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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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Numero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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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소설 > 세계각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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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제0호』저널리즘에 대하여 말하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18.12.03 리뷰제목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문구만으로도 꼭 읽어야 할 소설이 아니겠는가. 이미 유명을 달리했으니 그의 새로운 소설을 이제 읽을 수 없다는 건데. 움베르토 에코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꼭 읽어야 할 소설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읽은 게 겨우 두세 권의 소설이다. 다채로운 경력답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 소설인 『제0호』
리뷰제목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문구만으로도 꼭 읽어야 할 소설이 아니겠는가. 이미 유명을 달리했으니 그의 새로운 소설을 이제 읽을 수 없다는 건데. 움베르토 에코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꼭 읽어야 할 소설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읽은 게 겨우 두세 권의 소설이다. 다채로운 경력답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 소설인 『제0호』 또한 어렵지 않을까 염려 되었던 게 사실이다.

 

소설은 그저그런 직업을 거쳐온 중년의 콜론나가 창간을 앞둔 신문사 주필의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을 대신해 쓰는 일을 맡는다. 그들이 창간하기로 한 신문은 <도마니>라는 이름으로 창간하기로 해놓고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다. 신문을 내기 위해 1년 동안 준비하면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책을 쓰면 된다.

 

신문을 창간하기로 한 시메이 주필은 기자 여섯 명을 불러 모으고 그들은 창간되지 않을 신문을 발간하기로 한다. 일례로 아무리 폭탄을 던진 적이 없다 해도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제0호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콜론나는 기자들이 쓴 기사들을 검토하는 역할 즉 데스크를 맡는다. 

 

 

 

 

소설은 상당히 풍자적이다. 발간하지도 않을 신문 기사에 반박을 하는 독자들이 진짜로 나타날 날에 대비해 독자들이 보낸 편지들을 지어내고 기자들이 다시 반박하는 등의 연습을 하는 편집 회의를 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는 장면이 아닌가.

 

저널리즘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글이었다. 만약 어떤 한 뉴스가 보도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기사다. 그런 기사를 덮기 위해서는 새로운 뉴스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사람들의 이목을 확실하게 끌만한 충격적인 것을 터트리는 식이다.  

 

수많은 정치인들과 저널리스트들이 자주 해온 패턴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그러지 않았나. 어느 기업에 해가 될만한 기사가 나왔을 때 그걸 덮기 위해 한 연예인의 스캔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새로 발표된 스캔들에 눈을 돌려 떠들기 시작하고 그들이 숨기고자했던 뉴스는 조용히 덮인다.  

 

 

 

신문들은 뉴스를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250페이지)

 

에코가 무솔리니의 죽음과 죽은 무솔리니가 가짜라는 사실을 왜 나타냈는가이다. 감추기 급급한 사실을 또다른 뉴스로 눈가림을 해 그들의 치부를 숨기고자 했다. 하나의 가설을 세워 사건을 조사하던 기자의 죽음이 가져온 파장은 컸다. 그들을 추구하고자 했던 기간에서 충분히 일렀으니까. 음모론과 함께 저널리즘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말하는 모든 것들이 진실인가 의문스러워한다. 묻히고 묻히는 기사들 속에서 진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사실을 말하는 뉴스지만 종종 감추어지니 일반 시민들은 눈가리고 아웅식에 넘어가고 만다. 에코는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사이며 파장을 불러올 기사들은 종종 수면 아래로 조용히 묻혀버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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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신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평점8점 | g******1 | 2018.11.27 리뷰제목
우리 시대의 지성인 움베르토 에코, 엄청난 독서량과 기억력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여러 언어 등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사고하고 독자들의 지평을 넓혔던 작가가 세상을 뜬 지 거의 3년. 다시는 에코의 신간을 볼 수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작고하기 전 해인 2015에 남기신 책이 이제야 번역되었다. 방대한 지식이 자유자재로 뻗어 있는 에코의 글은 산만해서 집중을 요구할 때가 많지
리뷰제목
우리 시대의 지성인 움베르토 에코, 엄청난 독서량과 기억력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여러 언어 등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사고하고 독자들의 지평을 넓혔던 작가가 세상을 뜬 지 거의 3년. 다시는 에코의 신간을 볼 수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작고하기 전 해인 2015에 남기신 책이 이제야 번역되었다. 


