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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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리뷰 총점 9.5 (17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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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스페인/중남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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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저/안영옥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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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저/안영옥 역
돈키호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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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대체 돈키호테는 어떤 음식을, 무슨 요일에, 어느 시간대에 먹었을까라는 사소한 질문에 대하여 평점7점 | YES마니아 : 골드 i*****n | 2014.12.05 리뷰제목
열린책들에서 새로이 번역한 돈키호테1(안영옥 역)을 기대를 품고 구입했다. 이미 창비에서 출간한 돈끼호떼1,2(민용태 역)도 소장하고 있던 터라 두 버전(둘 다 모두 완역이다.)을 이따금 비교하며 읽었다. 창비 버전은 열린책들에 비해 문장이나 문체가 다소 고풍스러웠다. 열린책들 버전은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이다. 양쪽 번역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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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새로이 번역한 돈키호테1(안영옥 역)을 기대를 품고 구입했다.

이미 창비에서 출간한 돈끼호떼1,2(민용태 역)도 소장하고 있던 터라 두 버전(둘 다 모두 완역이다.)을 이따금 비교하며 읽었다.

창비 버전은 열린책들에 비해 문장이나 문체가 다소 고풍스러웠다.

열린책들 버전은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이다.

양쪽 번역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열린책들에서 번역한 돈키호테1을 읽다가 의문은 시작되었다.

아래는 1부 1장의 내용 일부다.

 

 

그는 보통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넣은 요리와 소금을 넣어 잘게 다진 고기 요리를 저녁으로 먹고

토요일에는 베이컨 조각을 넣은 달걀 요리를,

금요일에는 납작한 콩 요리를,

일요일이면 새끼 비둘기 요리를

곁들여 먹느라 재산의 4분의 3을 지출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밑줄 친 부분에는 주석48이 있는데 이게 의문의 시작이었다. 주석은 다음과 같다.

 

 

48  양고기보다 소고기가 더 비쌌다. 즉 우리의 이달고는 가난하다. 법적으로 가난한 자는 기사가 될 수 없다.

 

 

비싼 고기를 더 많이 넣어 요리해 먹고 살기 때문에 우리의 이달고(돈키호테인 것 같다)는 가난하다?

인과관계가 어색하다. 본문이 틀렸거나 주석이 틀렸다.

이 부분에 대한 창비의 번역이 궁금했다.

 

창비의 번역(민용태 역)을 살펴보았다.

 

 

지출의 4분의 3은 먹는 데 썼는데,

보통은 쇠고기보다는 좀 질이 떨어지는 돼지고기, 저녁식사로는 고기 부스러기,

토요일은 금욕일이니까 쇠뼈를 곤 곰탕,

금요일엔 콩 수프였고,

일요일이면 닭고기 비슷한 미식이 더러 밥상에 오르기도 했다.

 

 

창비에서는 돈끼호떼가 평일(월~목) 낮에 돼지고기를 먹었단다.

그리고 저녁엔 고기 부스러기.

처음엔 양고기를 많이 먹었을까, 소고기를 많이 먹었을까, 어떤 고기가 더 비쌀까가 궁금했는데,

이제는 돼지고기를 먹었을까도 추가되었다.

또한 양고기든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간에

평일 낮에 먹었을까 아니면 저녁에 먹었을까도 궁금하다.

돈키호테는 평일 낮과 저녁에 무엇을 먹었을까?

더불어 토요일에 먹은 음식도 의문이다.

열린책들 말처럼 토요일에는 베이컨 조각을 넣은 달걀 요리를 먹었는지,

창비 말처럼 토요일은 금욕일이니까 쇠뼈를 곤 곰탕을 먹었는지.

 

평일(월~목)에 먹은 음식을 종합해보면,

돈키호테는

평일 낮에 보통은 쇠고기보다는 좀 질이 떨어지는 돼지고기(창비측 주장)를 먹고,

저녁에는 보통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넣은 요리와 소금을 넣어 잘게 다진 고기 요리를 저녁으로 먹거나(열린책들 주장) 고기 부스러기(창비측 주장)를 먹었다.

금요일과 일요일에 먹은 건 비슷한 것 같으니까 너그럽게 넘어가자.

 

이번엔 시공사 번역본(박철 역)이다.

 

 

그는 양고기보다 쇠고기를 조금 더 넣어서 끓인 전골 요리를 좋아했는데, 밤에는 주로 살피콘 요리(고기와 생선에다 후추, 소금, 식초, 양파를 넣어 버무린 요리-옮긴이 주)를,

토요일에는 기름에 튀긴 베이컨과 계란을,

금요일에는 완두콩을,

일요일에는 새끼 비둘기 요리를 먹느라 재산의 4분의 3을 소비했다.

 

 

일단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에 앞서, 요일을 언급하는 순서도 궁금하다.

금, 토, 일이 우리에겐 자연스러운데 왜 작가는 토, 금, 일로 나열했을까?

 

시공사의 번역본까지 참고하니 의문은 오히려 더 꼬인다.

쇠고기를 더 넣어서 만든 요리를 먹었다는 점에서는 열린책들과 일치한다.

저녁, 혹은 밤에 먹은 음식은

열린책들에선 돈키호테가 보통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넣은 요리와 소금을 넣어 잘게 다진 고기 요리를 저녁으로 먹었다고 하고,

창비에서는 고기 부스러기를,

시공사에서는 살피콘 요리(고기와 생선에다 후추, 소금, 식초, 양파를 넣어 버무린 요리-옮긴이 주)를 먹었다고 한다.

토요일에 돈키호테가 먹은 음식은

열린책들에선 베이컨 조각을 넣은 달걀 요리를,

창비에서는 토요일은 금욕일이니까 쇠뼈를 곤 곰탕을,

시공사에서는 기름에 튀긴 베이컨과 계란을 먹었다고 한다.

