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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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혁명

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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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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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23-54]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w******f | 2023.11.12 리뷰제목
기계화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제언   1968년. 당신에게 ‘1968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우리 곁을 수없이 지나가는 연도 가운데 하나로 느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서방 세계에서 1968년은 하나의 시대를 가르는 상징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1968년은 1968년 파리 시위를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대표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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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화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제언

 

1968년. 당신에게 ‘1968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우리 곁을 수없이 지나가는 연도 가운데 하나로 느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서방 세계에서 1968년은 하나의 시대를 가르는 상징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1968년은 1968년 파리 시위를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된,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변혁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책, 에리히 프롬의 <희망의 혁명> 또한 이런68혁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1967~1968년 미국 반전(反戰)운동의 물결을 타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유진 매카시(Eugene Joseph McCarthy, 1916~2005) 상원의원에 일종의 지지선언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본의 효율화에만 몰두, 인간을 부속품화 시키는 ‘야수 자본주의’가 아닌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지향하자는 호소이기도 하다. 이것은 초판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1968년에 미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 교차로에 서 있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하나의 길은 인간이 핵전쟁으로 파괴되지는 않더라도 기계 속 힘없는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완전 기계화 사회로 이어지고, 또 다른 길은 인본주의와 희망의 르네상스, 인간의 행복에 복무하기 위해 기술이 존재하는 사회로 이어진다.

이 책은 우리가 처한 딜레마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줄 의도로 썼으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호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비합리성과 혐오가 아니라 이성과 생명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도움이 있으면 필요한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썼다. [p. 5]

 

기계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해법에 대한 얘기는 개정판 서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내가 앞서 쓴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새로운 이론적 개념의 발전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내가 이전에 학문적인 접근 방식으로 다루었던 개념들을 재구성해서 아직도 많은 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사랑, 즉 생명애(biophilia)에 호소할 목적으로 썼다. [pp.10~11]

 

 

절망적인 미래, 희망은 존재하는가

 

에리히 프롬은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묘사하고 있는 기술정보화 사회가 현실화되고 있고, 인간이 이러한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마저 잃어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서양에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본 순간부터. 그리고 과학의 발전 혹은 과학적 진리를 찾으려는 과정은 이 터무니없는 일을 오랜 시간에 걸쳐 현실화했다. 이런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삶이란 선택의 과정이고, 인간은 ‘선택’이라는 결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과연 옳은 결정이었나 의심으로 고통스러워하느니 차라리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그 선택을 확신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p. 99]

 

나아가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서 저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랄 것이다. 과거에는 신(神)이나 과학이 그 결정의 근거였고, 사람들은 그 결정을 해석해주는 성직자나 과학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신뢰가 사라졌고, 신(神)과 과학의 위치를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예측 가능성과 확실성을 보장하는 ‘AI’가 대체하려 한다. 이렇게 자연을 정복한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컴퓨터, 혹은 인공지능(AI)라고 불리는 존재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한가운데서 망령이 떠돌고 있다.

~ 중략 ~

(그 망령은) 컴퓨터의 지휘 아래 최대의 물질적 생산과 소비에 온 힘을 쏟아 붓는 완전 기계화 사회라는 새로운 망령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과정 속에서 인간 자신은 기계의 한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잘 먹고, 즐겁게 대접 받지만, 수동적이고, 활기 없고, 감정조차 거의 없는 존재로 말이다.

~ 중략 ~

어쩌면 지금 가장 불길한 것은 우리가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계산을 통해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면 우리는 그저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길 뿐이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무엇도 하려 하지 않고, 하지 않으려고도 않는다. 우리는 핵무기로 멸종의 위협을 받는 동시에, 책임지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위치에서 배제되어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 바람에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갈 위협도 받고 있다. [pp. 19~20]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절망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희망도 존재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답하기에 앞서 저자는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욕망임을, 또한 희망의 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이라고 정의(定義)한다. 그런 후에 희망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임을 명시한다.

