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좋아한다. 역사를 알아야 오늘을 알 수 있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와 오늘은 확연히 달라졌고, 특히 산업혁명 이전 인류가 살아온 세월의 변화보다 산업혁명 이후, 컴퓨터의 발전, 인터넷과 최근 AI 등이 가져올 변화가 훨씬 더 크다. 마치 그래프롤 그리면 아래쪽이 매우 더디게 올라가다가 1780년 대 이후 급격하게 그래프가 올라가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는 결국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천년전의 사람도 하루 두 세끼의 밥을 먹고, 기쁠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고 친구와 여행을 다니고, 정치인들 욕을 했을 것이다. 1천년 전의 사람도, 지금 나도 비슷하다.
결국 사람이 벌이는 모든 인과관계가 있는 일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것이 결국 선인들의 삶과 생각, 역사를 배워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가 일어나는 일련의 흐름은 때로는 답답함과 혼돈을 주기도 하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그런 역사들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재미있다.
이 책은 특히 한국 교육계의 역사공부가 잘못된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결국 역사라는 이미 일어난 사실하에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실이 일어났던 원인, 또 결정적 순간에 판단을 잘한, 또는 잘못한 순간을 각자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토론해서 향후 비숫하게 닥쳐올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AI, 머신러닝, ChatGPT 등의 발전이 주는 세상에서 우리 인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은 바로 저자의 말처럼 결국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하나의 현상, 또는 팩트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 이해, 그리고 나아가 통찰을 얻어낼 수 있는 교육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교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기 위주로 되어있다. 사실 여러 제약 조건으로 또 공정성 문제 등으로 중,고등학교에서 주관식 또는 토론 평가가 어렵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역사 교육만큼은 한국사 능력시험 같은 객관식에 프랑스 바칼로레아 같은 요소가 도입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역사 과목에 충분한 시간도 들여야 되고, 점수 반영 비율도 높여야 한다.
책은 백제멸망, 위화도 회군, 병자호란, 조선의 해금정책, 과학기술 천시 정책 등과 임진왜란 당시의 신립 장군의 전술, 고종의 무능력한 판단 등을 다양한 사료와 가설, 저자의 시각에 기반에 비판한다.
예를 들면 백제 멸망 같은 경우다. 우리는 흔히 젊었을 때는 해동증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고 아들 부여융의 묘에 "과단성이 있고 사려 깊어서 그 명성이 있었다"고 까지 전해지는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끼고 연회를 즐기다, 또 충신들의 말을 무시하고 백강과 탄현의 저지선을 지키지 않았다 등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먼저 당시 동맹관계였던 고구려는 왜 백제를 돕지 않았을까? 7세기 한반도의 정세는 이전 삼국시대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중국은 동진시기부터 시작된 300년 중반부터 수나라가 건국되는 580년대, 그리고 수에서 당 교체기까지 시기동안 대략 300년 정도의 혼란기를 당고조 이연과 태종 이세민의 활약으로 중국 천하를 통일한다.
이전까지 고구려가 상대했던 중국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한반도의 정세 역시 막강했던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신라에게 내주고 백제와 단절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고구려는 여전히 한반도 최고 맹주로 실질적 속국이라 여겼던 신라의 성장을 애써 무시하고 내부 권력 쟁탈전이 벌어졌다.
고구려는 중국의 대군과 전쟁할 때 청야작전을 실시했다. 중국군의 길목을 깨끗하게 비워 보급이 항상 문제였던 그들이 지쳐 나가 떨어지게 했던 것이다. 살수대첩이 바로 그런 청야작전의 성공으로 굶주림에 빠진 수나라 군대가 허겁지겁 퇴각하던 때 들이쳐서 대승을 거둔 전투이다.