 

내친김에 비룡소의 번역(나송주 역)도 들여다봤다.

 

 

그의 집에서는 토요일이면 양고기나 베이컨을 곁들인 달걀 요리보다는 쇠고기를 즐겨 먹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완두콩 요리를,

일요일에는 새끼 비둘기 요리를 먹었다.

 

 

비룡소에서는 평일(월~목)에 돈키호테가 먹은 음식에 관한 언급은 없으며,

토요일에 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1부 1장의 처음부분에서 시작된 사소한 질문이 이쯤해선 미궁에 빠진다. 아, 모르겠다.

 

완역본이 아닌 소위 ‘청소년용’ 번역본들에는 돈키호테의 주중 식단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있어도 신분에 걸맞지 않은 조촐한 식사를 했다 정도로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때문에 청소년들은 ‘청소년용’ 돈키호테를 읽으며 나처럼 쓸데없는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된다.

작품의 주제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사소한 의문들로 고민하는 게 나 역시 보람차지는 않다.

 

 

 

도대체 돈키호테는 어떤 음식을, 무슨 요일에, 어느 시간대에 먹었을까?

 

1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7 댓글 6
종이책 고전독서회 4월 모임(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돈키호테) 평점10점 | y*****2 | 2022.07.12 리뷰제목
고전독서회 4월 모임에서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의 <돈키호테>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열린책들과 시공사에서 나온 <돈키호테1>을 각각 읽었고, <돈키호테2>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을 읽었습니다. <돈키호테>가 워낙이 긴 이야기라서 이번 모임에서는 <돈키호테1>을 우선적으로 읽고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모임에서 논의할 주제가 늦게 발표되었
리뷰제목

고전독서회 4월 모임에서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의 <돈키호테>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열린책들과 시공사에서 나온 <돈키호테1>을 각각 읽었고, <돈키호테2>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을 읽었습니다. <돈키호테>가 워낙이 긴 이야기라서 이번 모임에서는 <돈키호테1>을 우선적으로 읽고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모임에서 논의할 주제가 늦게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번 모임을 위하여 따로 책읽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전에 읽고 정리해둔 독후감을 중심으로 논의에 참여하였습니다.

 

1. 기사도 소설을 조롱하는 목적으로 출간된 소설, 느낀 점은?

아마도 작가가 서문에 적은 “이 세상과 속인들 사이에서 차고 넘치며 권위를 갖는 기사 소설을 무너뜨리는 데 목적을 둔 것이라면 굳이 철학자의 금언이나 성경의 충고나 시인들의 우화나 수사학자들의 문장이나 성자들의 기적들을 구걸하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35쪽)”라는 대목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서문에 ‘고귀한 기사의 업적’이니 ‘모든 기사의 거울이자 광채인 자네의 유명한 돈키호테 이야기’라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기사도 소설을 조롱하기 위하여 썼다고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다만 쉰에 가까운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기사소설에 푹 빠진 끝에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편력기사가 되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실천(69쪽)”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이달고는 14세기 말 이베리아 반도의 북쪽에 자리한 가톨릭 왕국들이 남쪽을 차지한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기 위한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부여한 하급 귀족계급이었습니다. <돈키호테>가 1605년에 출간되었으니 국토회복운동으로 이슬람세력이 쫓겨 가고, 오스만 세력과의 전쟁도 레판토 해전(1571년)에서 승전하면서 이달고들의 무장이 녹슬어가고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엥겔계수가 75%에 달했던 이달고 돈키호테는 좋아하는 기사소설을 사기 위하여 밭을 팔아야 했습니다. 돈키호테의 주변에도 기사소설에 심취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에 대한 토론도 활발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황당무계한 짓도 서슴치 않은 돈키호테이지만 기사가 되어 위험에 빠진 귀부인을 구하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명예를 얻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돈키호테의 얄궂은 모습을 그려내고 있지만, 이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삽화소설이 중심이 되면서 돈키호테는 삽화소설에 추임새를 넣은 조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삽화소설들은 엇갈리는 운명의 길에서 헤매는 남녀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진실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행복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2.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어떤 관계인지? 주종관계라면 누가 우위에 있는지? (온갖 사회의 계급과 계층을 넘나드는 해학)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의 이웃에 사는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농부입니다. 편력기사는 시종을 데리고 다닌다는 점에 착안한 돈키호테가 기사 모험을 통하여 섬을 얻게 되면 그 섬을 다스리게 해 줄것이라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돈키호테의 모험에 따라나서게 된 것입니다. 기사와 시종이라는 표면상의 관계를 보면 주종관계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계약관계라고 보았습니다. 초반에는 산초 판사가 주로 돈키호테로부터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돈키호테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산초 판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키호테2>에서는 성주의 배려로 산초 판사가 마을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송사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머리가 약간 모자란다는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돈키호테1>에만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659명이라고 합니다. 등장인물도 다양해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신부와 같은 상류층도 나오지만 건달, 매춘부, 깡패 심지어는 이민족까지 등장합니다. 해외 곳곳에 식민지를 얻은 에스파냐가 흥청거림에 따라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들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 다양한 이야기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삽화소설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3.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광인(locura)의 의미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미치광이에 대한 사회적 변천과정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과거 유럽에서는 광인을 집단에서 따돌리거나 쫓아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중세 들어서는 한센병 환자가 줄어들면서 비어가던 수용시설에 광인들을 수용함으로써 지역사회의 골칫거리인 광인들을 격리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런 시설에 수용된 광인들이 제대로 대접받았을 리가 만무합니다. 하지만 광인의 조작적 정의가 분명치 않았을 때이니, 때로는 힘을 가진 자들의 필요에 의하여 광인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광인인 척 위장하여 개인에게 닥친 위기를 모면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돈키호테가 주막을 성이라 하고, 풍차에 창을 들고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 광인이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이런 행동은 기사소설에 빠진 끝에 생긴 편향적인 사고의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순간들이 지나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정신질환의 경우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병명이 정해지는 일반적인 질병과는 달리 정신의학자들이 환자와의 면담을 통하여 얻은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진단을 결정합니다. 정신질환의 경우는 세월에 따라서 진단기준이 변해왔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돈키호테의 경우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 정신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아 미치광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돈키호테가 모험에 나서 만났던 타지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보았지만, 돈키호테와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고향동네 사람들은 출향한 돈키호테의 안위를 걱정하여 사람들을 보내 그들 고향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산초 판사도 돈키호테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4. 돈키호테가 최고의 소설이라고 호평받는 이유? 돈키호테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