 

희망의 대상이 어떤 사물이 아니라 더 충만하고 활력이 넘치는 삶일 때, 끝없는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해방일 때 진정한 희망이 된다. 신학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구원(salvation), 정치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혁명(revolution)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종류의 기대라면 희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마냥 기다리는’ 속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사실 그런 희망은 결국 체념, 혹은 한낱 이데올로기의 가면에 불과하다. [pp. 29~30]

 

희망이란 존재의 상태다. 준비가 되어 있는 내면의 상태, 열정적이지만 아직 쓰이지 않는 능동성(activeness)이다. [p. 39]

 

그리고 이러한 희망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처럼 ‘판도라의 상자’에 홀로 남아있지 않는다. 신념, 불굴의 용기와 함께 한다.

 

희망, 신념, 불굴의 용기가 있다고 해서 교차로를 지난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인식이 정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일 수 밖에 없다.

 

먼저 기술의 발달에 따라 육체적으로 편리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퇴행(退行)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대신 인공지능(AI)의 결정에 의지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보면, 기술발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완화하기 위해 투입되는 예산과 인원은 낭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방관하기만 한다면, 앞으로의 사회에서 인간이 설 자리도 사라질 지 모른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의 미래는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비효율적인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방향으로 흐를지도 모른다.

 

에리히 프롬은 먼저 보편적인 원칙과 가치관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 특유의 능력이 더 위대하게 펼쳐지는 데 기여하고, 생명을 조장하는 것은 모두 가치 있거나 선하다. 생명의 목을 조르고 인간의 능동성을 마비시키는 것은 모두 부정적이거나 나쁘다. [p. 166]

 

그러면서 구체적인 대안으로 ‘인간적인 기술’ 혹은 ‘기술을 인간화’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정보화 사회’를 추구하자는 얘기가 된다.

 

기술사회를 인간화하는 데 필요한 혁명적 변화, 즉 기술사회를 물리적 파괴, 비인간화, 광기로부터 구원하는 데 필요한 변화는 반드시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런 영역 모두에서 동시에 변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시스템의 어느 한 부분에서만 변화가 일어나면 시스템 자체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 병적 증상을 다른 형태로 재현할 뿐이기 때문이다. [p. 257]

 

<희망의 혁명>에 대한 해설을 맡은 이성태 교수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야기한 불평등과 경제적인 억압을 해소하기 위한 변화,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사회적인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변화,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권력과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와 투명성을 증진하는 변화,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창의성, 융통성, 공동체 의식을 존중하며 인간다운 가치를 강조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p. 279]

 

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인본주의 운동’, ‘영적 르네상스’ 혹은 ‘문화 혁명’ 어떤 명칭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다만, 생명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람들을 통해 이러한 개념들이 뿌리를 내리고 발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 중심의 기술사회로 진화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선언에서 그치면 그저 경건한 척 위선을 떠는 부질없는 희망이나 이상주의적 몽상이 될 것이다. 실천이 필요하다!

 

실천이 없는 아이디어는 메마른 장소에 보관된 씨앗과 같다. 그 아이디어가 영향을 미치려면 흙에 심어야 한다. 그리고 그 흙은 사람 그리고 사람의 집단이다. [p.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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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희망의 혁명 : 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평점10점 | l*****0 | 2023.09.15 리뷰제목
에리히 프롬의 책이다.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며 에리히 프롬의 글에 빠졌던 적이 있다. 오랫만에 그의 새로운 글을 만났다.   이 책이 쓰여진 시대가 1960년대임을 생각한다면 무척 놀랍다. 방금 전에 쓴 책이라해도 믿겨질 것 같다. 반세기 넘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글은 현 시대에도 유효하다.     책 앞부분의 글이다. 이 글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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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책이다.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보며 에리히 프롬의 글에 빠졌던 적이 있다.

오랫만에 그의 새로운 글을 만났다.

 

이 책이 쓰여진 시대가 1960년대임을 생각한다면 무척 놀랍다.

방금 전에 쓴 책이라해도 믿겨질 것 같다.