하지만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재빠르게 군대를 보내 오월동주와도 같던 백제의 멸망을 도와주지 못한다. 저자는 여러 가설을 제기하지만 미쳐 고구려가 원군을 보내기도 전에 백제가 빨리 멸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뒤에 계백 신화의 허와 실을 밝히면서 자연스레 이해가 간다.
저자의 주장은 웅진의 성주인 예식(진)의 배신으로 백제가 미쳐 총력전을 펼치기 전에 멸망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래야 뒤에 나오는 백제 부흥운동도 자연스레 연결이 되기는 한다.
이렇듯이 저자는 백제의 멸망과 고구려군의 대응, 황산벌의 계백 신화의 허구를 역사적 합리적 추론으로 밝혀낸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4불가론 등의 반박도 일견 설득력 있다.
고려 정부는 우왕의 판단 미스로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세웠지만, 개경에 남게 하는 실책을 저질렀고, 반면 싸우기 싫었던 이성계는 진군을 밍기적 거리다 결국 장마철 위화도에서 회군한다. 당시 중국은 원명교체기로 우리의 요동 정벌이 매우 허황된 꿈은 아니었다. 정세상 가능할 수 있었다. 이는 후에 병자호란 뒤 효종이 내세웠던 북벌과는 또 다르다.
북벌은 말그대로 당시 세계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청나라 군대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사실은 당시 위정자들도 알고 있었지만 애써 현실을 무시한) 말그대로 정치적인 '쇼'에 가까운 행위였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많은 허점, 또는 이해가 안가는 역사 흐름, 그리고 위정자들의 정권 지키기에 급급한 잘못된 행태들에 대해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저자의 여러 이론이 일견 타당하고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정도라고 동의했고, 이렇게 역사를 배우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에는 200% 동의한다.
다만, 임진왜란 이전 최고의 명장으로 국운을 짊어진 신립의 탄금대 전투를 METT_TC관점에서 분석한 것은 나로써는 조금 비판적이었다. 삼국지의 가정전투를 위에 산에 올라가서 졌다고 하는데, 가정 전투는 말그대로 가정 전투였고 우리의 새재를 사수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설정이다. 사실 삼국지에서도 언덕과 길목을 같이 지키는 것이 최상이었으나, 당시 마속과 왕평의 군대가 사마의의 군대보다 훨씬 적었기에 애초에 설정이 끌어오는데 조금 무리수가 있는 것 같다.
반면 최근 얼마전 나폴레옹 영화를 봤지만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의 몇가지 우연, 전쟁전 비가 와서 땅이 질어 나폴레옹의 포병사격이 늦게 시작했고, 최강을 자랑하던 프랑스 기마대의 기동력이 떨어진 것, 그로 인해 프로이샌 군대가 영국군과 프랑스군 교전 중에 도착해 허리를 끊고 들어온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신립의 전술은 저자가 옹호해주는 것만큼 논리적이지도 유효하지도, 저자의 말 처럼 운이 따라주지도 않았다.
사실 충주벌 탄금대를 정확한 지형 답사를 못해서 나 역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여러 사료를 분석해 보면 신립이 지금의 단월역, 달천평야에서 적을 맞아 싸웠는데 그곳은 당시에도 논이라는 사료가 많아 완전 평지도 아니요, 전일 비가왔고 질퍽한 땅이라 궁기병이 효율적으로 싸우기 어려웠다.
그리고 저자는 일본군이 이미 오다 노부나가의 전술을 계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총부대라 당시 일본 최고의 기마대로 가이의 호랑이라 불렸던 다케다 신겐의 군대까지 깨트린 조총부대로 강력한 팀웍과 전술을 갖춘 전쟁의 베테랑들이었는데 그런 부분을 무시한 것, 부하들과 제대로 된 토론을 하지 않고 권위로 굴복시킨 점, 조령이나 기타 탄금대까지 오는 여러 곳에 군대를 나뉘어 조금 더 방어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신립의 준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내 생각인데 저자와는 조금 달랐다.