<돈키호테1>이 출간되고 3만 부가 팔리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작가들이 위작을 써 속편이라고 속이는 사례도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2>를 써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잊힌 작품이 되고 말았는데, 근대에 들어서 <돈키호테>에 담긴 정신이 철학적으로 해석되면서 가치를 재인식하게 된 셈입니다. 출간 당시에는 흥미본위로 인기를 끌었다면 요즘에는 형식이나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시공사의 <돈키호테>를 우리말로 옮긴이는 <돈키호테>의 큰 줄거리를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에 의해 상징되는 평행선은 바로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겪는 끊임없는 갈등과 화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와의 대립은 우리가 인생에서 부딪히게 되는 현실과 이상의 대립을 의미하고 있다.(723쪽)”라고 요약하였습니다.

 

<돈키호테>를 처음 읽은 것이 십여 년 전입니다만, 돈키호테의 성격에 대하여는 일찍부터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무모해 보이는 일도 저지른 것을 보면 저에게도 돈키호테다운 성격이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무모해 보이는 일을 피하게 되는 것을 보면, 돈키호테적 성향은 젊은이의 특징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1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2 댓글 4
종이책 우리의 정의로운 기사 돈키호테 평점10점 | g******1 | 2017.08.11 리뷰제목
고전이 고전이 되는 이유는 당대의 가치를 뛰어넘는 가치, 시간이 흐르고, 문화와 사고와 기술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인류의 가치를 담아내서다.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쓰는 것이나, 그 일부를 쓰는 것'이라는 르네 지라지의 평가는 돈키호테가  수백년동안 전세계인에게 읽혀오는동안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찬사 중 하나다. 이런 수식어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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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고전이 되는 이유는 당대의 가치를 뛰어넘는 가치, 시간이 흐르고, 문화와 사고와 기술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인류의 가치를 담아내서다.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쓰는 것이나, 그 일부를 쓰는 것'이라는 르네 지라지의 평가는 돈키호테가  수백년동안 전세계인에게 읽혀오는동안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찬사 중 하나다. 이런 수식어를 모른다 하더라도,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아는 사람이란 돈키호테가 풍차에게 달려들어 싸우는 무모한 인간이라는 하나의 정형화된 인간상을 알고 있을 뿐, 돈키호테의 복잡한 캐릭터가 이루어내는 유쾌하고도 장대한 모험을 모두 읽고 이해한 독자는 크게 많지 않을 것으로 장담한다. 그 첫번째 이유는 원작의 두께가 워낙 두껍워서 일단 손에 잡아 시작하기도 어렵고 다 읽기도 어렵다. 다른 이유는 어린이용 축약버전이 워낙 많아, 누구나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고 또한 그 축약된 내용이 마치 단순한 동화 이상의 것이 아니어서 크게 흥미를 못느끼게 하는 면도 있을 것이리라. 또다른 이유로 그토록 유명한 돈키호테의 완역본이 2권 모두 국내에 소개된 지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어서기 때문이기도 하다.


완역본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자 안영옥 교수가 2014년 번역 직후 인터뷰 기사에 의하면(조선일보 인터뷰) 당시 국내에 원문을 직접 번역한 책은 시공사(박철 번역), 창비(민용태) 번역 두 권이고, 두 권 모두 문제를 지적했는데, 시공사본은 당시 1권만 번역되어 있었으며 1권도 뒷부분은 ‘허술’했다는 평가, 창비본은 의역이 많다는 점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당대 스페인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충실하게 반영하는 번역본이 되도록 애썼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인데, 독자로서는 주석이 많아 몰입에 방해되는 요소도 있지만,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식문화에서 객주집 풍경, 당대 유행하던 속담(산초의 인용력 막강), 사회적 통념과 문화 제도 전반에까지 엄청나게 많은 민속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것은 현대에 쓰여진 역사 소설을 읽을 때 드는 졸렬한 의심들, 과연 그 때 이런 저런 게 있었을까 그 때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을 없애주고 당대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점에서 이 번역서의 충실한 원문 번역과 엄청나게 많이 제공되는 열린책들 방식의 주석처리를 높이 평가한다.