반세기 넘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글은 현 시대에도 유효하다.

 


 

책 앞부분의 글이다.

이 글을 보면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책을 의심했다.

현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당시에도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기계화를 걱정했던 것이다.

 

희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희망일까?
그렇다면 더 좋은 차와 집, 가전제품 등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희망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소비를 욕망하는 사람일 뿐이다.
희망의 대상이 어떤 사물이 아니라 더 충만하고 활력이 넘치는 삶일 때, 끝없는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해방일 때 진정한 희망이 된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저자는 원하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정신적인 만족일 때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희망은 역설적이다.
희망은 수동적인 기다림도 아니지만,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비현실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희망하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희망이 약한 사람은 안락이나 폭력에 안주한다.
하지만 희망이 강한 사람은 새로운 생명의 모든 신호를 눈으로 보아내고 소중히 여기며, 매 순간 태어나려 하는 것의 탄생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희망할 수 없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은 꿈이다.

희망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꿈은 꾸지만, 희망은 갖는다고 말한다.

지금 꿈만 꾸고 있는가, 희망을 품고 있는가?

 


 

부활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보여주고 있다.

종교적 의미의 부활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부활이다.

어제의 내가 죽고, 오늘의 내가 부활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내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무엇을 하느냐이다.

어제와 같은 나는 부활하지 않고 그냥 죽은 상태이다.

 

오늘날 이 시스템의 지침 원리는 무엇일까?
첫 번째 원칙은 무언가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최대 효율과 최대 출력의 원칙이다.

이 원리를 반세기 전에 생각했던 것도 놀랍고, 그 원리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이 더 놀랍다.

오늘날에는 이 원리가 더욱 강해져 보인다.

첫 번째 원칙은 이제는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두 번째 원칙은 사회, 기업은 물론이고 이제는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원칙을 잘 따르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이 시스템은 누가 정하고, 만들었을까?

이 시스템은 옳은가? 다른 시스템은 없을까?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인 지금의 ‘시스템'에 대한 의심과 궁금증을 가져본다.

 


 

책의 마지막 글이다.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 있을까?

남아있다고 본다. 그렇게 믿고 싶다.

기술은 인간이 편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말자.

 

누구나 꿈꾸는 ‘희망'이란 단어로 시작해서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공생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박식하고 깊은 통찰을 볼 수 있다.

그의 유려한 문체는 덤이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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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희망의 혁명 평점10점 | g*****3 | 2023.09.14 리뷰제목
최근 [사랑의 기술] 읽기 라는 책을 읽으면서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풀어놓은 책으로 그나마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도서다. 사회철학자이며 정신분석하자 그리고 사회심리학자인 저자의 책은 생각의 다양성을 보여 준다. 특히, [희망의 혁명]은 오래 전에 쓴 글임에도 마치 현대 모습을 일침하는 부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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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랑의 기술] 읽기 라는 책을 읽으면서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풀어놓은 책으로 그나마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도서다. 사회철학자이며 정신분석하자 그리고 사회심리학자인 저자의 책은 생각의 다양성을 보여 준다. 특히, [희망의 혁명]은 오래 전에 쓴 글임에도 마치 현대 모습을 일침하는 부분에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기술이 발달한 이후 인간과 기계는 공존하게 되었는 데 여기서 인간은 인간적으로 되었는가 아님 기계적 인간으로 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제 제목으로 '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라는 문장을 보더라도 문명이 발달했지만 인간적 삶이 무엇이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고찰하게 한다. 책은 6가지 주제로 분류해 그 안에서 세세하게 더 설명을 하는 데 마치 심리학과 철학을 결합한 거 같았다. 한편으로 술술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기도 했고, 한 단락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곤 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활 부분에서는 편리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다르게 흘러갔다. 더 이상 깊이 고찰하는 것을 하지 않고 기계의 결정에 의지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게 되고 실패하더라도 통계에 의한 것임을 염두에 둬버린다. '희망'이 무엇인가 라고 말하는 프롬은 수동적인 형태의 희망을 이렇게 말한다. " 때를 기다리는 희망"이라고 하는 데 이는 지금 당장 내가 무언가를 하거나, 무언가가 되는 대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상, 미래, 후세가 무언가를 해낼 것이라는 믿음임을 더 설명한다. 더 나아가 희망 다음에 신념을 그 다음으로는 불굴의 용기를 설명하는 데 '불굴의 용기'에 대한 설명에선 이 단어는 겁 없음을 말하지만 세 가지로 설명한 프롬은 마지막에서 '불굴의 용기'는 완전히 성숙한 사람에게 나온다고 설명한다. 용기라는 단어가 어느 전장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개인의 삶은 늘 선택에 놓여 있으며 여기서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 역시 용기가 필요하다. 가만히 서 있고 나아가지 않으면 쇠퇴되는 거 당연하다. 그러니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것 역시 용기를 대동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은 변화하게 된다.