방대한 지식이 자유자재로 뻗어 있는 에코의 글은 산만해서 집중을 요구할 때가 많지만, 대신 항상 유머와 해학으로 즐거움을 서비스해준다. 에코의 블랙 유머는 독일어를 잘해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 시절, 지도교수를 잘못 만나면서 꼬이기 시작하던 시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한번 꼬인 인생은 성공으로 가는 우연의 길목을 만나지 못하고 계속 꼬인 채로 중년에 이르렀다. 고스트라이터에서부터 시작해서 번역 일과 온갖 잡동사니 신문에 닥치는 대로 글을 쓰며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며 사는 50세의 콜론나가 자신의 인생을 실패자로 규정하는 대목은 잘 안나가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사한다.

패배자는 독학자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승리자보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승리하고자 한다면 그저 한 가지만 잘 알아야지 무엇이든 다 알겠다고 시간을 허비에선 안 된다. 박학다식하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건 패배자들이 겪는 업보이다. 어떤 사람의 지식이 늘면 늘수록 잘못 돌아가는 일들도 자꾸 늘어간다는 것이다. 24


그러던 어느 날 시메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제안을 한다. 콤멘다토레가 발행하게 될 새로운 신문의 창간 멤버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인데, 제시하는 액수가 엄청나다. 이렇게 뜬금없는 금액을 제시할 때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 시메이는 이미 세상 쓴 맛을 두루 섭렵했을 콜론나에게 숨김없이 계약 조건을 이야기한다. 

창간 준비만 하다가 발행인의 결정으로 사업이 끝나버리면, 나는 책을 출간할 겁니다. 책은 폭탄이 될 것이고 나에게 거액을 인세를 안겨줄 겁니다. 그런데 책이 출간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내가 책을 출간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주겠지요 (p33)


이 책은 우선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타블로이트 신문의 창간 준비호가 제작되는 과정의 세부 논의 과정들을 통해 뉴스가 제작되는 생태계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재능있고 경험이 풍부한 콜론나는 데스크를 맡으며 창간을 준비하기 위해 고용된 기자들과 친해진다. 그 중 한 편으로는 브라가도초와 뜻하지 않게 자주 얽혀 그의 장황하고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음모론의 청취자가 되고 술값까지 내게 되는 상황이 자주 생기고 한편으로는, 연예인 뒤꽁무니만을 따라다니던 전직 연예계 기자 마이아와 썸을 타게 된다. 브라가도초가 기레기를 대표한다면 마이아는 아직까지 대중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은 순수한 기자 정신을 대표한다. 

나오지도 않을 신문이지만, 시메이 주필과 콜론나는 기자들에게 신문의  이상적인 모습보다는 신문의 실제적인 요구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발행인인 콤멘다토레가 요양원을 소유했는데 한 판사가 요양원의 운영실태 수사를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발행인에게까지 수사의 영향력이 미치게 될 것을 미리 염려해, 수사관의 뒤를 캐는 것이 신문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신문이 할 일은 무엇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옳지 않'을 때 취해야 할 것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그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의 정당성을 떨어뜨릴 만한 것을 찾아내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청렴하다고 해도 수상쩍은 일을 한가지쯤은 했을 거에요. 그것도 아니라면..그가 매일 하는 일을 수상해 보이도록 만드는 겁니다...상상력을 발휘해 보세요. 188