돈키호테의 모험담 속에는 돈키호테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책속의 책이다. 서재를 떠나 편력 기사가 되어 모험을 찾는 일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길을 떠나게 된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많은 재산을 가져 모든 남성들에게 구애를 받고 있지만 산양치기가 되어 자유롭게 살고 있는 여자 목동 마르셀라와, 그녀에게 구애하다 상사병에 죽은 남자목동 그리소스토모 장례일에 벌어진 소동이 대표적이다. 이 이야기는 돈키호테가 모험중 만나 신세를 진 목동들과 그리소스토모의 친구 양쪽에서 서로 다른 두 시점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전달되는데, 장례일이 되자 구애를 뿌리쳐 그리소스토모의 죽음을 일으켰다는 온 마을 사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마르셀라가 직접 나타나 당차고, 똑똑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현한다. 목동 마르셀라는 순결과 미적 아름다움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시대적 지표에 여성의 가치가 결정되던 암흑기와 같던 중세 말기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대상화된 여성에서 스스로 벗어나 자유를 찾은 여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버지니아 울프가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혼자만의 방과 생활할 수 있는 돈을 꼽았는데, 이미 세르반테스는 마르셀라에서 시대가 옭아맨 그 조건으로부터 해방된 조건을 제시하고,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여성상을 제시했다. 비록 그녀의 자유를 지켜줄 부와, 그녀의 존엄을 지켜줄 ‘시대적 미’가 본인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닌 태어날 때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여성의 자유라는 조건에 스스로 한계를 긋는 일일 수도 있겠으나, 여성이 재물을 가지고 결혼을 하면 남성이 접수하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할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자연을 즐기며 산야에서 산양치기가 됨으로써 스스로를 당대의 여성상에서 해방시킨 마르셀라는 돈키호테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보여준 또다른 돈키호테의 전조적 인간상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다르다. 돈키호테만큼이나 상식을 깨는 행동이지만 돈키호테가 이미 유행이 지난 기사소설과 편력 기사 쪽으로 퇴보적인 것과는 달리 마르셀라의 행동은 진보적이고 논리적이다.


“순결을 지키려 하는데, 남자들에게서 순결을 지키기를 요구하면서, 또 그것을 잃도록 하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아시다시피 전 재산이 있으며 남의 것을 욕심내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로워 남에게 속박되는 것이 싫습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며 아무도 증오하지 않습니다. 이자를 속이고 저자에게 구애하지도 않습니다. (...) <나는 비록 못생겼지만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만일 양쪽이 똑같이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마음까지 같아야 되는 법은 없습니다. 아름답다고 다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떤 아름다움은 눈을 기쁘게 하지만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만일 아름답다고 다 사랑하게 된다면 어느 쪽에 마음을 둘지 몰라 헤매고 다닐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니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진정한 사랑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며, 강요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나무들과 물에게 제 생각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혼자 떨어져 있는 불이며 멀리 놓아둔 칼입니다. 저를 보고 사랑을 느낀 사람들에게 저는 말로써 정신을 차리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희망으로 지탱된다면, 저는 그리소스토모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을 준 적이 없으므로 …”


돈키호테는 대개 괴짜이거나 미쳤거나 의협심과 정의심에 불타는 등의 말로 설명되고 있다. 그런 제한적 단어들은 그의 캐릭터가 그만큼 눈에 잡히게 단순하고 다음 행동을 예상할 수 있을만큼 확실하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때로 캐릭터가 복잡 미묘한 그의 모습을 만날 때도 있다. 초반에는 계속 비슷비슷한 바보짓이 끝까지 계속되나 싶어 미리 지루해지기도 하고 단순하고 용감무쌍하고 실패에도 꿋꿋한 정신승리를 보여주는 맛이 간, 인간의 면만 드러나 평면적으로 느껴져 축약본에서 본 것 이상을 느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돈키호테와 산초,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말과 당나귀까지 합세해 이 네 개체가 세트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코믹하고도 눈물겨운 이야기에 점점 빨려 들어가다가 후반에는 더욱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와 함께 깊이 있게 그의 내면을 탐색해볼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 스스로도 밝힌 바 있듯이 훌륭한 이 책은 기사소설의 패러디 정도로 그것들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지만, 읽다보면 기사소설을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까지도 담겨 있다.  돈키호테의 기이한 행동들은 그가 즐겨 읽은 기사소설의 영향으로 일축된다. 기사 소설이 터무니없는 모험담을 담고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주인공의 비상한 능력과 앞뒤 안맞는 엉터리 이야기들을 싣고 있는데 거기에 푹 빠진 돈키호테가 현실 감각 능력을 잃어버려 소설과 현실 사이의 분별력을 잃어버렸다는 설정이다. 신부와 이발사, 가정부와 조카 등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돈키호테의 미친짓의 원인을 기사소설로 지목, 책들을 주인 허락도 없이 다 태워버리는 지경에 이를 정도다. 그의 환상은 모두 기사소설에서 읽은 내용들이고, 그가 만든 기사도의 규칙도 모두 책에서 가져온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모든 잘못된 행동 마저도 기사 소설의 내용을 가져다가 합리화시키곤 하는데, 예를 들어 객주집을 성으로 알고 들어가서 신세를 져 놓고도 세상에 어떤 기사가 객주집에서 돈을 지불하느냐는 황당한 궤변으로 숙박과 식사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는 길에서 만난 신부들이며, 이발사며, 상인, 공무원(?), 목동 등을 닥치는 대로 소설 속에서 본 시나리오에 대응시켜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무훈을 얻기 위해 상대해야 할 적으로 돌변시켜 공격을 하다가 반대로 얻어터지곤 한다. 돈키호테에서 풍차 이야기는 지극히 일부이고 그 이야기 자체가 1800 페이지 전체에서 1~2 페이지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모험은 내내 계속된다. 풍차가 거인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온통 기사 소설에 등장하는 씬으로 돌변한다. 초라한 객주집이 성으로 보이고, 객줏집 창녀들이 귀부인으로 보이고, 양떼들은 창과 칼을 들고 달려오는 군사떼들로 보이며, 이발사의 대야는 투구로 보이고, 뿐만 아니라 그는 싸움을 걸 때면 분별력도 없다.  그 때문에 돈키호테는 돌아다니는 동안 하도 두들겨 맞고 칼에 베이고 해서 온몸은 성한데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돈키호테는 기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기사 소설의 일부들을 읊으며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다. 정 설명이 안되는 것은 마법에 걸려서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돈키호테의 기행의 원인으로 기사 소설이 지목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안, 그런 기사소설들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있는데, 교단 회원과 신부와의 논쟁, 그리고 돈키호테와 교단의 한 회원과의 대화에서다. 특히 신부와 교단 회원과의 대화는 지금 이 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문학의 순수성과 상업성에 대한 논쟁에 대입해도 될만큼 동일한 사회 현상들을 담고 있다.


