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B급 세계사> 2권을 모두 봤었다.
책 내용은 둘째치고 'B급'이라는 뜬금없는 커밍아웃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봤던 책.
한국사는 안 나오나 어렴풋이 짐작했는데, 역시나 하고 눈에 띄어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표지에 '역사 잡학 사전'이라고 잡학임을 당당히 밝히고,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51가지 역사적 이슈를 모아 외우지 않고 읽는 즐거움을 주는 한국사를 표방한다.
<공무원 채용 시험은 과거 시험에서 유래했다?>
부자들은 시험장에도 하인을 보내 좋은 자리를 맡아 놓았다. 하인은 날이 따가우면 차양과 양산을 드리웠다. 주인님의 기운이 빠질까 봐 시험을 치르는 내내 옆세 앉아 백숙을 고았다.
사극에서 보던 엄정한 과거시험 장면이 머릿속에서 훅 날아가 버린다.
옆에서 백숙까지 고았다니.
대리시험이나 부정행위도 적잖았다고 한다.
이렇듯 소소한 역사 지식을 읽어 나가는 묘미가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마을 이름에 슬픈 역사가 담겼다>
임진왜란 당시 이 지역에는 운종사라는 절이 있었다.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이 절의 여승들을 겁탈했다. 여승들은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잉태했다.
이태원. 다른 민족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들이 사는 마을이란 뜻이다.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아서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태원이라 불렀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떠나서, 임진왜란 때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을 '화냥년'이라고 불렀던 내용도 언급하고 있다.
나라를 지킬 힘이 없으면 이렇게 억울하게 당한 민초들의 원한이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다.
<최초의 서양 병원은 제중원이 아니다>
근대식 병원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된 후 설립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부산이 개항되었고 일본인이 몰려들었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서양식 의원이 1877년(고종 14년) 2월 부산에 세워졌다.
이 병원이 재생의원이다.일본 해군 군의관 야노 요시노리가 초대 원장을 맡았다.
한국인이 세운 게 아니라 안타깝긴 하지만 재생의원은 국내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다.
연대 세브란스 병원과 서울대 병원이 제중원이란 국내 첫 서양 병원이라는 적통 문제로 서로 갑론을박하는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그 힘 아껴 병원 본연의 목적과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의술에 더 힘쓰는게 어떨까.
일본인이 세운 병원은 '서양' 병원이 아니라고 목에 핏대 올리는 꼴불견까지는 안 봤으면.
정부는 1953년과 1962년 두 차례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때 화교들은 가지고 있던 현금을 처분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많은 돈은 모두 종잇조각이 되어 버렸고, 화교들은 빈털터리가 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는 중국 식당이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게 했다. 외국인들의 부동산 소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되면서 평생 벌어 놓은 재산을 헐값에 내놓아야 했던 화교도 있었다.
1990년대 들어 달라졌다. 화교들이 참정권을 얻었다.
영화 <황해>에서의 큼지막한 뼉다구, <범죄도시>의 그 어눌한 말투에 전혀 어눌하지 않는 폭력성.
화교에 대한 선입견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했던 불과 몇 십년 전의 행태를 보면 화교, 짱개라고 비하할 자격이 없다.
<측은지심이 만들어 낸 기적> - 홍순언 이야기
서울 중구에 있는 롯데 호텔 주변...
호텔 앞 도로변으로 가면 작은 표지석이 하나...
임진왜란 때 역관 홍순언이 명나라에 갔을 때 여인을 도와 준 일로 보은단이란 글씨를 수놓은 비단을 받았다 하여 보은단골이 고운담골로 변음되었다고 한다.
명나라에 역관으로 따라간 홍순언이 기생집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여인의 불쌍한 사연을 듣고 그 여인이 자유의 몸이 되어 부모의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주었다고 한다.
후에 다시 중국으로 간 홍순언은 기생집을 나와 예부 시랑(와교부 차관)의 첩이 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고, 보은의 답례로 비단을 받게 된다.
또한 임진외랸 때 명나라의 조선 파병 원군을 이끌어 내는 도움을 받는 인연까지 이어진다.
역사에서 존경심이나 분노, 타산지석의 마음을 느끼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는 B급 역사의 한 쪼가리도 좋다.
푸른 눈의 한글학자,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 호머 헐버트 이야기
1886년(고종 23년) 첫 근대식 국립 학교 육영공원이 설립되었다...
그해 7월, 23세의 헐버트는 초빙 교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실제 그는 4일 만에 한글을 깨우쳤다고 한다...
한글 교과서를 만들자! 3년의 작업 끝에 1889년 책을 출간했다. 바로 <사민필지>다. 양반과 백성 모두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이라는 뜻.
<사민필지>가 한글로 만들어진 최초의 교과서라고 한다.
한글로 만든 최초의 교과서를 조선사람이 아닌 파란눈의 선교사가 만든 것이다.
또한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아리랑을 가장 먼저 기록하기도 했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헐버트는 직접 무기를 들고 고종을 지켰고, 고종의 네델란드 헤이그 평화 회의 특사 파견을 주도했다고 전해진다.
1949년 한국을 다시 찾은 헐버트는 일주일 만에 한국에서 세상르 떠나 절두산 성지에 묻혔다.
마포대교 근처를 차로 지날 때마다 별다른 의미도 없었던 절두산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새삼스럽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꾸역꾸역 찾아가 그의 비석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
무당이 나라를 살린다고?
명성 황후와 고종에 관한 불편한 진실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
왕비는 충주로 달아났다. 은신처에 무녀가 오더니 50일 이내에 환궁할 것이라 예언했다. 힘을 얻은 왕비는 고종과 비밀리에 접촉했다. 청의 힘을 빌려 대원군을 축출하는 계획을 세웠다...
무녀는 도박에 성공했고, 개선장군처럼 황후와 함께 입궁했다.
명성황후의 총애를 듬뿍 받아 신령군이라는 군호도 받았다고 한다. 조선 역사상 군호를 받은 유일한 여성이다.
무녀와 왕비는 궁에서 수시로 굿과 제사를 지냈다.
무녀는 엄청난 권력자가 되어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일본, 청나라, 러시아 등 열강은 조선을 집어 삼키려 눈을 벌겋게 뜨고 있고 피탄에 빠진 백성들에게서 곡소리만 나는데, 궁에서는 왕비라는 작자가 무당과 어울려 꽹과리 치며 굿판이나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전대통령과 최순실.
우리는 왜 역사가 주는 가르침을 보지 못했는가.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를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바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한국까지 오게 된것은 순전히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때문이었다. 그녀가 한국 여행을 고집했던 것이다. 고종은 앨리스를 미국의 공주로 여겼다. 공주에게 다시 매달려 보기로 했다...
앨리스는 무례했다...
훗날 앨리스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대한 제국의 황제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애처롭고 둔감한 모습이었다.'
당시 앨리스는 오찬장에 승마복을 입은채로 늦게 도착했으며, 담배를 피우고 웃고 떠들며 상식 이하의 무례함을 보였다고 한다.
명성 황후의 묘인 홍릉에서는 수호신 석상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상식 이하의 행동도 보였다.
나라 꼴이 그 모양인데 20대 초반의 미국 대통령 딸의 눈에 국가가 국가같이 왕이 왕같이 보이기나 했을까.
전작 세계사 편도 그랬지만 역사책이 술술 읽히는 마법을 경험했다.
가벼움과 즐거움, 깨달음과 감동이 있다.
교과서나 시험을 위한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는, B급만이 줄 수 있는 즐거운 찌질함을 마음 껏 느낄 수 있는 책.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