또 이순신이 노량을 버리고 한양에 가서 역성혁명을 이뤄냈어야 한다는 것에는 너무 오늘날의 시각으로 당시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흔히 우리가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비판하는데, 흥선대원군이 물론 세계적인 넓은 시각으로 국가 문호를 개방해서 그 당시 그가 취했던 정책과 다르게 흘러갔다면 좋았을 수도 있지만, 흥선대원군은 유교 교육을 철저히 받은 조선의 방계왕족에 불과했다. 뛰어난 정치감각이나 처신 등이 있었고, 운도 작용했지만 정치적 기반은 빈약했다. 또 그런 전근대적 인물에게 현대적 세계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겸비하라는 것도 옳지 않다.
그 역시 애초에는 조선의 내정을 먼저 확립한 후, 그리고 자신의 먼 처가 인척인 남종삼 등을 이용해 프랑스 신부를 이용하려고도 했고, 러시아나 청나라, 일본 등 강국 사이에서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당시로는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대원군의 부인 민씨도 천주교도였고, 대원군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등 도성에 유언비어가 퍼지는 상황에서 정권의 기반이 취약한 대원군으로서 그런 모험을 감행하기 힘든 부분도 감안해줘야 한다.
이순신 역시 당시 유교를 배웠던 선비의 집안에서 중국, 한국, 일본 모두 왕정을 하는 세상에서 불사이군 등의 특히 충의 이념을 강요받았던 당시 조선에서 태어난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해전으로 우리의 민족을 구해낸 것에 고마워하면 됐지, 이를 노량을 버리고 역성혁명으로 한성으로 올라가라고 연결 하는 것은 조금은 비약이다.
그리고 설사 그렇게 했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무조건 성공했다고 볼 수만도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오류로 인터넷이나 정보매체도 빈약하고, 나고 자라서 배우고 본 것이 유교문화밖에 없는 조선의 위인들에게 오늘날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너무 우리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앞서는 혜안을 가진 위정자가 중요하겠지만, 과연 오늘은 그런가?
그런 부분을 떠나서 저자가 말한 왜곡된 우리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작업, 오늘의 역사 기술 방식과 시험 형태 등은 분명 수정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더 다이내믹하게 볼 수 있고, 설사 다이내믹 하지 않았던 것도 왜 그랬을까를 따라가다보면 더 재밌는데 우리 역사 수업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저자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연재했던 글이라 대우조선해양이나, 한진해운 등의 지금은 이미 역사가 된 불과 10여년 사이의 일도 교훈처럼 나온다.
또한 직접 고위관료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어 허황되지 않다.
그리고 경영학 석사, 경제학 박사를 받은 학자적인 관점의 분석 등도 나와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편으론 그런 똑똑한 인물들임에도 불과 10~20여 년 전에도 위정자들이 오판하기 일쑤였고, 앞을 내다보지 못했고 정파적 시각에 갇혀서 국가와 국민에 피해를 입힌 사실이 많았는데 IMF외환위기사태나 론스타 사태, 각종 부실기업들의 공적자금 투입 등과 인사 시스템 붕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정보도 부족하고 여러면에서 시스템적으로 미비했던 고려, 조선시대에야 오죽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하고, 역사의 혁신을 추구했던 여러 위인들의 일대기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자 최중경 장관은 대통령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지낸 정통 재무관료 출신이나,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얻는 위정자라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다른 나라나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할 때 진정으로 세계인이라 할 수 있는데, 저자는 그런면에서 훌륭한 위정자라 할 수 있다.
역사와 정치, 경제 모두 일련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면 굉장한 변혁의 순간, 또는 고심끝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 순간이 모여서 사건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낸다.
그 순간 순간사이 명철한 판단을 오늘 같은시대를 사는 또 자기 분야에 한정된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일부 정치인이나 관료가 가장 최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사실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고, 역사를 교훈삼아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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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믹스커피의 책 제공으로 재밌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