극이 이렇게 된 것은 극을 쓴 시인들의 잘못이 아니오. 왜냐하면 시인들 중에서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철저히 파악하고 있는 자도 있으니 말이오. 그런데 극이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변해 버린 탓에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면 극단 측에서 작품을 사지 않을 거라고들 하더군.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말이오. 그러니 시인은 자기 작품에 돈을 지불할 극단의 요구에 맞추려 하는 거요. 우리 나라의 그지없는 행운아인 천재가 쓴 수없이 많고도 많은 작품들을 보면 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될 거요.


이 대화에서도 그렇지만 때로 돈키호테는 대화중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이면서도 깊은 사고를 펼친다. 따라서 그를 전적으로 미친 사람 취급할 수도 없다. 달리 보면, 기사도 정신이라는 그가 몰입한 세계에 대해서만 미친 것이다. 때로 우리는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온 몸과 정신을 쏟으며 열정을 다하는 사람을 ~에 미쳤다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것이 심할 때에는 정신적으로 지나친 집착으로 평가하며 실제로 살짝 미친 사람 취급하기도 한다. 엄청나게 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특정한 세계에 빠져 그것에 열정을 다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정도와 종류가 다를 뿐이지 넓은 의미에서의 돈키호테적인 인간상이란 흔하디 흔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키호테는 대략 이상주의자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내용으로 일축된다. 돈키호테가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하나의 소설에서 한줄로 요약된 주제를 맞추는 정답을 맞추는 게임이 아니라, 돈키호테가 보여준 여러 그토록 다채로운 행동들 속에서 알지 못했던 인간의 모습을 만나는 일이고, 그가 한 말에서 공감을 찾아내는 일이다. 물론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사회를 구원하겠다는 그의 바람은 현실에서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미친 행위이다.  글이 쓰여진 때는 기사도 정신이 찬양 받던 시대 는 저물고 기사 소설의 인기도 급하락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기사가 되기에도 불충분한 하급계급 출신의 이달고인 그가 스스로를 돈 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거창한 이름을 부여한 후, 스스로 만든 투구와 갑옷을 입고 말라빠진 로시난테(말)과 조금 모자란 종자 산초를 데리고 모험을 나가는 일 자체가 기사도 정신과 당대에 한물 가긴 했지만 유행했던 기사 소설에 대한 조롱을 보여준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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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돈키호테,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h*****o | 2015.04.28 리뷰제목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책은 바로 성경이다. 그럼 그 다음은? 『돈키호테』이다. 기사도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머리가 돌아버린 사람의 우화정도로 알고 있는 돈키호테는 ‘인류의 성서’ 이자 ‘소설의 원형’이라고 칭송받는 책이다. 어린 시절 그저 동화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 정도로 인식했던 돈키호테의 위상이 이 정도라니. 러시아의 대문호
리뷰제목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책은 바로 성경이다. 그럼 그 다음은? 돈키호테이다. 기사도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머리가 돌아버린 사람의 우화정도로 알고 있는 돈키호테는 인류의 성서이자 소설의 원형이라고 칭송받는 책이다. 어린 시절 그저 동화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 정도로 인식했던 돈키호테의 위상이 이 정도라니.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로 도스또에프스끼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넘치는 픽션은 없다라고 찬사를 보낼 정도다. 돈키호테는 출간이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문학작품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오늘이 책의 날인 423일이다. 바로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와 영국이 낳은 세계적 문호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서거일이다. 유럽문학의 거장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라이벌의 서거일이 같은 날이다. 아이러니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나면 세 가지에 놀라게 된다. 첫째는 엄청난 책의 두께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본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양떼를 군대로 인식하고 말을 달리던 미친 사람의 이야기치고는 분량이 너무 많다. 우리가 돈키호테에 대해서 아는 이야기는 극히 일부이다. 돈키호테는 1권과 2권으로 나눠진다. 요약본이 아닌 원전은 두 권을 합치면 약 1,800여 페이지에 이른다. 거의 목침수준이다. 둘째는 종이 값도 안 되는 싼 책값이다. 아마도 저작권의 영역에서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이렇게 두꺼운데도 엄청 재밌다. 흥미롭고 재미있고 어이없는 사건들로 엮어진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조금만 방심하면 날 밤 새기 딱 좋은 책이다. 이 책이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재미에 빠져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글퍼진다. 돈키호테의 광기에서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이런 책들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매일 밤을 뜬눈으로 꼬박 새웠고, 낮 시간은 멍하게 보냈다. 이렇게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독서에만 열중하는 바람에 그의 뇌는 말라 분별력을 잃고 말았다”.(68) 기사소설을 읽고 현실을 망각한 돈키호테. 드디어 길 위에 나선다. 그는 세상을 자신의 시각으로만 본다. 그가 미쳤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그를 따라다니는 산쵸 판사도 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현실에 그대로 투영할 뿐이다. 사물이 그렇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마법사의 저주 때문이란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단순화시킨다. 그 모든 것이 허상이고 착각이고 자신의 광기에 의한 부질없는 것임을 모른다. 그리곤 자신이 만든 허상을 향해 허약한 로시난테에게 박차를 가한다. 그리곤 몽둥이 찜질에 난도질을 당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또 새로운 가상의 모험을 향해 달려 나간다. 실상은 없다. 모든 게 허상이다. 그저 자신이 만든 허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허상을 사로잡기 위해 어떠한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러 번 갈빗대가 부러지고 온몸이 맷돌에 갈아지는 것처럼 두들겨 맞아도, 돈키호테는 그 여정을 그만두지 않는다.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헛된 것에 열광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사는 것. 왠지 낯익지 않은가. 이건 바로 현대인의 모습이다. 책에 빠져 현실을 망각하고 말라버린 그의 뇌는 바로 현대인의 뇌와 다르지 않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자본의 논리에 빠져 돈과 권력과 성공이라는 망상을 향해 속도라는 광기로 무장한 채 무작정 달려 나간다. 편력기사도를 세상에 구현하기 위한 돈키호테의 여정과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 돈키호테는 편력기사에 미쳤지만, 현대인은 돈에 미치고, 권력에 미치고, 성에 미치고, 쇼핑에 미치고, 성적에 미치고, 성공신화에 미치고, 스마트폰에 미치고, 게임에 미치고 모두가 미쳤다. 종목만 바뀌었을 뿐. 무언가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와 한없는 욕망, 절제되지 않은 집착. 수시로 일어나는 분노와 폭력성향, 가히 탐진치(貪瞋癡 )의 향연이다. 이는 동의보감에 의하면 음허화동(음이 고갈되어 화가 망동하는 것)하여 광기가 충동한 것이다. 머릿속의 골수가 마르면 화가 망동하게 된다. 그러면 머릿속이 온통 망상으로 가득 차게 된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러면 세상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게 된다. 또한 오로지 시선이 밖을 향해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인정욕망에 불타게 된다. 돈키호테가 모험을 겪고 나면 세상의 평판이 어떨지를 언제나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런 생태의 증거이다. 처음에는 돈키호테만 미쳤다. 그런데 섬을 주어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돈키호테의 허황된 약속에 샨초 판사까지 미쳤다. 권력과 돈의 욕망에 빠진 것이다. 다른 면에서는 그렇게 사리가 밝고,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샨초도 섬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다. 주인을 닮아간다. 돈키호테의 광기가 전염된 것이다. 하나둘씩 미쳐간다. 모두가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같이 미치는 것이다. 그럼 제정신으로 사는 사람은? 미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면 살아야 한다. 미친놈이라고.

