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으로 배열해도 뒤로 배열해도 똑같은 글자이다. 그것이 참으로 매력적이고 묘하다. 이 책을 순서대로 본다면 그 조합은 무려 720가지이다. 720가지 경우의 수 중 어떤 경우를 선택할지는 독자의 마음. 난 대체 어떤 조합으로 볼까. 순서대로 앞에서 하나, 뒤에서 하나 이런 식으로 볼까.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이 책을 보는 중이다. 넷플릭스인줄 알았는데 속았다.
어느덧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선호하게 된 나지만, 여전히 가끔은 꼭 갖고싶은 책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떨 때는 좋아하는 책의 다른 표지를 모으고 싶어서, 혹은 그저 예쁜 책이라 사기도 했고, 읽어보고 싶고 흥미로운 소개라 사두면 읽겠거니 냅다 질러버리기도 했다.
N은 드물게 전자책을 고려도 하지 않은 책이다. 어쩌면 책보다는 보드게임을 사듯 기대한 것도 같다. 스토리라인을 선택해서 결말이 달라지고 제본 방향이 위아래로 바뀌어있다고 하지 않나;; 이건 직접 사서 봐야지;; 책이 엇갈려서 제본됐는데 이걸 안 사요?;;; 독자가 이야기의 진행을 골라 읽으라고 그랬다는데?;;;
이 특별한 시도가 선택지를 골라나가는 비주얼노벨게임을 연상시켜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내용은 몇번 더 읽어야 완권이 되니 종이책을 재독하는 일이 드문 나도 여러차례 재독을 당연하게 염두에 두고 있다. ㅎㅎㅎ
흔히들 한번 읽고 마는게 아니라 여러 번 읽는 것을 회독이라고 하는데 미치오 슈스케의 『N』은 마치 N회독을 권유하는, 아니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럴 수 밖에 없게 만드는데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한 권의 책에 총 6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 그 이야기가 분명 순서가 나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먼저 읽을지는 오롯이 독자가 정하면 된다. 책의 앞부분에 일종의 예고편처럼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한 페이지 가량 소개되는데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읽고 읽고 싶은 이야기부터 선택해서 읽으면 된다.
물론 난 그냥 책 순서대로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읽어도 문제는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어떤 순서로 읽어도 이야기는 묘하게 연결되는데 앞서 읽었던 이야기 속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 등장하기 때문인데 단순히 엑스트라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이야기의 흐름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그 사람이 주인공일 때의 이야기를 읽을 당시에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이나 말을 했는가를 알 수 없었던 것이 다른 이야기에서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이 마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듯 6개의 조각이 아귀를 맞춰가는데 놀라운 점이 이 책에 담긴 6개의 이야기를 읽는 순서에 따라 그 의미가 분명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읽은 6 작품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 이름 없는 독과 꽃 →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이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저지른 행동 하나가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형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해 형과 똑같은 행동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자살을 생각하는 소녀와 마주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인자라 의심했던 인물이 사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옳은 행동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음에 후회하기도 하고 아주 우연하게 마주한 가정폭력의 현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속 인물이 사실은 이전의 작품들에서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인물이였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당히 괴짜구나 싶기도 했고 또 살짝 사기꾼 같았던 사람이 알고보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감당하며 속죄의 삶을 살기도 하고 그가 애초에 그런 삶을 살게 된 이면에는 다른 이야기 속 인물이 어릴 적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그곳이 토박이 같은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게다가 자신들도 알게 모르게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심지어는 상당히 크게 관여해 있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가 짜맞춰질 때 독자들은 회환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서로가 모른 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게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은걸까? 아니면 뒤늦게라도 알아야하나 싶은 두 가지 마음이 엎치락 뒤치락 하며 동시에 세상에 절대 악인 사람도 절대 선인 사람도 없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겐 생명의 은인 같은 이가 누군가에겐 인생을 나락으로 내몬 사람이기도 하구나 싶다. 인생에서 발생한 어느 하나의 사건이 누군가의 삶을 이렇게도 뒤틀리게 할 수 있고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할 수도 있구나 싶어 과연 이 작품을 다른 순서대로 읽으면 또 어떤 느낌이 들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상은 어떻게 달라질지도 궁금해지는 작품이였다.
참고로 책은 미리보기 6편을 보고 읽고 싶은 이야기부터 읽고 다음에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미리보기를 읽고 그 다음으로 읽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해 읽으라고 작가는 친절히 설명한다. 게다가 보통의 책과 다른 방식의 읽기만큼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나열되는 느낌(물리적 연결성)을 지우기 위해 마치 알파벳 W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장이 달라질 때마다) 위아래가 뒤집히도록 인쇄가 되어 있으니 혹시라도 책의 앞부분에 제시된 <이 책을 읽는 방법>을 읽어보지 않고 인쇄가 잘못되었다고 오해하진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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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
소설의 영역을 확장한 전대미문의 시도!! 북스피어에서 출간된 미치오 슈스케의 <N>은 표지와 띠지 문구에서부터 물음표를 찍게 합니다. 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똑같은 영문 N과 작가 이름을 거꾸로 적혀 있기도 해서 왜 이렇게 표지를 만들었을까 궁금했는데 해답은 책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방법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가 미치오 슈스케입니다. <N>에는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어느 장에서 시작할지, 다음은 어느 장을 읽을지, 마지막에 읽을 장은 몇 장으로 할지 모두 독자가 결정해 읽을 수 있어요. 시작하는 장에 따라, 읽는 사람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전대미문의 체험형 소설, 궁금하지 않으세요?