이 얼마나 익숙한, 사실 진부하기까지 한 수법인가. 미디어를 장악한 베를루니코스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각종 비리와 부패의 파티장으로 벌였던 10년의 장기집권 기간 중의 범행은 우리나라가 겪은 10년의 개막장이게나라냐정부와 여러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이탈리아에서 꺼진불도 다시보지 않고 재활용했던 파시스트들의 잔존 여파가 부패 극우로 변신하는 과정과 혈서 쓰고 친일을 한 후 공산당까지 골고루 돌아가며 했던 자랑스런 아버지를 둔 덕에 허황된 지역주의에 목을 맨 세력과 이에 호응하는 대중을 업고 대통령까지 했던 박씨의 성공담과 구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 미디어가 아무리 잔머리를 굴리고 노력해도, 적당히 해먹었어야 덮는 게 가능하지라는 본보기를 근과거의 역사가 흔들리는 촛불의 잔영속에 비추지만, 미디어는 오늘도, 진실을 전하기 보다는,  목적을 위해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잘라내기 오려붙이기를 통해 대중의 눈을 속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하다. 세월호 이후 세월호에 탔던 어린 아이들이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가라앉았다는 그 엄청난, 믿기지 않은 사건의 본질은 실종되고 숨은유병원찾기놀이로 일제히 여론이 움직였던 일을 잊은 듯 본질을 호도한 보도들이 넘쳐난다.

악한 사람을 신문에서 착하다고 부르면 그 사람은 착한사람이 되고, 사람들은 신문을 따라 착한OO라고 부른다. SNS 시대에도 여전히 신문과 뉴스의 효과는 그 무엇보다 막강하고,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이 개인 1인 미디어가 외치는 말보다 진실성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모가 어떤 세력을 와해하기 혹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소한 거짓을 퍼뜨리는 방법은 교묘해서 알아차리기 힘들다. 1의 거짓을 전달하기 위해 99의 하찮은 진실에 1의 중대한 거짓을 섞어 전달하면 99의 하찮은 진실이 휘발한 후 1의 거짓만이 99만큼의 진실성을 확보한다.

맞아요 신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145

신문들은 뉴스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250

가짜뉴스가 판을 치다 보니,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달에 가지 않았느니, 에이즈라는 질병은 존재하지 않는다느니, 미국정부가 UFO니 외계인을 숨기고 있다느니 하는 여러가지 음모론 속에 0.1%의 몰랐던 진실, 매우 역사적으로 중요한 진실이 숨어있다면 음모론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브라가도초는 어이없게도 처형당한 무솔리니가 대역이었다는 음모론을 개발(?) 중이다. 뭔가를 믿기 시작하면 확증편향으로 이어져, 연관된 모든 것을 의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게 된다. 물론 본인은 개발이 아니라 진실을 캐는 과정이지만, 브라가도초가 제시하는 무솔리니의 대역 음모론은 말처럼 그리 황당하지만은 않다. 그는 무솔리니 체포 및 처형 당일의 행적을 깨알같이 조사하며 꿰어맞추면서 클론나에게 음모론의 진실(자기가 믿는)을 이야기하지만,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게 진실이라 하더라도 드러나는 몇몇 군데 구멍들은 상상력으로만 메꿀 수 없다. 결국 그 구멍들을 메꾸기 위해 조사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연관된 인물과 사건이 활보하는 시간 범위는 더 가까와진다. 

두체 무솔리니 파시스트 스토리는 참으로 흥미로왔다. 서너 페이지에 걸쳐 거의 칼럼 기사처럼 브라가도초가 조사한 무솔리니의 행적이 정리되어 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옮겨보면 이렇다. 짧은 지면이지만 등장인물도 많고, 이동 경로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주의깊게 읽었다. 