 

계속해서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류가 어디로 있고 , 어디로 향하고 있나 라는 소제목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설명한다. 산업 혁명이 일어난 후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은 인간의 기존 삶을 전혀 다르게 바꾸었다.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개인주의와 사회적 분열에 문제가 일어난 것에 대해 답을 찾아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 과정을 읽으면서 기업의 자본주의 형태와 인간이 온전하게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안전하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와 유대 관계를 말한다. 유대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또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인데 때론 잘못 유착이 되면 제대로 된 성인 되지 못하고 유아로 남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기술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단계에서는 인간에 대한 정의 아니지만 인간성을 세부화시키면서 기술이 아닌 인간의 가치관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논리적인 사고 능력으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기계적 인간이 아닌 인간적 인간으로 남기 위함이다.

 

[희망의 혁명]은 물질 사회가 되고 기계화 사회라는 것을 시작으로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시선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데 쉽지가 않다. 앞서 적었듯이 심리학 같으면서도 철학 같은 내용이 범람하고 그 안에서 내가 끄집어 낼 수 있는 부분만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이 미래 모습을 예견한 시선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에 놀라고 그럼에도 이를 보완하면서 나가야 함을 말한다. 문득, 얼마나 프롬을 말하는 것을 의식하면 살아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 기술이 발전한 이 시점에서 더 먼 미래의 모습에서 인간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신념은 살면서 자신을 스스로 바꾸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다.

다른 사람들도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은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나온 결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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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희망의 혁명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m****h | 2023.09.15 리뷰제목
에리히 프롬의 미래 희망 이야기   이 책<희망의 혁명>-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는 지은이 프롬이 1968년에 쓴 책의 개정판이다. 놀랍게도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기술개발은 자연히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인 선택과 책임을, 가치관과 규범을 바탕으로 발전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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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미래 희망 이야기

 

이 책<희망의 혁명>-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는 지은이 프롬이 1968년에 쓴 책의 개정판이다. 놀랍게도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기술개발은 자연히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인 선택과 책임을, 가치관과 규범을 바탕으로 발전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다. 프랑크프루트학파에 프로이트 이론을 도입하여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이 3자의 역학에 따라 사회나 문화 변동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기했다.

 

내가 접한 그의 책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였고 당시에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소개됐다. <건전한 사회>(1955) <인간의 마음>(1964) <소유냐, 존재냐>과 등, 종교, 인간 본성, 윤리학까지, 그리고, 제2성의 저자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으로 결혼이란 어떤 것인가에 관한 것까지(보부아르와 결혼하게 된 에피소드 또한 흥미롭다)

 

 

 

이 책은 미국 사회 문제를 심리학에서 사회학으로 그리고 다시 정치학으로 융합해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의 인간화를 위해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매카시를 지원하기 위해서 다듬은 것인데, 그는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사랑, 즉 생명애를 호소할 목적으로 썼다고 밝히고 있다. 구성은 7장이며, 교차로, 희망,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나?,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기술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단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해설이 실려있다.

