을 하는 학교장을 비롯한 리더들
4. 아직도 스펙에 목숨을 걸고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
5. 더 나은 지적 경쟁력을 위해 학위나 자격증을 갈급해 하는 성인 학습자들
6. 현재의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들
7. 창의적 생각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싶지만,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다양한 이 땅의 깨어있는 사람들
8. 포스트 자본주의의 미래를 응원하는 이 땅의 오피니언 리더들
이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배움의 공론장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싯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공론장의 이야기가 비판과 논쟁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시대의 주춧돌 역할을 기대해 본다. 나 역시 이 책에서 얻은 울림을 바탕으로 학교생활의 16년 공부와 졸업 후 30년의 공부가 허망이 아니라 실존을 강화하고, 내 삶의 가치를 높이며 사회에 기여하는 공부가 되도록 공부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