무솔리니 대역 처형 재구성 시나리오 등장 인물

카벨라 : 마지막 충신, 파시스트 신문 
산드로 페르티니 :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 영웅 
라켈레 : 아내
클라레타 페타치 : 애인
마르첼로 페타치 : 애인의 오라비(스페인 영사로 분장)
*페드로 : 빨지산 부대 대장
*발레리오 대령 : 무솔리니 처형 지휘 대장

무솔리니의 도피 행적은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실질적 수도였던 살로에서 시작된다. 전쟁이 막바지였던 1945년 4월 18일 무솔리니는 살로를 버리고 밀라노 도청을 본부로 삼는다. 4월 25일 해방군과 맞닥뜨리자 무솔리니 일행은 밀라노 탈출, 가족, 애인도 코모에 집결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날 가족과 만나지 않는다. 이후 코모 인근 카르다노에서 무솔리니는 애인과 합류하고 도피중, 히틀러가 보낸 호위대가 오스트리아로 대피를 돕기 위해 나타나고 메나조에서 이들과 합류, 스위스 국경 키아벤나로 향하지만 실패하고 무소에서 빨치산과 대면한다. 호위하고 있던 독일군들은 이탈리아인들을 빨치산에게 넘기고 퇴각하지만, 돈고에서 독일군에 대한 전면 수색이 이루어지고 독일군으로 변장한 무솔리니가 여기서 발견된다. 이 때 조약에 의해 무솔리니는 연합군에게 인도될 예정이나, 해방위원회는 처형하기로 결정한다. 처형 이유는 이렇다. 

"해방위원회의 대다수는 이탈리아에 당장 하나의 상징, 파시즘의 20년 세월이 끝났음을 알리는 구체적인 상징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두체 무솔리니의 죽은 몸뚱이가 바로 그 상징이다.(..) 만약 무솔리니가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지 않으면 그의 이미지가 오래 남아 실체는 없으면서도 다루기 곤란한 존재가 되리라 직감한다. 바르바로사(붉은수염)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전설을 생각해보라.(..)동굴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가 때가 되면 깨어나 독일을 위대한 제국으로 만들 거라는 웅대한 전설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는가. 무솔리니가 그런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이탈리아 국민을 과거로 회귀하도록 환상을 불러일으키면 안되는 것이다(162)"

4월 29일에 모든 시체가 밀라노 로레토 광장에 부려진다. 이 광장은 거의 9개월 전에 근처에서 총살당한 빨치산들의 주검이 버려졌던 곳이다. - 빨치산들을 총살한 파시스트 민병대원들은 그 주검들을 온종일 햇볕이 뺑쨍한 곳에 놓아두고 유가족들이 시신을 거두어 가지 못하게 했다(169)

체포되어 공개 처형된 무솔리니가 대역이었다는 근거는 콜론나가 보기에도 독자가 보기에도 허술하기 짝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는 점, 당대 사람들이 무솔리니의 얼굴을 잘 몰랐다는 점, 1주일만에 수척했던 무솔리니가 퉁퉁하게 살이 올라있었다는 점 등을 기반으로 한 추측성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몇가지 모순까지 존재하기에 브라가도초는 만일 그가 살아있었다면 어디에 있었겠는가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거대한 역사의 음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가짜와 진짜가 교묘하게 섞어서 짜맞추면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내일 창간되지 않을 창간 준비호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음모론에 빠진 브라가도초가 진실의 실 조각들을 모아서 짜낸 스토리 어딘가에는 누군가를 두렵게 하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들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가짜이거나 왜곡이었다는 거야. 우리는 25년동안 계속 그들의 속임수 속에서 살았어. 내가 그랬잖아. 남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그 모든 뉴스는 오래전부터 유포되고 있었어. 다만 집단의 기억에서 뉴스들이 지워졌던 거야. 모자이크의 조각들을 한데 모으려면 기록보관소나 자료실에 가면 돼...마치 새로운 폭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이전 뉴스를 지워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모든 것을 끌어내 다시 죽 늘어놓기만 하면 돼. 브라가도초가 바로 그 일을 했고, BBC도 그 일을 한 거야. 재료를 혼합해서 저마다 칵테일을 만들었어. 그래서 우리 앞에 두 잔의 완벽한 칵테일이 있어.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어.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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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제0호 - 움베르토 에코 평점9점 | g*******7 | 2018.11.28 리뷰제목
철학가이자 소설가,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글은 흥미로우면서 이야기 이외의 요소에 더욱 눈길이 가는 경우가 많다. [장미의 이름]은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들을 조사하는 것이 이야기의 주요 맥락이지만, 그 사건을 파헤치면서 오히려 중세의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오히려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채로운 이력
리뷰제목