 

 

  삶의 현장은 몸이다. 생리와 심리의 흐름이 삶의 동선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책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몸을 보자. 골수가 말랐고, 팔뚝의 힘은 과시하지만 하체는 엄청 부실하다. 잠도 안자고 식욕도 부진하다. 이러니 그의 정신 또한 정상이 아닌 것이다. 불면증과 하체부실. 이것 또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뇌의 물기가 말라 분별력을 상실했다. 그렇듯 성공을 향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듯 내달리고, 그 성공을 쟁취하고 나면 그들에게 얻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집착은 광기를 낳고, 광기는 맹목을 낳고, 맹목은 무지를 낳고, 무지는 폭력을 낳는다. 그러니 가는 곳마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두들겨 맞는다. 모든 모험이 구타로 종결된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돈과 권력을 잡은 이들에게 이어지는 다음 행보는 바로 에로스다. 술과 성으로 무장한 환락이다. 룸싸롱 등에서 비싼 술에 아리따운 여자와 함께하는 성공의 축제. 그것이 돈과 권력을 쟁취한 이들의 행보이다. 돈키호테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풍차에 달려들고, 양떼를 향해 돌진하는 등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이 에로스다. 길 위에서 어우러지는 모든 이들의 문제는 하나같이 에로스의 향연이다. 예컨대, 한 청년이 한 처녀를 사랑했다. 한데 그의 바람둥이 친구가 친구의 연인에 눈독을 들인다. 청년을 교묘하게 속인 뒤 그 처녀와 결혼은 한다. 근데 그 바람둥이에게는 결혼을 약속하고 몸을 허락한 처녀가 있었다. 배반의 쓴맛을 본 청년과 몸을 허락한 처녀, 현실에서 도피하여 골짜기로 들어와 지랄발광을 한다. 한데 그 골짜기에서 지랄발광을 하는 것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이게 모두 다 오해였다.^^ 참 지랄이다. 한편 호기심 많은 남자가 있었다. 아내의 정조가 얼마나 견고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절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주라고 조르고 졸랐다. 마지못해 허락한 친구. 근데 두 남녀가 진짜로 눈이 맞았다. 속고 속이다 셋 다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한사람의 불신과 욕망이 이런 비극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 무슬림 처녀가 개종하여 아버지를 버리고 스페인으로 탈출한다. 어디 그뿐인가. 돈키호테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돌시네아를 사모하며 한없는 정절과 충성을 약속한다. 가상의 연인을 만들어놓고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지극히 아름답다고 굳게 믿는다. 육체적 교감이 증발된 사랑. 이것 또한 광기다. 어디 그뿐인가. 돈키호테에 나오는 모든 여성들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타인과의 비교가 어려울정도로 미인이다. 황금 실 같은 머리칼, 태양 같은 눈, 장미 같은 볼, 산호 같은 입술은 기본이다. 거기에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의 미모를 과시한다. 모두가 그렇다. 모두가 아름답다. 기타 등등.

