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세상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곳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을 거치던 냉전시대를 거쳐, 이제는 자본주의의 한 모습인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지 어연 30년 가량이 흘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전 세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화가 시작되면서 불과 30년전만 하더라도 감히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기술들이 생겨났고 그만큼 사라져버리거나 버려진 기술들도 엄청나게 많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편해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안면 인식을 하거나 홍채를 인식하는 기술이 생겨날 정도로 점점 사람들의 손길은 쓸모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전쟁의 위협은 대체적으로 사라지고, 인류는 정말 유래없는 속도의 기술발전을 거듭해 왔으나, 정작 인류가 앞으로 100만년은 더 뿌리박혀 살아야 하는 지구의 오염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구는 언제까지나 인류의 자원이고 돈줄이 되어야 하는 땅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러나 최근 들어 전 세계에는 새로운 이슈가 한 가지 발발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일으킨 환경오염이, 생명의 별 지구를 회생불가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고 있다는 기후변화 이슈.
올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사람을 꼽을 것이다. 15살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툰베리가 UN에 나서서 한 연설과 함께 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 이슈는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 사람의 외침으로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협약체인 UN에서 이 15살 소녀의 이야기를 주목하기는 했으나, 사람들은 이 소녀의 발언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여전히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환경오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 하고 있다.
그렇다. 세상은 정말 인류가 살기 좋은 모습으로 변하기는 했으되 어쩌면 인류가 살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책임은 통감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한 것들이 없을 것이다. 환경변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에서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그걸 실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의식에는 변화를 찾기는 상당히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가 편하고자 하는 행동들이 세상을 점차 더럽히고 지구를 살기 힘든 행성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기 힘든 것은 힘든 것이기에.
이에 오늘 소개하는 책인 <아날로그 살림>에는 아주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몇 가지 불편함을 이야기 해볼까 한다. 저자인 이세미 작가의 프로필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으로 시작된 주부의 노력"
그렇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수십 곳이나 되는 기업, 교육기관들을 다니며 이 주제로 강연을 하고 다녔지만, 항상 자신을 평범한 주부라고 소개한다. 왜냐하면, 살림이야 말로 가장 쉽게 실천하는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작가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편리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정말 편한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한 번 쓰고 버릴 제품의 낭비를 줄이며, 쓰레기가 될 만한 물건들에는 아예 눈길조차 두지 않는 삶의 방식은 사실 평범한 주부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제안한 것들에 이런 이름을 붙여 보았다.
평범한 주부의, 그러나 그래서 더욱 더 위대한 불편함.
<아날로그 살림>은 사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수 많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조금이라도 더 효율성을 따지고, 편리함을 추구하며, 좀 더 동선을 줄이기를 원하는 통칭 디지털라이프를 사는 이들에게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작가는 저서 내내, 조금 더 느리지만 정확하게, 손이 한번 더 가더라도 쓸모가 있는 것들을 쓸모가 없게 만들지 않는 진정한 아날로그 삶의 방식을 추구해 나간다. 정말 어렵고 불편한 일들 투성이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시대의 바로 윗 세대를 사시던 부모님들께서는 이것들을 그냥 아주 당연하게 해왔던 것 들이다.
그냥 1회용 봉투에 담는 것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손으로 보자기에 싸고, 간단하게 배달음식을 시켜먹기 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족들을 위해 정성이 담긴 손으로 음식을 장만한다. 장을 볼 때에는 항상 장 볼 거리만 딱 적어서 너무 크지 않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안 쓴다고 바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리를 통해 물품들을 아끼고, 친절히 이웃들에게 나누며, 때로는 바꾸고, 그리고 다시 쓸 수 있는 것들은 다시 쓰는 삶의 지혜를 실천하신 옛 세대의 비법들.
우리는 정말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정말 사람답게, 사람냄세나게 사는 방법을. 우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효율적인 삶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직장 생활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기계적으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집안에 돌아와서 하는 살림 정도는 사람 냄세가 물씬 풍기게, 그리고 충분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건 온전히 주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살림을 한다는 건, 그냥 매일 반복되는 일임에 틀림 없다. 직장은 쉬는 날이 존재하지만, 살림은 쉬는 날이 존재할 수 가 없다. 매일 신경 써야 하고, 매일 힘들여야 하고, 매일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사실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제 아무리 가족 모두를 살리는 책임을 지고 있는 주부라도, 매일 혼자서 그렇게 신경을 쓴다는 건 쉽지 않기에. 그래서 저자 역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진 시대라고 하지만, 가족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가족이 함께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한 아날로그 살림이 실행된다면, 어느 새 그것이 하나의 좋은 습관이 되어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문구 하나를 남기며 서평을 마친다.
세상은 쉽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다 보면,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들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각자의 양심대로 행동한다면, 세상은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여러분,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고 김대중 대통령 연설 중-