 철학가이자 소설가,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글은 흥미로우면서 이야기 이외의 요소에 더욱 눈길이 가는 경우가 많다. [장미의 이름]은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들을 조사하는 것이 이야기의 주요 맥락이지만, 그 사건을 파헤치면서 오히려 중세의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오히려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채로운 이력과 더불어 스스로 수많은 책을 읽고 보유한 장서가답게 에코의 작품에는 방대한 지식과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탄생된 이야기들이 가득하기에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마다 그가 고안한 문체와 더불어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서 때론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제0호]는 어렵지 않게 에코의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내일'이라는 의미를 가진 신문 '도마니'를 창간하기 위하여 그 준비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제0호]는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에코가 오늘날 언론의 그릇된 행태를 꼬집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도마니'라는 신문 자체가 구독자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유력자가 특정 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하여 창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애초부터 이 신문은 제대로 창간될 수 밖에 없음을 내포하고 있던 것이다. 주필인 시메이 스스로 콜론나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자신의 목적이 '도마니'의 창간이 아닌 신문을 내기 위해 1년 동안 준비하면서 겪은 일을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 형식으로 책을 내기 위함을 밝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작품이 오늘날의 언론에 대한 풍자가 주요 내용임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협박이라는 말은 쓰지 마세요. 우리는 뉴스를 싣습니다. [뉴욕 타임스]가 말하듯이,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 를..."

 - p. 38 中에서 -

 '도마니'의 창간 목적이 특정 세력에 대한 협박 수단이라고 반문하는 콜론나에 대한 주필 시메이의 이 짧은 주의는 [제0호]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협박'과 '뉴스'가 전혀 상반된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실제 두 단어가 오히려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대사로 하여금 에코는 뉴스가 본질을 잃고, 오히려 협박의 수단으로 전락하였음을 반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시 언론의 행태에서 이러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에코의 글에 공감하게 된다.

 

 실제 이탈리아에서 총리를 지냈던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제0호]의 곳곳에서 등장한다. 베를루스코니 역시 언론사를 소유한 기업인이었기에 '도마니'의 후원자가 베를루스코니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도 있다. '내일을 알려면 어제를 보라'라는 취지를 내세우면서 신문 창간 과정을 통하여 언론의 행태를 샅샅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자신들의 신문이 진짜 창간될 것이라고 믿는 마이아를 비롯한 기자들은 시메이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여서 취재할 내용을 선정하고, 그것을 기사로 쓰는 과정에 대한 표현을 검토하는 부분들은 실제 신문 창간 준비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메이가 주도하는 방식은 이내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의 표현을 인용하여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라든지 구독자의 수준이 높지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여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유로 저급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시메이의 방식에 대하여 마이아는 반론을 제기한다. 이러한 마이아의 반론은 분명 언론의 정상적인 방향 제시이지만, 오히려 그녀가 시메이로부터 철저히 무시되고 심지어 동료 기자인 브라가노초로부터 자폐아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인물들간의 갈등으로 보이는 이 대목은 원래 언론의 목적을 뒤로하고 그릇된 흐름을 보여주는 행태에 대한 상징처럼 느껴지게 된다. 비단 이러한 것이 에코를 둘러싼 이탈리아의 언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어렵지 않게 공감하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에코는 무솔리니에 대한 음모론을 브라가노초의 입을 빌려 이야기함으로써 또 다른 흥미를 제공한다. 히틀러에 대한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실제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로마 교황청의 도움으로 은신처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었으며, 전후 이탈리아의 우익 세력과 연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브라가노초는 이 부분을 비밀리에 취재하고 있음을 콜론나에게 털어 놓는데, 이는 언론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비판이 가득한 상황을 묘한 긴장감으로 바꿔놓는다. 애초부터 이 작품이 콜론나가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침입했던 흔적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이러한 긴장감은 이미 예고가 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에코의 음모론은 댄 브라운의 그것과는 달리 느껴진다. 그의 음모론은 음모론 그 자체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음모가 주요 쟁점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당시 중세의 상황과 분위기를 상세히 전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0호]의 무솔리니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음모론 역시 긴장감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후 이탈리아의 혼란스러운 정치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무솔리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가 이탈리아의 '글라디오'와 같은 우파와의 연계설이라든지 이를 지원한 미국의 CIA, 우파와 좌파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는 무솔리니라는 변수를 제거해도 실제 이탈리아의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0호]는 에코 스스로 술회한 것처럼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그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것들을 압축하여 좀 더 이해하기 쉽게끔 보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중략) 그래도 그의 얼굴은 미국 영화배우 텔리 사발라스, 특히 형사 코작으로 연기했던 사발라스의 얼굴이었다. 이런, 한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다른 인물을 끌어다 쓰는 나의 이 인유법은 도통 버릴 수가 없다.