  기사도건 에로스건 음허화동을 부추기는 삶의 형식이다. 뭔가에 치열하게 몰두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서구에서 자본주의를 태동시킨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거꾸로 말하면 미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의 열기에 순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과연 그렇다. 자본주의의 열기에 파묻혀 돌아가는 우리 시대가 그 증거는 아닌가. 하지만 그 속에도 제정신이 박힌 이는 있다. 그저 한번 본 처녀에게 마음을 뺏겨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젊은이. 상사병을 앓다 죽은 그 청년의 장례식에 나타나 세상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자연의 환희를 만끽하며 살겠다는 마르셀라의 자유선언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진정한 사랑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며, 강요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살고자 들과 산의 고독을 선택했습니다. 이 산의 나무들이 제 친구들이고 시내의 맑음 물이 제 거울입니다. 저는 나무들과 물에게 제 생각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자유로워 남에게 속박되는 것이 싫습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며 아무도 증오하지 않습니다. 이자를 속이고 저자에게 구애하지도 않습니다. 누구를 우롱하지도 다른 사람과 놀아나지도 않습니다. 이 근처 마을에 사는 아가씨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제 산양을 돌보는 것으로 소일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이 산 주위에 다 있습니다. 제가 이곳 밖에서 원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하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즉 태초의 거주지로 향하는 영혼의 발걸음 뿐이랍니다. (196)”그녀의 자유선언은 삶의 자유를 대신할 사랑 따위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도 한때의 광기이다. 그 사랑이 평생을 가지 않는다. 얼굴한번 보고 미치고, 보지도 못하고 미치고, 노래한번에 미치고, 그냥 미친다. 이런 미친 사랑은 그 결과를 얻고 나선 시들해진다. 그러니 자유로움을 대신할 사랑 따위는 없다고 자유선언을 하고 뭇 남성의 청혼과 자살한 청년의 친구들의 비탄의 연가를 뒤로하고 홀연히 자연속의 자유를 선택한 그녀의 선택이 아름답다. 순간적인 열정이 영원한 것의 아름다움에 어찌 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낯익지 않은가. 요즘 뉴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세트가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성공이라는 허상을 향해 모든 걸 올인 한다. 성공의 상징은 무엇인가. 바로 돈이다. 자본이다. 돈을 벌기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얻은 다음 권력을 얻기 위해 로비를 한다. 거기에 덧붙여 힘있는 자들의 성추행 사건이 바로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삼종세트이다. 돈과 권력과 성의 삼부작. 이게 바로 현대인들의 추구하는 목표이고 허상이다. 그걸 얻으면 만족이 오는가. 아니다. 허허로움만 남을 뿐이다. 정작 내가 필요 할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 누구하나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도 없다. 허상만을 추구했으니 허상만이 남는 것은 삶의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니 최후의 선택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이들이 조그만 어려움도 이겨내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경우를 우린 자주 보아왔다. 허상의 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죽음뿐이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돈키호테처럼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을 향해 지금도 달려 나간다. 허상을 위해 현실의 행복을 외면하고, 현실의 귀함을 뒤로 하고, 봄날에 피는 아지랑이 같은 허상만을 추구한다. 그 허상이 삶의 진정함 목표이며 무한한 행복감을 선사할 것이라는 허망에 젖은 채 말이다.

 

  돈키호테가 바라는 바는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모든 억울한 자를 풀어주고, 세상일을 해결해 줌으로써 영원한 명예와 명성을 얻는 것이었다. 돈키호테가 바라던 세상은 스페인의 황금세기였다. 정의와 공정성, 여성들의 순결이 지켜지는 기독교적 이상사회다. 하지만 그건 지난세기의 이야기다. 과거에 추억에 얽매여 현재를 잃어버린 것이다. 기사도의 사회구현을 이상으로 삼은 돈키호테는 그 그기사도의 정신에 입각해 어떠한 경우에도 억울한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비록 그 결과가 본인이 원하는 바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돈키호테는 어려운 이들의 불행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명성과 기사도의 명예라는 형식을 위해서 하는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제정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혹 모른다 다들 미쳐서 사는지)이웃의 불행을 외면하고 산다.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어려움을 강 건너 불구경한다. 어디 그것뿐인가?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지도 못한다. 가슴도 닫고, 입도 닫고 그냥 자신의 안위에만 매몰되어 산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를 위로하지도 않고, 잘못된 행동을 봐도 그걸 지적하지 않는다. 세월호라는 아픔을 겪고 일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를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있으라니 있고, 이제는 잊으라니 잊는다. 그런 나라에 그런 사회에 정의가 자리 잡을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면서 세상이 변했다고, 세상이 살기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런 세상은 바로 우리들이 만들었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지적하지 않는 사회, 이웃의 불행을 외면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도덕과 정의는 그저 지나가버린 추억 속에 존재하는 기억일 뿐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미쳤다고 하는 돈키호테도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았는데, 온전한 정신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정작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모른체 한다. 과연 누가 미치고 누가 미치지 않은 것일까.

 

편력기사들의 일은 괴로워하는 자나 사슬에 묶여 있는 자나 억압받는 자들이 그런 모습으로 길을 가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짓들 때문인지 알아보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고약한 행위를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고통에 눈을 돌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기사의 임무란 말이다. (466)

 