<N>은 '레이디 가가 시리즈'의 첫 편이라고 해요. 무대를 씹어 먹을 듯한 포즈로 의상, 동작, 아이디어와 가창력, 연주 실력, 무대 장악력 등 팬들에게 만족감을 안기며 환상특급적 피날레로 마무리하는 '레이디 가가'의 이름을 따라 만들었다고 하네요.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실험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이야기로 미스터리 소설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시리즈로 딱 10권만 출간하고 끝을 볼 생각이라는 출판사 측의 생각이 적혀 있는데요. 생소한 방식의 책을 만나서 그런지 다음 편은 어떤 작품으로 놀라움을 선물해 줄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여섯 편의 이야기들의 머리글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어 읽어보고 관심이 가는 장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저는 제목만 보고 순서를 정해봤는데요. 제일 먼저 '이름 없는 독과 꽃'으로 시작해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사라지지 않는 유리별'로 이야기를 마무리해 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저의 선택에 만족하며 읽었는데요. 연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야기들은 때로는 주인공으로, 때로는 주변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네요.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읽은 '이름 없는 독과 꽃'이 제일 기억이 남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에 '설마~'했는데 역시나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던 장이었습니다. 다른 장의 이야기를 통해 이전에 읽었던 장에서의 궁금증이 풀리기도 하는 신박한 소설 <N>과의 만남은 정말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미치오 슈스케 작가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지는군요~^^
[의혹의 도가니탕으로 시작했으나 환상특급적으로 마무리된 이야기들]
책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님의 작명센스에 대해 이번에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북스피어에서 출간되는 책은 또 무슨 시리즈인가를 먼저 살펴보게 되는데요, 아니나다를까! 미치오 슈스케의 [N]에는 <레이디 가가 시리즈>라는 이름이 붙어 있네요. '헉, 뭔 레이디 가가??!!'하며 책날개를 정독했더니 아무래도 레이디 가가의 팬이셨을 것 같은 마음이 잔뜩 담겨 있더라고요. '무대를 씹어 먹을 듯한 포즈, 초자연적인 의상, 의혹의 도가니탕, 욕을 먹는 그 모든 퍼포먼스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가창력, 환상특급적 피날레의 레이디 가가'라는데 대체 이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감히 감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시리즈도 딱 10권만 출간하고 그만두시겠다는데, 과연??!!
이 <레이디 가가> 시리즈의 포문을 연 작품은 미치오 슈스케의 [N] 입니다.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작품집으로, 읽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뀌는 설정을 목표로 했다고 해요. 어느 장으로 시작해서 어느 장으로 넘어갈지, 어느 장을 제일 마지막으로 읽을지 등 모든 것이 독자의 손에 달린 작품. 작가는 독자들이 순서대로 읽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일부 작품들을 거꾸로 배치하는 트릭(?)까지 준비해 두었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첫 장을 선택하는 데 조금 망설여졌어요. 살짝 선택장애가 있는 저로서는 '그냥 맨 처음부터 읽다가 거꾸로 된 장이 나오면 그 때는 책을 돌려서 읽지 뭐' 했는데, 또 그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 첫 장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저의 선택은!!
본 작품으로 들어가기 전 여섯 편의 이야기의 프리뷰에 해당하는 부분이 실려 있습니다. 독자는 그 부분을 읽고 어느 장을 선택할 지 결정할 수 있어요. 저는 결국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을 시작으로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이름 없는 독과 꽃>,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로 끝을 맺었습니다. 첫 장을 고르는 데만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그 후부터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마음 가는 내용을 따라갔어요.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야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이야기, 결국에는 후회와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습니다.
전 저의 선택이 참 탁월했던 것 같아요. 각 장에는 '구름 틈새로 내려온 다섯 줄기 빛이 천천히 퍼져 다섯 장의 꽃잎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다에 피어난 빛의 꽃. 저마다 그 빛의 꽃을 발견한 후 누군가는 놀라움을, 누군가는 회한을, 누군가는 기도를 바치는 장면마다에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각각의 삶은 모두 다르고, 인생에는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이나 기대를 바라게 되는 마음을 이 빛의 꽃으로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요.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과 내용이나 메시지가 특히나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어쩐지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했답니다.
기존의 연작단편집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고른 작품들마다 신기하게도 앞에 나왔던 인물이 뒤에 다시 등장하고, 그의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서 저는 딱 시간 순서에 맞는 흐름이었다고 느꼈어요. 저와 다른 순서로 읽은 분들은 이런 시간의 흐름이 역으로 진행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작품들을 한편 한편 읽어나갈수록 미치오 슈스케가 만들어낸 이 세계가 돌고 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어떤 현상을, 혹은 어떤 생명을 가운데에 두고 마치 그 공간이 구심점인 양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죠. 말로는 콕 집어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입니다.
출판사 대표님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렸던 걸까요. 처음에는 의혹의 도가니탕으로 시작한 작품집이었지만 환상특급적 피날레를 장식한 이야기들. 작가도 작가지만, 다음 <레이디 가가> 시리즈는 무엇일지 정말 너무나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