 - p. 51 中에서 -

 콜론나의 입을 빌어서 에코는 자신의 작품에서 인물들을 묘사하는 인유법에 대하여 직접 인용하고 있는 이 부분만 본다면 그는 [제0호]를 통하여 그간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것들을 압축하여 드러내고 있다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정말로 이 작품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언론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무솔리니의 생존에 대한 음모론으로 [제0호]를 기억할 수 있겠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으로 인하여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을 쓰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제0호]는 이야기 이상의 그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케 된다. 마지막으로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자신의 글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제0호]는 이렇게 이야기 자체로 또는 이야기 너머에 대한 생각으로 음미할 수 있기에 에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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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제0호/움베르트 에코] 창간되지 못했기에 가질 수 있는 우리의 희망 평점10점 | h******o | 2018.11.22 리뷰제목
남의 작품을 인용하는 나쁜 버릇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쓰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p.28 리뷰를 쓰기 위해 다른 분들의 리뷰를 몰래 훔쳐보기 시작한다. 나는 분명 불성실한 독자임에 틀림없다. 다 읽고 나서도 내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이 리뷰를 보고서야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깨닫다니. 그러니까 이 소설, 신문창간을 준비하는 소설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신문
리뷰제목

남의 작품을 인용하는 나쁜 버릇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쓰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 p.28

 

리뷰를 쓰기 위해 다른 분들의 리뷰를 몰래 훔쳐보기 시작한다. 나는 분명 불성실한 독자임에 틀림없다. 다 읽고 나서도 내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이 리뷰를 보고서야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깨닫다니. 그러니까 이 소설, 신문창간을 준비하는 소설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신문창간을 하지 않기 위해 신문창간을 준비한다는...뭐 그런 소설이었다구?

 

 

신사인 척하지 마, 콜론나, 자네가 어떻게 하는지 내가 지켜봤거든. 자네는 남들이 눈치재지 않게 그녀를 홀깃거렸어.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 여자는 유혹에 응할 것 같아. 사실 여자들은 모두가 유혹을 마다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여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거야. 내 취향에 비춰 보면, 그 여자는 너무 말랐어. 가슴도 없고.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괜찮은 것 같기는 하던걸.

- p.51

 

왜 하필이면이런 문장을 발췌한 거냐구? 이렇게 보니까, 신문창간을 하지 말아야 된다는 그 취지에 공감이 가지 않아? 사실인지 아닌지보다는 이슈 그 자체에 매달리는 언론이라면, 정말 믿으면 안 될 것 같지 않나? 진실이라는 것은 먼 곳에서 헤매고 있는데,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이 언론의 세태. 지금도 많이 행해지고 있는 걸. 거기에 넘어가곤 하는 우리들이 참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를 비웃곤 하겠지. 겨우 그 정도에 넘어가냐고!