 

교차로에 선 인간들

 

인간의 생산 수단과 생활양식이 근본적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는 뜻이다. 교차하는 지점이니, 60년대 말, 미국도 일본도 급속한 고도성장기를 구가하던 시대, 새로운 노동방식, 일자리와 자본 분배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낳고, 인간의 역량과 능력을 대체할 기술사회로 진입, 인간중심의 가치관 충돌문제를 다루면서 기술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고.

 

희망은 무엇인가?, 산산이 부서진 희망

 

희망이 현실적인 한계(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인간적 문제)에 직면하여 무력해진 상황은 인간을 고통 속으로 내몬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프롬은 현실적으로 타당한 기준으로 재평가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현실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대처 능력을 얻게 되며,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자유와 책임,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개인주의와 사회적 분열 등을 문제를 안고 있으며, 프롬은 우리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3차 산업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속으로 AI 시대, 기술발전과 디지털화가 중심이 되는 변화로 인간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지위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인간은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조직하며, 기술은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고 효율성을 향상할 수 있다.

 

기술을 인간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다움을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도덕적으로 선택하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기술 역시 얼마나 또 고도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기술에 먹혀버리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 이 시대에서도 여전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자연스럽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적인 기술사회, 기술발전은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하는 반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덕적 문제가 제기된다. 기술발전이 불러온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을 지켜내는 작은 희망의 실현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든,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기계 세계의 자기방어와 자기 재생산 등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는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예기치 못했던 결과, 즉 인간을 적으로 돌린 디스토피아적 상상 역시 인간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지 않을까, 미래의 사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프롬은 20년 앞을 내다보며(적어도 90년대 말.) 예측하는 기술사회 즉, AI의 등장과 급속하게 변화할 사회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삶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해서 그 삶을 살아내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가능성이 있는 한 그 삶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불변의 원칙을 굳건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이것이 희망의 혁명일까, 프롬은 이제는 무력혁명, 쿠데타 등으로 세상을 뒤집어엎는다는 건 실현 불가능의 희망으로 본다(245쪽 이하). 적어도 미국에서는 말이다. 이 대목 또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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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기술이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희망이 혁명적으로 필요합니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o | 2023.09.07 리뷰제목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 사람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저의 철학을 위해 사회철학자이자 사회 심리학자인 저자의 책을 골랐어요.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했죠. 희망의 혁명이라니. 희망은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것일까요? 기술이 인간을 흉내 내는 시기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따
리뷰제목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 사람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저의 철학을 위해 사회철학자이자 사회 심리학자인 저자의 책을 골랐어요.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했죠. 희망의 혁명이라니. 희망은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것일까요? 기술이 인간을 흉내 내는 시기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 볼까요?


 

저자 에리히 프롬은 독일 태생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사회철학자입니다. 1962년 아이텍 베르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뮌헨대학교와 베를린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했어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사회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죠. 1933년 나치 치하의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할 무렵 정신분석학자로 높은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정신분석학 강의를 하면서 인간의 욕망에 따른 사회와 개인의 갈등에 주목하는 논문을 발표하죠. 1974년 스위스로 이주 후 198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랑의 기술>과 <자유로부터의 도피>, <건전한 사회>, <인간의 마음>, <소유냐 존재냐>등의 저서를 남겼죠.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판 서문과 함께 개정판 서문이 책의 시작을 알리죠. 1장은 교차로라는 제목으로 현재 사회를 진단합니다. 2장은 희망이라는 주제로 저자가 생각하는 희망에 대해 말해요. 3장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나라는 주제로 저자가 살았던 시대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통찰력 있게 내다보며 인간을 통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고,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4장은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이라는 주제로 인간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죠. 5장은 기술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단계라는 주제로 기술 사회에서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는 인간을 위한 단계를 제시합니다. 6장은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앞으로의 문제점과 어려움, 가능성 등을 말하고 있어요.

저자가 살았던 20세기 말에 생각하지 못하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AI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도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내야 하는 걸까요? 천천히 곱씹듯이 책을 펼칩니다.