  학교도 다니지 않고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산초 판사. 그는 글도 읽을 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화는 주옥같다. 현실적이다. 거기에 상황에 맞는 속담이나 경구를 이용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화술은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많이 한 다른 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공부한 이들은 허상을 쫒으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꿈을 꾸고 있을 때 샨초는 삶을 통해서 얻은 지식과 속담을 기반으로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산초의 이야기에는 삶의 값어치 있는 진실이 담겨있다. 책만 보다 뇌수가 말라 미쳐버린 돈키호테처럼 현실을 외면하고 책만 보며 괴변을 늘어놓는 이시대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작가의 유머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돈키호테는 과연 미친것일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의심이 커졌다. 어쩌면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이들, 바로 우리들이 미친 것은 아닐까. 돈키호테는 과거의 망상에 사로잡혀 황금시대에 미쳤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돈과 권력과 에로스에 미쳤다.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하기에 다른 것을 추구하는 돈키호테가 미친것처럼 보인 것이다. 어쩌면 돈키호테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그 모든 것들이 실상이고,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세상적인 욕망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지금 이순간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 같은 탐욕과 욕망과 분노의 향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또 다른 모습의 돈키호테이다. 탓할 것 없다. 리뷰하나 쓰겠다고 삼사일에서 일주일씩이나 몸부림치는 나 또한 어쩌면 인정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돈키호테가 아닌가. 도찐개찐(도긴개긴)이다. 자신이 가진 미모와 부모의 엄청난 재산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향한 자유에의 신봉자 마르셀라처럼 우리도 현실의 광기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가야하는 것은 아닌가. 책을 덮고 나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인 유일한 자유인 마르셀라의 존재가 잊히지 않는다. 떠오르는 생각은 많으나 2편을 위해 남겨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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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시대를 앞서 간 덕후이시여!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e***a | 2015.11.12 리뷰제목
16세기는 스페인의 황금시대였다. 그러나 정치·외교적 결합은 영토 내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지 못했고,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내적 통일을 위해 가톨릭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경제적 발전을 시작한 타국에 비해 스페인이 뒤처지는 배경이 된다. 금서 목록의 선포는 출판물의 검열로 문학 발전을 저해했다.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 참전영웅으로, 포로로 붙들려 5년간 노예생활을 한다
리뷰제목

16세기는 스페인의 황금시대였다. 그러나 정치·외교적 결합은 영토 내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지 못했고,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내적 통일을 위해 가톨릭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경제적 발전을 시작한 타국에 비해 스페인이 뒤처지는 배경이 된다. 금서 목록의 선포는 출판물의 검열로 문학 발전을 저해했다.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 참전영웅으로, 포로로 붙들려 5년간 노예생활을 한다. 가까스로 돌아온 고국은 짙은 패배감에 빠져 있다. 네덜란드는 독립하였고 무적함대는 영국에 격파 당했으며, 국가는 파산했다. 도덕적 가치를 부르짖던 시절은 역사 너머로 사라졌다. 따라서 그는 당시 스페인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는, 기사소설을 패러디하는 노인 편력기사가 등장하는 소설을 구상한다.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푹 빠진 한 노인이 옆집에 사는 농부를 꼬드겨 종자로 삼고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영감에게 풍차는 거인으로, 창녀는 귀부인으로, 놋쇠 대야는 전설의 투구로 보인다. 따라다니는 시선들은 그를 ‘광인’으로 취급한다. 재미있는 것은 기사소설에 관련된 상황에서만 모험을 빙자한 사건·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이 이달고의 통찰력과 판단력은 정상이다. 돈키호테는 정말 광인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기사소설을 ‘패러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라 모레나 산맥에서 둘시네아로부터 버려졌다는 ‘설정’의 고행을 시작하는 장면을 보자.


이미 내가 말하지 않았나? 돈키호테가 말했다. 아마디스를 모방하여 여기서 절망한 채 어리석고 분노에 찬 자로 지내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곁들여 용감한 돈 롤단도 모방할걸세. … 그중에서 제일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큰 틀에서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작정이네. (355)


돈키호테가 미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도 기사도와 정의를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광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모험을 계속하는 것일까. 편력기사가 되어 정의로운 이상을 펼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변화된 스페인에서 기사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적 가치들은 비웃음의 대상이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돈키호테를 조롱하면서도, 그들 역시 기사소설에 통달한 이중성을 보여준다. 작품 초반에 돈키호테의 서재에서 불온서적을 골라내던 신부와 이발사, 미코미코나 공주 행세를 했던 도로테아, 객줏집 주인과 그 가족, 이후 만나게 되는 교단 회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돈키호테만큼 기사소설을 좋아한다. 객줏집 주인은 그 내용이 허구라는 말에 분개할 정도이다.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면서도, 그 때를 상징하는 ‘기사소설’의 가치와 그 상징을 박대하는 당시 스페인 사회의 모순인 것이다.


돈키호테로 대변되는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에서 잘 드러난다. 서문의 ‘자유는 황금으로도 살 수 없다’는 말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이는 세르반테스가 노예 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던 인간의 존엄으로, 자유를 강제하는 것을 무자비하게 여겨 자신의 의지에 반해 끌려가는 포로들을 풀어주는 돈키호테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무어 여인 소라이다와 함께 등장한 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아베드라 아무개는 세르반테스 자신이며,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편력기사로서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그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것이다.


그의 주장은 남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었으며, 최고의 가치는 아름다움과 순결이었다. 결혼 후 ‘집안에 갇혀 살던’ 카밀라, 정인이 있음에도 아버지가 결정한 사람과 결혼해야 했던 루스신다, 천과 망으로 창문을 가려놓은 집에 살았던 클라라는 당시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세르반테스는 목동 마르셀라의 순결에 대한 이야기와 비혼 선언을 비호하는 돈키호테를 통해, 여성 역시 남성과 평등하며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자유의지가 있음을 알린다. 이 외에도 신분 차이와 같은 갈등으로 이뤄지지 못했던 남녀를 맺어줌으로써, 자유연애를 거쳐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을 장려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돈키호테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인물로 해석되던 시기가 있었다. 시대착오적 인물로, 계몽적 인물로 또 실존적 인물로 해석되기도 했다. 시대별로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작품이 전달하는 힘이 그만큼 생생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황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한민국은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던 스페인과 닮았다. ‘섬’을 얻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산초 판사의 욕망 역시 로또 1등을 염원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섰던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의 이상에 어느 정도 공감하여 동화되어 가는 것처럼, 가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열정은 그 온도를 주변에 퍼뜨린다. 출간된 지 400년이 지났지만 돈키호테가 우리 시대에 의미를 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 대한 열정과 그 도전이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그 시도가 몰가치 한 것이 아님을 돈키호테는 보여주고 있다. 비록 수레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지만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걸었던 그의 모험은 진정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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