 

「왜 우리손가락이 열 개일까? 왜냐하면 만약 손가락이 여섯 개라면 십계명이 6계명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도둑질을 할 수도 있고 거짓 증언을 할 수도 있고 남의 아내나 남의 재산을 탐낼 수도 있게 되니까. 왜 신은 더없이 완전한 존재일까? 왜냐하면 만약 신이 더없이 불완전하다면 바로 내 사촌 구스타보 같을 테니까.」

나도 놀이에 동참했다. 「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에서 발명되었을까? 왜냐하면 만약 일본에서 발명되었다면 쌀로 빚은 맑은 술이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위스키에 소다수를 섞은 하이볼을 마실 수 없으니까. 왜 바다는 저리도 넓을까? 왜냐하면 세상에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란 산 베르나르도 같은 좁다란 산중 호수에 그것들을 다 모아 둘 수 없으니까. 왜 암탉은 150번 우는 걸까? 왜냐하면 프리메이슨의 등급 수가 33이라고 해서 33회를 울었다가는 프리메이슨의 그랜드 마스터가 될지도 모르니까.」

- pp.98`~99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하지. 그렇지.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도 해야 하지. 그 답을 위한 놀이를 하는 부분. 그 놀이에는 "진실성"이 포함되어 있다. 웃기긴 하지만, 의미도 있고, 공감도 되는 놀이들.

 

언뜻 보기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속임수일 수도 있어요.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나서 이제 손을 씻었으니 벌하지 말고 덮어 달라는 말일 수도 있지 않겠어요?

- P.147

 

용서를 할 때 주의할 점은 그 사람이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지 안 비는지에 대해서는 용서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겉으로만 봐서 느껴지는 모습은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용서를 할 때는 조건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면역이 되어 있어. 누가 새로운 이야기라면서 우리에게 뭔가를 들려주기도 하지. 그러면 우리는 그보다 더 나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해. 그러고는 듣고 보니 그 얘기는 가짜일 거라고 덧붙이지. 미국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그리고 유럽의 반을 차지하는 나라들의 정보기관이며 우리 정부며 신문들이 거짓말을 했다면, BBC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 괜찮은 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뭐가 중요할까? 진짜 중요한 문제는 딱 하나야. 세금이 더럽게 쓰이지 않도록 아예 내지 않는 거라고, 위에서 명령하며 사는 사람들은 저희끼리 알아서 잘 살아. 저희가 원하는 대로 살고, 어떤 식으로든 저희 뱃속을 채워지. 아멘. 보다시피 시메이하고 두 달 동안이나 일했더니 얻은 게 있어. 나도 남들처럼 영악해졌잖아.

- PP.312~313

 

취재를 할 때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얘기를 듣겠지. 문제는 그 얘기에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의 이야기도 방송의 이야기도 전부 다 믿을 수는 없다.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매일 바쁘게 찍어내는 신문과 방송들은 그렇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라도 하듯이, 『제0호』는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그 죽음이 의미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0호』에서 신문은 결코 창간되어서는 안되는 무의미하면서 유의미한 존재다.

 

마이아는 나에게 다시 마음의 평화를 주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 주었다. 적어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고요하게 불신하도록 만들어 준 것은 분명하다. 삶은 견딜 만하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된다. 스칼렛 오하라가 말한 대로- 남의 말을 인용하는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나는 1인칭으로 말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제 남들이 말하라독 그냥 내버려두고자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산 줄리오섬은 햇살에 다시 빛날 것이다.

- P.318

 

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이게 여기 나오는 문징이었나? 가끔은 헷갈리기도 한다. 이거 누군가가 번역오류한 거였다는 말도 있던데. 번역오류건, 실제 작가가 쓴 문장이건, 중요한 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때에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며 희망을 갖는 것. 그 희망스런 삶에 오늘 잠깐 나를 묻어본다.

 

『제0호』는 내 소설들 가운데 학식을 가장 적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이전 소설들이 말러의 교향곡들이라면, 이 소설은 재즈에 가깝죠.

- P.327 <옮긴이의 말> 중에서.