 

희망이란 존재의 상태다. 준비가 되어 있는 내면의 상태, 열정적이지만 아직 쓰이지 않는 능동성(activeness)이다. (p39)

철학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단어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 정의 일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저자는 희망을 이렇게 정의해요. 희망이란 존재의 상태라고요. 이 말에 밑줄을 그으면서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요. 희망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이 아니던가 싶은 짧은 생각으로 인해 더 커진 희망의 개념을 담지 못하는 모습이죠. 이어지는 실명에서 활동의 개념과 현대 사회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우리 문화 전반은 활동에 맞춰져 있다고 해요. 활동은 바쁘다(busy)의 미이며, 바쁘다는 것은 비지-니스의 바쁨(busymess)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바쁨으로 정의되는 현대의 활동이 아니라 생명과 성장에 수반되는 정신 상태가 희망이라고 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생산적인 경제활동으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생명과 성장에 수반되는 정신 상태가 희망인 것이죠. 우리의 희망은 지금 어떤 상태로 어디에서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바쁘지만 희망적이지 않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다만 첫 번째 개념은 사람들이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들리고, 두 번째 개념은 수백만 명의 사람과 강대국 정부들이 공유하기 때문에 정상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p93)

어떤 사람들을 정상으로 보는 것과 질병으로 보는 것의 차이를 설명한 주석 부분입니다. 사회의 문제들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 같아요. 국민 대다수가 오염수 방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면 국가는 그 정상들에 반응하면서 외교 문제나 정치 문제를 풀어나가야 맞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생깁니다. 국민 대다수라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연일 방송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만 나오는 뉴스를 정상적으로 보기는 어려워 보여요.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면 뉴스가 그렇게 쏟아져 나올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대다수가 개념을 공유했기 때문에 지난 역사에서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지능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병자 취급을 받거나 감옥 같은 병원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들의 상태를 재판에서 병으로 판단하는 순간 그들은 가족들과 이웃들로부터 격리되었죠. 그 후로 한 번도 병원 담장을 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지만, 그 당시에 공유된 개념은 그들은 병자라는 것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들을 비정상이라고 격리하고 가두었던 일들이 옳은 일이 아니었음요. 지금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개념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그러니 더 신중하고, 저자의 말처럼 인간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과 정책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가치관의 궁극적인 원천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p181)

무엇을 위해 기술은 발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분명 그 기술의 시작은 인간을 위한 것이었으나, 어느 때나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술이 인간적이지 않은 때도 있어요. 인간이 궁극적인 원천이 되는 기술은 무엇일까요? 경제적인 논리보다, 효율성보다 인간이 우선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말이 쉽지 그 기술을 구현하고 개발하는 사람에게 철학이 없다면(인간을 최우선에 두는 가치관) 그 말은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합니다. 정말 말 그대로 희망적인 바람이 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가 말한 대로 생명과 성장에 수반되는 정신 상태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정말 희망의 혁명이 필요한 것이죠. 문송하다는 말이 아프게 유행되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의 기본은 인간이 가치관의 궁극적인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철학자의 책은 어렵습니다. 한글로 된 글이 맞지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글자만 읽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가와 다시는 읽지 말자는 다짐 사이를 오가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는 희망적인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를 통렬하게 진단 비판하면서도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고 방법들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여요. 그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기술이 더욱 발전할수록 더욱 인간이 중심이 되는 가치관의 개념 공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깨달아요. 한 사람의 깨달음은 약하고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혁명도 갑자기 각성하는 경우는 더물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적인 가치관을 고민하고 생명과 성장을 위한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저자가 책의 맨 처음에 인용한 성경 구절처럼 살아야 해요. ‘누구든 살아 있는 쪽에 끼어 있으면 희망이 있나니. 전도서 9장 4절’. 시대를 앞서 살았고, 사람들을 희망적으로 사랑했던 저자가 묻는 것 같아요. 당신은 살아 있는 쪽에 끼어 있느냐고요. 나와 당신, 아니 우리는 어디에 끼어 있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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