 

Oh, My Gosh! 제일 쉬운 소설이라고? 희망스런 삶에 잠깐 나를 묻어본 뒤에, 다시 소설의 발자취를 뒤돌아본다. 너무너무너너무. 길고 긴 0호였다. 아무것도 창간되지 않아도 그 의미를 깊게깊게 새겨본 나만의 훔쳐보기. 난,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기로 또 한번 결정했다. 움베르트 에코는 떠났지만, 소설은 나의 마음에 남아 미래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 『제0호』는 창간되지 못했기에 가질 수 있는 우리의 희망이다.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을 통해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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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허구 속 존재하는 현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k********2 | 2018.11.21 리뷰제목
<샤덴프로이데> . 즉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죠. 모름지기 신문은 그런 감정을 존중하고 북돋워야 해요. -p218   우리는 수많은 음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일대기는 더욱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의 시체는 사실 대역이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여 광해군 역시도 대역일 것이라는 상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듯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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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덴프로이데> . 즉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죠. 모름지기 신문은 그런 감정을 존중하고 북돋워야 해요. -p218

 

우리는 수많은 음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일대기는 더욱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의 시체는 사실 대역이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여 광해군 역시도 대역일 것이라는 상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듯이 한 번쯤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의혹과 음모로 느껴질 때가 많다. 뇌가 넘치도록 끊임없이 정보를 주입해야 하는데다 가짜 뉴스를 만들기 쉬워진 인터넷 환경에서 진실과 거짓을 걸러줄 수 있는 필터기능의 언론이 필요한 세상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0의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대필 작가 콜론나는 글 쓰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번역 일을 통해 입에 풀칠만 하고 산다. 그가 능력이 있으면서도 대필 작가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독일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어 번역일 때문에 학사학위를 받지 못하였고 그 덕에 그는 평생을 대필 작가로 먹고 살아야 했다는 설명이 있다. 추리소설을 써달라는 이에게 자신의 문체로 타인의 이름을 빌어 소설을 발표한다. (타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의 문체가 자신의 문체임을 볼 때마다 콜론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시메이 주필은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이라는 책을 집필해 달라고 한다. 물론 시메이의 이름으로. 그렇게 6명의 기자와 한 팀이 되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무솔리니의 죽음을 추적하던 브라가도초가 살해당하면서 책집필은 취소된다. 브라가도초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은 주역이었던 이들을 조역으로, 조역이었던 이들을 주역으로 내세우며 왜곡된 현실을 비춘다. 대필 작가로 살았던 이의 삶, 무솔리니의 대역으로 살았던 이의 삶,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만 뽑아서 고치는 형태로 쓰는 신문기자들의 삶은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부차적인 삶들이다. 그렇게 소설은 세 가지의 왜곡된 이들의 삶에서 권력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허상의 메커니즘을 그린다. 첫 번째 왜곡은 대필 작가로 50년을 살아온 작가의 삶이다. 두 번째 왜곡은 로마의 부활을 꿈꾸었으나 히틀러와 손잡고 잔인한 독재자였던 무솔리니의 최후이다. 카톨릭의 나라에서 교황청의 막강한 권력배경으로 무솔리니의 대역이 존재했으며 광장에서 총살당하는 그 순간의 무솔리니는 대역이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왜곡은 창간하지 않을 신문을 만드는 신문기자들이다. 이 세 가지의 왜곡을 통해 에코는 실질과 다른 허상이 지배하는 현실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혜경궁 김씨가 이재명 부인이라는 뉴스가 언론사마다 보도가 된다. 온라인에서 설왕설래하며 치열한 댓글싸움을 보기도 하였고, 뉴스를 거짓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은 온통 음모투성이인 것만 같다. 이재명에게도 무솔리니 같은 대역이 있거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글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존재했던 것일까? 어쨌거나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어느 날 갑자기 유병언이 살아있다는 속보가 터지고 내 남편이 사실 여자였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만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느끼게 할, 허구속의 현실이라는  묘한 오버랩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더라? 그래, 진리란 그런 거야. 사람들이 무언가를 더 폭로하면 다 거짓말처럼 보이게 하지.-p311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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